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기억을 잃은 후, 그가 나에게 중독됐다

От :  윤아Updated just now
Язык: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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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제나는 남편 차경후를 누구보다 깊이 사랑했다. 하지만, 제나의 생일날, 사랑하는 남편은 다른 여자와 함께 촛불이 반짝이는 식탁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차갑고 무정한 경후는 제나의 마음을 짓밟고 무자비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알고 보니, 지난 3년간의 결혼 생활은 단지 제나에 대한 차경후의 복수극에 불과했다. 그런데, 뜻밖의 사고로 기억을 잃은 하제나는 더 이상 남편에게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여자가 아니었다. 180도 달라진 제나의 태도에, 흔들리기 시작한 건 오히려 강후였다. “기억 잃은 척한다고 내 마음이 돌아설 줄 알아? 이혼은 꼭 할 거야.” 그의 냉담한 선언에도 제나는 흔들림 없었다. “그래, 미룰 것 없지. 당장 내일 해. 누가 먼저 안 나오는지 두고 보자. 내일 안 나오면, 사람도 아니야. 개야, 개.” 그리고 다음 날, 당당히 그의 문을 두드리는 제나. “차 대표님, 이혼하러 가시죠.” “...멍.” 경후는 말 대신, 조용히 개소리를 냈다. ... 남들이 다 알고 있었다. 하제나가 차경후를 미치도록 사랑했다는 걸. 그러나 정작 차경후만은, 모두가 아는 그 사랑을 너무 늦게야 깨닫게 된다. 이미 그는 ‘하제나’라는 여자에게 중독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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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 화

[이혼합의서, 이미 사인했어. 내일 보낼게.]

핸드폰 알림음이 울리자, 하제나는 무심결에 화면을 들여보았다.

멍하니 메시지를 바라보던 제나의 눈동자가 서서히 흐려졌다.

촛불 아래서 흔들리는 불빛에 그녀의 길고 가느다란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고개를 들자, 식탁 위에 놓인 저녁 식사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식탁 중앙엔 초 두 개가 꽂힌 생일 케이크가, 불도 켜지지 않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오늘은 제나의 스물세 번째 생일이었다.

하지만 함께 보내기로 했던 남편은 오지 않았고, 대신 도착한 건 너무도 특별한 생일 선물이었다.

띠링-

그때, 또 다른 알림음과 함께 실시간 뉴스 속보가 화면을 채웠다.

<충격! 톱배우 윤세린, HB그룹 대표 차경후와 저녁 식사... 과거 연인 관계 복원설?>

제나는 미간을 좁히며 곧바로 기사를 클릭했다.

잠시 후, 화면에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과, 기품 넘치는 잘생긴 남자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마주 앉아 있었다.

식당의 조명이 유난히 로맨틱했던 탓일까. 아니면 사진의 각도가 절묘했던 걸까.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사랑을 마주한 연인의 시선 같았다.

제나는 손에 쥔 핸드폰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만큼 힘이 들어갔고,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게 막혀왔다.

창밖으로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고, 도로 위엔 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캐리어를 들고 나와 트렁크에 실었다. 모든 걸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듯, 조용히 집을 나섰다.

제나와 차경후, 세 해를 함께했던 결혼 생활은, 결국 그 남자의 첫사랑이 돌아오며 조용히 끝을 맞이했다.

...

빵!

갑작스러운 경적 소리가 제나의 귓가를 찢듯 울렸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차 한 대가 그녀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제나의 의식이 그대로 끊겼다.

...

한 달 뒤, 어느 병원의 VIP 병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제나는 조용히 자신의 SNS 로그를 읽고 있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제나는 몸을 일으키며 핸드폰을 옆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환하게 웃었다.

“연주야, 오늘은 또 무슨 맛있는 걸 가져왔어...”

하지만 말은 끝나기도 전에 뚝 끊겼다.

문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외모는, 도저히 현실이라 믿기 힘들 만큼 비현실적으로 수려했기 때문이다.

정갈한 이목구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완벽한 얼굴.

그리고 그 깊고도 날카로운 눈동자엔, 차가운 달빛 아래 고요히 고인 우물 같은 서늘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맞춤 제작된 비스포크 정장을 입고 있었고, 키는 190cm에 가까운 장신이었다.

그 위압적인 기품과 냉랭한 분위기는 방 안 전체를 단숨에 장악했다.

그는 말없이 제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그 시선은 마치 살을 에는 칼날처럼 냉정했다.

제나는 그를 조심스레 바라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기... 누구시죠?”

남자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그 미소엔 온기라고는 전혀 없었고, 차가운 눈빛 속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조소가 스며 있었다.

“수작 부리는 건 좋은데, 네 목숨까지 걸 만큼 멍청하게 굴진 마.”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제나에게 서류 한 장을 툭 내던졌다.

“이혼합의서야. 난 이미 서명했어.”

차가운 말과 함께, 그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섰다.

그 순간, 제나는 모든 걸 깨달았다.

눈앞의 이 남자는 바로 한 달 동안 자신이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바로 그 남편. 차경후였다.

제나는 경후가 문을 나서려는 찰나,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기억을 잃었어.”

그 말에 경후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잠시 미묘하게 흔들렸다.

“...하제나, 또 기억 상실이야?”

‘또...?’

‘그럼, 예전에도 내가 기억을 잃은 적이 있었던 거야?’

제나가 묻기도 전에, 경후가 차갑게 말을 던졌다.

“자해 공갈에, 기억 상실, 교통사고까지... 하제나. 그렇게 이리저리 수 쓰면서도 겨우 이런 방법밖에 안 떠올랐어?”

그 시간 동안 제나는 비서 우연주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차경후를 붙잡기 위해 얼마나 어리석고 비굴한 짓들을 해왔는지도.

‘그래, 내가 사랑에 미쳐 바보 같은 짓을 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이 남자가 쓰레기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

“이제 안 그래.”

제나는 담담한 얼굴로 또렷하게 말했다.

“걱정 마. 이번엔 당신 붙잡으려는 수작 아니야. 퇴원하면 바로 이혼할 거니까.”

경후의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렸다. 믿기 힘든 말을 들은 듯,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곧이어 남자의 눈빛이 깊어지며, 눈앞의 제나를 천천히,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제나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정교하고도 사랑스러운 이목구비, 흠잡을 데 없는 얼굴. 안색은 창백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눈이 부셨다.

경후는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남자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제나의 심장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기억은 사라졌는데, 몸은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이 남자...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날 위축되게 만들어.’

‘...’

제나는 기억을 잃었지만, 인터넷 기사들과 연주의 설명, 그리고 자신이 남긴 단편적인 SNS 기록의 조각들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은 파악할 수 있었다.

경후에게는 소꿉친구이자 첫사랑인 여자가 있었고, 두 사람은 약혼 직전까지 갔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제나가 끼어들어, 결국 그의 아내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그 후로도 경후는 계속해서 이혼을 원했지만, 제나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끝까지 그를 붙잡았다고 한다.

제나가 가장 많이 접한 기사들은, 경후가 다른 여자들과 얽혀 만들어낸 숱한 스캔들이었고, 그 다음으로 자주 눈에 띈 건, 연회장에서 그의 여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결국 그녀는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저열하고 치졸한 수법으로 남자를 빼앗아 재벌가의 껍데기뿐인 아내 자리에 앉은 셈이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어본 제나는, 자신의 생일날 경후가 보낸 이혼 요구 문자와 그날 밤 다른 여자와 저녁을 먹었다는 기사를 나란히 확인했다.

너무 큰 충격이었을까.

결국 제나는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심하게 머리를 다쳐 한 달 가까이 의식을 잃었고, 며칠 전 겨우 깨어났지만...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더 기막힌 건, 자신이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이라는 사람은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야 모습을 드러내, 아무렇지도 않게 이혼을 요구하고 있다.

‘정말... 우습고도 비참하네.’

제나는 한없이 깊고, 차가운 경후의 눈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이혼해줄게.”

그 말을 들은 순간, 경후의 검은 눈동자가 마치 바람에 일렁이는 호수처럼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그 미묘한 동요는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후는 단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제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마치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는,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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