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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Autor: 다섯
"서현아, 너도 한번 타봐!"

문희주가 말을 몰고 다가왔다.

그녀의 두 눈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얼핏보면 호의같은 권유였지만 문서현은 그 눈빛 속에 담긴 조롱을 똑똑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이윽고 그 뒤를 바짝 따라온 배은우가 문서현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내 입을 연 그의 목소리에는 경멸이 뚝뚝 묻어났다.

"어머니, 저 여자는 왜 부르세요? 규방에만 처박혀 있던 여자가 말을 탈 줄 알 리가 없잖아요.."

배은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문서현은 무심하게 걸음을 옮기더니 말 한 마리 앞에 멈춰 섰다. 그러더니 날렵한 동작으로 말에 올라탔다.

그 모습이 유달리 늠름하고 시원스러웠다.

이를 본 구경꾼들 사이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말 위에 반듯하게 앉은 문서현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하기만 했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과거 배도진이 말발굽 아래에서 그녀를 구해준 그날 이후로, 남몰래 승마를 배웠다는 사실을.

언젠가 그와 나란히 말을 타고 달릴 수 있기를 헛되이 꿈꾸면서 말이다.

그리고 오늘.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실력을 세상에 드러낸 지금.

문서현의 심장에는 배도진을 향한 그 어떤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랴!"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말이 거침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눈부신 햇살 아래 꼿꼿하게 등줄기를 세우고 달리는 여인.

그 여인을 향해 배도진마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다소 깜짝 놀라 그녀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문서현을 새삼 다시 보게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의 넋 나간 시선을 확인한 문희주의 눈동자에 찰나의 질투심이 번뜩였다는 것을.

어느새 문서현이 말을 타고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문희주가 몰래 고삐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히힝!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문희주의 말이 미친 듯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맞은편에 있던 문서현이 이상함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눈 깜짝할 사이 맹렬하게 질주해 온 거대한 말의 그림자가 턱밑까지 덮쳐왔다.

문서현은 황급히 고삐를 당겼다.

하지만 말을 멈춰 세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말의 발버둥만 더욱 거세게 만들었을 뿐.

그리고 그녀의 등 뒤.

일찌감치 이변을 알아채고 쫓아온 배도진의 얼굴에는 경악이 서려 있었다.

"어머니!"

"희주야!"

날카로운 말울음과 다급한 비명이 귓가에 폭발하듯 울려 퍼졌다.

문서현은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이윽고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쿵!

몸이 바닥에 처박히는 순간.

날아가듯 몸을 날려 문희주를 받아내는 배도진의 모습이 문서현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문희주를 제 등 뒤로 단단히 감싸 안고 있었다.

배은우의 작은 체구 역시 쏜살같이 달려왔다.

아이는 문서현을 가차 없이 지나쳐 곧장 문희주에게로 향했다.

숨기지 못한 걱정이 아이의 두 눈에 가득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고요?"

한편, 문서현은 숨을 쉴 때마다 칼에 찔리는 것처럼 아파왔다.

그러나 배도진 부자는 단 한마디 걱정도 건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에는 오직 질책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말을 탈 줄도 모르면서 어딜 감히 허세를 부려! 너 때문에 희주가 털끝 하나라도 다쳤다면, 널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서늘한 질책이 귓가에 꽂혔다.

문서현은 온통 문희주만 바라보는 두 부자를 쳐다보았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해명의 말은 끝내 목구멍 아래로 삼켜지고 말았다.

'방금 전 문희주가 스스로 들이받은 것을... 정말 보지 못했다고?'

그런 생각에 비웃음이 새어나왔다.

'보지 못했을 리가 없지. 그저 저들 마음속엔 문희주가 더 소중했을 뿐이야.'

그러니 문희주에겐 결코 잘못이 있을 수 없었다.

잘못한 사람은 오로지 문서현, 그녀여야만 했다.

잠시 후, 배도진은 문희주를 안고 자리를 떠났다.

배은우 역시 그 뒤를 쫓았다.

그렇게 널따란 마장에는 눈 깜짝할 새 문서현 홀로 남겨져버렸다.

그녀는 지독한 통증을 꾹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홀로 돌아갔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저택으로 돌아온 그녀는 곧장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근 채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이른 아침.

굳게 닫혀 있던 문서현의 처소에 뜻밖의 발걸음이 찾아왔다.

배도진과 배은우였다.

배도진은 손에 들고 있던 대충 손질된 여우 털을 바닥에 툭 던졌다.

배은우 역시 영지버섯과 영초를 불쑥 내밀었다.

곁에 있던 초희가 황급히 그 물건들을 받아 들었다.

이내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그녀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건... 구하기 힘들다는 백여우 털이잖아요?! 게다가 이 영지버섯 좀 보세요. 엄청 오래되어 보이는데, 족히 엄청난 값어치를 하겠어요!"

초희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핑 고였다.

목소리마저 약간 메어 있었다.

"아가씨, 나리와 세자께서 드디어 아가씨의 진심을 알아주셨나 봐요..."

문서현은 멍하니 그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저들이 제게 이런 호의를 베풀 리가 없다는 것은 속으로 빤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이런 것들을 보낸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그저 예법에 따라 감사를 표할 뿐이었다.

"감사드립..."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배도진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오해하지 마라. 네게 주는 것이 아니다. 네 바느질 솜씨가 쓸 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백여우 크기면 겉옷을 짓기에 딱 맞겠더구나. 다 지어지면 희주에게 가져다주거라. 요즘 날이 쌀쌀한데 희주가 외출을 즐기니, 바람을 막는 데 요긴할 것이다."

문희주의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때, 곁에 서 있던 배은우도 말을 거들었다.

"뭘 고마워하고 그래요? 당신한테 주는 것도 아닌데. 이 영지버섯은 탕으로 달여서 우리 어머니께 갖다 드리세요. 어제 말 타느라 고단하셨으니 몸보신 좀 하시게요."

용건을 마친 두 사람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이윽고 가차 없이 몸을 돌려 문희주의 처소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한편, 초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모처럼 그들이 아가씨의 처소에 발을 들인 이유가, 고작 상처 입은 문서현에게 문희주의 수발을 들게 하기 위함일 줄이야.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과 분통한 마음에 초희는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문서현은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웃으면 웃을수록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꼬박 오 년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전부 문희주에게 바쳤다.

하지만 문서현, 그녀는 아무것도 가질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그녀는 곧 선평후부를 떠날 테니까.

더 이상 그들과 얽힌 그 어떤 것도 헛되이 바라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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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밤을 건너 비로소 빛나다   제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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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현이 눈을 내리깔며 낮게 웃었다.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지 오래였건만.그녀는 일부러 그 대답을 맨 마지막으로 미뤄두고는 다시 한번 그에게 물었다."정말 안 갈 거예요?"서재희는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부부의 연을 맺은 지 일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자신을 밖으로 겉돌게 하는 그녀를 향해 억울함을 토로하는 듯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참 아쉽네요. 그럼 저 혼자 도성에 다녀와야겠어요."그 한마디에 서재희의 두 눈이 번쩍였다.금방이라도 사그라질 듯했던 빛이 순식간에 차올랐다.벌떡!그가 자리에서 거칠게 일어났다.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였다."나랑 같이 도성에 가겠다고요? 하지만 당신, 예전엔 분명..."과거의 일을 떠올린 서재희는 말끝을 흐렸다.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문서현이 곧바로 그의 말을 자연스레 이어받으며 미소 지었다."다시는 도성에 돌아가기 싫다, 은남현에 정착하고 싶다고 했던 말이요?""하지만 당신도 알잖아요.""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에요. 지금 내 곁에는 당신이 있는데, 내가 마주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그녀의 대답은 지극히 숨김이 없고 담담했다.마치 예전에 서재희가 수없이 그녀에게 진심을 털어놓았던 것처럼 말이다.서재희의 두 눈에 벅찬 기쁨이 차올랐다.이윽고 그가 다급하게 몸을 돌리며 내뱉었다."지금 당장 가서 짐을 챙겨야겠소."그의 걸음은 무척이나 빨랐다.멀어지는 뒷모습에서조차 벅찬 희열이 고스란히 묻어났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문서현의 가슴 한구석에 옅은 죄책감이 스쳐 지나갔다.과거에는 늘 서재희가 자신을 배려하고 맞춰주기만 했다.그러니 이번만큼은 스스로 마주할 차례였다.어떤 과거는, 영원히 등 돌리고 살 수만은 없는 법이니까.사흘 뒤.둥근 달이 높이 뜬 밤, 마차가 흔들리며 도성으로 향하는 관도를 달리고 있었다.수레 안의 문서현은 서재희의 어깨에

  • 긴 밤을 건너 비로소 빛나다   제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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