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흑암처럼 어두운 경후의 눈은 달빛 아래 깊은 우물처럼 속을 헤아리기 어려웠다.그는 제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얇은 입술을 열었다.“계속 당신을 도와주던 그 남자... 대체 누구야?”경후가 묻는 건 그 일이었다.제나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맹세할 수 있어. 나도 정말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 심지어... 이름도 몰라.”“만난 적은 있어?”제나의 눈 밑으로 망설임이 스쳤다.지금은 모든 기억이 돌아왔지만, 그 정체 모를 사람의 신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무 단서도 없었다.제나는 지난번에 나타났던 남자가 정말 그 정체 모를
“네.”제나의 숨이 가볍게 멎었다.이어 고개를 들어 경후를 바라보았다.“진심이야?”경후의 짙은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설마 당신은 그냥 해 본 말이었어?”“아니.”제나는 경후를 올려다보며 망설이다가 물었다.“정말 이제 신경 쓰이지 않아?”“뭐가?”제나는 입술을 열었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경후는 제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듯, 제나를 품에 끌어안고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냥 묻어두자.”경후의 목소리는 물처럼 맑고 서늘했다.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경후는 제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얼마 전까지는 기억을 되찾는 일에 꽤 신경 썼잖아. 그런데 요즘은 병원에 가겠다는 말도 안 하더라... 이제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은 거야?”제나의 기색이 미세하게 변했다.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경후가 무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런데 당신이 이미 혼자 몇 가지는 떠올린 것 같아.”제나의 마음이 서늘해졌다.경후는 제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허리를 숙여 제나와 눈을 맞춘 경후의 검은 눈동자는 먹물처럼 짙었고, 속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었다.“방금 당신이 말했지. 그 독은 당신이 먹인 게
지금 와서 떠올려 보니, 제나는 모든 일이 조금 허무했고 우습기까지 했다.“괜찮아?”경후의 목소리가 제나의 생각을 다시 끌어올렸다.“괜찮아.”제나의 목소리는 아주 가벼웠다.“그냥 갑자기 몇 가지 일이 떠올랐어.”“그래?”경후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뭐가 떠올랐는데?”제나의 동공이 희미하게 흔들렸다.“예전 일들이야.”그녀가 며칠 동안 의식을 잃은 뒤 과거의 기억 몇 가지를 떠올렸다는 사실은... 경후도 알고 있었다.경후가 제나를 바라보았다.“예전의 어떤 일?”제나의 속눈썹이 조용히 내
병실 안, 제나는 눈을 감은 채 침대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마치 깊이 잠든 사람 같았다.의사가 제나를 살펴보았지만, 몸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의식을 잃은 원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자극을 받은 탓이라고 했다.경후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하음을 바라보았다.“제 아내한테 무슨 말을 했습니까?”하음은 고개를 숙였다.“제가 아는 일은 많지 않아요. 그저 차 대표가 하제나 씨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포기했는지 말했을 뿐이에요. 하제나 씨는 기억을 잃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요.”“지난 몇 년 동안 하제나 씨만 억울했다
“왜죠?”하음이 말했다.“차 대표가 처음 차씨 가문으로 돌아갔을 때, 차씨 가문 사람들은 위아래 할 것 없이 차 대표를 반기지 않았어요.”“차 대표는 모두에게 밀려났죠. 차씨 가문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다른 사람들과 재산을 두고 다투게 된 사람인데 누가 환영하겠어요?”제나는 경후의 친부모가 경후에게 다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그럼 경후의 친부모님은요? 경후는 그분들의 친아들이잖아요. 그런데도 반기지 않았다는 건가요?”하음이 비웃듯 웃었다.“그것도 전부
경후의 짙고 어두운 눈동자에 알 수 없는 빛이 스쳤다.“경고라면서, 그렇게까지 말해야 했나?”제나는 곁에 앉은 차갑고 고요한 남자를 바라봤다.“그럼, 내가 한 말이 지나쳤다고 생각해?”경후의 깊은 흑색 눈동자가 제나를 향했다. 정교한 이목구비는 더욱 차갑게 빛났다.“만약 내가 그렇다고 하면?”제나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표정이 무너질 뻔했다.“그럼, 내가 사과해야 해?”낮고 맑은 목소리가 느긋하게 이어졌다.“아까도 몇 번이나 사과했잖아. 하지만 문라인 씨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던데.”제나는 가볍게 미소를
경후는 잠자코 제나를 바라봤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제나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설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내가 기억 잃기 전엔, 정말 그렇게까지 싫은 존재였던 걸까?’경후의 얇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맞아.”차갑게 떨어지는 그 한마디에, 제나는 순간 숨이 막혔다.남자의 냉정한 얼굴을 올려다보며 낮게 물었다.“내가 지금은 기억을 잃었어도... 언젠간 다 떠올릴 수도 있잖아. 그땐... 당신, 나를...”경후가 옆으로 시선을 흘리며 담담하게 대답했다.“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제나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때, 낮고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당신도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었어?”제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나는 그런 게...”순간, 경후의 손이 제나의 턱을 움켜쥐었다. 고개가 억지로 들어 올려지고, 시선은 강제로 그와 마주하게 되었다.경후는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리며 비아냥거렸다.“내가 당신을 시켜 문라인에게 억지로 사과하게 만들고, 별별 수모를 다 겪게 해서 결국 그 여자가 만족할 때까지 굴복시키는 거... 방금 나한테 그런 기대했던 거 맞지?”제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재준은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렸다. ‘허세 부리는군.’ 그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그러자 경후가 느긋하게 미소 지었다.“그렇다면 차 대표께서 제나가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주문해 보시지. 제나는 기억을 잃어 많은 걸 잊었지만, 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터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오늘 마주한 사람이 재준이 아니라면, 경후는 대충 얼버무려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나만 협조해 준다면, 얼마든지 적당히 꾸며낼 수 있었으니까.하지만 상대는 유재준이었다. 제나와 함께 자란 소꿉친구, 누구보다 제나를 잘 아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