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졸업하면, 우리 오빠 동생 말고 남자 여자 할까?" 나은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남선우는 그녀가 졸업하는 날 미국으로 떠나 버렸다. 아무런 설명도 어떠한 변명도 없이 , 마치 우리의 약속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아론그룹 전 회장 '안세희'와 아론그룹 전 전무이사 '한바다 밀러'의 입양 딸 안나은. 무한한 사랑과 애정으로 자신을 키워준 부모를 위해, 아론가에서 꼭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6년 후 어머니 안세희는 78세의 나이로 사랑하는 딸 나은의 손을 꼭 잡은 채 세상을 떠났다. 슬픔에 잠식된 채 검은 상복을 입고 서있는 나은의 앞에, 그가 나타났다. 6년 동안 연락한 번 없던 남선우가..
더 보기앙상한 뼈만 남은 메마른 가지에도 이 겨울을 잘 견디어 내면 또 다시 봄이 오고, 또 새로운 내일과 풍성한 다음이 기약 되어 있기에 두렵지 않은 것일 테지.
그러나 나은은 오늘 몹시도 두렵고, 슬펐고, 또 아팠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표현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일지 모를 그녀가 부디 평온하게 웃으며 떠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어 내보려 한다.
아론서울병원 VIP실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여 두 모녀를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터져 나오는 눈물도, 흐느낌도 최대한 절제하며 가는 목소리들에 집중하려 애쓰고 있었다.
"엄마.. 내 엄마가 되어 줘서 고마웠어."
엄마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사랑하는 딸의 눈, 코, 입, 귀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고이고이 가슴에 새겨 넣으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찬찬히 얼굴을 훑어 본다.
그리고, 그녀가 진심을 꾹꾹 담아 내어 놓은 마지막 말,
"우리... 딸... 사랑...해..."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띠---
"안세희님. 20**년 1월 10일 오전 10시 12분 사망하셨습니다."
"흐으...으...엄마..."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 소식이 적었다.
한 달 전부터 병실 안에서만 시간을 보낸 엄마는, 어느 날인가 창가를 보며 혼잣말을 했었다.
<올해는 눈 보기가 힘드네... 마지막으로 예쁜 눈 한 번 보고 갔으면 좋겠는데...>
그렇지만 한 달 내도록 엄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던 나은은, 아까부터 흩날리고 있었던 새하얀 눈 발을 눈치채지 못했다.
***
=아론그룹 전 회장 안세희, 78세로 영면. 장례는 회사장으로 간소하게=
=아론그룹 안세희 전 회장이 작고 하자, 전 세계 아론 직원 애도 이어져=
=(故)안세희의 유일한 직계 가족은 올해 26세가 된 딸 안나은=
아론서울병원 장례식장은 끊이지 않는 화환과, 애도의 발길로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한 상황이었다.
안세희의 유일한 직계 가족인 나은과, 안세희의 조카이자 나은의 사촌 오빠인 안서후 회장 가족이 함께 자리를 지키며 손님을 맞았다.
"당고모, 방에 가서 좀 쉬다가 와."
파리한 얼굴로 눈물조차 제대로 흘리지 못하고 서 있는 나은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이준은 나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지만, 나은은 가만히 이준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촌수로는 조카이지만, 나이는 자신보다 두 살이나 많은 이준은, 어릴 적 나은이 입양되어 올 때부터 친동생처럼 나은을 보살펴 주던 친오빠 같은 사람이었다.
나은은, 이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르는 편이었다.
평소라면 고갤 끄덕이며 방으로 향했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텅 빈 눈으로 가만히 이준을 쳐다만 볼 뿐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머리가 고장 난 사람처럼, 전원은 들어오지만 기능은 멈춰버린 기계처럼.
*
자정이 넘어가니, 손님들의 발길도 뜸해지고, 시끌벅적했던 장례식장도 조금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벽에 기대 앉아 가만히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나은은, 미소 짓고 있는 엄마를 따라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엄마 좋겠다. 보고 싶었던 아빠 볼 수 있어서..."
나은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반복되어지는 사실 하나, '엄마가 떠났다' 그 것만이 유일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였지만, 그것이 슬픔의 무게를 줄여주지는 못했다.
***
[다음 날]
둘째 날 아침부터 해외 지사 임직원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아직 26살 밖에 안된 나은에게는 대부분이 낯선 얼굴들 이었다.
그런 나은 대신, 사촌오빠인 안서후 회장이 그 옆에서 일일이 이름과 직함을 불러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사람들의 발길도 조금씩 뜸해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늦게 까지 남아 있는 방문객들에 의해 사촌오빠와 새언니는 식당에 발이 묶였다.
나은이 걱정되어 식당을 빠져 나온 이준이 빈소로 들어가려던 찰라, 발길이 멈췄다.
"남선우... 이 시키."
"나 왔어."
순간 울컥하고 치밀어 오른 이준이 선우를 끌어 안았다.
6년 만에 돌아온 남선우였다.
예를 갖추고 꽃을 올리는 선우의 옆모습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서 있던 나은은 파르르 떨고 있는 자신의 두 손을 의식하지 못했다.
이준은 두 사람을 위해 일부러 떨어진 곳에 서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몸을 돌린 선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은과 눈을 맞췄다.
텅 비어 있는 나은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선우의 두 눈이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6년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나은아..."
예전처럼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거리낌 없이 뻗어오는 선우의 손을 피해 뒷걸음질 쳤다.
한 발짝 물러난 나은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붉게 차오른 선우의 눈은 애써 모른 척 했다.
"늦어서 미안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당신이, 그동안 연락한 번 없던 당신이, 6년 만에 나타나 하는 말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철썩 같이 약속해 놓고, 그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깨뜨리고 가버린 당신이, 어떠한 설명도 없이 떠난 당신이... 이제와 늦어서 미안하다고...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럼, 식사 하고 가세요."
다시 한 번 가볍게 고갤 숙인 후 나은이 먼저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허무하게 서 있는 선우의 풀린 어깨가 쓸쓸해 보여, 멀리서 바라보던 이준이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야지. 그래야... 다시 시작하지."
"진심이야?"
선우가 곧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꽉 붙잡고 이준에게 시선을 맞췄다.
"나, 돌아왔다 안이준."
"고생했다...애썼어."
선우는 나은이 들어간 방문을 쳐다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근데 나이가 나보다 많으니까, 편하게 조카 오빠라 불러. 발음 때문에 간혹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긴 하지만"언제부터 와있었는지, 나은의 주위에 소식을 들은 같은 반 여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아, 그러네... 조카 발음 잘해야겠다"순간, 눈을 굴려 주위를 둘러본 나은은 기겁을 했다."헉""안이준 선배랑 친척이야?""와.. 어쩐지 나은이 너 외모도 심상치 않더라니."이건 또 무슨 말? 나랑 안이준은 피가 섞이지도 않았는 걸?.하지만, 이런 말은 조용히 묻어두기로 했다."그럼, 안이준 선배는 너한테 뭐라고 불러?"여기저기서 질문 세례가 터져 나왔고, 나은은 처음으로 오빠들에게 아는 체 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당고모...라고도 하고, 보통 때는 그냥 나은이라고...""그러고 보니까, 나은이 너도 안씨지? 안이준, 안나은."점점 난감해지는 분위기를 알아챈 유림이 자신이 나서야 할 때임을 인지한 듯 몸을 일으켜 큰 소리로 말했다."그대들! 이제 그만 자리로 돌아가시지? 이러다 우리 나은이 돌아가시겠다! 가 이제 훠이~ 훠이~"그 모습에 나은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주말 오전,침대 위에는 나은이 펼쳐 놓은 옷들로 인해 앉을 자리도 없어 보였다.옷을 몇 벌 째 갈아입고 있는 중인지...똑똑"네."나은의 목소리에 세희가 문을 열고 들어와 눈을 키웠다."아직도 못 골랐어?""응... 뭐 입지?""드레스룸에 예쁜 원피스 많잖아.""근데 놀이공원 갈 거라, 편한 옷 입어야 돼. 편한데 예쁜 거.. 엄마가 좀 골라 주라."잔뜩 휘어진 눈으로 미소를 짓던 세희가 청바지 하나와, 크롭 스타일 티셔츠, 길지 않은 재킷을 골라 내어 주었다."와! 역시 우리 엄마 센스! 자리가 길어 보여 이 청바지."그 때, 문 밖에서 도련님들이 도착했다는 사용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세희가 먼저 방을 나서고, 얼른 옷을 갈아입은 나은은 야무지게 머리를 묶고, 작은 크로스 백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고3인데 나은이 챙기느라 공
[안나은 17살]사립 중학교에서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준과 선우를 따라 나은도 결국 오빠들이 다니는 학교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입학 첫 날.여러 벌 걸려 있는 똑같은 교복 중, 한 세트를 꺼내 입고 몇 번이나 거울 앞을 얼쩡거렸다.새로운 학교 생활의 설렘 보다 나은을 더욱 들뜨게 하는 것은..."기다려 남선우! 내가 간다."책장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소방차 장난감과, 경찰차 장난감을 바라보고 서서 경찰차 장난감을 검지 손가락으로 톡! 때리고, 예쁘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책가방까지 야무지게 메고 방문을 나서자 모친 세희가 환한 얼굴로 교복 입은 나은을 향해 걸어 온다."안 떨려?""엄마 나 무진장 떨려~ 근데 신나!.""호호 학교에서 오빠들 만나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진 마? 고3이라 둘 다 정신 없을 거야.""네~ 걱정 마요. 갔다 올게!."제 엄마를 꼭 한 번 끌어 안고는 잽싸게 현관 쪽으로 뛰어 나가는 나은의 뒤를 바라보며 세희가 한껏 미소를 머금었다.***아는 친구라곤 하나도 없었던 나은이었지만, 등교와 동시에 특유의 해맑음으로 친구를 2명이나 사귀었다."그런데 고3 교실은 어디야?""여기 3층. 우리 위에 위에."김유림이 검지 손가락을 세우고 말했다."아...""근데, 등교시간이나 점심시간 외에는 거의 볼 일 없을걸? 맨날 교실에 붙어 있느라.""그렇구나..."같은 학교로 오면 뭐하나, 같은 건물에 있어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것을...*점심시간이 되어 김유림과 온다예와 함께 급식실로 이동한 나은은 주위를 힐끔거리며 오빠들을 찾았지만, 역시나 오빠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잔뜩 풀이 죽은 채 음식을 입속에 쑤셔 넣으며 의무적으로 씹고 삼키길 반복했다."다예 너는 왜 이렇게 조금 먹어?"유림이 다예의 식판을 바라보며 물었다."아... 나 원래 양이 좀 적어서...""와. 부럽다."나은은 슬쩍 자신의 식판을 내려다 보았다.다예가 퍼온 밥에 정확히 두 배는 되는 양을 깨끗하게 먹어 치우고
선우는 그 날 이준과 함께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 다음날도 여전히 선우는 그 자리에 있었다.나은은 선우에게 일절 시선을 주지 않았다.오로지 사랑하는 엄마를 잘 보내드리기 위해 엄마와의 이별에 온 마음을 쏟고 있었다.선우도 더 이상 나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저 한 공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나은은, 모든 장례 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흐느낌 한 번 없이 꾸역꾸역 참아냈다.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 만큼은 제 힘으로도 막을 방법이 없었으나, 모든 소리를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삼켜내며 버텨냈다.우연히 들은 기업가 사모들의 대화에 나은은 두렵기 보다 쓸쓸했다.4살부터 26살인 지금까지 끊임 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입양 딸".그런 딸이 혹시나 상처 받을까 봐 더 많이 사랑해 주고 표현해 주며, 내 딸이 최고라고 해 주던 부모님.넌 내가 끝까지 책임질 거라며, 두려워 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던 사촌오빠.그러나 사람들은, 이들의 진심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은 듯 싶었다.그래서 그랬다.엄마의 마지막 길에, 사람들이 자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으면 해서...뒤에서 또 자신에 대해 이런 저런 하는 얘기들을 엄마가 듣지 않았으면 해서...***엄마가 돌아가시고 사흘 째.나은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질 못했다.첫 날 엄마 방에 들어가 협탁 위에 놓인 가족사진을 보는데,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흐느낌에 결국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아빠, 엄마, 어린 나은.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가족 사진 안에는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이 여전히 함께 웃고 있었다."...나 혼자...어떻게 살라고...흐흐흑...엄마...으..."*그 시간 아론리빙 본사, 회장 집무실에는 선우와 이준이 불려와 안서후 회장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앙상한 뼈만 남은 메마른 가지에도 이 겨울을 잘 견디어 내면 또 다시 봄이 오고, 또 새로운 내일과 풍성한 다음이 기약 되어 있기에 두렵지 않은 것일 테지.그러나 나은은 오늘 몹시도 두렵고, 슬펐고, 또 아팠다.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표현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일지 모를 그녀가 부디 평온하게 웃으며 떠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고 견디어 내보려 한다.아론서울병원 VIP실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여 두 모녀를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터져 나오는 눈물도, 흐느낌도 최대한 절제하며 가는 목소리들에 집중하려 애쓰고 있었다."엄마.. 내 엄마가 되어 줘서 고마웠어."엄마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사랑하는 딸의 눈, 코, 입, 귀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고이고이 가슴에 새겨 넣으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찬찬히 얼굴을 훑어 본다.그리고, 그녀가 진심을 꾹꾹 담아 내어 놓은 마지막 말,"우리... 딸... 사랑...해..."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띠---"안세희님. 20**년 1월 10일 오전 10시 12분 사망하셨습니다.""흐으...으...엄마..."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 소식이 적었다.한 달 전부터 병실 안에서만 시간을 보낸 엄마는, 어느 날인가 창가를 보며 혼잣말을 했었다.그렇지만 한 달 내도록 엄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창밖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던 나은은, 아까부터 흩날리고 있었던 새하얀 눈 발을 눈치채지 못했다.***=아론그룹 전 회장 안세희, 78세로 영면. 장례는 회사장으로 간소하게==아론그룹 안세희 전 회장이 작고 하자, 전 세계 아론 직원 애도 이어져==(故)안세희의 유일한 직계 가족은 올해 26세가 된 딸 안나은=아론서울병원 장례식장은 끊이지 않는 화환과, 애도의 발길로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한 상황이었다.안세희의 유일한 직계 가족인 나은과, 안세희의 조카이자 나은의 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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