‘사과?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라고?’ 이제야 그녀는 진이훈이 왜 맞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장선명의 주먹은 나태웅을 겨냥한 것이었다. 진이훈을 때린 것은 분명 그들에게 경고하는 의미였다. 이 일을 더 물고 늘어진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말이다. 하지만 나태웅은 이런 경고를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이해하고도 무시한 것인지 여전히 끈질기게 얽매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하주원은 나태웅이 자신을 위해 정의를 주장하며 나서는 모습을 보고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그녀는 안열을 향해 도발적으로 말했다. “못 들었어? 빨리 너희 안 대표님을 불러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 ‘무릎 꿇고 사과하라니?’ 진이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당장이라도 하주원에게 무릎을 꿇고 말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여자가 도대체 안지영이 어떤 사람인지나 알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오늘 일을 계기로 안지영과 나태웅 사이의 관계는 영원히 끝났다는 것이다. 진이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태웅이 안지영에게 사과를 요구하다니, 이 사람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들었지?’ 그는 속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나태웅은 안지영 때문에 심리 상담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이건 그야말로 안지영을 완전히 떠밀어내는 꼴 아닌가. 진이훈은 숨이 턱 막혔다. 안열은 하주원의 말을 듣고 마치 우스운 소리라도 들은 듯이 되물었다. “당신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물론이지! 당장 불러와서 내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면 이 일은 여기서 끝낼게.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으려고요?” 하주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열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 하주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안열은 냉소를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경멸과 혐오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하주원의 얼굴을 내리쳤다. ‘찰싹!’ 날카로운
원래는 기고만장했던 하주원이었지만 지금 안열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겁에 질려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손목을 빼내려고 했지만 안열의 손은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너 당장 놔!” 고통에 찬 하주원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방금까지 안열을 비서라고 무시하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두려운 눈빛을 본 안열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집에 돌아가서 네 아버지에게 말해. 오늘 네 딸은 안열이라는 여자에게 맞아서 이렇게 됐다고.” “너!” “그리고 네가 안지영에 대해 한 마디라도 입에 올린다면 네 이 손목은 완전히 잘려 나갈 줄 알아.” 하주원은 경악하며 더듬거렸다. “너, 너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야?” 안열은 차분히 대답했다. “협박이 아니라 경고야. 이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말해주는 것뿐이지.” 하주원은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온몸이 떨려왔다. 안열은 그런 하주원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알겠어? 확실히 기억했으면 대답해.” 그 순간, 나태웅이 나섰다. 그는 안열의 손목을 잡아 제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해. 이제 충분하지 않아?” 안열은 그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손목을 빼냈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의 눈빛은 엄청 차가워졌다. 하주원은 안열을 노려보고 억울하다는 듯이 나태웅에게 매달렸다. “사촌 오빠, 저 너무 아파요!” 나태웅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며 안열을 향한 적대감이 뚜렷해졌다. “안열, 네가 정말 내가 널 못 건드릴 거라고 생각해?” 안열은 비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건드릴 수야 있겠죠. 하지만 저를 어떻게 할 건데요?” 그녀의 태도는 전혀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당당해 보였다. ‘이 여자가 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을 얻은 거야? 감히 사촌 오빠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두 사람이 할 말을 잃자 안열은 비웃으며 말했다. “할 수 있는 것과 하는 건 두 가지 일입니다. 나 대표님, 제 말이 틀리나요?” “
나태웅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한 번 바라봤다. “여기 왜 온 거야?” 비록 감정을 억누른 듯한 목소리였지만 옆에 있던 진이훈조차 그의 불만이 섞인 말투를 알아챌 수 있었다. 나태웅의 물음에 하주원은 금세 얼굴에 억울함이 가득 차올랐다. 이내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안지영이 오빠의 감정을 짓밟았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팠고 오빠를 대신해 정의를 되찾으러 온 거야.” 말투와 표정 모두 그럴듯했다. 하지만 옆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진이훈은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마음이 아프다니, 정의를 되찾겠다니? 그게 아니라 안지영을 적대시하고 일부러 괴롭히려고 온 거겠지. 정의를 운운하며 나태웅을 돕는다니 말도 안 돼.' 나태웅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앞으로는 여기 오지 마.” “응, 오빠 말 들을게.” 하주원은 나태웅 앞에서 완전히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며 착한 아이로 변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 나태웅도 마음 한구석에 쌓였던 울분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그는 다시 진이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여자한테 전해. 사흘 안에 사과하지 않으면 하늘 그룹은 강성에서 사라질 거라고.” ‘뭐라고? 안 대표님이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방금 전 구이준에게 두들겨 맞은 것을 떠올리며 진이훈은 온몸이 다시 풀리는 것 같았다. ‘이 타이밍에 가서 안지영 씨를 찾으라고? 그럼 이번엔 구이준뿐 아니라 장선명 씨한테도 맞는 거 아냐?’ 진이훈은 속으로 울고 싶었다. “근데 왜 꼭 안 대표님이 사과를 해야 하는 거죠?” ‘지금까지 저질렀던 일들은 다 안지영 씨와 화해하려고 한 거 아니었어? 그런데 이건 화해를 포기하겠다는 건가?’ 그의 의문에 나태웅은 바보를 보듯 그를 흘겨보더니 하주원을 향해 말했다. “가자. 병원에 데려다줄게.” “좋아.” 병원에 데려다준다는 말을 들은 하주원의 얼굴은 금세 환해졌다. 그녀의 손목은 진짜 너무 아팠다. ‘그 못된 안지영, 그리고 안열 때문에 지금 내
‘내가 이렇게까지 다쳤는데 그걸 보고도 날 못났다고 하다니!’ “다른 사람과 싸우다가 이렇게 된 주제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안지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건 너무 갑작스러웠다고요! 선명 씨는 하주원이 얼마나 막 나가는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요.” 하주원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안지영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랑 나태웅이 무슨 큰일을 벌인 것도 아닌데 찾아와서 때리다니! 정말 말이 안 돼!’ 장선명은 그녀의 화난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다치지 않은 부위를 손으로 가볍게 눌렀다. “말은 됐고 나중에 다 나으면 제 일과를 따라야 해요.” “무슨 일과를 왜 따라야 하는데요?” “운동 시간이요.” 안지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안 하면 안 되나? 체력을 너무 소모하는 건 싫은데.’ 하지만 장선명이 그녀에게 운동을 시키려는 이유는 명백했다. 싸움에서 이기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사람은 정말, 출발선부터 남들과 달랐다. 장선명이 정성껏 그녀의 상처에 약을 발라준 뒤에야 자리를 떴다. 장선명이 하늘 그룹 본사를 나서자마자 그는 곁에 있던 구이준에게 물었다. “하씨 가문 사람이냐?” “네, 나태웅 씨의 사촌 여동생입니다.” 구이준이 대답했다. 장선명의 눈에 싸늘한 빛이 스쳤다. “하씨 가문이라, 좋아. 아주 좋아.” ‘나태웅이 사과를 요구한다고? 그렇다면 이번엔 나태웅에게 보여주겠다. 누가 누구에게 사과해야 하는지.’ 하씨 가문은 겉보기엔 만만치 않은 집안처럼 보일지 몰라도 본질적으로는 질이 나쁜 집안이었다. 장선명은 하씨 가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늘 일이 나태웅에게서 비롯된 건 이미 뻔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태웅은 가족을 감싸느라 도를 넘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그들이 건드린 사람은 안지영이었다. 그리고 장선명은 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 시각, 안지영은 거울을 보며 얼굴에 난 손톱자국을 확인하고 있었다. 약을 바른 덕분에 시원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다음에 또 하주원 같은 사람이 찾아오면 내가 적어도 한 방은 먹여줘야지. 지금처럼 겨우 맞대응만 하다 끝나는 건 싫어. 하지만 싸움에서 이긴다는 건 쉽지 않은데.’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결심한 듯 말했다. “오늘 밤부터 저도 킹덤 타운에서 살 거예요!” 안열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안 대표님 원래도 킹덤 타운에서 살지 않았어요?” “아니에요. 가끔 장선명 씨랑 일 얘기할 때만 잠깐씩 갔던 거예요. 하지만 오늘부터는 제대로 이사해서 살려고요!” 안열은 그녀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왜 갑자기 킹덤 타운에 살겠다는 거예요?” “다음에 하주원 같은 사람이 오면 제가 다시는 제 얼굴에 상처 입는 꼴은 못 보겠거든요!” 안지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열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그게 이유라면야 나름 진지한 거긴 하네요. 근데 진짜 킹덤 타운으로 가실 거예요?” “당연하죠!” “근데 넷째 도련님의 운동 스케줄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선명의 악명 높은 운동 루틴을 떠올리며 안열은 몸서리를 쳤다. 그녀 자신도 근육이 제법 붙은 편이었지만 그의 훈련 강도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안지영은 잠깐만 달려도 숨이 차는데 장선명의 훈련 강도를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안지영은 의문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심하게 운동해요?” 안열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전에 부하 중 한 명이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뛰었다는데, 어떨 것 같아요?” 안지영은 말을 잃었다. ‘다리가 부러질 정도라고?’ 순간, 그녀의 마음속 결심은 산산조각 났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아무래도 포기해야겠어. 내가 체력으로 장선명과 겨룬다고? 웃기지도 않아.’ 하지만 장선명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안열이 방을 나간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장선명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지영이 전화를 받았다. “비밀번호.” “무슨 비밀번호요?” 갑작스러운 요구
나태웅은 자신이 오늘 하늘 그룹에서 벌인 일로 인해 안지영과 장선명이 진지하게 동거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병원에서는 하주원의 손목이 마치 만두처럼 부풀어 올라서 아예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소식을 들은 하준성은 급히 병원에 도착했고 자신의 딸이 이렇게 다친 모습을 보고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 “이게 안씨 가문 그년이 한 거냐?” 자신의 유일한 딸이 병원에 누워 있는데 그녀는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대담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장씨 가문이냐? 지금 그 여자는 장씨 가문의 며느리가 아니지 않나!’ 하주원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한 번 보고 그 후 나태웅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이미 너무나도 분명했다. 하준성은 나태웅을 보며 다가가서 물었다. “태웅아, 너는 안씨 가문 그년과 친한 거냐?” 나태웅은 대답 없이 그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하준성은 금테 안경을 밀어 올리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년에게 전해라. 이번 일에 대해서 나는 반드시 해명 받아야 한다고.” “주원이를 다치게 한건 안지영이 아니에요.” 나태웅은 차갑게 말했다. 하준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누구냐? 너는 그 여자 편을 든 거냐?”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 어떤 마음인지 이제 나씨 가문 사람들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동안 나태범은 그 일 때문에 거의 병원에 실려 갔을 정도였으니 하준성이 모를 리 없었다. 하준성은 나태웅이 안지영를 감싸고 있다는 뉘앙스로 얘기했고 나태웅은 말없이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말했다. “손목에 있는 상처는 장씨 넷째 도련님 옆에 있는 안열이 한 거예요.” “안열? 안칼?” ‘그 배경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냉혹함과 장씨 가문의 후원 덕분에 강성에서 입지를 다진 여자가? 그 여자 감히 하씨 가문 사람에게 손을 대다니? 아니, 강성에서 몇 년 동안 장씨 가문의 면전에서 아무도 그 여자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그녀가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 몇 분의 자리가 있다고
“너...!” 그 말은 안지영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하준성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였다. 이미 화가 나 있던 하준성은 나태웅의 이 냉정한 태도에 이성을 완전히 잃었다. ‘이 녀석은 진짜 예사롭지 않은 놈이었다!’ 나태웅은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이 간단히 말을 마친 후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그러자 하준성은 또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럼 적어도 주원이에게 사과라도 시키지. 나태웅, 너도 알잖아, 나는 내 가족이 괴롭힘당하는 걸 못 참아!” 그 말은 명백히 나태웅을 비꼬는 말이었다. 집 밖의 사람을 위해 집안사람은 못 챙기고 오히려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하준성은 그동안 보여준 적 없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나태웅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때, 하준성은 또 물었다. “안열 그 여자는 너와 관계가 없지? 그거라도 확실히 해야겠어. 내 딸이 이렇게 맞았는데 그대로 참고 있을 순 없잖아! 남자로서 체면이 있지 않냐!” 안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나태웅의 눈에 서늘한 기운이 번뜩였다. 그 후, 그는 짧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상관없습니다.” 그 말은 안열과의 관계는 없으며 하준성이 그 여자를 어떻게 하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화가 난 하준성은 나태웅의 말에 조금은 위안을 얻은 듯했다. ‘상관없다니, 그럼 괜찮겠군.’ 한편, 안지영의 상황은 달랐다. 고은영이 안지영이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 고은영은 안지영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 울지 마. 나 안 아프다니까.” 안지영은 황급히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 정말로 안지영은 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가 그녀를 동영 그룹에 보내고 모든 카드를 끊어버린 일도 그녀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은영이 울면 다르다. 고은영이 울면 안지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진다. 예전에 절에 갔을 때 스님이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
고은영은 얼굴에 난 상처를 걱정하며 안지영을 지켜보았다. 손을 뻗어 상처를 만져보려 했지만 혹시 더 아프게 만들까 봐 주저했다. 안지영은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갑자기 고은영의 작은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었다. “봐, 안 아파!”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손을 빼려 했지만 안지영을 더 아프게 할까 봐 걱정했다. “빨리 놓아줘.” 안지영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안 아프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왠지 차가운 기운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배준우가 자신을 노려보며 시선이 날카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지영은 당황해서 살짝 손을 놓았다. ‘배준우는 정말 질투가 나면 누구에게나 그런 건가? 나는 여자인데? 질투도 성별을 가려야 하지 않나?’ 고은영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정말 안 아파?”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파.” 안지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고은영도 조금 안심한 듯 보였다. 안지영은 그런 고은영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 바보는 진짜 내가 뭐라 해도 다 믿네.’ 그렇게 순진한 모습이야말로 자신이 그녀를 보호하게 만들었던 이유였다. 그 순수함이 누구에게도 악용당할 수 있을 만큼 여렸기 때문이다. “아기는 어때?” 안지영은 조용히 물었다. 고은영은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기는 정씨 어르신이 데려갔어. 며칠 동안 함께 지내기로 했대.”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씨 어르신은 고은영의 선생님으로서 그녀에게 엄청 잘해주었다. 안지영은 고은영을 잘 챙겨주려는 이들이 많다는 생각에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어리석은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고은영은 참 순수했고 그런 그녀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안지영을 보고 하늘 그룹에서 나온 고은영은 배준우의 몸에서 이상한 기운을 내뿜는 것을 느꼈다. 고은영은 조심스럽게 그의 표정을 살펴보고 자연스럽게 조금 거리를 두었다. 그 모습을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