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친딸의 엄마인 사람인데 말이다.“알겠어요.”고은영은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고마워, 고마워.”“점심으로 하죠.”“그래, 알겠어.”량천옥이 대답했다.두 사람은 또 몇 마디 나눈 후 전화를 끊어버렸다.고은영은 더 오래 자고 싶었지만 량천옥 때문에 잠이 확 깨서 다시 잠들지 못했다.그대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배준우는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다.일찍 일어난 고은영을 보면서 배준우가 물었다.“왜 더 자지 않고?”“준우 씨가 일어나니까 그냥 일어났어요.”“나 때문에 깬 거야?”배준우는 최대한 조용하게 움직였다.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량천옥 씨가 전화를 했어요.”량천옥의 이름을 들은 배준우는 표정이 약간 굳었다.“뭐라고 했는데?”배준우가 물었다.배준우는 량천옥에 대해 호감이 전혀 없었다.게다가 고은영에게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배준우는 영원히 량천옥을 용서할 수 없었다.용서는 량천옥 같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고은영은 배준우의 옆에 앉아서 말했다.“은지 언니를 만나고 싶대요.”“천락 그룹에 가면 바로 만날 수 있을 텐데. 왜 너한테 부탁하는 거야. 내가 전화라도 할까?”“그건 맞지만 아마도 은지 언니 앞에서 자꾸만 비굴해지니까...”량천옥은 고은지 앞에서 여러 번 고개를 숙였다.고은지를 신경 쓰고 고은지를 사랑하니까 그런 것이다.고은영의 말에 배준우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아침.두 사람은 같이 회사에 도착했다.배준우는 고은영을 데리고 출근했다. 언제든지 항상 붙어있고 싶었으니까 말이다.고은영이 회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옆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했다.수많은 사람들은 그런 고은영을 부러워했다.전에 고은영을 무시하던 사람들은 질투하면서도 고은영을 깍듯하게 대했다.“이따가 언니 만나러 다녀올게요.”고은영이 생각하다가 배준우에게 얘기했다.“응, 알겠어.”고은영은 고은지의 일로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태현과 얘
천락 그룹에 도착한 고은영은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나예요.”전화기 너머로 진유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영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무슨 일이죠?”“우리 할머니가 고은영 씨를 만나겠다고 해요. 지금 당장이요.”진유경이 차가운 말투로 얘기했다.고은영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진유경은 고은영을 장애물로 생각할 것이다.하긴, 배준우와 진유경 사이의 장애물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그것은 량천옥의 계획이었으니 고은영이 없었다고 해도 진유경과 배준우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진경희도 고은영의 존재를 안 후 차가운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마치 고은영이 진경희 친손녀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지금 갑자기 만나겠다니...“그럴 필요가 있을까요?”지금 상황에서 만나봤자 서로 상처되는 말만 주고 받을 것 같았다.“할머니께서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어요.”“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진유경 씨가 처리하면 되잖아요. 꼭 제가 필요한 일인가요?”진유경의 강경한 태도에 고은영은 약간 비꼬듯이 대답했다.고은영은 예전에는 돈 때문에 고개를 숙였었지만 지금은 고개를 숙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은영 씨, 우리는 그저 웃어른들의 말을 따르기만 하면 돼요.”진유경은 화를 억누르면서 고은영에게 얘기했다. 고은영은 코웃음을 쳤다.“지금 어디 있어요? 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갈 테니까 기다려요.”진유경은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만나고 싶지 않아요.”말을 마친 고은영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괜히 이들을 만나서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만나러 오겠다는 걸 보니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전화기 너머의 진유경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화가 치솟았다.진유경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통화가 끊겨 기계음만이 들려왔다.진유경은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을 쳐다보았다.“할머니.”요즘 들어 진경희는 고되게 살아왔다.머리카락마저 다 희게 물들 정도였다.
만약 지금 진씨 가문에 문제가 생겨서 바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진경희는 고은영을 만나러 가지 않을 것이다.‘성격은 제 에미를 똑 닮아서 싸가지가 없어.’...고은영은 고은지를 만나러 갔다.고은지는 거절하지 않고 점심에 량천옥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하지만 고은영이 떠날 때, 고은지가 당부했다.“은영아, 이번 한 번만이야.”고은영은 우뚝 멈춰서서 고은지를 쳐다보면서 가슴 아파했다.차갑게 변한 고은지를 보면서 고은영은 자꾸만 속상했다.만약 가능하다면 고은영은 고은지와 고희주가 조영수와 이혼하던 그 시기에 머물렀으면 했다.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나태현과 엮이지 않고 량천옥과도 모르고 지내던 그때 말이다.고은영이 두 사람을 평생 먹여 살리면 되니까 말이다.고은영은 고은지가 이런 진흙탕에서 고생하는 것이 마음 아팠다.“알겠어.”평소였다면 고은영은 절대로 량천옥의 말을 전해주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고은지와 나태현이 엮인 원인을 알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다.량천옥은 뼛속까지 나쁜 사람이지만 자기 가족 앞에서는 결국 연약해지고 만다....천락 그룹에서 나와 차에 오르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고은영 씨!”이윽고 진유경이 마이바흐에서 내리면서 고은영을 불렀다. 그리고 몸을 돌려 진경희를 모시고 나왔다.두 사람을 본 고은영의 표정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아까 통화할 때 분명 만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두 사람이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미간을 찌푸린 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진유경은 이미 진경희를 부축하여 고은영 앞에 다가왔다. 진경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은영을 쳐다보았다.“옆에 카페가 있으니 거기서 얘기하죠.”진유경이 진경희에게 얘기했다. 진경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말을 마친 진유경이 진경희를 부축하여 카페로 가려고 했다.하지만 고은영은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경희가 돌아서서 물었다.“왜? 내가 여기서 무릎이라도 꿇고
진경희는 배준우가 왜 고은영을 좋아하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진유경도 마다하고 선택한 것이 이런 예의도 없는 여자라니.“농촌 출신이 아니랄까 봐. 예의는 밥 말아 먹었니?”진경희는 불만을 그대로 토로해냈다.고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을 쳐다보았다.그러다가 재밌는 영상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작게 소리 내 웃었다. 그러자 고은영을 쳐다보는 진경희의 눈에는 증오가 깊어졌다.진유경은 고은영을 보면서 얘기했다.“할머니는 그저 몇 마디만 하러 오신 거예요. 시간을 오래 끌지 않을 테니 핸드폰 좀 내려놔요.”“5분이면 되나요?”“5분이면 충분하죠.”진유경이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더는 약 올리지 않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경희를 보면서 물었다.“이제 얘기하시죠.”진경희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지만 고은영이 핸드폰을 내려놓은 것을 보고 더 뭐라 하지 않았다.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신경희는 컵을 들어 목을 축인 후 엄숙하게 물었다.“네 둘째 오빠가 진씨 가문에 한 짓은 알고 있겠지?”“...”진정훈이 진씨 가문에 한 일?알고는 있지만 많이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진정훈이 한 일이 고은영 때문만은 아니라는 건 알았다.고은영은 그제야 진유경과 진경희가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알아요. 하지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진경희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고은영은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진경희는 그 말을 듣고 표정을 굳혔다.불만 가득한 시선으로 고은영을 쏘아보았지만 고은영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그 모든 일이 너를 위한 것이었는데, 네가 해결할 수 없다고?”“모든 일이 저를 위한 건 아니죠.”고은영이 대답했다.“...”“...”진경희 입장에서 고은영은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진경희는 예리한 눈빛으로 고은영을 보면서 말했다.“이 모든 건 네가 돌아온 후 발생한 일이야. 그런데 네 탓이 아니라니?”“제가 돌아온 후 발생한 일은 너무 많아요. 그런데 제 탓이라뇨?”
옥죄어오는 듯한 진경희의 말투에 고은영은 미간을 찌푸렸다.“...”진경희가 이어서 얘기했다.“네 아빠는 한 번도 너를 포기한 적이 없어. 너를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그런 말을 해도 괜찮은 거야?”고은영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진경희는 더욱 예리하게 파고들었다.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랐던 고은영은 진경희는 할 말을 잃었다.“나를 사랑한다고요?”“한 번도 너를 포기한 적이 없는 사람이야. 고은영, 널 사랑하는 아버지라고!”“하하, 날 사랑하는 아버지요? 정말 웃기네요!”말하면 말할수록 고은영은 어이가 없었다.“날 사랑한다면 내 존재를 알았을 때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요?”고은영은 전에 진성택한테 아주 실망했었다.그게 아버지가 자기 자식에게 보여주는 태도라면, 고은영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후에 진씨 가문의 상황을 보고, 진유경이 그들에 대한 영향을 안 후에는 실망하지 않았다.그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되었다.그게 바로 고은영 마음속의 진씨 가문의 존재였다.“당신의 목적이나 말해요. 이런 감성팔이는 통하지 않으니까!”만약 정말 가족의 정이 있었다면 문제가 있을 때 이렇게 찾아와 감성팔이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진씨 가문과 고은영 사이에는 감성팔이를 할 것도 없었다.“가장 훌륭한 전문가를 찾아줬어. 살 수 있을 거야.”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고은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진경희를 쳐다보며 진경희의 말을 곱씹었다.“그래서요?”살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하지만 진씨 가문에는 적합한 신장이 없어. 지금 검사를 하지 않은 건 너랑 네 오빠야.”“...”고은영은 그제야 진경희의 뜻을 알아차렸다.먼저는 진정훈이 일을 그르친 것으로 고은영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고 또 신장의 얘기를 꺼내다니...진성택에게 신장을 기증할 수 있는 조건인지 검사하라는 뜻이었다.‘그렇다고 해서 뭐? 적합하면 내가 신장을 떼줘야한다는 소리야?’고은영은 미간을 꿈틀거리면서 진경희를 보고 또 진유경을 쳐다보았다.“당신도 검사했어요?”“당연하
고은영은 전에 이미 진경희와 진성택의 뻔뻔함을 알아봤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토록 뻔뻔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동영 그룹으로 돌아왔을 때 배준우는 마침 회의를 끝마친 상태였다.고은영이 씩씩대는 모습을 본 배준우가 물었다.“왜 화가 난 거야? 고은지를 보러 간 게 아니었어?”고은지를 만났는데 화가 난 건가?배준우를 본 고은영은 코를 훌쩍였다. 빨개진 코를 보니 아주 억울해보였다.배준우는 그 모습을 보고 고은지를 품에 안고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진, 진씨 가문에서!”고은영은 화가 나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돌아오는 길, 고은영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왜 이런 사람들과 엮이게 된 건지, 억울했다.배준우는 고은영의 말을 듣고 물었다.“그 사람들을 만나러 간 거야?”배준우는 약간 불쾌한 듯 말했다.진씨 가문 사람들이 고은영에 대한 태도는 완전히 달랐다.진윤과 진정훈은 고은영을 아주 예뻐했지만 진호영과 진성택, 진경희 등 사람들은 항상 진유경의 편을 들어주었다.“천락 그룹으로 찾아왔어요.”“너를 찾아왔다고?”“그러니까 말이에요!”거기까지 말한 고은영은 더욱 화가 났다. 아까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분이 풀리지 않았다.배준우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오늘 뭐라고 했는데?”그들이 고은영을 찾아왔다고 하자 배준우는 그 사람들이 진유경과 진경희라고 짐작했다.진성택은 병원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니까 말이다.이렇게 급하게 고은영을 찾아온 것을 보면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두 사람은 말하면서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문을 닫은 후 고은영은 화가 나서 소파에 털썩 앉았다.“나한테 가서 적합성 검사를 받으라는 거예요! 진씨 가문에서 나랑 오빠만 검사를 안 했다고!”“곧 죽을 텐데 수술이 가능해?”배준우가 진지하게 물었다.진성택이 고은영의 아버지인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됐지만...진씨 가문이 어떻게 고은영을 대했는지 떠올리면 좋게 말할 수가 없었다.고은영은 머리를 베개에 묻어버렸다.“가장 좋은 의료진을
고은영이 중얼거렸다.진씨 가문이 주는 이끌림은 량천옥이 주는 이끌림보다도 작았다.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진씨 가문 사람들이 너를 홀대해서 그런 거 아니야?”“그러면 속상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냥 아무 감정이 없는 거 같아요.”고은영은 그저 정신병동 의사가 된 기분이 들었다.“혹시 검사가 잘못된 거 아닐까요?”고은영이 의아해하면서 배준우한테 물었다.하지만 유전자 검사가 잘못될 때도 있을까?고은영과 량천옥의 유전자 검사 보고서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그러나 배준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결과를 조작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그러니 고은영과 량천옥의 검사 보고서에 대해서 어찌 된 일인지 잘 몰랐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진씨 가문 사람들과도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았던가.진씨 가문과도 혈연관계가 있고 량천옥과도 혈연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그 생각에 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하지만 진씨 가문의 결과는 틀리지 않았을 거야.”진윤과 진정훈은 이런 일에서 실수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러니 이 검사는 한 번만 했을 것이 아니다.“그러면 량천옥 씨와 한 유전자 검사가 잘못된 것일까요?”“그럴 리가 없어!”그건 란완 리조트에서 한 것이다.“...”고은영은 도대체 뭐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었다.진씨 가문과 혈연관계가 있으면서도 량천옥과 혈연관계가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진씨 가문과 량천옥 사이에는 큰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니 유전자 검사가 어떻게 된 것인지 다시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그것도 이상해요. 량천옥 씨와의 유전자 검사 결과도 진실이라면, 전 량천옥 씨의 딸이면서 진성택의 딸인 거잖아요.”고은영이 턱을 괴고 얘기했다.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배준우는 그런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했다.“이해가 되지 않으면 잠시 내려놔. 내가 알아볼 테니까.”“그래요.”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량천옥과 진씨 가문의 유전자 검사를 할 때 고은지가 입원해서 제대
만약 진성택에게 정말 문제가 생긴다면, 김영희와 진유경은 진정훈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진정훈이 이렇게 반항할 줄 알았다면 그때 차라리 고은영을 진씨 가문으로 데리고 왔어야 한다.진유경도 그렇게 생각했다.결국 한순간의 충동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아니면 역시 고은영을 데리고 진씨 가문으로 돌아올까요?”김영희의 질문에 진유경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고은영이 돌아오면 진유경에게 무슨 영향이 있는지, 진유경은 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이미 고은영과 멀어진 사이 때문에 진씨 가문은 애를 먹고 있으니 말이다.어제 진정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진정훈은 돌아오지 않았다.그래서 두 사람은 아직도 진정훈을 만나지 못했다. 진정훈 또한 두 사람의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진씨 가문은 이미 진정훈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김영희와 진유경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결국 고은영이 본질적인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고은영이 돌아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물론 고은영보다 진성택이 더 믿을만한 사람이긴 하다.지금 진씨 가문의 위기는 진성택이 퇴원하기만 하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김영희는 눈을 꼭 감고 말했다.“고은영을 데려오는 것보다 진성택을 치료하는 게 더 빠를 거야.”“...”김영희는 여전히 자기 편이라는 것을 확인받은 진유경은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하지만 그것 또한 고은영이 굴러들어 오는 복을 걷어차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김영희가 태도 불량인 고은영을 예뻐할 수가 없었다.배항준도 고은영을 싫어하지 않았던가. 배준우는 정말 눈이 멀어서 고은영과 결혼한 게 틀림없다.“하지만 고은영이 적합성 검사를 받지 않으면 큰오빠도 하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하죠?”김영희가 고은영을 싫어한다는 것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고은영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떠올린 진유경이 조심스레 물었다.만약 다른 방법이 없다면 김영희는 어쩔 수 없이 고은영을 데리고 와야 할 것이다.적합성 검사 얘기를 들은 김영희는 화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