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내게로 오세요(닥치고 내게로 와! - 외전)

그대, 내게로 오세요(닥치고 내게로 와! - 외전)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8
Por:  silver구슬Actualizado ahora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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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속 굴러다닌 너! 소년인지, 여성인지, 외계인인지... 그 무엇이라도 상관없어. 네가 미쳐있으니까. 그냥 닥치고 내게로 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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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ítulo 1

#1. [회색 늑대가 멈춰 선 시간]

“헉······, 살려줘!”

처참한 비명과 함께 지독한 붉은 화염이 리아나의 뇌리를 사정없이 덮쳐왔다.

라ON을 거쳐 한비단으로 활약하다 빅토리아까지 간 자신이.

“하아, 헉, 헉······.”

아직도 이렇게 밤마다 괴로워하다니.

그래서 그녀는 현재도 침대에서 편하게 잠들지 못했다.

거친 숨을 내뿜으며 눈을 뜬 그녀는 손등으로 이마에 흥건히 맺힌 식은땀을 서둘러 쓸어냈다.

아직 4월 초인데, 한여름처럼 열기가 홧홧하게 느껴졌다.

리아나는 지금 대한종합병원 옆 골목에 위치한 어두컴컴하고 허름한 모텔 소파 위에서 잠들었다가 벌떡 일어났다. 

암막 커튼 틈새로 아슬아슬하게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줄기만이 소파 위에 놓인 그녀의 가느다란 실루엣을 비추고 있었다.

또 그 악몽이었다. 과거 작전 수행 중 일어났던 참혹한 폭발 사고. 제어할 수 없이 솟구치던 불길이 살점을 파고들던 그 잔인했던 감각에, 그녀의 손끝은 어느새 미세하게 떨리며 왼쪽 어깨로 향했다.

헐렁한 무지 티셔츠의 넓은 목선 아래로 숨겨진 피부에는, 과거의 흔적인 비틀리고 선명한 화상 흉터가 기묘한 궤적을 그리며 남아 있었다. 

리아나는 느릿하고 감각적인 손길로 그 불규칙한 흉터를 지그시 누르며 쓸어내렸다.

입술 사이로 나른하고 야릇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요 며칠 현장에서 미행과 수배범 제압, 그리고 그 뒤편의 작업까지 한꺼번에 치러내느라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지만, 임무를 완벽히 끝낸 뒤 밀려드는 생생한 전율은 기분 좋게 달콤했다.

“그래도 아직 난 살아 있어. 돈도 벌었고.”

지독하게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서늘한 생기마저 감돌았다.

확실히 대한민국에 머무는 동안 한비단 측이 공식 의뢰한 5건, 그리고 빅토리아 비리 세력이 비공식으로 맡긴 비밀 임무 7건을 처리하며 지난 2월부터 4월 초까지 보낸 시간은 제법 벌이가 짭짤했다.

리아나는 길게 손을 뻗어 침대 곁에 던져두었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화면이 켜지자 진한 조명 빛에 휩싸인 소파 옆 전신거울 속 그녀의 미모가 어둠 속에서 선명히 드러났다.

칠흑처럼 짙고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칼, 투명하다 못해 창백함마저 감도는 결점 없는 흰 피부, 그리고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고고하고 뚜렷한 이목구비. 그 독보적인 미모 위로 얹어진 커다란 뿔테 안경과 수수한 트레이닝복 차림은 기묘한 불균형을 이루며 감각적인 아우라를 풍겨댔다.

안경 너머로 드러난 그녀의 눈동자는 위험하도록 깊고 매혹적이었다. 인터넷뱅킹 앱에 찍힌 숫자를 확인하는 입술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대한민국에서 번 돈은 총 9억 정도인가.”

목숨을 걸었던 대가치고는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진짜 흥미는 돈이 절대적이었다.

리아나는 매끄러운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겨 미리 해킹해 둔 보안 시스템 앱을 열었다. 

바로 다음 임무와 관련된 타깃을 살피게 되었다. 즉시 좁은 화면 속으로 대한종합병원 VIP 복도의 CCTV 영상을 띄웠다. 

자신이 잠들어 있는 그 1시간을 빠르게 동영상을 재생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번 타깃이 이 남자인데, 어? 어디 가지?”

화면 중앙, 묵직하고 서늘한 존재감을 풍기며 드디어 어디론가 향하는 신비로운 사내. 

190cm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피지컬과 무심한 듯 서늘한 분위기, 그리고 티셔츠 위로 은근히 드러나는 단단한 어깨 라인이 픽셀을 뚫고 전달되는 것만 같았다.

심장을 기이할 정도로 뜨겁게 뒤흔드는 그가 라이더 복장을 하고 있었다.

리아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어깨 위의 흉터를 깊게 문질렀다. 동료를 잃을 때 새겨진 억센 체온이, 아프게 자극이 되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

대한종합병원 지하 3층 주차장은 계절의 감각이 완벽히 마비된 차가운 사각지대였다.

타이어가 바닥을 긁어대는 고요한 비명, 서늘하게 가라앉은 시멘트 냄새, 그리고 고성능 엔진이 뿜어내는 묵직한 배기가스만이 오만하게 감돌 뿐이었다. 

은발에 회색 눈의 독일 남자 헤르만 반 뮐러.

그는 무광 검은색 헬멧의 쉴드를 내리기 직전,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길고 아득한 시선을 던졌다.

그곳 최상층 VIP 병실에는 엘에프가 있었다. 유럽 전체의 어둠을 틀어쥐고 있는 잔혹하고 오만한 수장이자,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천재. 

또한, 독일 슬럼가 밑바닥의 흙수저 출신인 자신을 거두어 삶의 궤적을 완전히 바꿔 놓은 인생의 주군이자 유일한 동료.

죽음의 기로에 섰던 그 절대자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회복 중이었으니, 거친 피비린내를 풍기는 오른팔로서 조용히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이 깔끔한 예의였다.

[헤르만, 내가 이제야 인생의 단맛을 알았어.]

나른하게 깔리던 엘에프의 무심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1월 JJ창립기념 행사에서 한비단과 빅토리아의 교집합인 키맨을 쫓아 피를 뿌리던 여정은 억겁의 시간만큼이나 아득했다. 

현신과 가계영에 의해 강제로 맺어진 평화 아래, 헤르만은 마침내 어깨를 누르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았다.

생각해 보면 그의 인생은 단 한 번도 따스했던 적이 없는 얼어붙은 겨울이었다. 

빅토리아의 잔혹한 수용소에서 인간 병기로 제련되던 훈련들, 엘에프의 명령 아래 완벽한 단죄를 완수해 내던 나날들. 

조직의 배신자 목을 베어내고 어둠의 뿌리를 뽑아내며, 피비린내 나는 혈향(血香) 속에서 단 한 순간도 방심하지 못했던 삶. 

곁에 온기를 나눠 가질 여자 따위는 없었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얹어둘 여유조차 사치였다.

사내의 단단하게 굳은 목선과 짙은 턱선에는 숱한 사선을 넘나든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서늘하고 야성적인 관능이 배어 있었다.

1000cc 고성능 바이크의 둔탁하고 폭발적인 배기음이 지하 시멘트 벽면을 사정없이 울렸다.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인 긴 팔로 스로틀을 부드럽게 감아쥐자, 기계의 강렬한 진동이 사내의 허벅지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바이크는 지상으로 향하는 경사로를 타고 미끄러지듯 튀어 나갔다.

지상에 들어선 순간, 눈을 사로잡은 것은 찬란하게 부서지는 5월의 햇살이었다. 그 온기가 조각처럼 잘생긴 사내의 서늘한 얼굴 위를 스쳐 지나갔다.

한국에 도착한 이후 병원 밖을 단 한번도 나서지 않았던 그였다. 여유가 생겨도 노트북을 두드리며 유럽 조직의 내실을 다지는 데 온 신경을 쏟았었다.

그러나 지금, 병원 울타리 밖의 세상은 지독하리만치 세련되고 생동감 있게 일렁이고 있었다. 헬멧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 아래, 사내의 어깨는 날이 서 있으면서도 지독하게 섹시했다.

‘봄이었나.’

늘 타인의 혈흔과 서늘한 총성 속에 마비되어 있던 감각이 깨어났다. 핏빛으로 얼룩진 계절을 지나온 자신에게도, 새로운 판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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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색 늑대가 멈춰 선 시간]
“헉······, 살려줘!”처참한 비명과 함께 지독한 붉은 화염이 리아나의 뇌리를 사정없이 덮쳐왔다.라ON을 거쳐 한비단으로 활약하다 빅토리아까지 간 자신이.“하아, 헉, 헉······.”아직도 이렇게 밤마다 괴로워하다니.그래서 그녀는 현재도 침대에서 편하게 잠들지 못했다.거친 숨을 내뿜으며 눈을 뜬 그녀는 손등으로 이마에 흥건히 맺힌 식은땀을 서둘러 쓸어냈다.아직 4월 초인데, 한여름처럼 열기가 홧홧하게 느껴졌다.리아나는 지금 대한종합병원 옆 골목에 위치한 어두컴컴하고 허름한 모텔 소파 위에서 잠들었다가 벌떡 일어났다. 암막 커튼 틈새로 아슬아슬하게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줄기만이 소파 위에 놓인 그녀의 가느다란 실루엣을 비추고 있었다.또 그 악몽이었다. 과거 작전 수행 중 일어났던 참혹한 폭발 사고. 제어할 수 없이 솟구치던 불길이 살점을 파고들던 그 잔인했던 감각에, 그녀의 손끝은 어느새 미세하게 떨리며 왼쪽 어깨로 향했다.헐렁한 무지 티셔츠의 넓은 목선 아래로 숨겨진 피부에는, 과거의 흔적인 비틀리고 선명한 화상 흉터가 기묘한 궤적을 그리며 남아 있었다. 리아나는 느릿하고 감각적인 손길로 그 불규칙한 흉터를 지그시 누르며 쓸어내렸다.입술 사이로 나른하고 야릇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요 며칠 현장에서 미행과 수배범 제압, 그리고 그 뒤편의 작업까지 한꺼번에 치러내느라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지만, 임무를 완벽히 끝낸 뒤 밀려드는 생생한 전율은 기분 좋게 달콤했다.“그래도 아직 난 살아 있어. 돈도 벌었고.”지독하게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서늘한 생기마저 감돌았다.확실히 대한민국에 머무는 동안 한비단 측이 공식 의뢰한 5건, 그리고 빅토리아 비리 세력이 비공식으로 맡긴 비밀 임무 7건을 처리하며 지난 2월부터 4월 초까지 보낸 시간은 제법 벌이가 짭짤했다.리아나는 길게 손을 뻗어 침대 곁에 던져두었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화면이 켜지자 진한 조명 빛에 휩싸인 소파 옆 전신거울 속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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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계선에서 스쳐 지나간 무엇]
헤르만이 목적지를 뚜렷하게 정해두고 서울의 도로 위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밑바닥 넘버들에게 최고 성능의 바이크를 당장 수급하라 지시했던 진짜 이유는 단 하나. 몸 깊숙한 곳에서 오랫동안 짓눌려 온 지독한 피로와 중압감이 뼈마디를 사정없이 쑤셔대며, 마침내 감각의 폭발을 일으키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어둠이 아닌 세상을 눈에 담고 싶었다. 거친 총성과 피비린내 나는 비명 대신 평화롭고 조용한 풍경을 바라보고 싶다는, 스물일곱 청춘다운 작은 열망 하나가 무의식 밑바닥에서 은밀하게 발버둥 치고 있었다.강남의 마천루 위로 펼쳐진 봄날의 하늘은 거짓말처럼 푸르고 높았다. 도로 양옆의 가로수에서는 연분홍빛 벚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수려한 춤을 추듯 공중에서 흩날렸다. 헬멧의 미세한 틈새로 스며드는 차가운 봄바람이 그의 단단한 턱선과 은빛 머리칼 끝을 드물게 간지럽혔다.밑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던 시절부터, 엘에프의 저승사자로 서서 죽을 각오로 살아온 지금까지. 헤르만의 삶에 '아름다움'이나 '평온'이라는 단어는 타인의 전유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지나치는 서울의 거리와 성남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차갑고도 아름다운 절제미를 품고 있었다.영동대교 남단을 지나며 그는 스로틀을 한층 더 깊게 당겼다. 묵직한 바람이 사내의 단단하고 강인한 체구를 쉼 없이 때리고 지나갔다.문득 며칠 전, 대한종합병원 VIP 병실에서 엘에프가 창밖을 바라보며 무심코 던졌던 나른한 혼잣말이 뇌리를 스쳤다.[한국에서 번지점프를 뛰었어. 허공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수많은 생각들이 한순간에 비워지더군.]헤르만은 헬멧 속에서 낮게 헛웃음을 들이켰다.유럽 전체의 어둠을 재편하던 절대적인 냉혈한이자 잔혹한 수장이, 인생 최고 위기였던 시한부 판정 앞에서 번지점프대 위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니.죽음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 절대자가 고작 줄 하나에 의지해 생의 미련을 털어내려 허공으로 뛰어내렸다는 사실은 지독하게 아련하고도 현실감이 없었다.‘번지점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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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여인과 함부로 교차되다]
가려던 번지점프장도 철거하고, 누가 또 미행까지 겁도 없이 하다니.제 인생이 늘 그랬다. 무언가를 깨닫거나 눈을 뜨고 다가가려 하면, 세상은 이미 한 발 먼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뭔가 우연과 필연으로 제 앞길을 막아서려고 하는 걸림돌은 존재했다.타이밍의 신은 단 한 번도 그의 편이었던 적이 없었다.그에 비하면 엘에프는 어떤 인물이었던가. 승승장구 지독하게 운마저 따르는 사내.생의 마지막 미련이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던 찰나의 순간에 번지점프대 위로 뛰어올라, 공포 속에서 생(生)의 열망을 정확히 낚아챘다. 기회라는 이름의 밧줄이 풀리기 직전, 그 단단한 꼬리를 거머쥐는 천재이자 지독한 행운아.하지만 헤르만은 단 한 번도 자신과 엘에프를 비교하거나 그를 시기해 본 적이 없었다.스물일곱의 헤르만에게 엘에프는 단순한 수장이나 주군을 넘어선 존재였다. 독일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찌든 가난과 폭력의 피비린내 속에 내던져져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던 자신을 거두어 낸 구원자였다. 심지어 현대지만 아직도 귀족 혈통은 남아 있는 독일에 명문가에 입양까지 주선한여 신분까지 세탁해준 엘에프였다.헤르만은 가죽 장갑을 낀 단단한 손으로 스로틀을 부드럽게 고쳐 잡았다. 엘에프에게 의미 있었던 번지점프대가 사라졌다고 해서 율동공원으로 향하는 바이크를 돌릴 생각은 없었다.그리고 누가 미행을 한다고 해도 얌전히 당해 줄 만큼 그리 자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그 변해버린 세상의 단면도 직접 회색 눈동자에 담고 싶었다.바이크의 묵직하고 폭발적인 배기음이 봄날의 정적을 사정없이 찢으며 다시 울려 퍼졌다. 그는 성남대로를 지나 아파트 숲을 가로질러 율동공원 입구로 접어들었다.도로 양옆으로 흘러넘치는 연분홍빛 벚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수려한 춤을 추듯 그를 맞이했다. 흩날리는 꽃비 속을 뚫고 질주하던 헤르만은 천천히 바이크의 속도를 줄였다.조각 같은 입술 끝으로 은밀하고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 율동공원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운 헤르만은 헬멧을 벗어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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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케이블 타이와 아메리카노]
산책로 저 멀리, 그 여인이 향한 곳 끝에 한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달리고 있었다. 칙칙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깊게 눌러쓴 모자, 그리고 얼굴을 가린 마스크. 전형적인 도주자의 차림새였지만,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이 지독하게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로 봄볕 아래 화려하게 빛나는 연분홍빛 고급 명품 토트백이었다.‘소매치기인가.’상황 파악은 순식간이었다. 건장한 체구의 사내는 공원 한구석에 위치한 공공 관리 건물 안으로 급히 몸을 던졌고,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던 여인 역시 망설임 없이 그 어두운 입구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봄날의 평화에 젖어 있던 공원의 사람들은 그 짧은 찰나의 추격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세상의 차가운 단면을 귀신같이 포착해 내는 것은 오직 헤르만과 같은 저승사자들뿐이었다.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핏빛 정쟁을 끝내고 찾아온 무료한 휴식 공간에서, 이 뜻밖의 이질적인 소란은 헤르만의 호기심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그는 들고 있던 커피 컵을 다잡으며 묵직한 걸음으로 건물 입구를 향해 뛰어갔다. 건물 내부로 들어선 순간, 헤르만의 회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확장되었다.상상했던 피비린내 나는 혈투나 격렬한 육탄전의 흔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닥에 드러누워 비명을 지르는 범인도 없었다.조금 전까지 거친 기세로 도망치던 건장한 사내는 의자 위에 아주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단, 양손과 양발이 시중에서 파는 케이블 타이로 빈틈없이 정교하게 묶인 채였다. 아마 그 긴 머리 여인이 엄청난 기술로 망설임 없이 단 몇 초 만에 폭풍처럼 사내를 제압하고 스쳐 지나갔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사내는 어디 하나 부러지거나 다친 곳도 없이 깔끔하게 통제된 상태였다.그 옆에서는 멍한 표정의 경비원이 사내의 손에서 거둬들인 명품 토트백을 들고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다. 정작 그 사내를 제압한 검은 뿔테 안경의 여인은 이미 상황을 끝내고 유유히 자리를 떠난 뒤였다.그 압도적인 깔끔함에 헤르만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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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위험한 여자에게는 위험한 남자가]
테헤란로에 위치한 가계영의 집. 푹 자고 일어난 현신은 익숙하게 방 한편에 마련된 트레이닝룸으로 향했다. 러닝머신 위에서 리드미컬하게 뛰던 그녀의 귀에 꽂힌 블루투스 이어폰 너머로 헤르만의 무거운 음성이 들려왔다.“헤르만 선배, 사람을 찾으세요?”현신이 반가운 듯 묻자, 헤르만은 평소와 달리 살짝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현신은 런닝머신의 속도를 줄이고 버튼을 눌러 멈춰 섰다. 어지간해서는 헤르만이 본인의 정보력으로 해결하는데, 오죽하면 자신에게 연락을 했을까 싶었다.가쁜 숨을 들이쉬며 땀을 닦아내는 동안, 헤르만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연히 미션을 수행하는 듯한 여자를 봤어. 혹시 빅토리아와 교차점이 있거나, 한비단 단독의 움직임인가 싶어서.우연히 요원이 헤르만 앞에 대놓고 나타났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헤르만과 엘에프는 누구나 다 아는 거물이고, 그의 근처에서 무슨 미션 따위를 행할 정도의 예민한 사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네? 인상착의가 어떻게 되는데요?”— 키는 165cm 정도에, 체중은 45~50kg 정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썼어. 몸놀림이 꽤 빨랐어. 얼마 전 뉴스에 나온 그 흉악범을 제압해 경찰에 넘어가게 만들고는 그대로 사라졌거든.그 뒤로 헤르만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의 설명을 다 듣고 나자, 현신의 입에서 얕은 한숨이 흘러나왔다.“선배, 그걸 직접 목격하셨어요? 그 사건 저도 뉴스에서 봤어요.”— 뭐, 율동공원에 잠시 갔다가 뭐······.헤르만은 어정쩡하게 말끝을 흐렸다. 현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오랫동안 그가 엘에프 옆에서 다정하게 구느라 감이 떨어졌나. 그럴 리가.“뉴스에서는 그냥 정의로운 일반 시민이라고 하던데요. 여성이 그런 수배범을 단번에 제압했다니 놀랍긴 하네요.”세상에는 범죄자가 많고, 잡히지 않는 범죄자는 더 많은 법이었다. — 어쨌든 한비단 요원 이름을 전부 알고 싶다는 건 아니야. 그런 미션이 그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여자의 정체가 궁금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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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지독한 촉이 발동되었어]
대한종합병원 최상층 VIP 병동의 전용 거실은 4월의 나른한 햇살로 가득 차 있었다. 병원 특유의 삭막하고 서늘한 소독약 냄새 대신, 넓은 유리창 너머로 흘러드는 따스한 온기와 은은한 홍차향이 공간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헤르만은 엘에프가 머무는 침상 옆 소파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저께 하루 콧바람을 쐰 덕분인지 늘 굳어 있던 그의 어깨에는 제법 가벼운 온기가 감돌았다. 그는 화면 가득 빼곡하게 떠 있는 수억 달러 규모의 유럽 사업 관리 내역과 복잡한 금융 지표를 무서운 속도로 검토하며 깔끔하게 자판을 쳐 내려갔다. 그 곁에서 엘에프는 비스듬히 베개에 기대어 서류를 훑거나 차분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특유의 압도적인 정적을 유지했다.그 평화롭고 고요한 침묵을 깨뜨린 것은 문을 열고 들어온 주효진의 화사한 목소리였다.“어머, 세상에나. 소파 테이블 위에 이건 뭔가요?”엘에프가 나지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대의 유흥거리.”고급스러운 붉은색 봄 트렌치코트 차림의 주효진이 양손 가득 꽃을 안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진짜요?”주효진은 엘에프가 아닌 소파 쪽으로 향했고, 그 걸음마다 은은하고 맑은 향수와 화사한 꽃내음이 공간 전체로 단숨에 번져나갔다.헤르만이 잠시 자판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주효진은 테이블 위에 놓인 깔끔한 쇼핑백과 상자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분당에서 유기농 재료와 최고급 버터로만 만든다며 SNS를 뜨겁게 달구는 유명 디저트 전문점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상자였다.주효진은 상자를 가볍게 들어 올리며 엘에프를 향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당신, 나를 위해 이거 주문했나요? 여기 줄 서서 겨우 구한다는 분당 최고 디저트 집인데!”그녀의 러블리한 착각에 침대에 기대어 있던 엘에프가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리며 무심하게 받아쳤다.“설마.”그 순간, 더 크게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린 주효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 테이블의 헤르만에게로 향했다. 시선이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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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디 한번 와 보시지, 위험한 남자에게]
헤르만은 복도 벽면에 놓인 긴 의자에 천천히 몸을 파묻었다. 청바지가 쓸리며 둔탁한 마찰음을 냈다. 그는 거친 손길로 은빛 머리카락을 짓눌러 쓸어 넘기며 차가운 복도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서늘하게 내려앉은 눈동자 위로 불쾌한 콧방귀가 실렸다.‘요원’이라.한비단의 요원이라는 여자가 아무리 우연히 그곳에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자신과 동선이 겹치며 지나쳤다는 사실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흉악범이 하필 그 타이밍에 헤르만의 시선이 닿는 반경 내에서 수배범을 제압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정황들이 기묘하게 맞물려 어색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매끄러웠고, 그래서 지독하게 의심스러웠다.그 어이없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스치던 바로 그 순간, 휴대전화 너머 현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들떠 있던 조금 전의 톤은 온데간데없이, 현신의 어조는 낮고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선배, 그 코드명 A에게 전달된 진짜 미션 내용이 좀 의미심장해요.“말해 봐. 왜 그런데?”— 단순히 수배범을 추적해 제압하는 건 표면적인 구실이었을 뿐이에요. 상부에서 내려온 진짜 지침의 핵심은 다른 데 있었어요. 바로 문자로 드릴게요.현신이 조심스럽게 이어가는 단어 하나하나가 헤르만의 귓전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전화기 너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서늘하던 헤르만의 심장은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유럽의 저승사자이자 엘에프 세계의 2인자로서 수많은 공작과 어둠의 설계를 파헤쳐 온 그조차 다소 놀랄 수밖에 없는, 기묘하고도 치밀한 수수께끼 같은 일이었다.더 이상 복도 의자에 한가롭게 앉아 머리를 식힐 때가 아니었다. 헤르만의 표정에서 조금 전 병실 안에서 감돌던 민망함이나 쑥스러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둠의 세계를 호령하던 저승사자의 서늘하고 완벽한 감각이 단숨에 되살아났다.헤르만은 통화를 끝내자마자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묵직한 걸음으로 굳게 닫혀 있던 V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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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안녕을 고하며 미련을 확인하다]
벌써 5월 초. 그리고 리아나에게도 봄이 깊어갔다.Rrr Rrr Rrr.리아나의 휴대전화에서 기묘하고 날카로운 알람음이 정적을 깼다.지독한 악몽은 어김없이 그녀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어서 유럽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곳에 두고 온 소중한 존재가 아른거려 더는 참기가 힘들었다. 이제 그녀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소파에서 깨어난 리아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휴대전화부터 집어 들었다. 화면에 뜬 암호화된 지정 번호가 그녀의 신경을 다시금 팽팽하게 죄어왔다.‘한비단인가?’다행히 새로운 미션은 아니었다. 화면에 떠오른 알림은 이탈리아에 두고 온 소중한 것을 맡아 관리해 주는 업체에서 보내온 메시지였다.수라장을 구르며 단 한 번도 동요한 적 없던 리아나의 회색빛 눈동자가 차갑게 흔들렸다. “이제 떠나야지.”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 리아나는 슬슬 이 답답한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싶었다.이탈리아의 새 사업체를 물려받아 2인자가 아닌 최고 자리에 등극한 헤르만 역시, 이제는 유럽으로 돌아가 자신만의 제국을 완성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는 왜 아직도 이 땅을 떠나지 않는 걸까. 때가 되면 가겠지만, 리아나는 자신이 먼저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하지만 지난 몇 달간 임무라는 명목하에 그의 뒤를 지켜보아서였을까. 늘 홀로 무심하게 있던 사내에게 묘한 유대감과 친근함이 스며든 것도 사실이었다.소파에 비스듬히 앉은 리아나의 붉은 입술 사이로 나른하면서도 짙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지금의 헤르만을 감히 건드릴 배짱을 가진 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의 곁에는 기적적으로 회복한 엘에프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지 않은가.“마지막으로 딱 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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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눈부시게 떠오르는 새로운 태양]
신록의 채도가 깊어지는 5월의 첫째 주 주말. 연휴의 들뜬 기운이 도심을 감싸고 있었지만, 대한종합병원 VIP 병동 복도만큼은 차갑고 정갈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가계영과 발걸음을 맞춰 걸어가던 현신이 고요를 깨트리지 않으려 낮게 입을 열었다.“계영 님, 그 뒤로 헤르만 선배를 겨누던 물밑의 움직임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네요.”가계영의 단정한 입매 끝으로 특유의 여유로운 호선이 그려졌다.“빅토리아 본부 바로 턱밑에서 헤르만이 엘에프 자리 대신 이탈리아 넘버원으로 올라섰으니까. 유럽 전체가 발칵 뒤집힌 상황에서 그를 건드리는 건 제 목을 꺾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지.”헤르만은 더 이상 누구의 그림자 뒤에 숨은 심복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새로운 태양이자, 엘에프의 수하를 넘어 그와 동등한 궤도에서 유럽의 어둠을 주무르는 젊은 거물. 그 독보적인 위치가 사내를 둘러싼 공기의 질감 자체를 바꿔놓은 뒤였다.“그렇게 되면······ 전보다 훨씬 더 위험한 정점에 서게 된 것 아닌가요?”현신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우려가 섞인 시선에, 가계영은 엘에프에게 전달할 고급스러운 선물 상자를 감싸 쥔 채 나지막이 실소를 흘렸다.“위험해진 만큼 그를 지키는 방패와 세력도 치밀해졌다는 뜻이야. 이탈리아 내의 반(反)빅토리아 세력들이 알아서 헤르만의 밑으로 기어들어 올 테니까.”현신의 머릿속으로 지난번 율동공원에서 벌어졌던 한비단의 새로운 미션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엘에프가 헤르만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그에게 안겨준 가장 치명적이고 단단한 권력의 울타리가 아니었을까.“이제 헤르만 선배의 시대가 열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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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존재에게]
출국장의 거대한 통유리 너머로 5월의 눈부신 햇살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수많은 탑승객들의 소란스러운 온기 속에서, 리아나만큼은 홀로 정갈하게 식어 있는 섬처럼 서 있었다.그녀는 얼마 전 헤르만의 노트북 보안망에 깊숙이 침투해 그의 동선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확인한 이번 이탈리아행 비행기 일정과 좌석 배치표를 보는 순간, 마스크 속으로 나지막한 실소가 터져 나왔다.‘이렇게 대놓고 넘버들을 수십 명씩 데리고 가다니. 쳇.’이 정도 규모와 과시적인 이동이라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해킹까지 시도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 오만하고 위험천만한 태도마저 지독하게 헤르만답다는 생각이 들었다.현재 공항 로비 한편에 비스듬히 기댄 그녀의 모습은 전날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어깨 너머로 길게 내리덮던 칠흑 같은 머리칼 대신 톰보이 스타일의 숏컷 금발 가발을 눌러썼고, 몸선이 노출되던 옷차림 대신 편안한 청바지에 헐렁한 남방을 걸쳤다. 눈가에는 샤프한 금테 안경을 더해 차갑고 지적인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어둠 속에서 살기를 뿜어내던 요원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완벽한 변장이었다.헤르만이 오늘 이렇게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못한 채 유유히 게이트 앞에 섰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림자 속에서 그의 목을 노리던 암살자들을 모조리 처리해 주었다.정작 당사자는 제 목구멍을 노리던 자객들이 어둠 속에서 제거된 줄도 모르고 태평하게 굴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이탈리아에 도착하면 그땐 대놓고 얼굴을 보여줄 테니까.’마침내 답답한 한국을 떠나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온몸의 세포가 찌릿하게 떨려왔다. 자신이 가장 사랑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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