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기부전증입니다.”윤태호가 이 말을 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격분하며 소리쳤다.“함부로 지껄이지 마세요.”“제가 함부로 지껄이는 건지 아닌지는 주 사장님 스스로가 제일 잘 아실 텐데요.”윤태호는 약간 울적해졌다.‘사생활 보호를 그토록 강조했는데도 꼭 말하라고 하더니, 막상 말하니까 또 화를 내네.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이 국장님, 이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그 신의라는 사람입니까? 완전 돌팔이잖습니까.”“주 사장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윤태호는...”“솔직하게 말하는 게 그렇게 힘든가요?”윤태호는 갑자기 입을 열어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아까 이미 경고했잖아요. 의사는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그런데도 굳이 입을 열게 했잖아요. 게다가 여기는 다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 괜찮다면서요. 그렇게 말씀해놓고 이제 와서 화를 내시면 어쩌라는 겁니까?”“내가 말하라고 한 건 사실대로 말하라는 거지, 맘대로 지껄이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중년 남자는 윤태호를 매섭게 노려보며 엄청난 기세를 뿜어냈다.짐작건대 이 중년 남자의 배경도 만만치 않은 듯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 정도 기세로는 윤태호를 털끝만큼도 위협할 수 없었다.윤태호는 차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당신은 안색이 창백하고 혀에 설태가 두껍게 끼어 있네요. 웃으며 대화하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보입니다. 허리와 무릎이 아프고 온몸에 힘이 빠져 있으며 추위도 심하게 타는 상태입니다. 특히 지난 6개월간, 부부 관계를 가질 때 아무 느낌이 없었지요?”윤태호가 한마디 할 때마다 중년 남자의 안색은 점점 더 나빠졌다.“당신의 이러한 증상은 신장 허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발기부전으로, 원래는 몸조리만 잘하면 금방 나을 수 있었지만 엉뚱한 약만 잔뜩 먹어서 오히려 더 악화된 겁니다.”“나는 함부로 약을 먹지 않았어요. 육미지황환하고 보신환밖에 안 먹었...”중년 남자는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때는 이미
털썩...이강윤이 갑자기 바닥에 고꾸라졌다.완전히 취해버린 것이다.윤태호는 이강윤을 쳐다보지도 않고 진도훈에게 인사를 건네고 이경진에게 술을 따르러 갔다.윤태호가 이경진의 룸을 찾아 문을 두드리자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황찬호는 윗자리에 앉아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는데 술을 많이 마신 듯했다.“윤태호, 한참을 기다렸잖아.”이경진은 빠르게 일어나 윤태호를 테이블 앞으로 끌어당긴 다음,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이분이 바로 제가 늘 말씀드리던 신의 윤태호입니다. 이분이 아니었다면 저희 아버지는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신의라는 분이 너무 젊어 보이는데, 정말 국장님 말처럼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자가 윤태호를 훑어보며 빈정거렸다. 말투 하나하나에 윤태호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주 사장님, 내 말은 못 믿어도 윤태호의 실력은 부시장님도 익히 알고 있어요. 그렇죠?”이경진은 황찬호를 바라봤다.황찬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며칠 전 스쿨버스가 사고를 당해 20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쳤는데, 그중 제 아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제 아들은 쇠파이프에 가슴이 꿰뚫렸는데 심장까지 2mm밖에 안 남았다고 하더군요. 상황이 매우 위급했습니다. 그런 걸 윤 선생이 현장에서 제 아들 수술을 해 주었고 지금은 퇴원했습니다.”황찬호는 윤태호에게 손짓하며 반갑게 말했다.“윤 선생, 빨리 와서 내 옆에 앉아.”그러자 사람들의 윤태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이 젊은이가 정말 신의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황찬호와 이경진의 태도만 봐도 이 젊은이가 분명히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윤태호, 빨리 앉아!”이경진도 말했다.윤태호는 그제야 황찬호의 오른편에 앉아 말했다.“부시장님, 저에게 베풀어주신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술은 급하지 않아. 사실 윤 선생에게 부탁할 일이 좀 있는데...”윤태호는 술잔을 내려놓고 물었다.“무슨 일이시죠?”황찬호는 양
찰싹!뺨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장여울의 뺨에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녀는 뺨을 감싸 쥐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강윤을 쳐다보며 물었다.“너, 너 지금 나 때린 거야?”“잘 들어. 태호는 내 형제야. 입 함부로 놀리지 마.”이강윤은 냉랭하게 쏘아붙였다.장여울은 얼이 빠진 듯 멍해졌다.‘강윤이는 태호를 무시했던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지금은 태호가 강윤의 형제가 된 거지?’“이강윤, 너 도대체 왜 그래? 저 무능력한 녀석이 어떻게 네 형제가 될 수 있어? 너...”“닥쳐!”이강윤은 거칠게 장여울의 말을 끊고 경고했다.“경고하는데 장여울, 다시 태호에게 함부로 했다가는 큰코다칠 줄 알아. 태호는 나의 형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동창이야. 동창을 대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 네가 전에 태호에게 무례하게 굴 때 내가 참았던 건, 네가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길 바랐기 때문이지 더 심해지길 바라서가 아니야. 지금부터 넌 여기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마.”이강윤은 자리를 가리키며 명령했다.그의 표정을 살피던 장여울은 이강윤이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흥, 그깟 무능력한 놈 때문에 나를 때리다니, 엉엉...’이강윤은 장여울을 힐끗 쳐다보며 속으로 욕했다.‘멍청한 년, 하마터면 내 큰일을 망칠 뻔했잖아. 내가 윤태호에게 아첨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냐? 다 저 녀석이 이경진이랑 사이가 보통이 아니니까 그런 거지. 이경진만 좋다고 하면 나는 시청에서 차장 자리는 꿰찰 수 있는데 윤태호한테 찍혀서 이경진 귀에 안 좋은 소리라도 들어가면 내 앞길은 끝장이잖아. 그걸 저 멍청한 여자는 왜 모르는 걸까?’가만 생각해보니 장여울 때문에 오늘 윤태호한테 찍힌 셈이었다. 전에는 윤태호랑 껄끄러울 일도 없었다.‘제기랄, 저 여자는 정말 왕재수야! 침대에서 아무리 죽여주고 날 만족시켜줘도 머리가 너무 텅텅 비었어. 계속 사귀다간 앞으로 내 앞길을 망칠지도 몰라. 여자는 자기 남자에게 도
장여울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불과 2분 전까지만 해도 윤태호가 잘난 척한다고 비웃었는데 이렇게 빨리 코가 납작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윤태호는 이경진을 알 뿐 아니라, 꽤나 끈끈한 사이인 듯했다.장여울은 윤태호가 자신과 헤어진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승진까지 했을 뿐 아니라,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우수 의사 칭호까지 받았고 심지어 시청의 고위국장까지 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도대체 태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어째서 내가 떠나자 태호의 운이 활짝 핀 걸까? 설마 내가 재앙이라도 몰고 다니는 건가?’장여울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윤태호는 정중하게 말했다.“이 국장님은 상사이자 어르신이신데, 어찌 국장님의 술을 받겠습니까. 이 잔은 제가 올려야 마땅합니다.”“윤태호, 이 잔은 내가 꼭 한 번 올려야겠어. 사양하지 마.” 이경진은 말을 마치고 윤태호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친 다음 먼저 술을 들이켰다.윤태호도 어쩔 수 없이 따라 한 번에 술을 들이켰다.이경진은 이어서 말했다.“동생, 앞으로 사석에서는 국장이라고 부르지 마. 내가 나이도 더 많으니 괜찮다면 형님이라고 불러.”이 말을 듣자 모든 사람들이 또 한 번 놀랐다.‘이 국장은 왜 태호에게 이렇게까지 깍듯하게 대하는 걸까? 너무 이상하잖아.’“다음에 시간 되면 집에 놀러 와. 우리 아버지가 늘 동생 얘기를 자주 하시면서 술 한잔하고 싶어 하셔.”이경진의 말에 윤태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이 친구, 이 국장을 아는 것도 모자라 국장 아버지와도 막역한 사이라니. 정말 믿기 어려운데.’“알겠습니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 찾아뵙겠습니다.”이경진이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여러분 모임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동생, 나중에 우리 방으로 와서 한잔해. 황 부시장도 있는데, 마침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좀 있다고 하더라고.”“좋습니다. 곧 가겠습니다.”이경진은 윤태호의 어깨를 두드리고 웃으며 룸을 나갔다. 그가 나가자 룸 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윤태호에게 쏠
이강윤은 깜짝 놀랐다. 이경진이 여긴 어쩐 일로 온 것일까?놀라운 우연이었다.그는 거의 보름 동안 예약해서 겨우 이경진을 한 번 만났다. 게다가 당시 이경진의 사무실 안에 2분 정도밖에 머무르지 못했고 하고 싶었던 말들도 대부분 못한 채 이경진의 비서에게 쫓겨났다.그런데 오늘 이곳에서 그와 우연히 마주칠 줄은 몰라서 놀랍고 또 즐거웠다.이강윤은 이 기회를 틈타 이경진과 친분을 쌓고 싶었다. 이경진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생긴다면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고 승진도 훨씬 쉬울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이강윤은 서둘러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이경진에게 술을 따라주려고 했다.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그의 미소가 얼어붙었다.이경진이 손에 술잔을 든 채로 빠르게 윤태호의 곁으로 다가가서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태호야, 오랜만이네.”윤태호는 이경진을 보더니 살짝 놀랐는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예의 바르게 물었다.“국장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친구들이랑 여기서 밥을 먹고 있다가 밖에서 네가 보이길래 안으로 들어왔지. 태호야,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이경진은 사람 좋게 웃으며 물었다.“당연하죠.”이강윤이 서둘러 이경진의 앞으로 다가가며 정중하게 말했다.“국장님, 국장님을 뵙다니 영광입니다.”이경진은 이강윤을 힐끗 보고 물었다.“날 알아?”“그럼요. 미주 의료 업계 사람들 중에 국장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다들 국장님 같은 좋은 상사가 있어 미주 의료 업계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하는걸요.”이강윤은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를 살짝 숙인 뒤 말했다.“국장님, 전 얼마 전 국장님 사무실에 간 적도 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당시 국장님께서 격려의 말씀도 해주셨는데 그때 국장님의 모습이 줄곧 제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잊히지 않았어요...”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잊히지 않는다고 했을 때 이경진의 눈빛에 불쾌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강윤은 그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난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데 왜 저런
그러니 불필요한 문제가 생기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굳이 돈이 많다는 걸 확인시켜 줄 필요는 없었다.“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윤태호는 평온한 얼굴로 말한 뒤 물을 마셨다.그의 모습을 본 장여울은 의기양양해졌다.“잔액이 얼마 없어서 내게 못 보여주는 거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네 집안 형편을 알고 있어. 충고 하나 하는데 돈이 없으면서 잘난 척하지 마. 그리고 교수가 됐다고 해서 우리 앞에서 허세 부리지 마. 넌 앞으로도 쭉 무능력한 인간일 테니까. 네가 교수가 되었다고 해도 네가 무능력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윤태호는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척 계속 물을 마셨다.장여울은 화가 풀리지 않는지 계속해 욕했다.“물만 계속 마시네. 그래, 많이 마셔. 마시다가 목이 막혀서 죽어버려.”퍽!진도훈은 테이블을 내리치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장여울. 말 좀 예쁘게 해. 계속 윤태호를 욕한다면 가만있지 않을 줄 알아.”“뭐? 날 때리기라도 하게? 그러면 어디 한 번 해봐!”장여울은 마치 화가 난 암탉처럼 기세등등하게 말했다.“감히 날 건드린다면 죽여버리겠어.”“너...”진도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윤태호가 그의 어깨를 눌렀다.“도훈아, 그러지 마. 훌륭한 남자는 여자랑 싸우지 않는 법이야.”윤태호가 설득하자 진도훈은 그제야 포기했다.이때 이강윤이 술잔을 들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것도 인연인데 같이 건배 한 번 하자. 우리 우정을 위해서 말이야.”“좋아.”사람들은 다들 잔을 들고 술을 마셨다.뒤이어 이강윤은 술을 한 잔 더 따르고 말했다.“이 자리는 내가 마련한 자리인데 다들 이렇게 나와줘서 고마워. 우리 모두 앞으로 더 잘 되자는 의미로 한 잔 더 하자.”“강윤아,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나는 앞으로도 네 덕을 볼 생각이니까.”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술을 마셨고 이강윤은 웃으며 말했다.“나 아마 다음 달이면 보건복지부에서 일하게 될 것 같아. 그쪽에 부과장이 한 명 부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