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가슴골 사이로 떨어진 차가운 흑요석의 감촉이 피부를 알싸하게 자극했다. 리아나가 유연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펜던트를 쓸어내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목줄을 걸었으니, 주인 노릇부터 해야겠는데.”
낮게 가라앉은 헤르만의 음성이 귓가를 서늘하게 긁어내렸다.
그가 긴 손가락으로 리아나의 목에 걸린 까만 흑요석 펜던트를 툭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 줄이 리아나의 고운 목덜미를 살짝 죄어왔다. 거부할 틈도 없이, 헤르만은 줄을 살며시 잡아당겨 그녀의 상체를 제 쪽으로 깊숙이 끌어당겼다.
리아나의 입술 사이로 자그마한 탄성이 삐져나온 것은 순식간이었다. 중심을 잃은 그녀의 단정한 정장 스커트 자락이 소파 위로 스르륵 흐트러졌다. 헤르만은 그대로 리아나의 허리를 커다란 손으로 낚아채며, 푹신한 가죽 소파 위로 그녀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쿠션 깊숙이 파묻힌 리아나의 위로 사내의 거대한 그림자가 아찔하게 덮쳐
순간, 복도의 기류가 서늘하게 곤두박질쳤다.리아나의 입에서 나온 예리한 언질에 전율이 흐른 것은 되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이었다.당사자인 현신은 아무렇지 않은 듯 굴었다. 목숨이 노려지는 절박한 순간에도, 덤덤함을 넘어 피식 피어나는 그녀의 여유로운 반응은 리아나로서도 꽤나 흥미로운 자극이었다.세상이 제 목숨을 노려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현신, 그리고 그런 현신을 지독하게 사랑하면서도 내색 없이 상황을 관망하는 가계영.현신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한 안광을 내뿜으며 리아나를 가만히 쏘아보았다.“리아나 선배. 만약 적들의 손에 제가 목숨을 잃게 된다면, 누가 가장 큰 이득을 취하게 될까요?”현신의 찌르는 듯한 질문에, 리아나는 건조한 목소리로 답을 건넸다.“당연히 한비단도 쇄신할 필요가 없고, 빅토리아 역시 엘에프 사장님께 경고를 던지게 되니 그들에게는 좋은 결과가 될 겁니다. 또한 에스 당신을 사살하라는 표적 임무를 완수한 요원은 거액의 포상을 챙기겠지요.”그 말은 즉, 만약 리아나 자신이 첩자이고 현신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수락했다면, 자신이야말로 빅토리아가 심어놓은 스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었다.“리아나 선배, 참 세심하기도 하시군요.”“저를 믿든 안 믿든 선택은 에스의 몫입니다.”리아나는 호락호락하게 넘어가 주지 않는 현신을 마주하며, 입꼬리를 유연하게 말아 올렸다.그 순간, 헤르만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야수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리아나의 단정한 어깨를 커다란 손으로 묵직하게 감싸 안았다.“리아나, 흥미롭군. 대놓고 에스에게 경고를 한 걸 보면 증거가 아주 확실한 모양이지?”“물론입니다.”
현신은 리아나가 순간 속으로 꽤나 곤혹스러워하고 있음을 직감했다.아무리 대단한 수완을 지닌 요원이라 한들, 거물들이 사방에서 도마 위에 올려놓고 사적으로 난도질하는 자리에 자진해서 서고 싶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현신으로서도 아직 리아나라는 인물에 대한 검증이 완결되지 않았기에, 이대로 그녀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내가 너무 짓궂게 굴었던 걸까.’리아나가 유연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을 건네려 입술을 달싹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리아나, 같이 먹지.”헤르만의 묵직하고 낮은 명령이 공기를 갈랐다.현신의 기습적인 제안을 거절하자니 이 자리에 선 사내들 앞에서 고집을 피우는 형국이 되고, 헤르만의 명령까지 거스르면 그야말로 겉도는 ‘나쁜 여자’가 되어버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헤르만이 띤 신사적인 미소 너머의 막강한 제어력 앞에, 리아나 역시 자존심 섞인 고집을 거둘 수밖에 없는 판이 완성된 셈이었다.현신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리아나라는 여인은 사내들이 결코 호락호락하게 길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두 사람, 정말 숨 막히게 잘 어울리네. 어지간하면 리아나 선배가 진짜 우리 편이었으면 좋겠는데.’현신이 속으로 나직하게 읊조리는 사이, 자신을 향해 쏠린 모두의 시선을 차분하게 읽어낸 리아나가 피하지 않고 헤르만의 잿빛 눈동자를 마주했다.명령과 유혹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그의 음성에, 리아나는 느긋하게 태세를 전환하여 매끄러운 즉답을 건넸다.“네, 알겠습니다. 장소는 제가 바로 예약하겠습니다.”연인이자 보스인 헤르만의 체면을 완벽히 살려주는 영민하고 완벽한 태도였다. 얼음장처럼 차갑게 조여들던 대표실의 분위기는 이내 훈훈하고
사람에게는 본능적인 직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현신은 리아나를 직접 눈에 담은 바로 그 순간, 전율처럼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에 주변의 풍경이 순간 아득해지는 착각을 느꼈다.욕망에 지독하리만치 충실한 엘에프와 달리, 거의 금욕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헤르만이 왜 그녀를 처음 마주했을 때 그토록 번민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세상에, 이런 여자는 본 적이 없어.’극도로 아름다우면서도 위험천만한 존재.절대 평범할 수 없는 기운을 내뿜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우호도 적대도 드러내지 않는 완벽하게 정제된 인형 같은 여자였다. 저토록 가녀린 몸짓 어디에서 저만큼 치명적인 압도감이 흘러나오는 건지 의문일 정도였다.“안녕하세요, 리아나 선배.”현신의 상쾌한 인사에, 리아나는 단정한 검은색 재킷 앞으로 손을 살포시 모으고 모두를 향해 공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네. 업무 마무리가 늦어져 귀한 손님분들을 기다리게 해드렸습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단단하고 정확한 발음.우아하게 틀어 올린 목선과 지적인 무드를 더하는 깔끔한 안경.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표정 뒤로, 그녀에게서는 거부할 수 없는 고혹적인 우아함도 풍겨 나왔다.영국 변호사 시험 수석 패스, 그리고 용병에 육박하는 무기 운용 능력. 현신은 그녀를 가까이서 마주하자마자 깨달았다.라ON의 도서관에서 검정고시 책을 넘기던 앳된 소녀는, 이제 치명적인 독을 품은 아름다운 어른이 되어 있었다고. 천재들 사이 그늘에서 스쳐 지나갔던 모범생은 어느새 서늘한 칼날을 숨긴 대단한 요원으로 거듭나 있었다.그때 엘에프가 그녀를 향해 천사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대는 또 변한 것 같아 재미있군.&rdq
7월도 어느덧 중순을 넘어서고 있었다.점심 무렵의 태양은 바짝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지독하고 가혹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헤르만의 하루하루는 매일같이 아찔한 불꽃놀이를 마주하는 듯한 자극의 연속이었다.리아나와 계약 관계를 맺은 이후, 회사를 운영하는 업무도, 그녀의 유일한 남자로 지내는 나날도 매 순간이 팽팽하고 특별했다.창밖의 공기는 찌들 듯 끈적였지만, 사옥 내부의 기류는 인트라넷에 공지된 ‘귀빈 방문’ 소식으로 인해 얼음장처럼 차갑고도 정교하게 얼어붙어 있었다.전 직원이 숨을 죽인 채 로비를 주시했고, 마침내 베일에 싸여 있던 거물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공간 전체가 압도적인 위용에 눌려 숨을 죽였다.유럽 최고의 IT 거대 기업을 이끌며 세계 곳곳의 정재계와 음지 세계까지 손에 쥐고 흔드는 절대자, 엘에프 폰 루드비히가 다시 나타났고.그의 동생이자 켄즈 대표의 연인이자, 그 자체로 거대한 자본의 흐름을 상징하는 현신, 나아가 세계적인 거부이자 대형 경호 업체까지 인수한 냉철한 투자가 가계영까지.그들은 수많은 정예 호위 인력을 거느리고 마치 전장을 지배하고 돌아온 군주들처럼 당당하게 대표실로 입성했다.“어서 와.”헤르만이 상석에 앉아 그들을 맞이했다. 드레스 셔츠의 단추를 가볍게 두 개쯤 풀어헤친 그의 단단한 가슴팍 너머로 묵직한 심장 박동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덤덤하다 못해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엘에프는 은빛이 은은하게 반짝이는 여름 슈트 차림으로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가계영은 마동현 실장과 보안 및 업무적 사안을 조율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엘에프의 맞은편에 앉은 현신은 깔끔한 화이트 바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반듯하게 허리를 세운 채 헤르만에게 매혹적인 눈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소년 같은 풋풋함과 맑은 기
가슴골 사이로 떨어진 차가운 흑요석의 감촉이 피부를 알싸하게 자극했다. 리아나가 유연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펜던트를 쓸어내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목줄을 걸었으니, 주인 노릇부터 해야겠는데.”낮게 가라앉은 헤르만의 음성이 귓가를 서늘하게 긁어내렸다.그가 긴 손가락으로 리아나의 목에 걸린 까만 흑요석 펜던트를 툭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 줄이 리아나의 고운 목덜미를 살짝 죄어왔다. 거부할 틈도 없이, 헤르만은 줄을 살며시 잡아당겨 그녀의 상체를 제 쪽으로 깊숙이 끌어당겼다.리아나의 입술 사이로 자그마한 탄성이 삐져나온 것은 순식간이었다. 중심을 잃은 그녀의 단정한 정장 스커트 자락이 소파 위로 스르륵 흐트러졌다. 헤르만은 그대로 리아나의 허리를 커다란 손으로 낚아채며, 푹신한 가죽 소파 위로 그녀를 거칠게 밀어붙였다.쿠션 깊숙이 파묻힌 리아나의 위로 사내의 거대한 그림자가 아찔하게 덮쳐왔다.“계약대로 이행되는군요.”리아나는 소파 헤드에 머리를 기대어 제 몸을 누르고 있는 헤르만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그래. 주 6일은 온전히 내 사람으로 살겠다고 네 입으로 똑똑히 사인을 했지.”헤르만의 잿빛 눈동자가 뜨거운 열기로 이글거렸다. 흑요석 펜던트를 쥔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내려앉으며 리아나의 얇은 블라우스 단추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그의 굵은 손가락 끝이 리아나의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느긋하게 풀어나갔다. 단정하게 닫혀 있던 옷자락이 좌우로 벌어지며, 조명 아래 살결이 과감하게 노출되었다.헤르만은 줄을 잡았던 손을 풀어 리아나의 가녀린 목덜미를 진하게 움켜쥐었다.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민감한 쇄골 뼈를 지그시 누르며, 그 위로 거침없이 입술을 내리찔렀다.차갑던 흑요석 펜던트가 두 사람의 밀착된 가슴 사이에서 단단히 짓
리아나는 순간 깊은 난국에 봉착했음을 깨달았다.독립적인 요원으로 살아오며 타인에게 구속되거나 어느 한곳에 얽매여 본 적 없는 삶이었다. 사생활을 오롯하게 누릴 수 있는 48시간의 완전한 자유는 그녀에게 생존과도 같은 절대적인 영역이었다.하지만 헤르만의 곁에 머물고 싶은 것 역시 속일 수 없는 진심이었다.동경하던 사내의 부하가 되는 동시에 그의 단 하나뿐인 여인이 되는 것.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는 것만으로도 무미건조했던 삶이 한층 이채롭고 자극적으로 물들어 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그러나 48시간에서 단 24시간으로 대폭 줄어든 헤르만의 제안은 그녀의 철두철미한 타산마저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2일이 아닌 단 하루라니, 제법 당황스럽군요.”“리아나. 필요에 따라서는 내 일정에 맞춰 요일을 변경할 수 있다는 조항은 추가하지. 3개월 뒤 회사가 완벽히 안정되면 그때 24시간에서 조금씩 늘려주는 것도 고려하겠어.”헤르만의 속내를 읽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본래라면 주 7일 내내 그녀를 제 품 안에 가둬 두고 싶었을 터였다.“이제 난 그대를 나의 완전한 부하이자 여인으로 곁에 두기 위해 절충안을 제시하는 거야. 주 2일의 부재는 곤란해. 내 눈이 닿지 않는 사생활이 길어지면, 우리 사이의 신뢰 관계마저 무너질 수 있으니까.”나직하게 깔린 사내의 목소리에는 서늘하고 거친 소유욕과 함께, 은근한 온기를 품은 다정함이 은밀하게 뒤얽혀 있었다.리아나는 그의 제안을 깊이 곱씹으며 묵직한 생각에 잠겼다.여기서 이 손을 놓아버린다면 헤르만과의 긴밀한 관계는 영영 끊어지고 말 터였다. 뿐만 아니라 곧 닥쳐올 세계 최고의 요원 양성 기관인 ‘빅토리아’와의 전면전이라는 스릴 넘치는 전장에서도 완벽히 소외될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