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지운 남자가 내 친구와 결혼한다

내 아이를 지운 남자가 내 친구와 결혼한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By:  루니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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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배 속 아이를 강제로 지운 남자가, 그 수술에 서명한 내 절친과 결혼한다. 아이를 잃은 날, 연인 최무겸은 모든 책임을 연희에게 뒤집어씌우고 사라졌다. 그리고 몇 달 뒤, 절친 한세아와의 청첩장을 보냈다. 신부의 손에는 연희의 약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바꿔치기된 환자 이름, 위조된 동의서, 조작된 태아 판독. 그녀가 아이를 포기했다는 기록은 모두 거짓이었다. 결혼식장에 나타난 연희가 마이크를 든다. “내 아이를 죽인 공범들끼리, 오늘 부부가 되는 거야?” 그 순간, 축복받던 결혼식은 지워진 아이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처형대로 뒤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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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내용 궁금해서 잠도 안와요
2026-09-02 09:16:58
2
1
단단단
단단단
볼수록 흥미로운 내용이라적극추천이요~
2026-07-27 21:10:07
3
0
159 Chapters
1화. 네가 서명했어?
“내 애 어디 있어? 나 안 한다고 했잖아!”이연희는 배 위에 덮인 이불을 걷어차다가 비명을 삼켰다. 아랫배가 안쪽부터 찢어지는 듯 욱신거렸고, 손등에는 수액 바늘이 꽂혀 있었다. 천장의 흰 조명이 번져 보이는 사이, 침대 옆 기계가 일정한 소리를 냈다. 연희는 배를 더듬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두 손으로 감싸며 말을 걸던 자리였다. 만지면 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손끝에 닿는 것은 힘없이 주름진 환자복뿐이었다.‘우리 애기, 엄마 목소리 들리지? 아빠 닮으면 좀 곤란한데.’그 말을 하며 웃던 최무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임신 사실을 알린 날, 무겸은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배에 입을 맞췄다. ‘아빠가 돈 많이 벌어 올게. 대신 엄마는 아빠도 좀 사랑해 줘. 벌써 찬밥 신세네.’ 유치하다며 밀어내자 그는 연희의 손가락에 끼워진 약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평생 책임지겠다고 했다.“연희야. 소리 지르지 마. 회복에 안 좋아.”그 남자가 지금 침대 곁에 서 있었다. 비싼 코트 소매를 걷어 올린 채 휴대폰을 확인하는 모습이 평소 회의실에서 보던 것과 똑같았다. 연희는 그의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배를 쓰다듬어 주던 손이 오늘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애는? 무겸 씨, 우리 애 어디 있냐고.”“수술은 끝났어.”“그건 나도 알아.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엄마가 돼서 내 애 한번 지켜 보겠다고, 제발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문이 벌컥 열렸다. 한세아가 종이컵과 휴지를 들고 들어왔다. 열다섯 해를 붙어 다닌 친구는 연희의 젖은 뺨부터 닦으려 했다. 연희가 손을 쳐 내자 종이컵 물이 하얀 시트에 엎질러졌다.“야, 이연희.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수술까지 끝났는데 난리 친다고 애가 돌아와?”연희는 세아를 올려다봤다. 친구의 손에는 병원 보호자 출입증이 걸려 있었다. 수술 전 세아는 무섭다고 우는 연희의 이마를 쓸어 주며 ‘내가 옆에 있을게, 무조건 네 편이야’라고 했다. 연희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말을 믿었다. 팔을 붙잡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울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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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내 반지 끼고 웃어?
“한세아. 네가 내 애를 지우라고 사인했어?”수술 동의서 끝에 박힌 이름을 읽자 연희의 손에서 종이가 구겨졌다. 세아는 빼앗으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병상 난간에 엉덩이를 걸치고, 연희가 흘린 눈물 때문에 젖은 휴지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사인한 건 맞아. 그래서? 네가 그때 제정신이었어? 내가 총대 멨으면 고맙다고 해도 모자라지.”연희가 다시 입을 열자 아랫배가 뒤틀렸다. 세아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다 병실 문을 닫았다. 복도에서 멀어진 무겸의 구두 소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세아가 내민 종이는 그녀의 손에서 다시 구겨졌다. 간호사가 소란을 듣고 들어오자 연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무겸은 돌아오지 않았고, 세아는 짜증을 내며 병실을 나갔다. 남은 것은 자기 이름이 아닌 서명 한 줄과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아이의 심장 소리였다.그날 이후 석 달이 지났다.연희는 고향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이재문이 돌보는 복숭아밭을 내다보며 살았다. 창문에 닿은 가지가 바람에 긁힐 때마다 잠이 깨곤 했고, 어머니 김정애는 그럴 때마다 따뜻한 물을 식탁에 놓아 두었다. 아버지는 젖은 빨랫감을 말없이 걷어 줬다. 두 사람은 연희에게 이제 잊으라고 하지 않았다. 연희 역시 잊었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그런 집에 금박 청첩장이 도착했다.연희는 봉투를 뜯기 전에 수신인부터 확인했다. ‘이연희 귀하.’ 붉은 손톱 자국이 남을 만큼 봉투를 쥐고 나서야 안쪽의 카드를 꺼냈다.신랑 최무겸. 신부 한세아.“와…… 이것들이 미쳤나.”카드 아래에는 웨딩 촬영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무겸은 세아의 허리를 당겨 안은 채 웃고 있었고, 세아는 그의 넥타이를 한 손으로 잡아당겼다. 사진 가장자리에는 ‘우리의 가장 눈부신 시작’이라는 문구가 있었다.무겸은 한때 연희의 배에 입을 맞추며 떠들었다.‘우리 애기 엄마, 딸이면 나 닮아서 골치 아플 텐데 괜찮겠어? 대신 당신은 평생 내가 업고 다닐게.’‘아들인데 당신 닮으면?’‘그럼 내가 교육 잘못한 거지. 당신은 예쁘기만 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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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축의금은 수술비
“신부님, 축의금이 벌써 들어왔네요. 아주 급한 팬인가 봐요.”한세아는 웨딩숍 상담실에서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리다가 붉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양옆에는 예비 시댁 친척들이 앉아 있었다. 세아는 ‘신부 한세아’라고 적힌 글씨를 알아보고도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아, 얘요? 제일 친한 친구예요. 제가 결혼한다니까 배 아파 죽으려고 하더니 돈은 또 보내네. 귀엽죠?”전면 거울에는 세아의 웃는 얼굴이 여러 개 비쳤다. 방금 입어 본 드레스는 무겸이 직접 골랐다는 것이었다. 세아는 친척들이 볼 때마다 약지의 다이아몬드를 만지며 자랑했다. 그 옆의 흠집은 이연희가 냈던 자국이었다.무겸의 고모가 웃으며 축의금 액수를 물었다. 세아는 손톱으로 봉투 입구를 찢었다. 돈 대신 접힌 종이 두 장이 나왔다. 세강병원 수술비 영수증 사본. 그리고 수술 동의서에서 잘라 낸 서명 부분. 맨 위에 이연희가 쓴 짧은 문장이 있었다.‘축의금은 수술비. 내 아이 값, 너희가 계산해.’세아의 웃음이 끊겼다. 고모가 무심코 영수증을 집어 들었다. ‘산부인과’라는 글씨가 보이자 세아는 종이를 낚아챘고, 손에 들린 봉투가 찢어지면서 사본 한 장이 테이블 아래로 미끄러졌다.“뭔데 그렇게 난리니?”“별거 아니에요. 애가 요즘 제정신이 아니라서요.”세아는 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 하지만 손가락에 낀 다이아몬드가 테이블 유리를 쿵 찍었다. 고모가 서류를 보겠다며 손을 내밀자 세아는 영수증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소매의 레이스가 음료에 젖었다. 직원이 수건을 가져오자 “지금 그딴 게 문제예요?” 하고 쏘아붙였다. 예비 시댁 사람들 앞에서 하던 살가운 말투가 사라졌다. 세아는 제 목소리가 컸다는 걸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고모가 ‘애라니?’ 하고 되묻자 세아는 더 활짝 웃었다.“친구 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참 별꼴을 다 보겠네.”그 시각 연희는 고향집 식탁에서 휴대폰을 세워 놓고 있었다. 어제 영상통화에서 세아가 약혼반지를 흔들며 웃던 장면을 다시 재생하자 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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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신부가 잠근 문
‘신부가 이 수술에 사인했다는 겁니까?’예식장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질문 하나에 한세아는 제 손으로 지운 아이의 엄마를 미친 여자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연희는 낯선 번호가 보내온 화면을 확대했다. 열여덟 명이 연달아 읽었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 신부 이름 옆에 긴 메시지가 떴다.‘저희 행복한 날에 이런 사진까지 돌게 해서 죄송해요. 제 친구가 요즘 많이 아파요. 전 남자친구를 아직 못 잊어서요.’연희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조금 전 통화에서 세아는 제가 수술 서류에 사인했다고 악을 쓰더니, 남들 앞에서는 또 연희를 걱정하는 친구가 됐다. 화면에 사진이 하나 더 올라왔다. 웨딩숍 거울 앞에서 울먹이는 세아의 셀카였다.‘축의금 봉투까지 보내며 겁을 줘서 솔직히 무서워요. 그래도 15년 친구인데 제가 감싸야죠.’“감싸긴 뭘 감싸. 내 배를 들쑤신 서류에 네 이름이나 감춰.”연희가 중얼거리자 부엌에서 김정애가 고개를 들었다. 정애는 과일 접시를 옮기다 딸의 표정을 보고 손을 멈췄다. 연희는 화면을 돌려 보여 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친딸처럼 먹이고 재웠던 세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고 있는지, 오늘까지는 자신이 감당하고 싶었다. 정애는 휴대폰 대신 딸의 손등을 살폈다. 병원에서 돌아온 뒤 손톱을 깨물던 버릇이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그 애가 또 너한테 뭐라디?”연희가 “이번엔 남들 앞에서 날 불쌍해한대”라고 대답하자 정애는 과도를 씻던 손을 멈췄다.“우리 집 밥 먹을 땐 입이 그렇게 고왔는데.”그 무렵 세아는 웨딩숍 탈의실에서 최무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 대기음이 길어지자 드레스 허리의 핀을 잡아당겨 바닥에 던졌다.“오빠, 그 미친년이 우리 결혼식에 병원 영수증 뿌렸어. 친척들 앞에서 나 임신 중절 시킨 여자 만들었다고!”“목소리 낮춰. 직원들 듣잖아.”“듣든 말든! 오빠 전 여친이잖아. 처리 좀 해. 나 지금 신부가 아니라 범죄자 됐다고.”무겸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짧게 대꾸했다.“일단 울어. 네가 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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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초대해 놓고 출입 금지
“청첩장은 신부가 보내고, 문은 신부가 잠갔다고요?”이연희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식탁에 놓인 금박 봉투를 끌어당겼다. ‘귀한 걸음으로 축복해 달라’던 문장이 두 사람의 웨딩사진 아래 반듯하게 인쇄돼 있었다. 정작 오지 말라며 이름을 막아 놓은 사람은 신부 한세아였다. 연희는 봉투를 뒤집었다. 우편 소인까지 선명했다. 세아가 직접 보내 놓고 이제 와 자신이 찾아오겠다고 협박했다는 소문을 낸다면, 적어도 그 초대장의 주인은 숨을 곳이 없을 터였다.“저희는 주최 측의 출입 요청을 전달받았을 뿐이라…….”“제 이름으로 발송된 초대장은요? VIP 초청 명단에 제 이름이 등록돼 있는지, 누가 출입 제한을 요청했는지 기록으로 남겨 주세요.”담당자가 난처하게 숨을 삼켰다. 연희는 그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호텔 직원이 자신에게 악감정이 있을 리 없었다. 미리 보낸 청첩장과 뒤늦게 걸어 잠근 문, 그 두 가지가 같은 신부에게서 나왔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됐다.“본인 확인 후 고객님 명의의 초청 등록 여부와 안내 사실은 회신드리겠습니다. 타인의 내부 요청서는 제공이 어렵습니다.”“그럼 제가 받은 출입 금지 통보부터 문자로 보내 주세요. 말로만 들으면 또 제가 지어냈다고 할 테니까.”통화가 끝나자마자 화면에 한세아의 사진이 떠올랐다. 신부는 며칠 전 영상통화에서 연희의 약혼반지를 카메라에 들이밀며 웃었다. ‘남자도 반지도 좋은 주인 만나면 새것처럼 빛나는 거야.’ 연희는 반지 옆면의 흠집을 확대해 놓고, 서류봉투를 다시 열었다. 병상에서 울부짖던 자신을 내려다보며 ‘고마운 줄 알아’라고 하던 얼굴도 떠올랐다. 연희가 숨도 쉬기 힘들어 이불을 움켜쥐는 동안, 세아는 자기 손톱이 망가졌다고 투덜댔다. 수술 동의서 사본의 보호자 서명은 아직도 똑바로 읽혔다. 한세아. 자기 아이를 지우는 데 쓰인 그 손으로 드레스 치맛자락까지 고르고 있었다.“연희야.”어머니 김정애가 부엌에서 나왔다. 손에는 씻다 만 쌀이 묻어 있었고, 얼굴은 유난히 굳어 있었다.“세아가 전화했더라. 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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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그 입으로 아빠?
“우리 부모님 건드려 봐, 최무겸. 네 결혼식 전에 수갑부터 채워 줄 테니까.”무겸은 대꾸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이연희는 까맣게 변한 화면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봤다. 아이를 잃은 뒤 무겸에게 수없이 전화를 걸었을 때는 벨소리조차 듣기 어려웠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를 입에 올릴 때는 이렇게 쉽고 정확하게 말을 끝냈다.마당에서 이재문이 복숭아 상자를 쌓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된 나무 상자가 부딪힐 때마다 연희는 손가락으로 휴대폰 모서리를 눌렀다. 그 남자는 이 집 문턱을 드나들며 재문에게 장인어른이라고 불렀다. 못생긴 복숭아까지 맛있다고 받아먹으며 ‘우리 공주님 키워 주셨으니 제가 평생 모시겠습니다’라고 떠들던 입이었다.연희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대신 문자를 썼다.‘우리 가족을 다치게 한다는 게 무슨 뜻이야? 방금 네가 한 말 그대로 물을게.’답장은 1분도 지나지 않아 왔다.‘괜히 예식장 오지 마. 아버지 과수원 일까지 복잡해지면 너만 피곤해져.’연희는 화면을 캡처하고 대화 전체를 별도로 저장했다. 곧이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김정애가 따뜻한 보리차와 작은 접시를 들고 서 있었다. 바짝 마른 입술을 본 정애가 물컵을 먼저 내밀었다.“누구 전화니? 얼굴이 꼭 사람 하나 때리고 온 얼굴인데.”“때린 건 아직 없어. 때리고 싶다는 마음은 있어.”“그 마음은 알겠다. 그래도 밥은 먹고 싸워. 빈속에 싸우면 말도 딸려.”정애는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연희는 그 손에 들린 접시를 받았다. 잘게 썬 복숭아가 가지런했다. 무겸이 무슨 뜻으로 가족을 협박했든, 어머니가 그 사실을 모르는 동안만큼은 평범한 저녁을 돌려주고 싶었다.과수원. 무겸이 그 땅을 입에 올린 건 처음이었다.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아직 알지 못했지만, 이제 그의 협박에는 날짜와 글자가 남았다.휴대폰이 또 울렸다. 세강의료재단 홍보팀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 메시지에는 내부 업무 화면을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연희의 이름 옆에 붉은 표시가 돼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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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정상이라고 적혔다
“걱정하지 마. 검사 결과는 엄마가 알아서 만들 거야.”이연희는 녹음이 끝났는데도 재생 버튼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최무겸이 ‘아빠 될 준비 끝’이라며 떠들던 바로 그날, 그는 다른 사람에게 아이의 검사 결과를 미리 약속하고 있었다. 연희가 부엌에서 물을 따르는 동안에는 몰랐던 목소리였다. 녹음 끝자락에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남아 있었다. 웃으며 돌아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던 남자가, 몇 걸음 앞에서 무슨 거래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결과를…… 만든다고?”연희는 재생 시간을 확인한 뒤 파일을 두 군데에 복사했다. 아이가 잘못됐다는 말을 들은 건 그날보다 나중이었다. 최혜경이 보여 준 검사 결과지는 의학용어로 빼곡했고, 무겸은 연희가 숫자를 읽으려 할 때마다 손을 잡았다.‘우리 애기 엄마, 이런 건 전문가한테 맡겨. 넌 배만 따뜻하게 해.’그때는 사랑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니 자기 입으로 질문 하나 못 하게 만든 소리였다.연희는 여행가방 바닥을 뒤집었다. 병원에서 나온 날 정애가 챙겨 준 봉투가 구겨진 옷 사이에서 나왔다. 진료비 영수증, 복약 안내문, 검사 통지서. 종이를 펼칠 때마다 소독약 냄새가 되살아났다. 통지서 윗부분에는 주수와 기초 계측값이 찍혀 있었다. 그 옆 참고 범위와 비교해도 눈에 띄게 벗어난 수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장의 설명에는 ‘중대한 이상 의심, 신속한 처치 권고’라는 문장이 굵게 인쇄돼 있었다.서로 다른 뜻을 가진 두 장이 한 봉투에 들어 있었다. 연희는 검사 통지서 하단을 훑었다. ‘상세 판독은 별도 보관’이라는 작은 글씨가 보였다. 수술 전 그 판독지를 보여 달라고 세아에게 부탁했을 때, 세아는 ‘너 지금 숫자 공부할 때야? 정신 차려’라며 종이를 빼앗았다. 그때 빼앗긴 건 종이 한 장만이 아니었다.연희는 두 장을 식탁에 나란히 놓았다.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다고 모든 이상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어떤 검사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설명 한 줄 없이 아이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 건 분명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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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라진 환자
“수술 기록이 없다고? 그럼 내 배는 누가 건드렸는데?”이연희는 박도율이 보낸 병원 회신을 다시 확대했다. ‘이연희 명의의 수술 기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장 아래에는 세강병원 직인까지 찍혀 있었다. 배 속 아이가 사라진 날도, 수술을 거부하다 목이 쉬도록 울었던 시간도, 저 종이 한 장 앞에서는 없던 일이 됐다.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졌다.“병원에 직접 갈게요.”도율은 무턱대고 말리지 않았다. 대신 접수증과 결제 내역을 챙기라고 했다.“화를 내셔도 됩니다. 다만 창구 직원한테 소리 지르는 장면만 남기면 저쪽이 좋아하겠죠.”“그럼 병원장한테 꽃다발이라도 보내요? 내 애 지워 줘서 감사하다고?”“영수증을 보내죠. 꽃보다 오래 남습니다.”연희는 전화를 끊고 병원에서 나온 날 입었던 옷을 꺼냈다. 헐렁해진 바지를 쥐자 그날이 떠올랐다.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주저앉았을 때 최무겸은 ‘네 선택이야’라는 말만 남겼고, 한세아는 ‘그 꼴로 애를 어떻게 키워?’라며 웃었다. 그런데 그들이 억지로 내민 동의서에 이어, 이제 병원마저 연희가 수술받은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다.로비는 여전히 반짝였다. 전광판에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라는 문구가 흘러갔다. 연희는 그 아래를 지나 원무과 대기표를 뽑았다. 번호표가 땀에 젖는 동안에도 직원들은 환자들에게 웃으며 안내했다. 석 달 전에는 자신도 저 친절을 믿었다. 세아는 그날 초음파 사진을 보고 “우리 조카, 이모 닮으면 미인이다”라며 웃었다. 그 얼굴이 떠올라 속이 울렁거렸다.“이연희 씨, 어떤 업무로 오셨어요?”창구 직원은 이름을 듣자마자 펜 끝을 멈췄다. 웃던 입술이 굳었고, 모니터와 연희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연희는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석 달 전 수술실로 옮겨지기 전에도 저 여자에게 접수 서류를 건넸다. 그날 직원은 울던 연희에게 휴지를 건네며 이름을 확인했다. 기억하지 못할 얼굴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금은 손목의 직원용 시계만 만지작거렸다.“저 아세요?”“아뇨. 신분증 부탁드립니다.”“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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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신부 이름으로 수술
환자명, 한세아.이연희는 팔찌를 읽는 순간 병원 분수대 옆 돌의자에 주저앉았다. 석 달 전 제 손목에 채워졌던 흰 띠였다. 안쪽에는 세강병원 로고와 입원 날짜, 여덟 자리 번호가 찍혀 있었다. 그런데 이름도 생년월일도 제 것이 아니었다. 한세아는 연희와 동갑이지만 생일은 달랐다. 고등학교 때 서로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 주던 날까지 기억하는데, 병원은 둘을 같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세아는 연희 생일이면 꼭 첫 조각을 가져갔다. “넌 좋은 거 좀 양보해도 되잖아.” 어릴 땐 그 말이 장난인 줄 알았다.물줄기가 뺨에 튀었다. 연희는 얼른 팔찌를 투명 봉투에 다시 넣었다. 조금 전 창구 직원은 연희 얼굴을 알아보고도 수술 기록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팔찌를 몰래 건넸다. 누군가 지워 버린 이름 대신 남겨 둔 증거라는 생각이 들자 봉투를 쥔 손바닥에 땀이 찼다. 병원 정문에서 휠체어를 탄 임신부가 보호자의 손을 잡고 나왔다. 연희는 자신도 그 문을 아기와 함께 걸어 나오리라 믿었던 날을 떠올렸다. 잠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그 여자를 붙잡고 울었을지도 몰랐다.연희는 도율에게 팔찌 사진을 보내면서 원본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적었다. 곧 전화가 왔다.“지금 계신 자리에서 팔찌를 더 만지지 마세요. 봉투째 가져오십시오. 어디서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나는 순서대로 적어 두시고요.”“제 배를 가른 병원이 절 세아로 적어 놨어요. 그럼 걔가 수술받은 거예요? 내 애는 어디로 간 건데요?”“기록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누가 수술받았는지는 다릅니다. 그 차이를 잡아야 합니다.”연희는 통화를 끊고 버스정류장으로 가지 않았다. 오히려 병원 맞은편 카페 창가에 앉아 수술 당일 카드 결제 문자를 열었다. 그 날짜에 연희 이름으로 결제된 비용은 분명히 있었다. 팔찌에는 세아의 이름과 다른 생년월일이 박혀 있었다. 돈을 낸 사람과 수술실에 들어간 사람과 서류상의 환자가 서로 달랐다. 이걸 단순 실수라고 부르려면 적어도 세 군데가 한꺼번에 틀려야 했다.연희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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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서명은 이미 끝났다
“수술이 3건이라고요? 내 애는 하나였는데, 병원은 누구 배를 두 번 더 건드린 거예요?”이연희가 책상 끝을 움켜쥐자 박도율은 모니터를 그녀 쪽으로 더 돌렸다. 환자번호 41082673 아래 서로 다른 날짜와 수술 코드가 세 줄로 늘어서 있었다. 그중 하나만 연희가 정신을 잃었던 날이었다. 나머지 두 줄에도 산부인과 수술을 뜻하는 항목이 있었지만 이름은 가려져 있었다. 서로 다른 여성들의 기록으로 보인다는 도율의 설명에 연희는 팔찌가 든 봉투를 내려다봤다. 한세아의 이름을 빌려 제 아이를 지운 것도 모자라, 같은 번호로 다른 여자들까지 묶어 놓은 셈이었다.“전산 오류라던데, 오류가 아주 부지런하네요. 날짜 골라서 수술까지 하고.”“현재 자료만으로 다른 두 사람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다만 번호가 잘못 붙었다는 설명만으로는 세 건이 왜 남았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도율은 병원 회신문 옆에 날짜를 나란히 적었다. 연희는 그가 종이를 넘길 때마다 손끝으로 자기 수술 날짜를 눌렀다. 기억을 더듬으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아의 손이었다. ‘눈 좀 감고 있어. 끝나면 다 괜찮아져.’ 친구는 그렇게 말했지만 끝난 뒤 괜찮아진 사람은 세아뿐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자기 약혼반지를 흔들며 웃을 만큼.“저 두 사람도 자기 이름으로 수술받은 줄 알고 있을까요?”“그것부터 확인해야죠. 다른 분들 기록을 함부로 열 수는 없습니다. 병원에 중복 기재 경위와 연희 씨 자료의 원본 보존을 요구하겠습니다.”도율이 공문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세강병원 법무지원실이었다. 담당자는 오류를 인정하지도, 기록이 없다는 답변을 철회하지도 않은 채 ‘원만한 해결을 위한 면담’을 제안했다. 연희가 스피커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환자는 없다더니 합의할 사람은 있어요? 귀신이 병원 상대로 소송이라도 걸었나 봐요.”상대편이 말을 더듬자 도율이 면담 일시와 참석자 이름을 확인했다. 연희는 바로 다음 날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무겸은 늘 문제를 ‘정리’하자고 했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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