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인 당신이 무너졌다

나를 죽인 당신이 무너졌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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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혁은 불륜녀 윤세아의 거짓말을 믿고 아내 서하윤을 정신병원에 가뒀다. 살려 달라는 애원은 외면당했고, 차가운 병실에서 하윤은 존엄마저 짓밟혔다. 그녀가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도혁은 다른 여자와 행복을 꿈꿨다. 그리고 3년 후, 도혁에게 아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뒤늦게 드러난 학대와 음모 앞에서 그는 미친 듯이 무너지지만, 죽은 줄 알았던 하윤은 살아 있었다. 자신을 구한 남자 백도겸의 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제 도혁은 자신이 죽음으로 내몰았던 아내에게 용서를 구걸하고, 하윤은 그녀를 지옥에 가둔 이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매달릴수록 그녀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 간다. 한때 그녀를 버렸던 남자는 이제 눈길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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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1화

“서하윤 데려와.”

서도혁은 마지막 결재 서류에 서명을 마친 뒤 만년필 뚜껑을 닫았다. 맞은편에 서 있던 오승재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다음 일정표를 펼쳤다.

오전 열한 시에는 해외 투자사와 화상회의가 예정되어 있었고, 오후에는 윤세아가 오래전부터 참석하고 싶어 했던 주얼리 브랜드의 비공개 행사가 잡혀 있었다. 저녁에는 어머니와의 식사 약속까지 있었다. 그 사이에 아내와의 이혼 문제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삼 년이나 미뤄 둔 일이었다.

“이번에는 변호사만 보내지 말고 직접 데려와. 서명할 서류가 몇 장 있으니까.”

도혁은 일정표 한쪽에 표시된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병원에서 나오는 게 싫다고 버티면 퇴원 절차부터 밟아. 비용이 얼마나 들든 상관없으니까 알아서 처리해.”

승재가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도혁은 일정표를 내려놓았다.

“왜, 서하윤이 또 거절했어?”

“회장님, 사모님은 모셔 올 수 없습니다.”

창밖으로 늦가을의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집무실 안에서는 공기청정기가 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갔고, 책상 한쪽에는 오전에 결재해야 할 서류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오전이었다.

도혁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승재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또 무슨 핑계지?”

승재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십 년 넘게 도혁을 보좌한 비서실장은 중요한 계약이 무산되었을 때조차 좀처럼 표정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서하윤 사모님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도혁은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승재를 바라보더니, 이내 어이없다는 듯 짧게 웃었다.

“누가?”

“사모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말조심해.”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멀쩡한 사람을 치료받으라고 보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승재는 도혁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사망 사실이 기재된 보고서가 확인됐습니다.”

“언제?”

도혁이 책상 가장자리를 짚고 일어났다.

“언제 죽었다는 거냐고.”

“삼 년 전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도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뭐?”

“입원하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셨다는 보고가 남아 있습니다.”

도혁은 천천히 책상을 돌아 나왔다. 그가 다가올수록 승재의 어깨가 굳어졌지만, 도혁은 상대의 표정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삼 년 전에 죽은 사람을 내가 오늘 데려오라고 했다는 거야?”

“회장님께 직접 전달된 사망 보고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넌?”

도혁의 손이 승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넌 알고 있었어?”

승재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당시 사모님 관련 연락은 별도 관리 대상이었습니다. 사망 보고서도 그 자료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승재가 대답하지 못하자 도혁은 거칠게 손을 놓았다. 밀려난 승재의 등이 서류장에 부딪혔고, 위에 놓여 있던 파일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보고서 가져와. 누가 작성했고, 누가 접수했으며, 왜 나한테 올라오지 않았는지 전부 확인해.”

도혁은 흐트러진 넥타이를 바로잡았다.

“내 아내가 죽었는데 내가 몰랐다는 게 말이 돼?”

그의 분노는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자신에게 보고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향해 있었다.

도혁은 책상 위에 놓인 이혼 합의서를 집어 들었다.

삼 년 동안 미뤄 둔 이혼이었다.

서류 첫 장에는 서하윤의 이름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그는 그 이름을 바라보다가 승재에게 물었다.

“사망 관련 서류는 어디 있어?”

“원본과 발급 경위는 확인 중입니다.”

“그럼 그것부터 알아봐. 언제, 어디서, 누가 확인했다는 건지.”

도혁은 합의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나한테 알리지도 않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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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서하윤 데려와.”서도혁은 마지막 결재 서류에 서명을 마친 뒤 만년필 뚜껑을 닫았다. 맞은편에 서 있던 오승재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다음 일정표를 펼쳤다.오전 열한 시에는 해외 투자사와 화상회의가 예정되어 있었고, 오후에는 윤세아가 오래전부터 참석하고 싶어 했던 주얼리 브랜드의 비공개 행사가 잡혀 있었다. 저녁에는 어머니와의 식사 약속까지 있었다. 그 사이에 아내와의 이혼 문제를 정리할 생각이었다.삼 년이나 미뤄 둔 일이었다.“이번에는 변호사만 보내지 말고 직접 데려와. 서명할 서류가 몇 장 있으니까.”도혁은 일정표 한쪽에 표시된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병원에서 나오는 게 싫다고 버티면 퇴원 절차부터 밟아. 비용이 얼마나 들든 상관없으니까 알아서 처리해.”승재가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도혁은 일정표를 내려놓았다.“왜, 서하윤이 또 거절했어?”“회장님, 사모님은 모셔 올 수 없습니다.”창밖으로 늦가을의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집무실 안에서는 공기청정기가 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갔고, 책상 한쪽에는 오전에 결재해야 할 서류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오전이었다.도혁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승재를 바라보았다.“이번에는 또 무슨 핑계지?”승재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십 년 넘게 도혁을 보좌한 비서실장은 중요한 계약이 무산되었을 때조차 좀처럼 표정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서하윤 사모님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도혁은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방금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승재를 바라보더니, 이내 어이없다는 듯 짧게 웃었다.“누가?”“사모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말조심해.”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멀쩡한 사람을 치료받으라고 보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승재는 도혁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사망 사실이 기재된 보고서가 확인됐습니다.”“언제?”도혁이 책상 가장자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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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서하윤을 정신병원에 보낸 날은 비가 내렸다.도혁은 그날의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현관 앞에는 검은 승합차가 서 있었고, 거실에는 어머니와 병원 관계자, 경호 직원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처음에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그러나 낯선 남자들이 양쪽에서 다가오자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여보, 이 사람들 누구야?”도혁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로 업무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병원에서 나온 사람들이야.”“무슨 병원?”“당분간 치료받을 곳.”하윤은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남편이 농담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나 아픈 데 없어.”도혁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네가 아픈지 아닌지는 의사가 판단하는 거야.”그날 하윤은 윤세아가 자신의 물건을 뒤지고, 남편과의 관계를 숨기지 않은 채 자신을 조롱했다고 주장했다. 도혁은 그런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처음에는 화를 냈고, 그다음에는 듣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아내가 입을 열기만 해도 피곤해졌다.하윤은 그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설명하려 했다.“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세아가…….”“또 세아 얘기야?”도혁이 소파에서 일어났다.“하윤아, 네가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알아?”그 말에 하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도혁에게 다가왔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최대한 차분하게 유지하려 애썼다.“당신이 내 말을 한 번만 제대로 들어 주면 돼. 내가 거짓말하는지 확인이라도 해 봐. 그날 세아가 우리 집에 왔을 때…….”“그만.”도혁은 그녀의 손이 자신의 팔에 닿기 직전 몸을 피했다.“네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할 때까지 난 더 이상 이 얘기 안 해.”하윤은 고개를 저었다.“인정할 잘못이 없는데 어떻게 인정해?”“그러니까 치료가 필요하다는 거야.”그 말과 동시에 경호 직원들이 움직였다.하윤은 뒤로 물러서다가 거실 탁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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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회장님.”승재의 목소리가 기억을 끊었다.도혁은 어느새 집무실 창가에 서 있었다. 손에 쥔 휴대전화 화면에는 삼 년 전 아내와 주고받은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마지막 메시지는 하윤이 보낸 것이었다.여보, 나 정말 무서워. 여기 이상해. 한 번만 와 줘.그 아래에는 읽음 표시만 남아 있었다.도혁은 자신이 그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때는 하윤이 관심을 끌려고 한다고 생각했다.“무슨 일이지?”승재가 얇은 서류철을 내밀었다.“당시 회사 서버에 보관된 병원 연락 내역과 음성 파일을 찾았습니다. 공식 진료기록은 별도 절차가 필요하지만, 비서실에 접수된 자료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도혁은 서류철을 받아 들었다.입원 첫날에는 보호자 면회 요청이, 사흘째에는 직접 통화 요청이 기록되어 있었다. 일주일째부터는 환자 상태에 관한 긴급 연락이 이어졌다.처음에는 거의 매일 연락이 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간격이 길어졌다.도혁은 날짜를 확인하다가 미간을 찌푸렸다.“왜 연락이 끊겼지?”승재는 노트북을 열어 자료를 확인했다.“병원에서 걸려 온 연락 자체가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도혁은 서류를 넘기다가 한 장에서 손을 멈췄다.보호자 직통 연결 제한.그 아래에는 자신의 지시가 기록되어 있었다.그제야 기억이 났다.하윤이 입원한 지 열흘쯤 되었을 때였다.도혁은 해외 투자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세아는 그의 옆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에는 고가의 와인이 놓여 있었다.그때 승재가 조용히 다가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회장님, 사모님께서 통화를 요청하십니다.”도혁은 짜증스럽게 화면을 확인했다.“또?”“상태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의사한테 얘기하라고 해.”“직접 회장님과 통화하고 싶어 하십니다.”도혁은 세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한숨을 내쉬었다.“계속 받아 주니까 저러는 거야.”그는 휴대전화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앞으로 하윤이 전화는 연결하지 마.”승재가 잠시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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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녹음 속에서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잡음 때문에 정확한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곧이어 하윤이 급하게 말을 이었다.“약도 먹었어요. 밥도 남기지 않았고요. 그러니까 오늘은…….”무거운 것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하윤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아파요! 손목 좀 놓아주세요. 제가 걸어갈게요.”거친 마찰음이 이어졌다.“어제도 거기 있었어요. 너무 추워서 잠을 못 잤어요.”하윤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을 끊어 가며 애원했다.“불 좀 켜 주시면 안 돼요? 바닥이 너무 차가워요. 문 밑으로 물이 들어와서 이불도 다 젖었는데…….”무언가 금속성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하윤의 목소리가 더욱 다급해졌다.“어두우면 아무것도 안 보여요. 문 두드리지 않을게요.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그 순간 다른 사람의 짧은 말소리가 들렸다.하윤이 비명을 질렀다.“다시 그 방에 넣지 마세요!”도혁은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었다.“제발요! 저 정말 잘못했어요. 이제 아무 말도 안 할게요. 남편한테 전화해 달라고도 안 할게요!”짧은 정적 뒤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하윤이 누군가에게 끌려가고 있는 듯했다.“여보…….”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나 좀 데려가 줘…….”무언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녹음이 끊겼다.도혁은 움직이지 않았다.노트북 화면에는 재생이 끝났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승재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자 도혁이 먼저 노트북을 붙잡았다.“다시 틀어.”두 번째 재생이 시작되었다.하윤의 숨소리가 집무실에 울렸다.오늘은 말 잘 들었잖아요.어제도 거기 있었어요.다시 그 방에 넣지 마세요.도혁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그는 하윤이 병원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아내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엄격한 치료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 전까지는 조금 불편한 생활을 겪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그러나 녹음 속 하윤은 남편에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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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때 하윤 씨가 저를 보고 많이 흥분했어요. 제가 찾아간 게 오히려 안 좋았던 건 아닐까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도혁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세아는 그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서둘러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눈을 내리깔고 손가락으로 손수건 끝을 만지작거렸다. 자신을 변호하려는 말보다 슬픔을 참는 모습이 도혁에게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병원에서 하윤이 목소리가 녹음된 파일을 찾았어.”세아가 고개를 들었다.“목소리요?”“누군가한테 끌려가는 것 같더군.”세아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어떤 상황이었는데요?”“그 방에 다시 넣지 말라고 울었어.”세아의 손가락이 손수건을 세게 움켜쥐었다.하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숙였다.“하윤 씨가 많이 힘들었나 봐요.”“당신은 그 방이 뭔지 알아?”“제가 어떻게 알겠어요.”세아는 도혁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저는 병문안을 갔을 뿐이에요. 치료에 관해서는 의사 선생님들이 더 잘 아시겠죠.”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도혁에게 다가갔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동작은 조심스러웠고,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도혁 씨가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도혁의 눈이 움직였다.“내가 왜 자책해야 하지?”세아는 잠시 당황한 듯 입술을 벌렸다.“그냥…… 부부였으니까요. 무슨 일이 있었든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세아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쓸어내렸다.“도혁 씨는 하윤 씨가 좋아지길 바라서 병원에 보낸 거잖아요. 그때 의사도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고요.”그 말은 도혁이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세아는 언제나 그가 자신을 의심하지 않도록 필요한 말을 골라 주었다.도혁은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다 천천히 떼어 냈다.“오늘은 먼저 가.”세아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같이 저녁 먹기로 했잖아요.”“일이 남았어. 혼자 있고 싶어.”세아는 더 권하지 않았다.그녀는 도시락 뚜껑을 다시 덮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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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세아는 낮에 하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처음 알았다는 듯 놀랐다. 하지만 사망 당일 병원에 방문했다면 적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물론 방문했다는 사실만으로 사망을 알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도혁은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여러 번 따져 보았다.세아가 병원에 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녀가 하윤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증거는 없었다.오히려 하윤이 세아를 괴롭혔다고 주장하던 날들이 떠올랐다.그때 세아는 늘 울고 있었고, 하윤은 화를 내고 있었다.도혁은 당연히 세아의 말을 믿었다.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상한 점이 있었다.하윤은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여자였다. 그런 하윤이 세아만 나타나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도혁은 그것을 질투와 병적인 집착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왜 세아는 자신을 그토록 미워하는 하윤을 여러 번 찾아갔을까.“방문했을 때 누구를 만났는지 확인해.”승재가 메모를 남겼다.도혁은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세아에게는 아직 말하지 마.”“알겠습니다.”“괜한 오해로 사람을 몰아가고 싶지는 않으니까.”승재는 고개를 숙였다.그러나 도혁의 손가락은 여전히 세아의 이름 위에 머물러 있었다.밤 아홉 시가 넘어서야 승재가 마지막 자료를 가져왔다.“회장님, 당시 통화 기록을 추가로 확인했습니다.”도혁은 창가에 서 있었다.어두워진 도심에는 수많은 불빛이 떠 있었고, 멀리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자동차의 붉은 후미등이 길게 이어졌다.그는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뭔데.”승재는 출력물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사모님 사망일로 보고된 날짜에 병원에서 회장님 휴대전화로 연락을 시도한 기록이 있습니다.”도혁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나한테?”“네.”그는 책상으로 돌아와 종이를 집어 들었다.발신 번호.수신 번호.통화 시각.그리고 처리 결과.수신 거절.도혁의 눈이 그 글자 위에서 멈췄다.“내가 거절했다고?”“당시 제가 긴급 연락이라고 말씀드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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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도혁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그러나 후회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분노였다.누가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았는지, 병원에서 왜 아내를 그렇게 대했는지, 누가 그 일을 허락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자신이 그 모든 일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만은 아직 인정하지 않았다.“차 준비해.”승재가 고개를 들었다.“지금 말씀이십니까?”“병원에 가.”“원장과의 면담은 내일 오전으로…….”“삼 년 전에 죽었다는 내 아내 이야기야.”도혁은 외투를 집어 들었다.“난 지금 가야겠어.”검은 세단이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왔다.도혁은 뒷좌석에 앉아 병원 방문 기록을 다시 펼쳤다. 승재는 조수석에서 병원 측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차창 밖으로 도심의 불빛이 빠르게 흘러갔다.도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윤세아였다.그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다 전화를 받았다.“왜.”“아직 회사예요?”세아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다정했다.“저녁도 안 먹고 일하는 거 아니죠? 아까 가져간 죽은 먹었어요?”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도혁 씨?”“나 병원에 가는 중이야.”수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지금요?”“응.”“이렇게 늦은 시간에요? 내일 가도 되잖아요.”도혁은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었다.“당신이 하윤이 죽은 날에도 병원에 갔더군.”세아의 숨소리가 미세하게 달라졌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요?”“방문 기록을 봤어.”그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도혁은 무릎 위에 놓인 서류를 내려다보았다.“그날 무슨 일 있었어?”“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하윤이 만났어?”세아가 숨을 들이켰다.“도혁 씨, 왜 저한테 그런 걸 물어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상처받은 기색이 묻어 있었다.“저도 하윤 씨가 그렇게 됐다는 걸 알고 너무 놀랐어요. 그런데 지금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도혁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의심하는 게 아니라 묻는 거야.”“그날은…….”세아는 말을 멈췄다.잠시 후 세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도혁 씨가 그 병원에 가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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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병실은 여러 번 옮겼던 것 같아요.”도혁의 시선이 멈췄다.“여러 번?”세아는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은 듯 서둘러 덧붙였다.“정확히는 몰라요. 그때 직원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서요.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흐릿하고요.”도혁은 무릎 위의 방문 기록을 내려다보았다.세아는 조금 전까지 하윤을 잠깐 봤을 뿐이라고 말했다.그런데 병실을 여러 번 옮겼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어떤 직원이 그런 말을 했는데?”“글쎄요. 이름까지는 기억 안 나요.”세아는 가볍게 웃으려 했지만 목소리가 자연스럽지 않았다.“도혁 씨, 지금은 너무 예민해져 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이상하게 들릴 거예요.”도혁은 그녀의 말을 끊지 않았다.세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정한 목소리로 덧붙였다.“병원에 도착하면 연락해요. 걱정되니까.”통화가 끝났다.도혁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검은 철문 너머로 정신병원의 오래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불이 꺼진 창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고, 건물 한쪽 끝에는 다른 곳보다 창문이 작고 좁은 별관이 붙어 있었다.도혁은 그 건물을 바라보다가 승재에게 물었다.“하윤이 병실 이동 기록도 확인했어?”“아직 확보하지 못했습니다.”“그것도 알아봐.”차가 병원 정문 앞에 멈춰 섰다.경비실의 작은 창문 너머에서 직원 한 명이 일어나더니 차 쪽으로 다가왔다.도혁은 문을 열기 전 다시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세아와의 통화가 끝난 자리 아래로 삼 년 전 하윤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여보, 나 정말 무서워. 여기 이상해. 한 번만 와 줘.그는 화면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찬바람이 외투 사이로 파고들었다.정문을 지키던 직원이 다가와 방문 목적을 묻자 도혁은 대답 대신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서하윤 보호자입니다.”직원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그는 명함과 도혁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곧바로 경비실 안쪽을 돌아보았다.“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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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서도혁이 마지막으로 아내를 본 것은 삼 년 전, 정신병원의 철문 앞에서였다.그날 하윤은 맨발이었다. 집에서 끌려 나오던 순간 신발 한 짝이 벗겨졌지만, 누구도 그것을 주워 주지 않았다. 차가운 바닥에 닿은 발끝은 벌써 붉게 얼어 있었고, 그녀는 두 팔을 붙잡은 직원들 사이에서 도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여보, 나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 제발 내 말 좀 들어줘.”하윤의 목소리는 오래 울어 쉰 탓에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끌고 가는 직원들의 손을 뿌리치려다 중심을 잃었고, 그대로 도혁의 코트 자락을 붙잡았다.도혁은 구겨진 옷깃을 내려다보았다.“여기까지 와서도 이러는군.”그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보다 짜증이 짙게 배어 있었다. 하윤은 손끝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가 조금만 자신을 믿어 준다면, 그동안 벌어진 일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세아가 거짓말한 거야. 당신이 본 사진도, 내가 보냈다는 문자도 전부…….”“윤세아 이름 그만 입에 올려.”도혁이 하윤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냈다. 손톱이 코트의 거친 천에 걸리면서 하윤의 손끝이 붉게 일어났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네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집에 돌아올 생각 하지 마.”하윤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로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이 더 끔찍했다.“얼마나 있어야 하는데?”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곁에 서 있던 원장에게 시선을 돌렸다.“필요한 치료는 전부 진행하세요. 비용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습니다.”원장은 고개를 숙이며 서류철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도혁은 다시 하윤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마지막 희망이 남아 있었다.“다만 외부에 소란이 알려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특히 저한테 쓸데없는 연락이 오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군요.”하윤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여보…….”“당신이 조용히 지내면 나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도혁은 더는 그녀를 보지 않고 돌아섰다.뒤에서 하윤이 그의 이름을 불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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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내가 그걸 보러 여기까지 왔습니다.”원장은 서류철을 열었다.맨 위에 놓인 것은 하윤의 마지막 병실 사진이었다.도혁은 처음에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사진 속 여자는 지나치게 말라 있었다. 헐렁한 환자복 아래로 쇄골이 도드라졌고, 목덜미에는 핏기가 없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몸은 작고 위태로워 보였으며, 두 손은 무릎 위에 얌전히 모여 있었다.그런데 손목을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 도혁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붉고 검게 변한 자국이 양쪽 손목을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이게 뭡니까?”그가 사진 한쪽을 손가락으로 눌렀다.최명석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입술을 적신 뒤, 치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흔적이라고 설명했다.“환자분이 간혹 흥분하셨습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위험이 있을 때는 보호 조치가 필요합니다.”도혁은 사진을 들어 올렸다.“하윤이가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요?”“그런 가능성이 있었다는 뜻입니다.”도혁은 코웃음을 쳤다.“그 여자는 남한테 손찌검할 배짱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다치게 했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그의 말에는 아내를 향한 믿음보다 원장의 설명이 자신의 기억과 맞지 않는다는 불쾌감이 담겨 있었다.하윤은 울고 매달리고, 끝내는 자신을 지치게 만드는 여자였다. 하지만 누군가를 때리거나 해칠 만큼 대담하지는 못했다. 도혁은 그렇게 생각했다.“환자분이 자신을 다치게 하는 행동을 반복하셨습니다.”최명석이 덧붙이자 도혁의 입가가 비틀렸다.“그건 그럴 수 있겠군요. 집에서도 자기 몸을 함부로 굴리면서 사람을 놀라게 한 적이 있으니까.”그는 사진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손목에 남은 자국이 생각보다 선명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그래도 이런 흔적이 남을 만큼 묶어 놓는 게 정상적인 치료입니까?”“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시행했습니다.”“필요했다는 말만 반복하지 말고, 정확한 기록을 보여 주세요.”최명석은 서류철 안쪽에서 다른 사진 몇 장을 꺼냈다.첫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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