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우는 그 작은 점을 보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30분 후!고은영이 검사를 마치고 나오자, 배준우가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대표님 바쁘시면 먼저 회사에 들어가세요. 나머지 검사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배준우는 시간을 보고 말했다.“같이 가.”“아직 검사 다 못했는데...”“나머지 검사는 안 해도 돼.”“네?”고은영의 표정이 뻣뻣해졌다.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젯밤에는 꼭 해야 한다고 하더니.이제 단 하나밖에 검사를 안 했는데, 갑자기 집에 가도 된다니?“가자!”고은영이 아직 어리둥절해 있었는데, 배준우는 이미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고은영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배준우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하지만 뭐라고 하지는 못하고 바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차에 탄 후, 배준우는 진 씨 아주머니가 준비해 준 보온병을 그녀에게 건넸다.“얼른 아침 먹어.”공복 상태로 검사해야 했기 때문에, 고은영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그래서 지금 너무 배가 고팠다.맛있는 고기만두를 먹은 순간, 그녀 마음속의 모든 억울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배준우는 그녀가 먹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배고파?”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너무 배고파요.”고은영은 한 끼라도 제시간에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배준우는 사랑스럽다는 듯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나도 배고프네.”“네? 그럼, 이거 드실래요?”고은영이 만두 하나를 집어 배준우에게 건넸다.“나 지금 운전하고 있는데?”“그럼, 제가 먹여줘요?”고은영이 만두를 배준우의 입가에 갖다 댔다. 그는 고은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만두 한 입을 베어 물었다.역시 진 씨 아주머니의 요리 솜씨다!고은영은 진 씨 아주머니가 만든 만두를 제일 좋아한다.배준우처럼 까탈스러운 사람도 인정하는 솜씨다.마지막 두 입 정도가 남았을 때 고은영의 손가락이 배준우의 부드러운 입술에 살짝 닿았다. 순간 고은영은 마음속에 전류가 흐르는 걸 느꼈다.
꽤 재미있는 상황이다.순식간에 비서에서 도우미가 되었으니, 고은영은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하지만 나태웅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었다.나태웅은 배준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 그의 앞에서 조금이라도 티내면 배준우가 바로 알게 될 것이니 말이다.지금 나태웅에게 불만을 얘기하면 배준우가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그래서 그냥 낮은 소리로 조심스레 중얼거렸다.“휴게실에는 할 일이 별로 없는데, 30분이면 다 끝나는 일인데.”“......”“게다가 휴게실은 회의실처럼 수시로 치울 필요도 없고요. 휴게실은 하루에 한 번만 치우면 되지 않아요?”하루에 30분만 일하라고?나태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별로 할 일은 없지, 하지만 대표님이 이렇게 지시하셨어. 회사에서 새로운 사람을 양성해야 하니 우선 이렇게 하는 걸로 하고, 나중에 다시 다른 업무를 안배할 거야.”고은영은 여전히 불만이었다.배준우가 제1 비서 자리를 자신에게 맡기겠다고 한 게 어제 같은데, 이제 아예 도우미 취급을 하다니.비록 이미 떠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내려간 직위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알겠어요.”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불만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나태웅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았다.그런 그녀의 태도에 나태웅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럼, 그만 일하러 갑시다.”신분이 달라졌다!배준우의 지시라고 하니 뭐라고 더 대꾸할 용기도 없었다.배준우의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의 책상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진청아가 보였다.이미 얘기를 들은 눈치였다.“고 비서님, 죄송해요.”전청아가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진청아도 얼마 전 일어난 정유비의 일을 알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고은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제가 일단 먼저 정리해 놓고 내일 인수인계 해줄게요.”“네, 급해 말고 천천히 정리하세요.”진청아가 다급히 말했다.회사 사람 모두가 그녀가 배준우의 아내라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정유비의
”다 알고 있었어요?”나태웅은 날카롭게 그녀를 흘겨보았고, 정유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다 알면서 왜 대표님께 말하지 않았어요?”정유비는 고은영이 배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고,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배준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나태웅은 담뱃재를 튕기며 말했다.“유비 씨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동영그룹에 있을 수 있었을까?”정유비는 정씨 가문의 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부동산 재벌이다.배준우가 동영그룹을 인수하기 시작할 때, 이런 오래된 기업들과 사이가 틀어져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딸을 동영그룹에 보냈고, 정유비도 그중 한 명이었다.지금 정유비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다!나태웅이 계속해서 얘기했다.“유비 씨는 정말 머리를 잘 쓰는 것 같아. 이미월을 이용해서 은영 씨를 밀어내려고 했지?”“......”“정말 은영 씨만 없으면 그 자리가 유비 씨 자리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해?”나태웅의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말을 듣고 있는정유비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왜 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고은영보다 내가 대표님이랑 더 잘 어울려요.”“유비 씨는 대표님 성격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곁에 둘 거라 생각해?”“두 사람은 위장 결혼이잖아요. 설마 대표님이 고은영을 진짜로 좋아하기라도 한단 말이에요?불만이 극에 달한 말투였다,정유비는 배준우가 그녀를 좋아해서 그녀와 결혼했단 사실을 믿지 않았다.배준우가 고작 그런 시골 계집애를?배준우 정도면 어떤 여자든지 다 만날 수 있을 텐데, 하필 이런 여자를?“누가 그래? 두 사람이 위장결혼이라고?”“그럼 아니예요?”정유비는 날카로운 말투로 되물었다.“아니야!”“뭐라고요?”아니? 어떻게?그녀는 전혀 믿지 않았다.“대표님 신분에 위장 결혼 따위가 필요해요?”그럼 다 사실이란 말인가?정유비는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 나태웅을 쳐다보았다.하지만 나태웅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보통 재벌
정유비는 숨을 거칠게 쉬며 나태웅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은 완전히 하얘졌고 혼란스러워졌다.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그녀는 다시 한번 물었다.“대표님이랑 고은영, 정말 위장결혼이 아니라고요?”“아니야!”나태웅은 확고하게 대답했다.정유비는 창백한 얼굴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온몸에 힘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그럼, 이미월은요?”그녀는 배준우의 마음속에 여전히 이미월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준우와 고은영, 이 두 사람의 일을 알게 됐을 때 그녀의 첫 반응은 이비월을 귀국하게 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은.이미월이라는 말에 나태웅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변했다. “이미월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몰라?”“......”정유비는 할 말이 없었다.왜냐면 한 시간 전에 돈 빌려달라는 이미월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이미월과 진승연이 북성에서 고은영에게 한 짓 때문에 배준우가 크게 화났고, 그 일로 인해 진씨 가문도 큰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미월의 외숙모 정원희는 모든 원망을 이미월에게 쏟아냈다.지금 이미월은 집에서 쫓겨나 있는 상태다.정유비는 절망에 빠진 듯한 모습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말했다.“아니, 아닐꺼야.....”그녀는 여전히 믿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나태웅이 말했다.“계속 그렇게 고집부릴 거면, 당장 동영그룹에서 나가.”“......”나태웅의 날카롭고 차가운 눈동자에 정유비는 심장이 떨렸다.........한편, 사무실 밖에서 고은영은 인수인계할 업무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그러다 배준우가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고은영도 함께 들어갔다.배준우는 온통 억울한 표정의 그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누가 널 괴롭혔어?”“아니에요!”고은영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들의 결혼 소식으로 강성이 떠들썩해진 이후로, 회사에서 그녀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배준우는 자리에 앉고는 앞에 있던 물잔을 들고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물었다.“그럼,
“못하는 게 아니라!”“못해서 그런 게 아니면요?”배준우의 말에 고은영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불안한 마음도 조금 사그라들었다.그러자 배준우가 바로 이어서 말했다.“그럼, 일머리가 아예 없는 거지.”“......”고은영은 말문이 막혔다.설마?이렇게 심한 말을?예전의 비서들에게 밀리는 것도 모자라, 새로 온 사람들한테도 밀리다니.순간, 고은영의 얼굴엔 억울함이 가득했다.그런 표정으로 배준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화가 난 나머지 말문이 막혔다.“또 무슨 일 있어?”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 이제 일하러 갈게요.”말하고는 휴게실로 걸어갔다.깨끗하고 정갈하게 정리된 휴게실을 보니 더 울고 싶었다.열심히 일했는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했는데, 일머리가 전혀 없다는 말을 듣다니.이때, 전화가 울리는 소리에 핸드폰을 보니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고은영은 휴게실 베란다로 가서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나 량일이야!”수화기 너머에서 중년 여자의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영은 그녀의 이름을 듣자마자, 그녀가 량천옥의 엄마라는 걸 바로 알았다.어제 배준우한테서 량천옥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대충 무슨 의도로 전화했는지 알 것 같았다.고은영은 그녀가 량천옥을 배항준과 결혼시킨 것도 그렇고, 수시로 배씨 가문에 드나드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반감이 들었다.“무슨 일인데요?”고은영이 다소 차가운, 공손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말투로 물었다. 량일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점심 12시, 동영그룹 1층 커피숍에서 기다릴게.”고은영보다도 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저 만나려고요?”“왜? 그럴 용기가 없니?”고은영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었다.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할 말인지?량일의 이런 태도에, 고은영은 량천옥이 왜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는 배항준과 결혼했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량일 같은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니, 교양이라곤 기대할 수도 없다.“
량일은 여전히 화가 사그라지지 않았다.이 상황에서 량천옥의 말은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다.그녀가 말하면 말할수록 량일은 더욱 화가 났다.결국에 량일은 고은영에게 메시지를 보내버렸다. “고은지가 왜 아직까지도 취직을 못하고 있는지 알아?”고은영 시점.고은영은 휴게실 베란다에서 졸고 있다가 핸드폰 진동 소리에 일어나 핸드폰을 보았다.갑자기 한가한 자리로 옮긴 데다 업무를 인수인계해 주지 않아도 척척 해내는 진청아 덕분에 고은영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나태웅이 데리고 온 사람들은 다들 실력이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다!짧은 시간안에 완벽하게 업무를 배우고 파악하니 말이다.량일에게서 온 메시지를 본 고은영은 의자에서 일어나 바로 문자 온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그러자 량일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전화를 받았다.“만날 거야?”“나이도 드신 분이 꼭 이렇게 품격 떨어지는 일을 해야 직성에 풀려요?”고은영은 분노가 섞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량일은 냉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직도 큰소리나 치고 있어?”“우리 언니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배준우한테는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니 언니 인생 망하게 할 거니까.”량일은 협박하듯 말했다.그녀의 말에 고은영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당신, 선 넘지 마!”“내가 네 회사로 찾아갈까, 아니면 네가 카페로 올래?”지금 량일은 고은영과 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투의 위험성은 더 짙어졌다.“......”고은영은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을 질끈 감고는 말했다.“카페에서 만나요.”“그래, 그래야지! 그게 어른에 대한 예의지.”고은영은 한바탕 욕해주고 싶었다.어른 같은 소리 하고 있네!그러나 고은지를 생각해서 꾹 참았다.량일은 만족하며 전화를 끊었다.고은영은 바로 고은지에게 전화 걸었다.전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린 후에야 고은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영아.”“언니 취직했어?”“아니, 오늘 면접 하나 있어.”고은영의 심장이
고은영은 자기 때문에 고은지가 직장을 찾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비록 고은지는 어릴 때 조보은 밑에서 자랐지만, 서정우 때문에 항상 찬밥 신세였다.그렇기에 고은영은 바로 100만 원을 송금했다.절약습관이 몸에 밴 고은지한테는 100만원은 엄청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액수다배준우는 오전 내내 바빴고, 점심에도 식사 약속이 있었기에 나가기 전에 특별히 고은영에게 당부했다.“이따가 점심에 진 씨 아주머니가 밥 가져오면 다 먹어, 알겠지? 난1시 반쯤 돌아올 거야.”“진 씨 아주머니가 밥도 배달해 줘요?”한 번도 회사로 음식을 가져다준 적이 없었는데?전에는 구내식당에서 먹거나 그렇지 않으면 배달을 시켜 먹었다.“진 씨 아주머니 음식이 맛있잖아. 앞으로 아주머니가 음식 해주시면 기사가 가서 가져올 거야.”그의 말에 고은영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배준우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 씨 아주머니가 회사로 오셨다. 오늘 배준우가 점심 약속이 있으니, 기사님이 가서 가져올 수 없었다. 그래서 진 씨 아주머니가 택시를 타고 직접 온 거다.도시락을 열어보니!안에는 전부 고은영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고은영은 흥분되는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와! 오늘 엄청 풍성하네요.”그녀의 흥분한 모습에 아주머니는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입맛이랑 도련님 입맛이 많이 비슷하시네요! 다행이에요!”“비슷한가요?.. 아닐걸요?”고은영은 의아했다.전에 배준우의 점심을 고은영이 책임지고 있었으니,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러자 진 씨 아주머니가 말했다.“아니긴요, 이거 다 도련님이 고르신 메뉴예요!”배준우가 직접 고른 메뉴라는 말에 고은영의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왜냐하면 메뉴중 에 오리발로 만든 요리가 있는데, 이건 배준우가 절대 먹지 않는 음식이기 때문이다.그녀의 의아한 표정에 진 씨 아주머니가 얼른 말했다.“도련님께서 사모님을 정말 많이 챙기시는 것 같아요. 도련님도 누
고은영은 자기에게 그런 숨 막힐듯한 느낌을 주는 건 한사람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지금, 어떻게든 량일을 고은지 일로 자기에게 협박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량일은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은영은 굴하지 않고 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어서 말했다.“제가 보기엔 사모님께 그럴 능력까지는 없는 걸로 보이는데요?”“이 망할 계집애가!”량일은 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그녀의 모든 직위와 권리는 모두 배씨 집안에 의지해서 얻은 것이라 당연히 그런 능력까지는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그녀 앞에서 적나라하게 말하며 그녀를 모욕하다니!량일은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고은영에게 끼얹었다.고은영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얼굴에 뒤집어썼다.그러나 량일의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모습에 고은영은 오히려 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머리를 넘기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량일을 쳐다보며 말했다.“내 말이 맞나보네요.”“너......”량일은 분노가 극에 달했다.지금 고은영의 모습은 조금 딱했다. 커피에 젖어 머리가 다 산발이 되었다. 그녀가 젖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자, 목덜미 부위의 갈색 모반이 량일의 눈에 들어왔다.찰나의 순간, 량일의 시선이 그녀의 뚜렷한 모반에 꽂혔다!“너......!”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러나 말이 입가에 닿았을 때 멈추고는, 담담하게 고은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원래 분노에 가득 찼던 얼굴이 점점 더 하얗게 질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너, 너.....”뭐지?량일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숨을 가쁘게 쉬었다.량일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고은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태도에 놀라서 그러는 건가?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량일이 길길이 날뛰는 모습은 량천옥보다도 더 미쳐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너, 너...!”량일은 너라는 단어만 반복했다.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손을 떨며 자기 가방을 집어 들었다
“나태웅이 두려워하는 게 뭐 있어요!”안지영이 화를 내면서 얘기했다.나태웅은 장선명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안지영에게 있어서 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게다가 나태웅이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게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나태웅은 극단적인 거지 멍청한 건 아니야.”나태웅은 본인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안지영 앞에 나타난 걸 떠올리면... 장선명은 그런 나태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그래도 이 사진들은 다 사실이죠.”“네가 이 사진 때문에 화를 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너한테 제대로 얘기해야 할 게 있어.”거기까지 얘기한 장선명이 말을 끊었다.안지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뭐요?”장선명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안지영은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소문 속의 장선명은 냉철하고 칼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안지영 앞의 장선명은 항상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안지영을 대해주었다.그래서 안지영은 장선명이 도대체 왜 본인과 결혼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비즈니스 때문에 시작한 부부 연기인데 말이다!사실 처음부터 안지영은 장선명이 왜 본인을 도와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나태웅이 가져온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코끝으로 안지영의 코끝을 가볍게 눌렀다.“그 사람이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건 너야.”“...”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심장이 순간 멎는 것 같았다.“정, 정말이에요?”‘잘못 들은 건가? 그 사람이 선명 씨한테 엄청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현재의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돼. 그 사람을 이미 다 잊었으니까 너랑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장선명은 진지한 말투로 얘기했다. 안지영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장선명을 쳐다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얘기했다.“그렇게 많은 여자들이랑...”“나랑 그 사람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안열이 전에 얘기해줬을 텐데.”“그래도 남자들
“얘기해 봐. 어떻게 해야 화를 풀 거야.”“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였다면서요! 내가 화를 안 내고 배겨요?”안지영이 차갑게 얘기했다.“...”장선명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내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거야? 나는 왜 모르겠지.”“이...”안지영은 인정하지 않는 장선명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정말 화가 난 거야?”“당연하죠. 난 대용품이 되고 싶지 않다고요!”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본인이 왜 안지영에게 빠진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안지영은 느낀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식적으로 돌려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그래서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이 좋았다.“누가 그래, 네가 대용품이라고. 나태웅이 그래?”장선명이 안지영의 두 볼을 가볍게 꼬집으면서 얘기했다.그 말투는 마치 딸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부드러웠다.안지영은 장선명을 힐긋 보더니 얘기했다.“수많은 사진이 증명하고 있잖아요.”그 사진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그 사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절대 나태웅을 믿지 마. 응?”“흥.”“아직도 화가 난 거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안 들을래요!”안지영은 아예 고개를 홱 돌렸다.안지영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잘 알려주는 사람이었다.장선명은 화가 나 등을 돌린 안지영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원래는 좀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반응을 보니 그만해야 할 것 같았다.“알았어. 설명할게.”한숨 자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일로 화를 내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요. 됐어요. 설명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진실이 두려워서 듣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장선명은 웃으면서 얘기했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그 말에 안지영은 또 참지 못하고 장선명을 가볍게 때렸다.오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