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명호가 본인의 사업을 망쳤다는 것을 안 나태현은 육명호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지는 않았다.나태현은 그저 이 회사의 스파이를 찾아내겠다고 다짐할 뿐이었다.량천옥은 고은지더러 지신혜를 간호하라고 한 나태현에게 화가 나 있었다.량천옥이 지신혜의 병실에 간 걸 떠올린 나태현은 또 더욱 화가 났다....차 안.신호에 걸려서 차가 멈췄다. 량천옥이 고은지를 보면서 물었다.“운전할 줄 알아?”“알아요.”고은지가 담담하게 대답한 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고은지는 여전히 태도가 차가웠지만 적어도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그 점에서 량천옥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래, 여자는 운전할 줄 알아야 해.”량천옥은 자기 딸이 뭘 할 줄 아는지 궁금했다.10초를 남겼을 때, 량천옥이 얘기했다.“네가 뭘 하려는지 이제 알 것 같아. 내가 도와줄게.”그렇게 말하는 량천옥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원래는 고은지가 사랑 때문에 나태현 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신혜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고은지의 모습을 보면서 량천옥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고은지는 나태현을 사랑해서 떠나지 않는 게 아니라...‘고희주가 그렇게 된 건 내 잘못도 있어. 하지만 이 모든 악의 근원은 나태현이야.’하지만 나태현은 고은지와 고희주를 떨어뜨려 놓고 고희주를 차갑게 대하고 있었다.고은지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사랑하겠는가.고은지는 거절하지도 않고 허락하지도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량천옥은 고은지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고은지는 천락그룹으로 가겠다고 얘기했다.량천옥은 어쩔 수 없이 고은지를 데려다주었다.차에서 내리는 고은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량천옥이 또 입을 열었다.“은지야.”고은지는 본인을 부르는 량천옥의 목소리를 듣고 거기에 멈춰선 채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사실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믿어줘.”“...”그 순간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고은지가 웃음을 터뜨렸다.“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요?”마치 재미난 농담을 들은 사
안열이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잠이 덜 깬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대표님.”“왜 회사에 안 나온 거예요? 무슨 일 있었나요?”안지영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전화기 너머의 안열은 깜짝 놀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안지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더 물으려고 했다.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그 소리에 안지영은 너무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안지영이 전화기 너머의 안열에게 소리쳤다.“안열 씨? 안열 씨!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크게 놀란 듯한 소리였다.안지영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졸였다.안열은 그런 안지영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아마 안열의 핸드폰이 카펫에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이윽고 떨리는 안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당신이 왜 내 침대에... 죽여버릴 거야!”이윽고 전화가 끊겼다.“...”안지영은 놀라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그리고 다시 핸드폰을 보면서 확인했다.‘침대? 누가 감히 안열의 침대에... 설마 안열이...’안지영은 손을 바르르 떨면서 어서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장선명은 아주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여보.”“아, 좀 그러지 마요. 닭살 돋으니까요.”여보라는 단어를 들은 안지영은 닭살이 돋아서 불편했다.어제 혼인 신고를 한 후부터 장선명은 안지영을 여보라고 불렀다.안지영은 그 호칭이 익숙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다.하지만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의 말을 듣지 않았다.게다가 더한 것을 하기도 했다.“우리 사이에 뭘.”“...”안지영의 얼굴은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밖에서는 무서운 이미지인데, 왜 안지영 앞에서만 이러는 건지 몰랐다.안지영이 얘기하기도 전에 장선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녁에 더 심한 걸 해볼래?”“...”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마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안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장선명이 더 말하기 전에 안지영이 안열의 일에
죽을 거라니.‘진심인 건가?’“그건 좀...”안지영이 약간 당황한 채 얘기했다.“안열과 밤을 보냈다니. 그 남자도 참 안 됐네. 그냥 신경 쓰지 마.”“...”안열과 밤을 보낸 남자가 안 된 거라고?“안열 씨가 그 남자를 죽이기라도 한다는 거예요?”안지영은 살인 사건을 떠올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안지영의 말을 들은 장선명은 바로 부인하면서 얘기했다.“너,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안열이 왜 사람을 죽이겠어. 안열은 착한 애야.”“...”착하다고?안열은 약간 날카로운 인상을 갖고 있어 착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하지만 안지영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장선명이 또 얘기했다.“끽해봤자 전신 불구로 만들겠지.”“...”전신 불구라니.너무 불쌍했다.“열심히 출근이나 해.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저녁에 데리러 올게.”“정말 안 가봐도 돼요?”안지영은 안열을 혼자 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장선명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얘기했다.“정말 괜찮아. 안열은 받은 건 무조건 갚는 성격이거든.”장선명의 말에 안지영도 고개를 끄덕였다.장선명은 떠난 뒤에도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어 신신당부했다.하지만 사무실에 앉은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안열의 전화번호를 눌렀다.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안열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안열 씨, 지금...”“지금 당장 회사로 가겠습니다!”안지영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안열의 목소리가 말을 끊어버렸다.안열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어서 아까 있었던 일이 꿈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그 짧은 시간에 이미 감정을 추스른 안열을 보면서 안지영은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결국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얘기했다.“일단 회사로 와요.”“네. 30분이면 됩니다.”전화를 끊은 후 안지영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머릿속에는 아까 장선명이 얘기한 것이 떠올랐다.‘그 남자가 안 됐다고?”평온한 목소리의 안열을 보면 이미 일을 처리한 것 같은데...그저 장선
“뭐요? 이길 수 없는 상대요? 그럴 리가...”안열이 이길 수 없는 상대라니.안열은 장선명 부하 중에서 가장 강한 여자다. 평범한 남자는 안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그런데 안열이 이기지 못하는 상대라니.놀란 안지영의 눈을 마주한 안열이 물었다.“장선명 도련님과 혼인 신고를 하셨나요?”“네. 어제 했어요.”“...”“나태웅도 그렇지. 하필 제가 혼인신고를 하는 시점에 유서를 던져놓고 사라지다니. 그것 때문에 나씨 가문에서 저를 싫어하고 있어요.”안열은 이마를 짚고 얘기했다.“괜찮습니다. 어차피 앞으로 나씨 가문과 대표님은 아무 사이 아닙니다. 장선명 도련님과 잘 살면 돼요.”“원래부터 아무 사이 아니었어요!”앞으로도, 지금도. 아무 사이가 아니다.이건 다 나태웅이 집착해서 이렇게 된 거다. 안지영은 도대체 어떻게 나태웅을 형용해야 할지 몰랐다.어차피 이제는 장선명과 혼인했고 두 주일 정도만 지나면 결혼식을 할 건데, 나태웅이 투신자살하든, 목을 매든 안지영과는 상관이 없었다.안열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생각하신다니 다행입니다. 장선명 도련님은 진심으로 안 대표님을 사랑하고 계시니까요.”“저도 진심이거든요.”안지영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그 말을 들은 안열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은 그 시선에 약간 어색해하면서 물었다.“왜 그렇게 봐요?”“장선명 도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시나요?”“...”장선명이 어떤 사람이냐니.안지영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얘기했다.“선명 씨가 다른 사람한테 어떤 사람이든지, 저한테는 좋은 사람이에요.”안열은 그 말을 듣고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좋네요.”장선명은 강성에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안지영은 그런 소문을 뒤로한 채, 같이 있을 때의 장선명의 모습만 보고 판단했다. “장선명 도련님은 나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안지영 씨한테는 좋은 사람이죠.”안열이 또박또박 얘기했다.마치 안지영이 도망치지 못하게 잡는 것만 같았다.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안열을 말하다가 점점 화가 나 호흡이 거칠어졌다.이윽고 안열이 이를 꽉 깨물고 얘기했다.“결코 이대로 두지 않을 겁니다. 꼭 죽여버릴 거예요.”안지영은 안열의 말을 들으면서 바르르 떨었다.“도대체 누군데요? 아니면 선명 씨한테...”“아니요,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안열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누가 안열과 잔 걸까.목에 남은 흔적을 보면 꽤 격렬한 밤이었던 것 같은데...그런데 남자를 죽이지 않았다니.게다가 그 남자가 안지영이 아는, 친한 사람이라니.도대체 누구일까.안지영은 너무 궁금했다.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안지영이 여러 번 물었지만 안열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그 남자를 개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욕할 뿐이었다.오후가 되었을 때.나씨 가문의 집사가 전화를 걸어왔다.“안지영 씨, 작은 도련님을 여전히 찾지 못했습니다.”집사의 말투는 여전히 좋지 못했다. 솔직히 얘기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안지영의 탓이라는 것으로 들렸다.안지영은 머리가 아팠다.“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작은 도련님께서 유서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만약 작은 도련님께 정말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요?”“네.”잠을 못 잘 이유도 없었다.나태웅과 뭐 얼마나 대단한 사이라고 나태웅이 죽는다고 해서 잠을 자지 못할 정도겠는가.“어르신께서 그렇게 두지 않으실 겁니다.”“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안지영은 화가 나서 바로 언성을 높였다.나씨 가문 사람들은 여전히 뻔뻔했다.“오늘 저녁 퇴근하고 오세요. 어르신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죄송한데요, 전 이제 장선명 씨의 아내로서 나씨 가문에 들락거리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안 갈 거예요.”안지영은 바로 거절했다. 그리고 집사가 뭐라 더 얘기하기 전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나태범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안지영 같은 여자는 나씨 가문 며느리가 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하지만 나태웅이 사라지니 안지영을 다시
“설명할 거 없어요.”말을 마친 안지영은 바로 장선명에게로 걸어갔다.안지영은 나씨 가문 사람들이 장선명 앞에서 안지영을 데려가려고 할 줄은 몰랐다.만약 안지영이 지금 상황에서 나씨 가문 사람들과 떠난다면 장선명은 바로 안지영을 낚아챌 것이다.그런 불필요한 마찰은 만들지 않는 게 좋았다.집사는 안지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차갑게 얘기했다.“오늘은 모시려고 온 게 아닙니다.”안지영과 장선명은 이미 가까이 붙어있었다.집사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고개를 돌렸다.“어르신께서 안지영 씨를 만나려고 하십니다. 만약 만나지 않는다면...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그 말은 협박이었다.안지영은 입가가 바르르 떨렸다.장선명이 차갑게 웃었다.“안지영은 내 아내예요. 내가 있는데 뭐 무서울 게 있는지 모르겠네요.”집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장선명을 쳐다보았다.나씨 가문의 협박은 장선명에게 통하지 않았다. 장선명은 바로 안지영을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안지영은 약간 겁을 먹은 채 장선명을 보면서 물었다.“무슨 결과를 말하는 거죠?”“자기네가 뭘 할 수 있겠어.”“그래도 나태범 어르신이라면... 장씨 가문을 공격하는 건 아니겠죠?”안지영은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되었다.장선명이 차갑게 웃었다.“그러면 다행이네. 우리도 마침 나씨 가문의 프로젝트들을 원했거든.”“아.”마침 원했다니.안지영은 장선명과 나태현의 사이가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준우도 말이다.설마 그저 사이가 좋은 척한 건가?뒤에서는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하면서?놀란 안지영을 본 장선명은 바로 안지영을 품에 안았다.“왜 그래?”“난 당신들의 세계를 모르겠어요...”하늘 그룹을 이어받긴 했지만 안지영은 그저 눈앞의 일만 잘 처리하고 있었다.하지만 장선명을 보니 이런 게 바로 진정한 비즈니스라는 생각이 들었다.그 말을 들은 장선명은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넌 이제 내 아내야. 그러니 알아야지.”아내라는 단어
집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씨 가문에 돌아왔다. 나태범은 집사가 혼자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표정이 바로 굳어버렸다.“안지영은?”“못 데려왔습니다.”집사가 고개를 푹 떨궜다.예상했던 일이지만 나태범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제가 도착했을 때 마침 장선명 씨도 도착했습니다.”“장선명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거야?”“네, 그런 것 같습니다. 아침 출근길도 함께 하고 퇴근길도 함께하니... 신혼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신혼은 무슨.”“...”안지영과 장선명은 출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떨어지지 않았다.“아직도 나태웅을 찾지 못한 거야?”“네...”집사가 불안에 떨면서 얘기했다.나씨 가문 사람들은 나태웅의 실종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어제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아무리 찾아도 나태웅을 찾을 수 없었다.그 유서는 마치 경고장처럼 모든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했다.나태범은 머리가 아팠다.“이... 이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그렇게 많은 사람을 보냈는데 아직도 나태웅의 정보를 찾지 못하다니.‘나태웅은 어디로 간 거야!’나태웅이 전에 벌인 짓을 생각하면 나태범은 나태웅이 또 사고를 칠까 봐 걱정되었다.눈을 꼭 감은 나태범이 이를 꽉 깨물고 물었다.“안지영은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거야?”“네. 알고 계십니다.”집사가 대답했다.어제부터 알고 있었다.하지만 안지영의 태도는 여전히 냉랭했다.게다가 나태웅이 유서를 남기고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도 혼인 신고를 하고 왔으니, 나태범이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깊은 심호흡을 한 나태범이 차갑게 얘기했다.“그러면 어쩔 수 없지.”“어르신...”“시작해!”나태범이 차갑게 얘기했다.나태범의 말을 들은 집사는 저도 모르게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그는 나태범이 뭘 하려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안지영을 데리러 간 건 안지영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오지 않는다면...집사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전화가 울렸다.“얘기해.”“집사님, 량천옥 씨가 오셨습니다.”
“뭐?”나태범이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스파이라니.천락그룹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집사는 원래 나태현이 이 사건을 빠르게 해결할 줄 알고 나태범에게 전하지 않으려고 했다.하지만 하필 지금 시점에 량천옥이 오다니. 집사는 이 일이 량천옥과 연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면 나태범도 경계심을 세워야 했다.“지금 이사들이 난리입니다. 큰 도련님은 이 일 때문에 바쁘시고요.”“그 프로젝트, 누가 빼앗아 갔어!”“북성입니다. 유가그룹이요!”유가그룹?‘유가 그룹에서 왜... 북성에 있을 것이지 왜 강성까지 온 거지?’나태범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했다. 집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얘기했다.“육씨 가문은 량천옥 씨와도 연관이 있습니다.”“그러니까 네 말은 이 일이 량천옥과 연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야?”“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아직까지는 진실이 무엇인지 몰랐다.하지만 나씨 가문은 알고 있었다. 량천옥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한 여자인지.자기 친딸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니,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나태범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두 사람이 더 얘기하려는데 량천옥이 고용인을 따라 들어왔다.량천옥에게서는 여전히 명문가의 귀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배씨 가문을 떠났다고 해도 그녀에게서는 압도적인 아우라가 흘렀다.강성의 사람들은 량천옥이 배씨 가문에서 나오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다.하지만 나태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나태범은 량천옥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다.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배씨 가문에 들어선 사람이니, 한곳에 모든 걸 걸 성격은 아니다.나태범은 소파에 앉은 량천옥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집사에게 얘기했다.“먼저 나가봐.”“네.”집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나태범이 손을 저어 자리에 있는 모든 고용인들을 내보냈다.나태범과 량천옥, 두 사람만이 남았을 때, 량천옥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태범을 쳐다보았다.분명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나태범은 그 웃음 속에 칼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미남계에 안지영은 결국 어느샌가 넘어가고 말았다.장선명은 안열한테 안지영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안열은 그제야 두 사람이 사무실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장선명은 다른 일로 바빠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안열은 디저트를 들고 오면서 안지영의 눈치를 보았다.“왜요?”“선명 도련님이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죠?”“잘못을 저질러놓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한다면 그건 짐승이죠!”안지영이 씩씩대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안열은 입가를 씰룩이면서 얘기했다.“하지만 선명 도련님은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닌데요.”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면서 장선명이 잘못을 사과하는 건 본 적이 없다.장선명이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건 없었던 일로 될 테니까 말이다.“...”안지영은 안열의 말을 듣고 눈썹을 꿈틀거렸다.‘그럼 아까 한 말도 거짓말이었나?’안열이 안지영 앞으로 와서 안지영 목에 난 키스 마크를 발견했다.안지영이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왜 갑자기...”“도련님이 이런 방식으로 사과한 겁니까?”“네?”“격렬하네요. 이렇게 안 대표님을 입막음하다니...”“...”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아무리 둔감하다고 해도 안열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안지영은 얼른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본인의 모습을 확인했다.목에 난 키스 마크들을 본 안지영은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이...”하마터면 욕설을 뱉을 뻔할 정도였다.이 상태로 밖으로 나간다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 정도다.‘왜 하필 이런 집착남을 만나게 된 거지...’“좀... 과하긴 하죠?”안열은 안지영이 장선명 때문에 화가 나서 안열에게 화풀이할까 봐 약간 걱정이 되었다.오후 세 시가 되었는데 이제야 나오다니.두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 붙어있었는지, 얼마나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안지영은 단단히 화가 나서 케이크를 크게 한입 떠먹었다.안열은 장선명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안지영의 화가 덜 풀린 것인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