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사람들은 송완영을 신분상승을 위해 아버지의 죽음까지 이용한 불효녀로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버지의 위패를 들고 황궁에 찾아가 양국공부 둘째 공자와 혼인하겠노라고 간청한 소문이 경성에 쫙 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육품 무관에 불과한 아버지와 상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천한 출신 탓에 끝내 측실의 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양기주는 고귀하고 뛰어난 능력에 준수한 외모까지 겸비한 사람으로, 경성 뭇 여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정인, 유혜안이 있었다. 사람들은 송완영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고 생각했다. 양기주는 그녀를 악녀 취급하며 냉대했고 그녀의 진심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리고 어느 날, 유혜안이 경성으로 복귀했다. 사람들은 송완영이 곧 양기주에게 버려질 거라고 생각했고 양기주는 그녀에게 유혜안에게 시비를 걸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사실 상 3년 전 이 집안에 시집오던 그날부터 그녀는 3년 기한만 채우면 노부인에게 출첩서를 받아 떠나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다.
もっと見る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날려 훌쩍 호수로 뛰어들었다.한여름이지만 호수 수면만 따뜻하고 햇살이 닿지 못하는 깊은 물속은 차갑기 그지없었다.송완영은 곧바로 깊은 물속으로 추락했다. 차가운 호숫물이 그녀를 잠식했다.여덟 살 때 실수로 연못에 빠진 이후로 그녀는 줄곧 물을 두려워했다.그녀는 지금도 차가운 물이 코와 입에 몰려들던 그 숨막히는 느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지영한이 구해줘서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그녀는 그 뒤로 사흘 밤낮을 고열에 시달렸고 물 얘기만 나와도 숨이 막혔다.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가화군주와 장공주의 악담과 저주를 듣지 않아도 되고 양기주의 잡아먹을 듯한 시선을 보지 않아도 되니 너무도 편안했다.그녀는 해탈한 기분으로 눈을 감았다.그런데 갑자기 호수면이 흔들리더니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곧이어 단단한 팔이 그녀를 위로 잡아당겼다.단단하고 힘있는 손길이었다.송완영은 물속에서도 상대가 많이 당황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다시 공기를 흡입할 수 있게 된 순간, 송완영은 자신을 건져올린 사람을 보았다.양기주였다.송완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차라리 호수에 가라앉는 한이 있어도 강요에 의한 사과는 하고 싶지 않았다.“이거 놓으세요!”그녀의 발버둥에 물보라가 양기주의 얼굴에 튀었다.그는 음침한 표정을 하고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뭍을 향해 헤엄쳤다.“결백을 증명하라면서요! 그래서 증명해 드렸는데 왜 구해주나요?”양기주는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빤히 노려보다가 이를 갈며 말했다.“물에 뛰어든다고 결백이 증명돼?”“그럼 어찌 해야 합니까?”송완영은 절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쏟았다.“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죽으면 믿겠습니까?”“죽고 싶어?”양기주는 섬뜩할 정도로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송완영, 넌 내게 진 빚을 채 갚지 못했어. 그러니 네 목숨도 내 것이야!”터무니없는 소리에 송완영은 당황스럽기만 했다.“저는 도령께 빚진
유혜안은 특별한 사람이니 당사자인 송완영마저도 그가 바로 물에 뛰어들 거라고 생각했다.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사내가 물에 빠인 여인을 구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신체 상 접촉이 있으니 만약 이 상황에서 양기주가 뛰어든다면 그와 유혜안의 사랑이야기에 이야기 한편 더 추가될 것이고 혼사는 정해진 수순이었다.하지만 그는 호숫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장공주 전하, 저택에 헤엄을 칠 줄 아는 여인이 있을까요?”가화군주는 순간 당황하더니 분노한 얼굴로 아들을 추궁했다.“이 상황에 무슨 그런 걸 따져? 당연히 네가 내려가야지!”“어머니!”양기주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혜안이 목숨도 중요하지만 결백도 똑같이 중요합니다!”가화군주는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평소에 그렇게 똑똑한 아들이 왜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이리도 갑갑하게 구는 걸까?그가 물에 뛰어들기만 한다면 그들의 혼례는 정해진 수순이고 노부인도 막을 수 없었다.채은이 흐느끼며 절규했다.“아씨! 조금만 버텨요! 둘째 도령께서 곧 구해주실 거예요!”마치, 양기주가 뛰어들 것을 안다는 말투였다.유혜안의 비명이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텀벙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물속에 뛰어들었다.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보다 여전히 물가에 버티고 있는 양기주만 바라보고 있었다.왜 안 뛰어든 거지?물속에 뛰어든 사람은 손 상궁이었다.비록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날렵한 몸놀림으로 쉽게 유혜안을 건져올렸다.하지만 은연중에 유혜안은 올라가기 싫다는 듯이 몸부림치는 것을 느꼈다.뭍으로 올라온 유혜안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양기주를 바라보았다.장공주는 준비한 담요를 양기주에게 건넸지만 양기주는 그걸 받아 채은에게 건넸다.채은은 멈칫하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담요를 받아 유혜안을 감싸주었다.그러면서도 유혜안이 시킨 일을 잊지 않고 송완영을 손가락질하며 눈물로 호소했다.“송 이랑, 정말 너무하십니다! 저희 아씨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시종을 시켜 물에 빠뜨리나요!”의도하는 바가 너무
어차피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유혜안의 입을 통해 들으니 그래도 가슴이 쓰렸다.‘얼마나 급했으면….’“축하합니다.”송완영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혜안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송 이랑, 입으로만 축하한다고 하지 말고 잘 생각을 해보세요. 오라버니께서 나와 혼인하면 입장이 가장 곤란한 사람이 송 이랑 아닙니까.”그녀는 진심으로 송완영의 처지를 걱정하는 척 말했지만 눈은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내가 오라버니의 정실이 되면 송 이랑은 어떻게 할까요? 비록 첩실이긴 하지만 3년이나 정실의 대우를 받았지 않습니까. 정말 측실의 자리에서 첩으로 강등되어도 괜찮겠어요?”“오라버니께서 송 이랑에게 좀 정을 주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황명과 노부인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런 거죠. 오라버니는 송 이랑에게 마음이 없어요. 사랑을 못 받는 첩이 양반댁에서 얼마나 하찮은 신세인지 잘 아실 텐데요.”유혜안은 말끝마다 송완영의 아픈 곳을 찔렀다.소월은 분노에 바들바들 떨었다.부질없는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송완영은 얄미운 이 얼굴을 보고 있기 싫었다.“압니다. 혜안 아씨 입장에서는 제가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지요. 그럼 도련님한테 찾아가서 그렇게 말을 하세요. 출첩서만 써주시면 바로 나가드리겠습니다.”유혜안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오라버니가 자기한테 미련 좀 남았다고 이리 건방을 떨어?’송완영을 향한 양기주의 소유욕을 유혜안은 알고 있었다. 태자가 곤경에 처한 그녀를 좀 도와줬다고 질투에 미칠 지경인데 그의 손에서 출첩서를 받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오라버니께서 네 방에 가는 건 네 그 반반한 얼굴 때문이야. 처는 현모양처를 들이고 첩은 미인을 들인다는 말도 있잖아? 넌 미색으로 사내를 홀리는 기생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유혜안은 순수한 소녀의 가면을 집어던지고 흉측한 얼굴을 드러냈다. 그녀의 말은 송완영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다.“오라버니의 진정한 정인은 나야. 넌 그냥 노리개일 뿐
그가 기억하기로 손 상궁은 늘 장공주의 신변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이니 현장 목격자 중의 한 명일 수 있었다.손 상궁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갑자기 3년 전 일은 왜 물으시는지요?”손 상궁이 대답을 회피하니 양기주는 점점 의심이 깊어졌다.“그럼 심여옥의 의술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양기주는 질문을 바꿔 재차 물었다.한때 손 상궁의 진료를 봐준 사람이기에 어쩌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도 있었다.전혀 연관성이 없는 질문에 당황한 손 상궁은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심 의원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실력은 믿음직하지요.”양기주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심 의원은 혜안이 가슴에 난 상처가 너무 얕아서 중상을 입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제가 의식을 회복한 후에 주변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심방혈을 뽑아 저를 살린 사람이 유혜안이라고 했지요. 그 일로 지금까지 지병을 달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손 상궁은 그제야 자신이 낚였다는 것을 눈치챘다.심여옥의 의술 실력을 인정했으니 그녀의 진단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만약 장공주의 말을 믿으라고 한다면 바로 거짓말인 게 들통날 판이었다.태후마저 이 젊은이를 높게 평가했으니 역시나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황궁에서 수십 년을 생활한 손 상궁마저 그의 유도 심문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으니 오죽할까!“도련님, 그때 소인이 현장에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어의는 사람의 심방혈을 뽑으면 심맥이 손상되어 평생 질병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했지요. 그럼에도 혜안 아씨는 주저하지 않고 도련님을 살리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가화군주는 혜안 아씨가 부상을 입는 게 안쓰러워 장공주께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자고 하였지요. 장공주와 가화군주께서 밖으로 나간 틈을 타서 혜안 아씨는 비수로 가슴을 찌르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그 뒤의 일은 저도 도련님이 계신 방에 들어가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참으로 애매모호한 답이었다. 장공주의 말을 부정
송완영은 대비책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국공부를 떠나는 날까지 진실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말했다.“대비책이 마련되면 가장 먼저 심 의원께 알려드리겠습니다.”“정말 떠나실 생각인가요?”심여옥은 오히려 안심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만약 정말 그날이 되면 제가 국공부 대문 앞에서 축하의 의미로 폭죽을 터뜨려야겠습니다. 아씨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의미로 말입니다!”남주와 소월은 입을 막고 웃었고 송완영도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심여옥이라는 친구가 있어서 그나마 혹독한 3년을 버틸 수 있었다.여인네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한 사내가 다가와 분위기를 깼다.“여옥아, 여기 있었구나.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온유백이 부채를 흔들며 다가오더니 먼저 송완영에게 인사를 했다.“송 부인.”온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집안끼리 친한 사이였다. 온유백보다 몇 살 더 어린 심여옥은 어릴 때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기 좋아했다.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막역한 사이라 두 집안 다 때가 되면 아이들을 혼인시킬 생각이었다.그런데 어쩐 일인지 최근 들어 심여옥은 온유백을 대하는 태도가 점점 차가워졌다.뒤쫓아 다니기는커녕, 최근 들어서는 그를 피해 다니는 것 같았다.“온 공자.”심여옥은 무미건조한 어조로 온유백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시죠?”온유백은 난감한 표정으로 송완영을 바라보았다.눈치 빠른 송완영은 곧바로 심여옥에게 말했다.“저기 연꽃이 예쁘게 피었더라고요. 저는 저쪽으로 가볼게요.”“같이 가요.”심여옥은 자연스럽게 다가와 송완영의 팔짱을 끼며 온유백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여옥아, 잠깐. 내 긴히 할 말이 있다.”온유백은 속으로 생각했다.‘이 계집애는 어쩐 일로 날 이렇게 피하지?’“저는 공자랑 할 얘기 없습니다!”심여옥은 단박에 거절했다.그녀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온유백에게 말했다.“공자도 양기주와 똑 같은 사람 아닙니까. 양기주 그 사람은 인간도 아니에요. 그러니
유혜안의 목소리는 깊은 공포에 떨리고 있었다.양기주의 눈가에서 욕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동굴 밖, 유혜안은 넋이 나간 얼굴로 바위 뒤에 기대고 있다가 양기주를 보자마자 울먹이며 다가왔다.“무슨 일이니?”유혜안은 양기주 등 뒤의 송완영을 보더니 더욱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양기주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부드럽게 말했다.“할 말 있으면 울지 말고 천천히 해. 내가 있으니 겁먹지 말고.”그러자 유혜안은 더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그녀의 시종인 채은이 씩씩거리며 양기주에게 말했다.“도련님, 방금 아씨께서 송 이랑의 시종 둘과 마주쳤는데 소월이라는 시종이 저희 아씨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도련님의 정실은 송 이랑뿐이라고, 아씨께 국공부에서 당장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몇 마디 반박했더니 소월은 무공 좀 할 줄 안다고 저희 아씨를 호수에 밀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더라고요!”채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유혜안은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오라버니, 너무 화내지 마세요. 제가 곁에 있는 걸 송 이랑이 못마땅해하는 건 알고 있지만… 시종까지 그런 말을 할 줄은 저도 몰랐어요.”송완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유혜안을 바라보았다.소월이 성질이 좀 불 같기는 해도 선은 지킬 줄 아는 아이였다. 절대 이 시기에 유혜안에게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었다.그녀가 뭐라고 설명하기도 전에 싸늘한 눈빛이 매섭게 그녀를 향했다.“시종 관리 똑바로 해!”거침없는 비난이 송완영의 고막을 뒤흔들었다.그는 역시나 채은의 말을 그대로 믿고 쉽게 그녀를 단죄했다.이미 양기주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할지라도 그의 말과 단호한 태도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녀의 마음을 찔렀다.‘괜찮아… 어차피 한 번도 나를 향한 적 없는 마음이니….’그는 유혜안이 그녀의 목숨을 취하려 한 배후의 흑막인 것을 알고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는가. 그런 사람에게 해명을 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소첩, 도련님의 가르침을 잘 받들겠습니다.”송완영은 담담하게 예를 행했다. 그녀는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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