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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Author: 월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9 19:44:17

“하윤 씨, 제발 진정하세요.”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하윤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세아가 협탁에 놓인 와인잔을 집어 들었기 때문이다.

유리잔을 쥔 그녀의 손이 하윤의 시야에 들어왔다. 세아는 도혁을 힐끗 바라본 뒤, 마치 겁에 질려 몸을 피하려는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저 정말 싸우고 싶지 않아요.”

다음 순간 세아의 손목이 미세하게 돌아갔다.

유리잔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이 객실에 울렸다.

깨진 유리 조각이 카펫 위로 튀었고, 세아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손을 움켜쥐었다. 잔이 깨지는 순간 다른 손을 뻗어 유리 조각을 건드린 탓에 손바닥 가장자리에 가느다란 상처가 생겼다.

“아악!”

도혁이 곧바로 몸을 돌렸다.

“세아야!”

세아는 손바닥을 감싼 채 뒤로 비틀거렸다. 가운 소매 아래로 붉은 피가 번지고 있었다.

도혁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상처를 살폈다.

“괜찮아? 손 보여 줘.”

하윤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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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켜요.”“그런데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세아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도혁 씨가 하윤 씨를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하세요?”하윤의 손끝이 굳었다.세아는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사랑하는 여자라면 그렇게 울게 두지는 않을 텐데. 아까 도혁 씨가 누구부터 챙겼는지 보셨잖아요.”하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당신이 일부러 잔을 깨뜨렸다는 거, 나 봤어요.”세아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그래요?”그녀는 붕대 감긴 손을 내려다보았다.“그런데 도혁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데요.”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세아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하윤 씨가 아무리 설명해도 도혁 씨는 제 말을 믿을 거예요. 오늘 보셨으니까 아시겠죠?”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지만 하윤은 움직이지 않았다.세아는 그녀의 손에 들린 선물 봉투를 바라보았다.“아, 그리고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그녀가 웃었다.“하윤 씨한테는 별로 좋은 날이 아니었겠지만요.”하윤의 손이 떨렸다.세아는 그 모습을 잠시 감상하듯 바라보다가 객실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고개를 돌렸다.“참, 한 가지 더요.”하윤은 입술을 깨물었다.“다음에는 도혁 씨 앞에서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마세요. 그 사람, 감정적으로 구는 여자 정말 싫어하거든요.”세아는 잠시 하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낮게 덧붙였다.“오늘도 하윤 씨가 조금만 참으셨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요.”그 말이 끝나자 그녀는 다시 객실로 돌아갔다.하윤은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세아는 자신이 남편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보다, 하윤이 그것을 목격하고 화를 냈다는 사실을 더 큰 잘못으로 만들고 있었다.그리고 도혁은 이미 그 판단을 받아들였다.***하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새벽 한 시가 넘었다.현관에 들어서자 익숙한 집 안 풍경이 보였다. 거실에는 그녀가 아침에 꽂아 둔 꽃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식탁 위에는 두 사람의 결혼사진이 담긴 작은 액자가

  • 나를 죽인 당신이 무너졌다   19화

    세아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지만, 하윤은 그녀의 손을 놓치지 않았다. 상처는 손바닥 가장자리에 있었고, 잔을 떨어뜨리는 순간 세아가 다른 손을 뻗었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우연히 떨어뜨린 것이 아니었다.하윤이 그 사실을 말하려는 순간, 도혁이 직원에게 먼저 지시했다.“필요한 처치만 하고 나가 주세요. 오늘 일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부탁합니다.”직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잠시 뒤 객실 문이 닫히자 도혁은 하윤을 돌아보았다.“세아한테 사과해.”하윤은 움직이지 않았다.그는 세아의 어깨에 자신의 재킷을 걸쳐 주었다. 그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하윤은 자신이 모르는 동안 두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시간을 보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못 들었어?”“내가 왜 사과해야 해?”도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네가 다치게 했잖아.”“안 했어.”“서하윤.”하윤은 두 손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당신이 저 여자랑 잤어. 그걸 내 눈으로 봤는데, 지금 나보고 저 여자한테 사과하라는 거야?”“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세아가 다친 건 별개의 문제야.”“그럼 당신 잘못은?”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하윤은 한 걸음 다가갔다.“당신이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잊어버리고, 다른 여자랑 호텔에 있으면서…….”“그만하라고 했어.”도혁은 그녀의 말을 끊고 탁자 위에 놓인 선물 봉투를 집어 들었다.그리고 하윤의 손에 밀어 넣었다.“이거 가지고 집에 가.”하윤은 구겨진 리본을 내려다보았다.몇 달 동안 준비한 선물이었다. 남편이 웃는 얼굴로 받아 줄 거라 생각하며 포장지까지 골랐던 물건을, 도혁은 아무렇게나 돌려주었다.“내가 나중에 이야기할 테니까 지금은 조용히 돌아가.”하윤은 봉투를 붙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도혁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사과부터 하라고.”세아가 조심스럽게 그의 소매를 잡았다.“도혁 씨, 괜찮아요. 저 정말 사과 안 받아도 돼요.”그녀는 하윤을

  • 나를 죽인 당신이 무너졌다   18화

    “하윤 씨, 제발 진정하세요.”“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하윤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세아가 협탁에 놓인 와인잔을 집어 들었기 때문이다.유리잔을 쥔 그녀의 손이 하윤의 시야에 들어왔다. 세아는 도혁을 힐끗 바라본 뒤, 마치 겁에 질려 몸을 피하려는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렸다.“저 정말 싸우고 싶지 않아요.”다음 순간 세아의 손목이 미세하게 돌아갔다.유리잔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쨍그랑!날카로운 파열음이 객실에 울렸다.깨진 유리 조각이 카펫 위로 튀었고, 세아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손을 움켜쥐었다. 잔이 깨지는 순간 다른 손을 뻗어 유리 조각을 건드린 탓에 손바닥 가장자리에 가느다란 상처가 생겼다.“아악!”도혁이 곧바로 몸을 돌렸다.“세아야!”세아는 손바닥을 감싼 채 뒤로 비틀거렸다. 가운 소매 아래로 붉은 피가 번지고 있었다.도혁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상처를 살폈다.“괜찮아? 손 보여 줘.”하윤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자신은 세아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기는 했지만 유리잔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세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하윤을 바라보고 있었다.“하윤 씨……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이러지 마세요.”그녀의 목소리는 애처롭게 떨렸지만, 정작 하윤을 바라보는 눈빛은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하윤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뭘……?”세아는 대답하지 않은 채 도혁의 품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도혁 씨, 저 정말 괜찮아요. 하윤 씨도 화가 나셨으니까…….”그 순간 도혁이 고개를 들었다.하윤은 남편의 눈빛을 보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쳤는지 깨달았다.“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하윤은 고개를 저었다.“나 아무것도 안 했어.”“세아 손에서 피 나는 거 안 보여?”“저 여자가 혼자 잔을 떨어뜨린 거야.”도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만해.”“정말이야. 내가 만지지도 않았어.”그녀가 한 걸음 다가가자 도혁은 세아를 자신의 등 뒤로 물렸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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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죽인 당신이 무너졌다   16화

    결혼기념일 밤, 서하윤은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호텔 침실의 문을 열었다.객실 안에는 달콤한 향수와 와인 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반쯤 닫힌 커튼 사이로 스며든 도시의 불빛이 흐트러진 침구 위에 희미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침대 옆 협탁에는 입술 자국이 남은 와인잔 두 개가 놓여 있었으며, 바닥에는 남자의 넥타이와 검은색 스타킹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하윤은 문턱에 선 채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다.침대에 기대앉아 있던 서도혁의 셔츠는 가슴께까지 풀려 있었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윤세아는 인기척을 느끼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윤과 눈이 마주쳤는데도 서둘러 몸을 가리기는커녕, 도혁의 가슴 위에 얹혀 있던 손을 느긋하게 거두며 침대 끝에 걸쳐 둔 가운을 집어 들었다.그 순간 하윤의 시선이 세아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 멈췄다.지난달 도혁의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보석상 영수증이 떠올랐다. 남편은 거래처에 보낼 선물이라고 했고, 하윤은 아무런 의심 없이 포장지 색상까지 골라 주었다. 그때 자신이 선택한 짙은 남색 포장지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그 목걸이가 지금 다른 여자의 목에서 빛나고 있었다.“하윤아.”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의 얼굴에는 당황이나 미안함보다 불쾌감이 먼저 떠올랐다. 하윤의 손에 들린 종이봉투를 내려다보던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침대에서 일어났고, 바닥에 떨어진 넥타이를 주워 들면서도 아내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하윤은 대답하지 못했다.호텔에 오기 전까지 그녀는 남편을 놀라게 해 줄 생각이었다.오늘은 결혼 삼 주년이었다.도혁은 아침부터 지방 일정이 있다며 저녁 식사 약속을 미뤘다. 하윤은 실망한 내색을 하지 않은 채, 몇 달 동안 모아 둔 돈으로 남편이 오래전부터 눈여겨보던 시계를 샀다.처음 그 시계를 보았을 때 도혁은 가격표만 확인하고 돌아섰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는 이유였다. 하윤은 그런 남편에게 처음으로 쓸모없는

  • 나를 죽인 당신이 무너졌다   15화

    “한 통도 빠뜨리지 말고.”잠시 후 세아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세요? 하윤 씨는 이미…….”“죽었지.”도혁은 그 말을 내뱉고도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죽었다고 해서 네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사람은 아니야.”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하윤이는 내 아내였어.”전화를 끊은 뒤에도 그는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그 말이 세아에게 어떤 의미로 들렸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도혁에게 하윤은 여전히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책임지고, 자신이 끝낼 수 있다고 믿었던 관계 안에 있는 여자였다.그런데 누군가 자신의 허락 없이 그 관계의 마지막 흔적까지 가져갔다.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불쾌했다.그 시각, 최명석은 원장실 안쪽의 잠긴 서랍을 열고 있었다.서류철 맨 아래에는 공식 기록에 첨부되지 않은 사진 한 장이 남아 있었다.그는 사진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병실 침대에 앉아 있는 하윤이 보였다.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은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었고, 양손은 무릎 위에서 서로를 세게 붙잡고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그러나 사진 오른쪽, 벽에 걸린 작은 거울에는 다른 사람의 모습이 비쳐 있었다.윤세아였다.그녀는 하윤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최명석은 사진을 뒤집었다.뒷면에는 날짜와 짧은 메모가 남아 있었다.그날은 하윤이 처음으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지 못한 날이었다.최명석은 메모를 손가락으로 가렸다.사진이 촬영된 날의 기록에는 하윤이 심한 불안 증세를 보였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최명석이 기억하는 하윤은 그날 유난히 조용했다.윤세아가 병실에서 나간 뒤에도 그녀는 한동안 침대에 앉아 있었다.누군가 말을 걸어도 고개를 들지 않았고, 식사 시간이 지나도록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그날 밤, 간호사가 그녀에게 종이와 펜을 가져다주었을 때 하윤은 한참 동안 빈 종이만 내려다보았다.그리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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