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유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정말 방법이 있었다면, 오늘 아침 승현이 유하 침대에 있을 리가 없었다.그 실시간 공지에 담긴 뜻은 아주 분명했다. 청산에게 주는 보상인 동시에 또 하나의 신호였다.그런데 승현은 그 뜻을 알아보고도 멈춘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반응했다.결국 유하 집까지 밀고 들어왔고, 상태도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얼굴이었다.하지만 유하는 승현과 끝장을 보고 싶지 않았다.지금 유하 몸 상태는 몹시 허약해졌고, 남은 삶에서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유하에게 유일하게 깊은 사랑을 준 가족인 소성란이 떠난 뒤로 유하 내면의 힘은 많이 빠져 있었다.이제는 누구와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혼자 살고 싶었다.그것도 나쁘지 않았다.“나 진심이야. 예전 일도 더는 붙잡고 싶지 않아. 그만하자. 앞으로는 나도...”유하가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꺼냈다.“뭘 그만해?”승현이 잘라 버렸다.승현은 유하의 거절을 듣고 싶지 않았다. 조금도 듣고 싶지 않았다.“네가 왜 혼자 살겠다고 하는지 알아. 근데 안 돼. 나는 혼자 못 살아. 그러니까 너도 그런 생각 하지 마.”“네가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나오고, 기회 한 번을 안 주겠다면, 나도 더 말 길게 안 해. 오늘 여기서 끝까지 말할게.”승현은 잠깐 멈췄다가 놀란 유하의 눈과 시선을 맞췄다. 말투는 오히려 담담했다.“네가 나 때리고 욕하고 풀고 싶으면 다 들을게. 전부 다. 대신 너도 내가 널 돌보는 거 다 받아들여.”“내 곁에서 벗어나는 건 안 돼. 그걸 전제로, 나는 최대한 너 안 몰아붙이고, 네가 원하는 거리감 지키려고 노력할게.”“그리고 거절은 더 듣기 싫어. 한 번 들을 때마다 나도 화가 나. 너도 알잖아, 사람은 다 한계가 있어.”“물론 네가 날 떼어낼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승현이 갑자기 일어났다. 침대 옆 서랍을 열어 유하가 넣어 둔 앤티크 호신용 칼을 꺼냈다. 엘도라에 있을 때 승현이 유하
“너...”“아무 말도 하지 마.”승현이 손을 들어 유하를 막았다.승현의 본능이 먼저 경고하고 있었다. 좋은 말이 나올 리 없다고.그 생각이 들자 가슴이 오그라들 듯 아팠다.“너는 원래 누구한테나 이렇게 매정해? 아니면 나한테만 이렇게까지 해서 날 미워하는 거야?”유하는 대답하지 않았다.“너 진짜 마음이 있기는 해?”의자에 앉은 쪽은 승현이었다. 등 뒤로는 창밖의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승현은 침대 위 유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몸속은 서늘하게 식었다.유하는 진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정말 조금도.유하의 차가운 눈을 마주한 승현의 속은 더 식었다.이런 시선은 처음이 아니었다. 늘 그랬다. 매번 그랬다.유하는 단 한 번도 승현에게 되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어느 때가 되면 조용히 혼자 결정하고, 승현에게 일방적으로 사형 선고를 내렸다.승현을 무너뜨리고, 이성을 잃게 만들고, 그런데도 끝내 달라지는 건 없었다.유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다. 조금만 맞지 않아도 바로 떠났고, 곧바로 끊어 냈다.그리고 끝을 내는 방식은 늘 단호했고, 잔인할 만큼 빨랐다.대학 때도 그랬고, 지금도 같았다.그때 승현의 머릿속에 끔찍한 충동이 번졌다.다시 한번 유하를 가둬 버리고 싶었다. 대학 때처럼.‘그러면 이 여자는 더는 이런 눈으로 나를 보지 못할 텐데.’‘이렇게까지 냉정해지지도 못할 텐데...’‘안 돼!’승현은 몸을 한번 떨며 정신을 붙잡았다.그 방법은 이미 한 번 실패했고, 이번엔 다른 방법이어야 했다.무엇보다 현재 유하의 몸 상태로는 그런 방식 자체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그럼 대체 뭘 해야 하지?’‘내가 아직 안 해 본 게 뭐가 있지?’승현은 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조급함과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폭력의 충동을 눌렀다.그는 표정을 억지로 다듬고, 목소리도 부드럽게 만들었다.“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나를 포기해.”유하가 담담하게 잘랐다.“넌 아무것도 애쓸 필요 없어. 그냥 나를 포기해. 그게 너도
“또 왜 그래. 어젯밤엔 네가 먼저 매달렸잖아. 왜, 다 썼으니 이제 버리게?”유하는 그 얘기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더 신경 쓰이는 문제는 승현이 대체 어떻게 들어왔냐는 거였다.그런데 곧바로 생각을 접었다. 승현이 이런 짓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물어봐야 소용없었다.승현은 원래 자기 방식대로 사는 사람이었다.말해도 바뀔 사람도 아니었다.그렇지만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이 미친놈...’그 생각이 도화선이 됐다.머릿속의 이성이 한꺼번에 타올라 유하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오승현, 너 진짜 바닥이 없냐? 나 분명히 말했어. 나는 너 용서 안 해! 받아들일 생각도 없어. 네가 그렇게 아내가 필요하면 다른 사람 찾아. 아니면 내가 대신...”“여보!”승현이 목소리를 높여 유하의 말을 끊었다. 조금 전까지 느슨하게 놀리던 톤은 사라지고,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유하는 말을 멈췄고, 눈앞의 승현이 화가 났다는 것이 느껴졌다.그런데 화가 나면 뭐 어쩌라는 건지, 한밤중에 남의 집 문 따고 들어온 일은 아직 말도 못 했는데, 이 ‘미친개’는 또 무슨 일로 화를 내는 건지... 유하는 어이가 없었다.대체 사생활이 있긴 한 건가?유하가 다시 입을 떼려던 찰나, 둔탁한 소리가 났다.언제 일어났는지 승현은 바닥에서 몸을 세우고, 의자 하나를 끌어와 유하 앞에 놓고 앉았다. 침대에서 50cm쯤 떨어진 자리였다. 표정은 따지러 온 사람 같았다.‘지금 누구한테 따지겠다는 거야? 아직 나도...’“여보, 너 진짜 대단하다. 나를 이렇게 빙빙 돌려놓고, 책임은 하나도 안 지려는 거지?”“뭐?”승현의 어둡고 깊게 가라앉은 눈을 마주한 유하는 어리둥절했다.‘무슨 소리야?’“여보.”승현은 비웃기라도 하는 듯, 또 자신을 조소하듯 웃었다.“나든, 임청산이든, 너는 처음부터 둘 다 가질 생각이 없었던 거 맞지?”“근데 임청산은 마지막에라도 단맛은 봤더라. 나는? 아무것도 없지. 가지고 놀 만큼 놀고 그냥 버렸어. 너는
승현이 문밖에 있다는 걸 확인한 유하는 망설이지 않았다.초인종 소리를 꺼 버리고, 못 들은 척 귀를 닫았다.유하는 그대로 2층 안방으로 올라갔다.창문을 닫고, 문을 잠그고, 불까지 끈 뒤, 갑자기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서늘한 몸을 단단히 감싼 채 고요한 적막 속에서 눈을 감았다.유하는 어젯밤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오전에 보충해서 자긴 했지만, 수면은 턱없이 부족했다.몸은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하는 불편한 열감과 함께 그대로 곯아떨어졌다.그 시각, 집 바깥.승현은 한참 동안 초인종을 눌렀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자, 결국 손을 뗐다. 고개를 들어 창문 쪽을 보니 집 안은 온통 깜깜했다. 사람이 없는 집처럼 꾸며 둔 티가 났다.승현의 입가에 냉기가 번졌다.“나한테 그렇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숨는다고? 소유하, 세상에 그런 식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어.”승현이 뒤를 돌아 태건을 봤다.“이렇게 오래 불러도 안 나오면 안에서 쓰러졌을 수도 있지. 사람 불러. 문 따.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태건이 바로 지시를 이행했다.“네, 이미 호출해 두었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 한 대가 도착했다.몇 사람이 내려 문 주변을 손봤고, 잠시 뒤 승현에게 고개로 신호를 보낸 뒤 떠났다.이제 초인종은 필요 없었다.승현은 아무렇지 않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불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곧장 2층으로 올랐다. 이어서 멈춤 없이 안방 위치를 찾아간 걸 보면, 집 구조에 익숙한 움직임이었다.안방 문을 열었다.달빛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침대 위에는 이불이 둥글게 부풀어 있었다.승현은 속에 눌린 화를 품은 채 다가갔다. 당장 이불을 들춰 유하를 깨워 따지려다가 손을 뻗던 동작이 중간에서 멈췄다.“고모할머니... 추워요.”이불 속 유하는 미간을 깊게 찌푸리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꾸는 듯 잠결에 낮게 중얼거렸고, 몸이 작게 떨렸다. 차가워서 떠는 것처럼. 눈가에는 젖은
‘말 함부로 할 거면 입 다무는 게 낫지.’승현은 더 내려 볼 기분도 아니었다. 핸드폰을 던지듯 내려놓고 짧게 말했다.“유하 있는 데로 가.”“네.”...같은 시각, 유하도 온라인에서 불붙은 이야기들을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 확인했다.가치가 오른다는 말은 맞았다.다만 유일본은 아니었다. 청산에게 준 그 한 벌이 더 있으니까.그래도 청산이 그 결혼 예복을 입고 공식 석상에 서기 전까지 그 예복의 존재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 왕실에 간 웨딩드레스를 유일본이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아쉽다면 아쉬운 일이기도 했다.유하는 왕실 웨딩드레스로 이름을 알렸고, 그걸 계기로 국제 무대에 정식으로 들어섰다. 그 뒤로는 유명 인사들이 맞춤 웨딩드레스를 의뢰하러 꾸준히 찾아왔다.유하는 전부 거절했다.그런데 이 시점에서 이 공지까지 공개했으니, 유하의 장래 커리어가 조금 더 천천히 갈 건 분명했다.그래도 유하는 후회하지 않았다.유하는 청산에게 빚이 있었다.결혼 예복 한 벌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그래서 하나를 더 올렸다.오늘부터 유하는 어떤 웨딩 디자인도, 제작도 하지 않는다.이 길을 스스로 막아 두면, 유하 인생의 결혼 예복 관련 작업은 단 두 벌로 끝난다.하나는 영국 왕실에 소장된 웨딩드레스.하나는 청산에게 준 결혼 예복.이런 작품에는 유하만의 개인 마크가 들어간다.작품의 주인을 확정할 수 있다.여성 웨딩드레스 한 벌, 남성 결혼 예복 한 벌.양쪽 모두 단 하나뿐이다.그게 유하가 청산을 위해 할 수 있는 전부였다.청산에게 ‘유일한 것’을 하나 남겨 주는 일.유하는 겁이 너무 많았다. 마음속 문턱을 끝내 넘지 못했다.그녀는 소중한 것을 더 잃고 싶지 않았다. 한 사람씩 떠나보내는 일을 이제는 견딜 수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유하를 떠나보내는 일도 원하지 않았다.누구에게나 잔인한 일이었다.무뎌진 칼로 천천히 베는 잔인함.그래서 유하는 이렇게 생각했다.‘아프기 싫고, 잃기 싫으면... 애초에
“아내? 무슨 아내야.”청산이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전남편이지. 근데 너는 이것도 확인이 필요하네. 유하가 너한테는 옷을 안 만들어 줬나 봐? 바느질 결만 봐도 유하 솜씨인데, 그것도 못 알아보냐?”승현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고,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예전에 유하가 승현에게 수트 한 벌을 만들어 준 적이 있었다. 다만 그 예복은... 산산이 찢겨서 붙일 수도 없게 된 그 옷을 떠올리자, 승현의 표정은 더 차가워졌다.그래도 어쨌든.승현에게는 한 벌, 그것도 수트가 전부였는데, 청산에게는 결혼 예복을 만들어 줬다고?결혼 예복?승현은 당장이라도 그 나무 상자째로 안의 옷까지 모조리 찢어 버리고 싶었다.눈앞의 청산까지 함께.“아, 갑자기 생각났네...”청산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무 상자를 이쪽에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그러고는 소매 단추를 풀고 소매를 반쯤 접어 올리면서 웃는 낯으로 차분하게 말했다.“맞다. 오승현 대표는 원래 남의 거 뺏는 데 일가견 있었지? 막무가내로 다 뺏고. 남의 관계에 끼어드는 것도 유독 열심이고.”청산은 눈웃음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참고로 나랑 유하는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야. 대학 때도 유하가 먼저 나한테 청혼했어.”“지금도 그래. 우리는 네가 ‘죽은 뒤’ 이혼 처리 끝난 다음에 정식으로 연애했고 약혼한 사이였어.”“그런데 너는 또 이런 더러운 수작으로 남의 관계에 끼어들었지. 승현아, 그렇게 남의 사이 비집고 들어가는 게 재밌냐?”‘진짜...’승현의 관자놀이 핏줄이 크게 뛰었다. 바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대체 누가 끼어든 건데?’‘정작 남의 관계에 끼어든 쪽이 누군데, 저 말이 어떻게 저 입에서 나와?’‘이걸 참으라고?’승현은 이런 모욕을 참아 본 적이 없었다....“대표님, 이 상태는...”태건이 막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전통찻집에서 걸어 나오는 승현을 봤다. 승현은 한 손에는 벗어든 재킷, 셔츠 깃은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손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