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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태자

Author: 칠공주
송완영을 배웅한 노부인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심복인 고씨 어멈은 노부인 곁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노부인이 지금 어떤 심정인지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어르신, 둘째 도련님과 마님 사이에는 분명 오해가 존재해요. 둘째 마님은 도련님이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고요. 방금은 왜 마님에게 사실은 도련님께서 마님과 혼인하고 싶다고 간청을 드린 얘기는 안 하셨나요?”

노부인은 추억을 회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겠어? 허나 완영이가 그 사실을 알아도 이미 부서진 마음을 도로 붙일 수는 없어.”

송완영이 떠난다고 말한 이후로 노부인은 줄곧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노인은 그때 송완영을 집으로 들인 것이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화군주와 끝까지 싸워서 송완영에게 정실의 자리를 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비록 폐하는 송완영을 사실 상 정실의 대우를 하도록 허락하였지만, 측실의 신분으로 정실의 일을 하는 송완영을 보는 세상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노부인은 더 이상 송완영을 설득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할 수만 있다면 네 처가 곧 떠난다고 못난 손자의 귀에 대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단오날이 되었다.

장공주 저택 앞에는 마차가 줄을 지었다.

붉은색 바탕에 금사를 수놓은 비단치마를 입고 화려한 비녀로 머리를 틀어 올린 유혜안이 마차에서 내렸다.

양기주는 그녀를 장공주 저택까지 바래다주었다.

사람들 틈에서 그는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다. 소박한 청색 두루마리를 입고 있었지만 타고난 귀티와 위압감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유혜안은 수줍은 얼굴을 하고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귀족 여식들의 부러운 시선이 쏟아지자 그녀는 점점 허리를 곧게 세우고 대범하게 걸었다.

경성에는 이미 양기주가 그녀를 정실로 들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놀라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등 뒤로 송완영은 남주와 소월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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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만하겠습니다, 세자   제30화 넌 내게 빚을 졌어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날려 훌쩍 호수로 뛰어들었다.한여름이지만 호수 수면만 따뜻하고 햇살이 닿지 못하는 깊은 물속은 차갑기 그지없었다.송완영은 곧바로 깊은 물속으로 추락했다. 차가운 호숫물이 그녀를 잠식했다.여덟 살 때 실수로 연못에 빠진 이후로 그녀는 줄곧 물을 두려워했다.그녀는 지금도 차가운 물이 코와 입에 몰려들던 그 숨막히는 느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지영한이 구해줘서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그녀는 그 뒤로 사흘 밤낮을 고열에 시달렸고 물 얘기만 나와도 숨이 막혔다.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가화군주와 장공주의 악담과 저주를 듣지 않아도 되고 양기주의 잡아먹을 듯한 시선을 보지 않아도 되니 너무도 편안했다.그녀는 해탈한 기분으로 눈을 감았다.그런데 갑자기 호수면이 흔들리더니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곧이어 단단한 팔이 그녀를 위로 잡아당겼다.단단하고 힘있는 손길이었다.송완영은 물속에서도 상대가 많이 당황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다시 공기를 흡입할 수 있게 된 순간, 송완영은 자신을 건져올린 사람을 보았다.양기주였다.송완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차라리 호수에 가라앉는 한이 있어도 강요에 의한 사과는 하고 싶지 않았다.“이거 놓으세요!”그녀의 발버둥에 물보라가 양기주의 얼굴에 튀었다.그는 음침한 표정을 하고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뭍을 향해 헤엄쳤다.“결백을 증명하라면서요! 그래서 증명해 드렸는데 왜 구해주나요?”양기주는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빤히 노려보다가 이를 갈며 말했다.“물에 뛰어든다고 결백이 증명돼?”“그럼 어찌 해야 합니까?”송완영은 절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쏟았다.“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죽으면 믿겠습니까?”“죽고 싶어?”양기주는 섬뜩할 정도로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송완영, 넌 내게 진 빚을 채 갚지 못했어. 그러니 네 목숨도 내 것이야!”터무니없는 소리에 송완영은 당황스럽기만 했다.“저는 도령께 빚진

  • 그만하겠습니다, 세자   제29화 사과해

    유혜안은 특별한 사람이니 당사자인 송완영마저도 그가 바로 물에 뛰어들 거라고 생각했다.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사내가 물에 빠인 여인을 구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신체 상 접촉이 있으니 만약 이 상황에서 양기주가 뛰어든다면 그와 유혜안의 사랑이야기에 이야기 한편 더 추가될 것이고 혼사는 정해진 수순이었다.하지만 그는 호숫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장공주 전하, 저택에 헤엄을 칠 줄 아는 여인이 있을까요?”가화군주는 순간 당황하더니 분노한 얼굴로 아들을 추궁했다.“이 상황에 무슨 그런 걸 따져? 당연히 네가 내려가야지!”“어머니!”양기주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혜안이 목숨도 중요하지만 결백도 똑같이 중요합니다!”가화군주는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평소에 그렇게 똑똑한 아들이 왜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이리도 갑갑하게 구는 걸까?그가 물에 뛰어들기만 한다면 그들의 혼례는 정해진 수순이고 노부인도 막을 수 없었다.채은이 흐느끼며 절규했다.“아씨! 조금만 버텨요! 둘째 도령께서 곧 구해주실 거예요!”마치, 양기주가 뛰어들 것을 안다는 말투였다.유혜안의 비명이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텀벙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물속에 뛰어들었다.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보다 여전히 물가에 버티고 있는 양기주만 바라보고 있었다.왜 안 뛰어든 거지?물속에 뛰어든 사람은 손 상궁이었다.비록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날렵한 몸놀림으로 쉽게 유혜안을 건져올렸다.하지만 은연중에 유혜안은 올라가기 싫다는 듯이 몸부림치는 것을 느꼈다.뭍으로 올라온 유혜안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양기주를 바라보았다.장공주는 준비한 담요를 양기주에게 건넸지만 양기주는 그걸 받아 채은에게 건넸다.채은은 멈칫하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담요를 받아 유혜안을 감싸주었다.그러면서도 유혜안이 시킨 일을 잊지 않고 송완영을 손가락질하며 눈물로 호소했다.“송 이랑, 정말 너무하십니다! 저희 아씨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시종을 시켜 물에 빠뜨리나요!”의도하는 바가 너무

  • 그만하겠습니다, 세자   제28화 모함

    어차피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유혜안의 입을 통해 들으니 그래도 가슴이 쓰렸다.‘얼마나 급했으면….’“축하합니다.”송완영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혜안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송 이랑, 입으로만 축하한다고 하지 말고 잘 생각을 해보세요. 오라버니께서 나와 혼인하면 입장이 가장 곤란한 사람이 송 이랑 아닙니까.”그녀는 진심으로 송완영의 처지를 걱정하는 척 말했지만 눈은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내가 오라버니의 정실이 되면 송 이랑은 어떻게 할까요? 비록 첩실이긴 하지만 3년이나 정실의 대우를 받았지 않습니까. 정말 측실의 자리에서 첩으로 강등되어도 괜찮겠어요?”“오라버니께서 송 이랑에게 좀 정을 주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황명과 노부인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런 거죠. 오라버니는 송 이랑에게 마음이 없어요. 사랑을 못 받는 첩이 양반댁에서 얼마나 하찮은 신세인지 잘 아실 텐데요.”유혜안은 말끝마다 송완영의 아픈 곳을 찔렀다.소월은 분노에 바들바들 떨었다.부질없는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송완영은 얄미운 이 얼굴을 보고 있기 싫었다.“압니다. 혜안 아씨 입장에서는 제가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지요. 그럼 도련님한테 찾아가서 그렇게 말을 하세요. 출첩서만 써주시면 바로 나가드리겠습니다.”유혜안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오라버니가 자기한테 미련 좀 남았다고 이리 건방을 떨어?’송완영을 향한 양기주의 소유욕을 유혜안은 알고 있었다. 태자가 곤경에 처한 그녀를 좀 도와줬다고 질투에 미칠 지경인데 그의 손에서 출첩서를 받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오라버니께서 네 방에 가는 건 네 그 반반한 얼굴 때문이야. 처는 현모양처를 들이고 첩은 미인을 들인다는 말도 있잖아? 넌 미색으로 사내를 홀리는 기생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유혜안은 순수한 소녀의 가면을 집어던지고 흉측한 얼굴을 드러냈다. 그녀의 말은 송완영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다.“오라버니의 진정한 정인은 나야. 넌 그냥 노리개일 뿐

  • 그만하겠습니다, 세자   제27화 선택은 그의 몫

    그가 기억하기로 손 상궁은 늘 장공주의 신변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이니 현장 목격자 중의 한 명일 수 있었다.손 상궁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갑자기 3년 전 일은 왜 물으시는지요?”손 상궁이 대답을 회피하니 양기주는 점점 의심이 깊어졌다.“그럼 심여옥의 의술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양기주는 질문을 바꿔 재차 물었다.한때 손 상궁의 진료를 봐준 사람이기에 어쩌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도 있었다.전혀 연관성이 없는 질문에 당황한 손 상궁은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심 의원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실력은 믿음직하지요.”양기주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심 의원은 혜안이 가슴에 난 상처가 너무 얕아서 중상을 입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제가 의식을 회복한 후에 주변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심방혈을 뽑아 저를 살린 사람이 유혜안이라고 했지요. 그 일로 지금까지 지병을 달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손 상궁은 그제야 자신이 낚였다는 것을 눈치챘다.심여옥의 의술 실력을 인정했으니 그녀의 진단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만약 장공주의 말을 믿으라고 한다면 바로 거짓말인 게 들통날 판이었다.태후마저 이 젊은이를 높게 평가했으니 역시나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황궁에서 수십 년을 생활한 손 상궁마저 그의 유도 심문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으니 오죽할까!“도련님, 그때 소인이 현장에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어의는 사람의 심방혈을 뽑으면 심맥이 손상되어 평생 질병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했지요. 그럼에도 혜안 아씨는 주저하지 않고 도련님을 살리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가화군주는 혜안 아씨가 부상을 입는 게 안쓰러워 장공주께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자고 하였지요. 장공주와 가화군주께서 밖으로 나간 틈을 타서 혜안 아씨는 비수로 가슴을 찌르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그 뒤의 일은 저도 도련님이 계신 방에 들어가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참으로 애매모호한 답이었다. 장공주의 말을 부정

  • 그만하겠습니다, 세자   제26화 눈먼 자

    송완영은 대비책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국공부를 떠나는 날까지 진실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말했다.“대비책이 마련되면 가장 먼저 심 의원께 알려드리겠습니다.”“정말 떠나실 생각인가요?”심여옥은 오히려 안심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만약 정말 그날이 되면 제가 국공부 대문 앞에서 축하의 의미로 폭죽을 터뜨려야겠습니다. 아씨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의미로 말입니다!”남주와 소월은 입을 막고 웃었고 송완영도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심여옥이라는 친구가 있어서 그나마 혹독한 3년을 버틸 수 있었다.여인네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한 사내가 다가와 분위기를 깼다.“여옥아, 여기 있었구나.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온유백이 부채를 흔들며 다가오더니 먼저 송완영에게 인사를 했다.“송 부인.”온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집안끼리 친한 사이였다. 온유백보다 몇 살 더 어린 심여옥은 어릴 때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기 좋아했다.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막역한 사이라 두 집안 다 때가 되면 아이들을 혼인시킬 생각이었다.그런데 어쩐 일인지 최근 들어 심여옥은 온유백을 대하는 태도가 점점 차가워졌다.뒤쫓아 다니기는커녕, 최근 들어서는 그를 피해 다니는 것 같았다.“온 공자.”심여옥은 무미건조한 어조로 온유백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시죠?”온유백은 난감한 표정으로 송완영을 바라보았다.눈치 빠른 송완영은 곧바로 심여옥에게 말했다.“저기 연꽃이 예쁘게 피었더라고요. 저는 저쪽으로 가볼게요.”“같이 가요.”심여옥은 자연스럽게 다가와 송완영의 팔짱을 끼며 온유백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여옥아, 잠깐. 내 긴히 할 말이 있다.”온유백은 속으로 생각했다.‘이 계집애는 어쩐 일로 날 이렇게 피하지?’“저는 공자랑 할 얘기 없습니다!”심여옥은 단박에 거절했다.그녀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온유백에게 말했다.“공자도 양기주와 똑 같은 사람 아닙니까. 양기주 그 사람은 인간도 아니에요. 그러니

  • 그만하겠습니다, 세자   제25화 평생 첩으로 살 수는 없지

    유혜안의 목소리는 깊은 공포에 떨리고 있었다.양기주의 눈가에서 욕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동굴 밖, 유혜안은 넋이 나간 얼굴로 바위 뒤에 기대고 있다가 양기주를 보자마자 울먹이며 다가왔다.“무슨 일이니?”유혜안은 양기주 등 뒤의 송완영을 보더니 더욱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양기주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부드럽게 말했다.“할 말 있으면 울지 말고 천천히 해. 내가 있으니 겁먹지 말고.”그러자 유혜안은 더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그녀의 시종인 채은이 씩씩거리며 양기주에게 말했다.“도련님, 방금 아씨께서 송 이랑의 시종 둘과 마주쳤는데 소월이라는 시종이 저희 아씨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도련님의 정실은 송 이랑뿐이라고, 아씨께 국공부에서 당장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몇 마디 반박했더니 소월은 무공 좀 할 줄 안다고 저희 아씨를 호수에 밀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더라고요!”채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유혜안은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오라버니, 너무 화내지 마세요. 제가 곁에 있는 걸 송 이랑이 못마땅해하는 건 알고 있지만… 시종까지 그런 말을 할 줄은 저도 몰랐어요.”송완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유혜안을 바라보았다.소월이 성질이 좀 불 같기는 해도 선은 지킬 줄 아는 아이였다. 절대 이 시기에 유혜안에게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었다.그녀가 뭐라고 설명하기도 전에 싸늘한 눈빛이 매섭게 그녀를 향했다.“시종 관리 똑바로 해!”거침없는 비난이 송완영의 고막을 뒤흔들었다.그는 역시나 채은의 말을 그대로 믿고 쉽게 그녀를 단죄했다.이미 양기주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할지라도 그의 말과 단호한 태도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녀의 마음을 찔렀다.‘괜찮아… 어차피 한 번도 나를 향한 적 없는 마음이니….’그는 유혜안이 그녀의 목숨을 취하려 한 배후의 흑막인 것을 알고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는가. 그런 사람에게 해명을 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소첩, 도련님의 가르침을 잘 받들겠습니다.”송완영은 담담하게 예를 행했다. 그녀는 마치

  • 그만하겠습니다, 세자   제24화 태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장공주 전하, 소인 잠시 실례하겠습니다.”양기주가 앞으로 나서더니 장공주에게 예를 행했다.그의 출현은 팽팽한 긴장감을 그나마 덜어주었다.“소인 부인 송씨와 따로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장공주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송완영을 계속 자리에 남겨두었다가는 또 무슨 얘기를 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그날 일은 절대 기주에게 알려져서는 안 돼!’송완영은 비웃음을 머금었다.연회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양기주가 도착했음을 알게 되었다.위압감 넘치는 눈으로 자신의 뒤통수만 노려보고 있는데 신경이 안 쓰였을 리 없었다.그녀가 장공주와 가화군주에게 갖은 수모를 당할 때는 침묵을 지키더니 아끼는 사촌 여동생이 궁지에 몰리자 바로 나서서 분위기를 무마했다.가화군주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양기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혜안뿐이었다.그러나 이제는 예전처럼 마음이 아프지 않고 이 상황이 우스울 뿐이었다.장공주 화원의 뒷산, 그들은 산 정상의 좁은 동굴로 들어갔다.바깥의 시끄러운 소리가 잦아들자 둘 사이의 팽팽한 분위기가 더 깊어졌다.양기주의 시선이 송완영에게 고정되었다.희미한 햇살이 비치는 가운데 부드러운 흑발과 붉은 입술이 윤기 있게 반짝이고 있었다. 며칠 전 병에 시달려 시들어가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그녀는 마치 전장에서 승리한 여장군처럼 의젓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연회가 반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송완영은 장공주와 가화군주에게 망신을 주고 은근히 유혜안을 조롱하기까지 했다.‘내 부인이 언제부터 이렇게 당당해졌지?’송완영은 조용히 양기주의 질책을 기다렸으나, 그는 입을 열자마자 뜻밖의 질문을 했다.“왜 거짓말을 했지?”만약 이 자리에서 그녀의 거짓을 간파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오직 양기주뿐이었다.무릎의 흉터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능통한 의술 실력을 가진 심여옥이 주고 간 옥용고를 발랐더니 보름도 되지 않아 흉터는 천천히 사라졌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그 상

  • 그만하겠습니다, 세자   제23화 더 이상 못 참아

    장공주는 송완영에게 자신의 본분을 잊지 말라고, 상인의 딸 따위가 장공주의 정문으로 들어올 자격이 없다고 한바탕 모욕을 줄 생각이었다.그런데 하필이면 태자가 나타나 그녀의 편을 들어주며 자신의 집사에게 곤장을 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태자가 한때 송완영의 집을 찾아가 혼사를 제안한 사실을 고모인 장공주는 알고 있었다.양기주에게 시집을 간지 벌써 3년이 지났는데 태자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으니 장공주 입장에서는 여우가 따로 없었다.“너처럼 출신이 비천한 여인은 아버지의 희생으로도 첩실의 자리에 마땅하나, 폐하께서는 너희 송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 측실의 자리를 윤허했다. 네가 주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응당 폐하께 과분한 자리라고 간청하고 본분에 맞게 첩실의 자리로 만족해야 하겠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지. 혜안이가 착해서 그나마 널 봐준 것이지 다른 여인이었으면 택도 없어.”양기주는 송완영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장공주가 두 번이나 유혜안과 그의 혼인을 언급했음에도 송완영은 한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마치 자신이 무시당한 것 같아서 부아가 치밀었다.연회는 장공주와 가화군주가 송완영을 모욕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던 송완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저는 아버지의 위패를 들고 폐하를 찾아가 국공부와 혼인시켜달라고 폐하께 간청을 올린 적 없습니다. 그건 장공주께서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갑작스러운 반박에 장공주마저 당황했다.연회의 열기가 순식간에 가라앉고 귀부인과 귀족 여식들은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정신을 차린 장공주가 버럭 화를 냈다.“무엄하다! 감히 내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이다니!”송완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당당히 장공주와 시선을 마주했다.“3년 전 5월 초, 장공주께서는 청색 두루마리를 입은 어린 태감을 저희 집으로 보내 폐하께서 저를 부르시니 아버지의 위패를 안고 입궁하라고 전하였습니다. 저는 그 태감을 따라 집을 나왔고 그

  • 그만하겠습니다, 세자   제22화 이제 정실을 들여야지 않겠니?

    4년 전, 그녀의 집으로 찾아와 혼담을 건네던 때와 똑 같은 모습이었다.그때 송완영은 어쩌다가 태자의 눈에 들었는지 몰라 당혹스럽고 의아하기만 했다.그녀처럼 집안이 탄탄치 않은 출신이 태자의 첩실이 된다는 것은 크나큰 은혜였으나, 태자는 무려 그녀에게 측비의 자리를 제안했다.갑작스럽게 찾아온 부귀영화에 혹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버지는 간곡히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태자도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그녀의 집을 빠져나갔고 그날 일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황실 체면도 지키면서 그녀의 명성에도 누가 되지 않았다.송완영은 그런 태자가 존경스럽고 감사했다.하지만 소리없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 최대한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연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지만 장공주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장공주의 지위가 있으니 아무도 감히 연유를 묻지 못했다. 그녀는 황제의 동복 누이로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평소 미남을 좋아하는 그녀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스무 명 넘은 남첩을 거느리고 호화로운 삶을 누렸다.경성의 세가들은 대부분 그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연회 분위기는 장공주의 싸늘한 표정 때문에 무거운 분위기에 싸여 있었다.바위를 사이에 둔 남자 구역은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태자가 상석에 앉고 양기주는 그의 왼쪽 자리를 차지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영평 후작의 적자 도영이 도착했다. 그는 대범하게 태자께 늦었다며 사죄를 드렸다.태자도 그의 죄를 묻는 대신, 웃는 얼굴로 그를 맞아주며 농을 걸었다.“너는 벌써 온 정신이 옆 여객들 구역에 팔려 있으니 이 정도면 늦은 편도 아니지.”도영은 미인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묘한 발언을 했다.“뭐 볼 게 있겠습니까? 경성의 귀족가 여식들 중에 송완영의 미모를 따라갈 자가 있어야지요. 시집을 잘못 간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술잔을 든 양기주는 오늘따라 술맛이 쓰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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