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뭐 하는 거지? 지금 사과하는 건가?나태웅이 자기 잘못을 사과하는 사람이었나?안지영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안지영이 아는 나태웅은 자기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런 미치광이였다.“미안하다고요?”안지영은 그 단어를 곱씹으면서 웃었다.왜 사과하는 거지?‘미안해’라는 세 글자로 전에 했던 모든 일을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두 사람 사이의 일들은 구두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그러니 가볍고 간단한 ‘미안해’라는 세 글자로 덮을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이 드디어 자기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는 줄로 알았다.하지만 역시나 기대가 컸다.나태웅이 얘기했다.“오늘 그 꽃은 오해야. 처음에 국화를 보낸 건 내가 아니야.”“...”안지영은 지금 ‘국화’라는 단어도 듣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나태웅은 계속해서 이어갔다.“내 아버지가 보낸 거야.”“...”안지영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사과를 하는 이유가 국화 때문이라고? 그 국화도 본인이 보낸 게 아니라 나태범이 보낸 거라고?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안지영은 애써 복잡한 감정을 추스르려고 했다.“아버지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꽃집에서 실수했을 뿐이야.”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나태웅은 본인의 잘못은 인정하고 사과하려고 했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의 말을 들으면서 귀를 닫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이렇게 와서 해명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수치와 모욕을 안겨준 다음 해명할 정도로?“왜 중요하지 않겠어? 네가 천락 그룹을 장례식장으로 만들었는데.”그러니 나태웅이 생각했을 때 이 오해는 아주 큰 오해라는 것이다.안지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약간 놀랐다.나태웅의 성격이 개차반인 것은 알고 있었고 또한 국화를 보내는 일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하지만 안지영은 이 사건의 자초지종이 이런 것일 줄은 몰랐다.“하하...
안지영이 들어갔을 때 장선명은 이미 샤워를 끝낸 후였다.짙은 푸른색 잠옷을 입고 있는 장선명에게서는 우아함과 귀티가 흘러넘쳤다.그리고 느슨한 옷깃 사이로는...안지영이 나태웅 때문에 화가 나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눈앞의 미인계에 넘어갔을지도 모른다.어느새 장선명이 안지영의 앞으로 다가와 안지영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뭘 봐?”안지영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얼굴은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그렇게 화가 났으면서도 미인계에 홀랑 넘어간 거야?’안지영은 그런 본인에게 화가 났다.장선명은 부끄러원하는 안지영을 보면서 웃었다.“마음대로 봐. 어차피 네 것이니까.”“그만해요!”“부끄러워?”장선명은 여전히 여유로웠다.장선명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안지영을 지켜보는 게 재밌었다.하늘 그룹의 일인자가, 집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인다니.장선명은 여태껏 많은 여자들을 만나봤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장선명의 마음을 움직이는 여자는 오직 안지영뿐이었다.안지영은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다. 다른 여자들은 다 목적을 감추면서 장선명에게 접근했지만 안지영은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도움이 필요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안지영에게 장선명이 필요해서 시작된 관계다.안지영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장선명의 품에 안겨있었다.몸이 맞닿은 부분에서 전기가 통하듯 찌릿찌릿했다.“선, 선명 씨...”안지영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했다.“지영아, 그 사람한테 마음 약해질 거야?”장선명은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안지영이 나태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안지영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아니요!”장선명의 질문에 안지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나태웅에게 마음 약해지는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안지영은 머리가 뛰어나게 총명한 것은 아니지만 유일한 장점은 이성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약혼녀다.그리고 나태웅이 왜 자꾸만
고은지는 나태현을 쳐다보면서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나태현은 고개를 들어 고은지와 눈을 마주했다. 그 순간 나태현의 마음속에는 불쾌한 감정이 치솟았다.나태현은 손을 뻗어 미녀의 가는 허리를 감싸며 고은지에게 말했다.“나가서 기다려.”“네.”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돌아섰다.그런 고은지의 뒷모습은 곧고 당당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은지는 매우 침착했다.왜 이렇게 차가운 걸까? 정말 신경 쓰이지 않는 건가? 고은지는 바로 바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핸드폰이 가방 속에서 진동했다. 화면에는 낯선 번호가 나타났다. 고은지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은지야, 나야.”전화 너머로 량천옥의 목소리가 들렸다.량천옥은 결국 참을 수 없었다.원래는 고은영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고은지가 이미 알게 된 이상 더는 숨기지 않기로 했다.량천옥의 목소리를 들은 고은지의 눈빛은 예리하게 변했다.량천옥은 고은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한번 만나자.”“무슨 얘기를 하려고요?“ 고은지가 냉담하게 물었다.량천옥은 잠시 머뭇거리다 답답한 가슴을 이기지 못하고 말했다.“직접 만나서 해야 할 말이 있어.”량천옥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그래서 몇 번이고 생각을 되새기다 결국 고은지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량천옥은 고은지가 본인을 대하는 것처럼 차갑게 고은지를 대할 수 없었다. 고은지를 보고 싶었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고 싶었다.고은지에게 량천옥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었다. 그때 만약 알았다면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량천옥은 고은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여전히 고은지를 아주 사랑한다고, 일부러 고은지를 버린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여태껏 미친 여자처럼 계속해서 고은지를 찾아 헤맸다고 말이다.하지만 아이와 어머니의 인연이라는 것은 아주 가까운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 잃으면 다시 찾기 어려운 법이었다.고은
고은지는 대답하지 않고 량천옥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고은영의 입으로 들을 때와 량천옥의 입으로 듣는 건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고은영은 고은지의 말에 일일이 반응해 주었다.하지만 량천옥의 말을 들으며 고은지는 인내심을 잃고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량천옥은 가슴이 아팠다. 전에 봤을 때 고은지는 고은영보다 더욱 온화하고 부드러운 아이였다.그런데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차라리 량천옥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면 무시하는 것보다 나았을 것이다.깊은 밤, 량천옥은 고통에 몸부림쳤다.퇴원한 량일은 일어나서 물을 마시러 가다가 량천옥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다가왔다.전등을 켜니 량천옥이 새하얗게 질려서 고통스럽게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천옥아.”량일이 걱정스레 다가갔다.량천옥은 온몸이 다 아픈 것만 같았다.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것인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그런 량천옥을 본 량일은 마음이 조급해졌다.“엄마한테 말해. 어디가 아픈지. 병원에 가자.”“이거 놔요! 저리 가요!”“너...”“가라고요! 보고 싶지 않으니까.”량천옥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소리쳤다.량천옥의 세상은 암흑으로 물들었다. 이런 절망은 처음이었다.량천옥은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천옥아!”“당신이 미워요! 밉다고요!”량천옥은 완전히 미쳐버렸다.“...”가슴이 찢어질 듯 외치는 량천옥을 보면서 량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옆에 서 있었다.량천옥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본인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마치 이렇게 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것처럼 말이다.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서 량천옥은 본인이 고통을 못 느낀다고 생각했다.량일은 그런 량천옥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바로 량천옥의 손목을 잡아서 얘기했다.“너를 다치게 하는 일은 그만 해.”“당신이 미워요. 정말 미워요. 왜 나한테 그런 거예요! 그 애는 내 딸인데!”“...”“그 어린아이를 보면서 마음 약해진 적이 한 번도 없어요?”“...”량천옥은
량천옥이 외쳤다.량천옥은 원래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있었다.“왜 상류층에 들어야만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내가 그동안 배씨 가문에서 잘 살아온 거 같아요?”“...”배씨 가문을 언급하자 량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량일은 량천옥을 배항준에게 보낼 때 량천옥의 남은 생은 편안하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량일은 이 남자가 바람둥이라는 것을 후에야 깨달았다.아침 드라마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량천옥에게 일어났다.결국 량일의 판단은 틀린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와서 그 잘못들을 인정해 봐야 변하는 것은 없었다.량일은 가슴이 아팠다.“다 내 잘못이야. 내가 찾아가서 해명할게.”량일이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해명을 떠올린 량천옥은 고은지의 차가운 태도가 떠올랐다.두 사람 사이는 해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닌 것만 같았다....밤은 길고 고요했다.고은지는 차에 앉아서 나태웅과 나태현이 같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나태현의 옆에 붙어있던 여자는 나태현 뒤를 따르면서 부끄러운 표정을 보였다.다들 성인이니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차 문이 열리고 나태현은 술에 취한 나태웅을 조수석에 앉혔다.그리고 나태현과 여자는 뒷좌석에 앉았다.“일단 나태웅을 나씨 가문으로 데리고 가.”“네.”고은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시동을 걸었다.나태웅을 나씨 가문에 데려다주고 나태현을 어디에 데려다줄지는 뻔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고은지의 운전 실력은 그리 좋지 못했다.조영수와 결혼하기 전에 면허를 땄지만 그동안 운전할 일이 없었기에 거의 장롱면허였다.그래서 고은지는 아주 느릿느릿하게 운전하고 있었다.바에서 나씨 가문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나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은 잠에 들었다. 문 앞 경비가 나태웅을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갔다.나태현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나태웅을 보낸 후 고은지가 물었다.“나 대표님
아까 운전할 때는 느릿느릿하기만 하더니, 지금은 쏜살같이 나태현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나태현은 이유 모를 화를 꾸욱 누르면서 일단 여자를 방으로 데리고 갔다.안에서 문을 연 것은 다른 남자였다. 바로 해외에서 금방 돌아온 모정환이었다.여자는 모정환을 보는 순간 표정이 굳어버렸다.“고마워.”여자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모정환은 여자를 방으로 끌어당겼다.“앞으로 나한테 이런 일 시키지 마.”말을 마친 나태현은 여자를 힐긋 쳐다보았다. 모정환은 여자의 가느다란 허리를 한 손에 안고 말했다.“어쩔 수 없어. 고집이 얼마나 센 건지. 날 만나지 않으려고 하잖아.”나태현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할 일을 마친 후 자리를 떠났다.“공산의 프로젝트, 나한테 넘기는 거 잊지 마.”“알겠어.”나태현은 그렇게 당부한 후 자리를 떴다. 뒤에서는 여자와 모정환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태현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엘리베이터를 탄 나태현은 고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성격이 그 지경이 된 거지?’고은지는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이윽고 담담한 목소리로 질문했다.“콘돔이 필요하신 건가요?”“...”나태현은 짜증이 확 솟구쳤다.‘빌머억을...’짜증이 난 나머지 머리까지 아팠다. 대답하기도 귀찮은 나태현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너머의 고은지는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끊겨버린 전화를 보면서 고은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날 밤, 강성에는 많은 일이 지나갔다.이튿날 고은영은 량천옥의 전화에 깨어났다. 급하게 전화를 받은 고은영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은영아, 나 좀 도와줘.”전화기 너머의 량천옥은 많이 피곤해 보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아마도 밤새 운 것만 같았다.고은영은 겨우 눈을 뜨고 물었다.“뭘 하려고요?”“은지를 만날 거야.”“...”그 말에 고은영은 정신이 확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보니 배준
아무리 그래도 친딸의 엄마인 사람인데 말이다.“알겠어요.”고은영은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고마워, 고마워.”“점심으로 하죠.”“그래, 알겠어.”량천옥이 대답했다.두 사람은 또 몇 마디 나눈 후 전화를 끊어버렸다.고은영은 더 오래 자고 싶었지만 량천옥 때문에 잠이 확 깨서 다시 잠들지 못했다.그대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배준우는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일찍 일어난 고은영을 보면서 배준우가 물었다.“왜 더 자지 않고?”“준우 씨가 일어나니까 그냥 일어났어요.”“나 때문에 깬 거야?”배준우는 최대한 조용하게 움직였다.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량천옥 씨가 전화를 했어요.”량천옥의 이름을 들은 배준우는 표정이 약간 굳었다.“뭐라고 했는데?”배준우가 물었다.배준우는 량천옥에 대해 호감이 전혀 없었다.게다가 고은영에게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배준우는 영원히 량천옥을 용서할 수 없었다.용서는 량천옥 같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고은영은 배준우의 옆에 앉아서 말했다.“은지 언니를 만나고 싶대요.”“천락 그룹에 가면 바로 만날 수 있을 텐데. 왜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 내가 전화라도 할까?”“그건 맞지만 아마도 은지 언니 앞에서 자꾸만 비굴해지니까...”량천옥은 고은지 앞에서 여러 번 고개를 숙였다.고은지를 신경 쓰고 고은지를 사랑하니까 그런 것이다.고은영의 말에 배준우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아침.두 사람은 같이 회사에 도착했다.배준우는 고은영을 데리고 출근했다. 언제든지 항상 붙어있고 싶었으니까 말이다.고은영이 회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옆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했다.수많은 사람들은 그런 고은영을 부러워했다.전에 고은영을 무시하던 사람들은 질투하면서도 고은영을 깍듯하게 대했다.“이따가 언니 만나러 다녀올게요.”고은영이 생각하다가 배준우에게 얘기했다.“응, 알겠어.”고은영은 고은지의 일로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태현과 얘
천락 그룹에 도착한 고은영은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나예요.”전화기 너머로 진유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영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무슨 일이죠?”“우리 할머니가 고은영 씨를 만나겠다고 해요. 지금 당장이요.”진유경이 차가운 말투로 얘기했다.고은영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진유경은 고은영을 장애물로 생각할 것이다.하긴, 배준우와 진유경 사이의 장애물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그것은 량천옥의 계획이었으니 고은영이 없었다고 해도 진유경과 배준우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진경희도 고은영의 존재를 안 후 차가운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마치 고은영이 진경희 친손녀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지금 갑자기 만나겠다니...“그럴 필요가 있을까요?”지금 상황에서 만나봤자 서로 상처되는 말만 주고 받을 것 같았다.“할머니께서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어요.”“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진유경 씨가 처리하면 되잖아요. 꼭 제가 필요한 일인가요?”진유경의 강경한 태도에 고은영은 약간 비꼬듯이 대답했다.고은영은 예전에는 돈 때문에 고개를 숙였었지만 지금은 고개를 숙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은영 씨, 우리는 그저 웃어른들의 말을 따르기만 하면 돼요.”진유경은 화를 억누르면서 고은영에게 얘기했다. 고은영은 코웃음을 쳤다.“지금 어디 있어요? 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갈 테니까 기다려요.”진유경은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만나고 싶지 않아요.”말을 마친 고은영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괜히 이들을 만나서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만나러 오겠다는 걸 보니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전화기 너머의 진유경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화가 치솟았다.진유경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통화가 끊겨 기계음만이 들려왔다.진유경은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을 쳐다보았다.“할머니.”요즘 들어 진경희는 고되게 살아왔다.머리카락마저 다 희게 물들 정도였다.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