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량천옥은 고은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집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조금 낡긴 했지만 고은지가 깨끗하게 잘 정돈해 놓고 있었다.량천옥은 여태껏 큰 집에서 살아왔지만 지금 이 집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이 집은 편안한 느낌을 주니까 말이다.고은지는 이 집에 들어오고부터 량천옥과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주방에 들어갔다.결국 량천옥이 먼저 입을 열었다.“희주의 일은 나한테 맡겨둬. 이제 슬슬 단서가 보이기 시작하거든.”면을 삶고 있던 고은지는 량천옥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량천옥을 쳐다보았다.그 눈빛에 량천옥은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왜, 왜 그러는 거야?”“누가 알아봐달라고 했어요?”고은지가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은지야, 그게...”‘내가 알아보는 게 싫은 건가?’량천옥은 겁을 먹고 고은지를 쳐다보았다.량천옥은 그제야 알았다. 아무리 본인이 낳은 아이라고 하지만 량천옥은 고은지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고희주의 일만 봐도, 량천옥은 고은지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은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희주는 지금 아빠랑 있는 거예요. 그런데 왜 찾아보는 거예요?”“희주 때문에 나태현한테 협박받는 거 아니었어?”고은지가 차갑게 웃으면서 얘기했다.“누가 그래요? 내가 협박받은 거라고?”“...”량천옥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설마 고은지가 원해서 나태현 곁에 있는 거란 말인가?그럴 수가 없었다.나태현은 이미 지신혜와 약혼했다. 물론 약혼식을 올린 건 아니지만 곧 약혼할 거라는 건 모두가 아는 일이다.“그러면 얘기해 줘. 네가 원해서 나태현 곁에 남아있는 거야?”량천옥은 겨우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다.고은지는 차가운 눈으로 량천옥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면을 삶았다.고은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량천옥은 긴장되었다.그녀는 고은지와 나태현이 얽히지 않았으면 했다.게다가 그때의 일...그 일이 누구의 잘못인지는 몰라도 나태
아까 주방에서 말을 걸었지만 고은지는 대답 한 번 하지 않았다.고은지는 량천옥을 집으로 들이기는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량천옥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춘기 아이를 대하는 것 같았다. 그때 고은지의 핸드폰이 울리며 두 사람 사이의 정적을 타파했다.고은지는 걸려 온 전화번호를 보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다.량천옥은 핸드폰 위에 비치는 글씨를 힐긋 보았다.육 씨인 사람이었다.하지만 량천옥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고은지가 방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은지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량천옥은 이미 불어버린 면을 보면서 주방으로 들어가 다시 면을 삶아주었다.방에서 나온 고은지는 갓 나온 면을 보고 다시 량천옥을 쳐다보았다.량천옥은 차가운 고은지의 눈을 마주하고 얘기했다.“면이 불었길래 다시 삶았어.”오늘 저녁은 볼품없는 삶은 소면이었다.하지만 량천옥은 불평불만 없이 잘 먹었다.그리고 불어버린 면이 아까운 듯 본인 그릇에 둔 채로 있었다.“나갔다 올게요.”말을 마친 고은지는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량천옥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어디 가려고? 내가 데려다줄게.”“괜찮아요.”말을 마친 고은지는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며 문을 닫았다.량천옥은 그 자리에 서서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테이블 위에 놓은 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고은지를 뒤따라가지 못한 량천옥은 결국 정록담에게 전화를 걸었다.“은지를 따라가. 마음이 안 놓여서 그래.”“알겠습니다. 사모님.”전화기 너머의 정록담이 공경하게 얘기했다.량천옥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다독였다. ‘그래도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잖아.’고은지는 밖으로 나간 후 바로 천락그룹으로 갔다.택시를 잡은 고은지는 천락그룹의 정문이 아닌 뒷문에 도착했다.정록담은 량천옥의 명령대로 고은지를 따라왔다.그리고 량천옥에게 문자를 남겼다. 고은지가 천락그룹에 온 걸 보니 아마 야근을 할 것 같다고 말이다.“이 늦은 시간에 야근을 한다고? 나태현, 정말 뭐 하는
이지훈도 이른 아침 연락을 받고 얼른 나태현의 사무실로 향해 가고 있었다.엘리베이터에서 이지훈은 고은지를 보고 미간을 약간 좁혔다.“오늘은 올라오지 마세요. 나 대표님이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요.”그 말을 들은 고은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고은지의 말투는 평소와 같았다.전에 회사에 있을 때 고은지에게 부드러운 느낌이 있었다.하지만 지금 고은지에게 남은 건 차가운 한기뿐이었다.고은지는 본인 사무실에서 내렸다. 모든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고은지는 여유롭게 본인 위치로 갔다.“고은지 씨, 나랑 같이 사무실로 가야겠어.”팀장이 고은지를 보고 불러세웠다.“알겠습니다.”고은지는 펜과 노트북을 들고 사무실로 갔다.다른 부문 동료들이 속삭이고 있었다.“들어보니까 안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던데?”“스파이? 그럴 리가... 천락 그룹에 이런 적 한 번도 없었잖아.”“그렇게 큰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다니. 스파이가 있는 게 분명해.”“헐... 그러면 지금 스파이를 찾으려는 거야?”“당연한 거 아니냐? 찾아내서 끝까지 추궁해야지.”회사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몇백억이나 되는 프로젝트를 잃을 위기에 처했으니 천락그룹에서는 두 눈에 불을 켜고 스파이를 찾아내려 할 것이다.고은지는 팀장의 사무실에 도착했다.“팀장님, 저 왔습니다.”“이 포캐스팅 PPT 다시 만들어와요. 한번 확인해 봐.”팀장이 자료를 넘겨주면서 얘기했다.고은지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팀장을 쳐다보았다.팀장이 이어서 얘기했다.“상부의 뜻은 이 프로젝트를 다시 가져와야 한다는 거야. 우리는 각 팀의 뜻을 종합해서 전달해야 하는 거고.”고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말을 마친 고은지가 서류를 들고 사무실에서 나갔다.지금 천락 그룹은 위기에 놓여있었다.나태현은 한 번도 밑지는 사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나태현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고은지가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고은지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요?”“그래요라는 말이 나와? 량천옥이 어떤 사람인지는 네가 잘 알잖아. 뭐 때문에 이런 짓을 한 건지는 네가 가장 잘 알 거야.”량천옥이 누구를 위해 이런 짓을 한 것인지는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강성의 사람들은 량천옥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잘 알았다. 그리고 량천옥이 얼마나 본인의 아이를 아끼는 사람인지도 잘 알았다.배윤이 학교에 다닐 때, 그 누구도 배윤을 건드릴 수 없었다.배윤의 엄마가 량천옥이니까 말이다.그리고 지금 나태현의 눈앞에 서 있는 고은지 또한 량천옥의 딸이다.고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나태현을 쳐다보았다.나태현은 그런 고은지를 보면서 화가 나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병원에 가서 지신혜를 간호해. 지신혜가 다 나을 때까지.”“네.”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싫다는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이다.그런 고은지를 보면서 나태현은 더욱 화가 났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차갑게 대답했다.“나가.”고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사무실의 문이 닫히는 순간 나태현은 화가 나서 재떨이를 바닥으로 내쳤다.그는 짜증이 몰려와 참을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지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리고 서류를 나태현 앞에 놓으면서 얘기했다.“대표님이 원하신 자료입니다.”“나태웅은 아직도 못 찾은 거야?”어제부터 지금까지 나태웅은 연락도 되지 않고 출근도 하지 않았다. 나씨 가문 사람들은 나태웅을 찾느라고 혈안이 되어있었다.이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못 찾았습니다.”“진이훈은?”“출근하지 않았습니다.”나태웅도 사라지고 진이훈도 사라졌다.회사가 위태로운 시기에 나태웅이 사라지다니. 나태현은 짜증이 나서 넥타이를 풀었다.“얼른 남풍 프로젝트를 흘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봐.”“알아보고 있습니다.”이지훈이 대답했다. 어젯밤 문제가 생긴 후, 그들은 이 프로젝트를 손에 넣은 사람이 누구인지
이지훈은 사무실로 돌아와 고은지가 업무 인수인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팀장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얘기했다.“나 대표님도 너무 하시는 거 아니야? 우리 팀한테 업무를 가득 줘놓고 은지 씨를 데려가다니.”“이만 가보겠습니다.”“그래, 가 봐.”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상사의 뜻이니 기분이 좋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고은지가 떠나려는데 이지훈이 같이 엘리베이터에 탔다.고은지는 이지훈을 보면서 가볍게 인사했다.“원하지 않으면 돌아가서 며칠 휴식하고 오세요.”이지훈이 고은지를 향해 얘기했다.“이지훈 씨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이건 나태현이 직접 지시한 일이다. 고은지가 정말 가지 않는다면 나태현이 어떻게 할까?“그렇긴하죠.”“...”고은지는 웃음을 약간 흘렸다.이 회사에서 나태현의 뜻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다니. 아니면... 나태현의 최측근도 나태현이 하는 짓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인가?그렇다면 이 회사에는 나태현에게 불만을 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바쁘시니 병원의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이지훈이 말을 덧붙였다.오늘 나태현이 고은지를 부른 건 억눌러왔던 화를 터뜨릴 대상이 필요한 것뿐이었다.어젯밤 남풍의 프로젝트로 인해 손해를 보았으니 화가 잔뜩 쌓였으니 말이다.“전 괜찮아요.”고은지가 고개를 저었다.고은지는 이번 일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마치 고은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아무리 나태현이 지신혜를 간호해라고 해도 고은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이지훈은 한숨을 내쉬면서 어쩔 수 없어 했다.이지훈은 량찬옥과 같은 생각이었다.고은지가 나태현의 곁에 있는 게 고희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고희주는...이지훈은 고은지를 보면서 얘기했다.“고희주 양은 해외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고희주 양을 전담 케어하는 분들이 계시고요. 그분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그 말에 고은지는 이지훈의 태도를 알 수 있었다.이지훈
그렇게 말하는 지신혜는 고희주가 무슨 더러운 바이러스인 것처럼 표정을 찡그렸다.병신이라는 단어에 고은지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고은지는 아주 위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병신?”“그래, 나는 새엄마가 되는 건 딱 질색이었거든. 근데 다행히도 그 병신은 아무 말도 못 하잖아.”잔인하고 차가운 말에 고은지는 심장에 비수가 박히는 것만 같았다.지신혜는 그런 고은지를 보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나태현과의 약혼식이 미뤄진 걸 생각하면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량천옥이 배씨 가문을 떠나고서도 이렇게 막 나올 줄은 몰랐다.“얼른 물 가져와. 여기 서서 뭐 해!”고은지가 움직이지 않자 지신혜는 가볍게 고은지를 흘겨보았다.고은지는 옆에 있는 보온병에서 물을 따랐다.보온병은 아침에 간호사가 가져온 것이었는데 금방 끓인 물을 넣은 터라 아주 뜨거웠다.고은지는 차가운 표정으로 뜨거운 물을 유리잔에 받고 있었다.그리고 지신혜 앞으로 와서 건네주면서 얘기했다.“마셔요.”지신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유리잔을 보면서 놀랐다.‘이렇게 멍청한 사람이었나? 뜨거운 물을 마시라고?’“너 바보야? 뜨거운 물은 옆에 놓고 식혀야지. 일단은 내 발톱부터 깎아줘.”지신혜가 어이없다는 듯 얘기했다.고은지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안 마시려고요?”“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뭐 하려는 거야!”지신혜는 위험한 기운을 느끼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고은지는 그저 차가운 표정으로 지신혜를 쳐다볼 뿐이었다.그 눈빛에서 지신혜는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제가 먹여드려요?”“너, 미쳤어?”지신혜는 고은지가 뭘 하려는 것인지 알아차렸다.일부러 화상을 입히려는 것이다.고은지의 차가운 눈빛을 보면서 지신혜가 소리 질렀다.“사람 살려요! 여기 미친... 으윽!”소리를 지르자마자 고은지가 지신혜의 머리카락을 잡고 유리잔을 지신혜의 입가에 갖다 댄 채 들이부었다.“우웁.”지
나씨 가문과 량천옥 사이가 원수지간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나태현이 이미 고희주를 데려간 후였다. 그걸 떠올리면 고은지는 가슴이 아팠다. 고은지가 무표정으로 지신혜에게 물었다.“뭘 해달라고 했었죠?”“...”지신혜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뜨거운 물에 데여서 입안은 보기 스치기만 해도 아플 정도였고 목도 마찬가지였다.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고은지에게 뭘 더 시키다니.그럴 용기가 없었다.지신혜는 그저 고은지를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꺼져!”“지신혜 씨가 꺼지라고 한 겁니다.”말을 마친 고은지는 바로 병실을 떠나 나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아주 담담한 말투로 얘기했다.“대표님 약혼녀께서 제 간호를 받고 싶지 않다고 하시네요.”전화기 너머의 숨소리는 차갑고도 위험하게 들렸다.고은지는 나태현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너머의 나태현은 끊겨버린 전화 소리를 들으면서 표정이 확 굳어버렸다.화가 난 나태현은 이를 꽉 깨물고 고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고은지가 받지 않자 화가 더욱 치밀어올라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리고 문자를 보냈다.[네 딸을 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병원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그건 명백한 협박이었다.전화기 너머의 고은지는 그 문자를 확인했다.‘네 딸’이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 고은지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그래, 고희주는 고은지의 딸이었다.고은지는 고희주를 데려간 것이 고희주의 아빠라고 생각했다.아빠인 나태현이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그저 고은지와 고희주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나태현의 입에서 나온 ‘네 딸’이라는 말이 비수처럼 고은지의 가슴에 박혔다.이건 나태현이 고희주를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지신혜의 말처럼...나태현은 고희주를 좋아하지 않는다.왜? 고은지가 엄마라서? 아니면 그냥 나태현에게 부성애가 없어서?고은지는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고은지는 전화를 덮어놓았다.나태현은 더
최근 지신혜와 나태현의 약혼 소식이 퍼졌다. 그런데 나태현은 여전히 고은지를 곁에 두고 있었다.그래서 지신혜와 나태현의 결혼에서 유일한 변수가 바로 고은지였다.사람들은 나태현과 고은지의 사이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았다.그저 지신혜가 나태현과 순조롭게 결혼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지씨 가문에서도 지신혜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지씨 가문에서 당한 수모를 생각한 지신혜는 고은지가 한 말을 곱씹다가 화가 나서 고은지를 쏘아보았다.“저한테 나태현 씨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나태현 씨를 이용해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말아요.”“...”“제가 나태현 씨 곁에 있으면 두 분이 결혼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너...!”그 말에 지신혜를 발칵 화를 냈다.나태현에 대한 고은지의 태도는 모르겠지만, 고은지의 엄마인 량천옥이 가장 큰 문제였다.지신혜는 고은지가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다.“난 네 딸이 어디로 갔는지 몰라.”“알아보면 되죠. 지신혜 씨가...”거기까지 말한 고은지는 잠깐 멈칫하더니 지신혜의 눈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내가 뭘 어떻게.”“지신혜 씨가 정말 나태현 씨와 결혼하고 싶다면, 방법이 있겠죠.”“...”지신혜는 정말 나태현과 결혼하고 싶었다.하지만 고은지가 나태현 곁에 계속 있는다면 고은지의 엄마, 즉 량천옥이 문제를 만들 것이다.그렇게 생각한 지신혜가 이를 꽉 깨물었다.“알았어. 내가 알아보면 되잖아.”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미 원하는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지신혜는 고은지를 보고 싶지 않아서 차갑게 얘기했다.“말 다 했어? 그럼 인제 그만 가.”“안 됩니다.”고은지가 얘기했다.“또 뭘 하려는 거야!”지신혜는 지금 고은지를 보기만 해도 화가 차올랐다. 지금 병실에 누워있는데 누구 탓인데...‘소문이 사실이 아닌가 봐.’소문으로 들은 고은지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지금 지신혜 눈앞의 고은지는 독버섯과도 같았다.지신혜는 이 일을 무조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