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전이진은 여운초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온 뒤 그녀를 꽃필무렵에 바래다주지 않고 바로 관성호텔로 갔다. 그러고는 여운초에게 말했다.“병원까지 같이 다녀왔는데 점심에 밥 사줘.”일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던 여운초는 침묵에 잠겼다.‘왜 매번 나보고 밥을 사라고 하는 거지?'여운초는 전이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담담히 물었다.“어디 가서 먹고 싶어?”“난...”전이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 표시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지만 번호가 기억에 남았다. 여 대표였다.“큰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어.”그는 여운초에게 알렸다.그녀는 잠시 눈살을 찌푸리다 다시 침착하게 말했다.“내 생각에는 급한 김에 너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것 같아.”여 대표는 정말 급해 났고 두려워 났다.그와 아내는 한 줄에 묶인 사람이라 비록 겉으로는 아내가 죄명을 다 쓰고 있지만 조사를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경찰이 깊이 조사하기만 하면 그는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그들 부부가 큰 힘을 들여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공든 탑이 무너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급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아내가 그의 충고를 듣지 않는 것이 마음속으로 원망스럽기만 했다.아내에게 더 이상 전태윤 부부와 싸우지 말라고 수없이 설득했었다. 그들에게 몇백억의 재산이 있어도 여전히 전씨 일가를 이길 수 없다고.여운별이 형을 선고받으면 받았지, 그들 부부가 밖에서 멀쩡히 기다리기만 하면 딸이 형을 마치고 출소한 후 딸에게 좋은 조건을 마련해 줄 수 있다.여운별이 사람을 고용해 해하려 한 것은 그다지 엄중한 일은 아니었다. 하예정이 무술을 할 줄 알고, 전씨 집안의 경호원이 몰래 그녀를 따라다지만 않았더라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하지만 지금은 그저 몇 년 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딸은 아직 젊어 몇 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도 겨우 20대이다. 비록 감옥살이는 불미스러운 일이지만 법을 어긴 데다가 하예정의 양해를 구할 방법이 없어 법의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전이진은 여운초에게 한마디 던지고는 그녀가 대답하든 말든 일단 전화를 받은 후 휴대폰을 여운초 앞에 내밀었다.“빨리 받아, 같이 죽는 게 싫으면.”그녀는 마지못해 그의 휴대폰을 받았다.여 대표는 이미 전화 저편에서 말하고 있었다.“이진 씨, 시간 돼요? 제가 밥 살게요.”여운초는 전이진의 휴대폰을 귓가에 갖다 대고 큰아버지의 물음에 침착하게 대답했다.“큰아버지, 이진 씨는 운전 중이어서 전화 받기 불편해요.”“운초? 이진 씨랑 같이 있었어? 그럼 좀 전해줘, 내가 밥 살 테니까 시간 있냐고 말이야. 너도 같이 와.”여 대표는 조카딸의 목소리를 듣고 전이진과 함께 있는 것을 알고 온화한 태도를 보였다.“이진 씨, 큰아버지가 밥 사준다고 하는데, 시간 괜찮냐고 묻네.”“당연히 괜찮지, 우리 지금 밥 먹으러 가는 길이잖아. 여 대표님한테 관성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겠으니 빨리 오라고 해.”오늘은 여운초의 돈을 쓰지 못하게 됐다.나중에 다시 써도 마찬가지, 어쨌든 그는 평생의 시간이 있으니까.그녀의 돈을 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매번 그에게 밥을 사줄 때마다 돈을 아까워하는 모습이 웃겼다. 그래서 그녀의 돈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그녀가 아까워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여운초: ...누가 너랑 평생을 살겠대?’“큰아버지, 이진 씨가 하는 말 들으셨죠?”여 대표는 전화 저편에서 대답하였다.“알았어요, 지금 바로 관성 호텔로 갈게요.”말을 마친 그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여운초는 핸드폰을 전이진에게 돌려주었다.전이진은 차를 몰며 농담 조로 말했다.“네 큰아버지가 나에게 찾아와 도와달라고 하는 건 아마도 널 나한테 시집보내겠다는 뜻일 텐데, 너 나에게 시집올거야?”“...”“지난번에 너에게 못된 짓을 하려 했던 그 나쁜 놈, 공씨 어르신이 이미 가법으로 혼을 내주었어. 그냥 한번 너에게 알려주는 거야. 네 엄마가 그 사람을 찾은 건 관성에서의 공씨 가문의 명성을 생각해서야. 공씨 가문에
여운초는 화를 참으며 말했다.“난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못생겼다고 할 수 있겠어? 이진아, 결혼은 큰일이지 소꿉장난이 아니야. 나랑 넌 기껏해야 아는 사이일 뿐이지,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어떻게 결혼에 관해 토론할 수 있어?”전이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그를 설득한 줄 알았지만 곧 부드러운 목소리가 드려왔다.“결혼은 반드시 사귀는 전제하에 하는 게 아니야. 우리 형은 형수님과 혼인신고를 할 때야 만났는데 지금 잘만 지내고 있잖아. 꿀처럼 달콤하게 잘 지내서 누가 봐도 부럽고 질투가 나는데.”“...”‘태윤 씨와 예정 씨가 초고속 결혼을 한 걸 보고 설마 전씨 일가의 모든 도련님이 따라배워 초고속 결혼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다들 너무 바빠 연애하기 귀찮아서 태윤 씨를 배우고 싶어 하는 건가?’전이진은 또 입을 열었다.“만약 먼저 사귀는 것을 원한다면 그것도 간단해, 지금 네 남자친구로 될 수 있어. 그럼 우리 이제부터 사귀는 거다?”“...넌 내 의견은 묻지도 않는 거야?”“네 대답은?”“난 너와 같은 도련님이랑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리니 더 이상 나를 놀리지 말아줘.”처음 전이진을 만났을 때, 그녀는 그가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전이진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생각도 했지만, 나중에 스스로 부정했다.그녀는 장님이고 전이진은 전씨 일가의 둘째 도련님이다. 전씨 일가의 어르신들이 아무리 마음이 넓고 가풍이 좋다고 해도 장님인 그녀를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니까.“왜 나와 안 어울린다고 하는 거야? 우리 둘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내가 고칠게.”전이진은 할머니로부터 그녀의 사진을 받은 순간, 자기가 아무리 싫어해도 결국 할머니가 원하는 대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예 여운초를 아내로 대했다.“난 장님이잖아.”전이진은 웃으며 말했다.“음... 내가 내 눈을 찔러 장님으로 될 수는
관성 호텔에 도착한 전이진은 차를 세우고 먼저 내리더니 재빨리 몸을 돌려 조수석 쪽으로 가서 여운초가 내리기를 기다렸다.그녀가 내리자, 그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이진아.”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쪽을 향해 섰다.그가 더 가까이 다가오자 익숙한 남성 향기가 그녀의 코를 찔렀다.전혁진은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더니 자기 얼굴에 가져다 댔다.“운초야, 내 얼굴 한번 잘 만져봐 봐. 비록 네가 잠시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하지만,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으며 내 모습을 상상해 봐. 난 네가 할 수 있다는 걸 알아, 넌 아주 똑똑하잖아.”여운초는 조용히 그를‘쳐다보았다'.한참 후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그는 곧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가 손으로 자기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도록 내버려 두었다.길고 부드러워 보이는 그녀의 손가락은 의외로 거칠었다.온통 굳은살투성이였기 때문이다.그녀의 손은 보기엔 매우 부드럽고 아름다워 보였다.여운초는 손이 가져다주는 느낌에 따라 전이진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그가 자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왔음을 눈치채고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손을 움츠렸다.전이진의 눈빛은 그녀의 붉은 입술을 깊이 주시하고 있었다.그녀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진 매우 아름다운 여자다. 심지어 연분홍빛이 나는 입술을 가지고 있다. 그는 가까이에서 그녀의 붉은 입술을 보며 그 입술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드러운지 한번 맛보고 싶었지만, 감히 행동하지는 못했다.그녀의 마음속에는 높은 벽이 하나 쌓여 있는데 그는 아직 절반도 오르지 못했으니 너무 건방지게 굴어서는 안 되었다. 아니면 그녀의 마음속에서의 인상이 원점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큰아버지는 오셨을까?”여운초가 먼저 침묵을 깼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애매한 분위기가 남아있었다. “글쎄.”전이진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내 손 잡고 들어갈래?”“아니, 괜찮아.”여운초는 지팡이가 있어서 혼자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전이진도 더
“운초야, 너 어떻게 전이진 씨랑 함께 왔어?”여 대표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에 여운초는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병원에 예정 씨 언니를 보러 갔다가 우연이 이진이를 만났는데 이진이가 저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큰아버지 전화를 받은 거예요.”여 대표는 잠자코 있다가 관심 조로 물었다.“하예진 씨는 어떠냐?”“위험은 벗어났어요. 전 엄마 대신 사과드리러 간 거고요.”“운초야, 그 일은 절대 네 엄마가 한 것이 아니다. 판결을 받기 전에 네 엄마가 한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여 대표는 불쾌한 듯이 말했다.“증거가 없다면 경찰도 엄마를 집에서 데려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날 일에 참여한 사람은 아무도 도망가지 못하고 모조리 잡혔잖아요. 큰아버지가 방금 돌아왔다고 해도 이 일에 대해 전해 들었을 거 아니에요. 경찰이 아무나 억울하게 잡아가지 않을 거라고 전 믿어요.”사실 그녀도 경찰이 왜 엄마를 붙잡았는지 모르고 있다.경찰은 아주 신속하게 엄마를 데려갔다.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아무리 큰 세력을 손에 쥐고 있다 해도, 나쁜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꼭 잡히게 된다. 악이 어떻게 선을 이길까.물론 그녀는 엄마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고, 구할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여 대표는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서둘러 메뉴를 전이진에게 건네주며 주문하라고 했다.“메뉴는 따로 필요 없어요.”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으로서 자기 집에서 연 호텔에서 식사하는데,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그는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다.여 대표가 산다고 하니, 그는 전혀 사양하지 않고 호텔의 메인 요리를 많이 주문했다. 다만 운전해야 하기에 좋은 술을 몇 병 주문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니면 여 대표의 카드를 한번 본격적으로 긁을 수 있을 텐데.그는 주문을 마친 후 여 대표를 향해 말했다.“오늘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거죠? 용건이 있거든 바로 말해요. 난 원래 추측 같은 거 하는 건 질색이라서요.”“참으로 호탕하시네요
여 대표는 여운초를 한번 쳐다보고는 말했다.“전이진 씨, 제 의붓딸은 다른 사람과 달라요. 눈이 보이지 않잖아요. 이진 씨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앞으로 평생 시집가지 못할 겁니다.”“큰아버지!”운초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전 누구에게도 시집가지 않아요. 이진이가 나에게 책임질 필요도 없고 나도 아무런 손실도 없어요. 그날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요. 그러니 이진이도 나에게 책임질 필요가 없어요.”여 대표는 그녀의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그녀의 윗사람이다.의붓아버지이기도 하고.여 대표가 이렇게 전이진에게 요구하자 여운초는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운초야, 내가 네 아버지께 너를 잘 키워 좋은 시댁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어. 이 큰아버지는 너를 잘 보살피지 못해 네가 장님이 된 것에 이미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어. 만약 네게 좋은 시댁을 찾아주지 못한다면 나는 앞으로 죽어도 네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을 거야.”여 대표의 목적은 전이진이 여운초에 대한 인상을 망치고 전이진과 전씨 일가 사람들이 그녀를 무시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만약 조카딸이 전씨 일가 할머니가 찜한 둘째 손자 며느릿감이라는 것을 안다면 피를 토할지도 모른다.“전이진 씨, 한번 잘 생각해 봐요...”전이진은 여운초를 한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여 대표님의 말에 따르면 내가 운초에게 책임을 지지 않으면 운초는 평생 혼자 살게 될 텐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 있겠어요. 운초야...”“이진아!”여운초는 굳은 얼굴로 전이진의 말을 끊었다.“이진아, 난 네가 나에게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그녀는 또 여 대표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진지하게 말했다.“큰아버지, 더 이상 이진에게 나를 책임지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필요 없어요! 큰아버지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니잖아요, 똑바로 말씀하세요. 저를 핑계로 삼을 필요가 없잖아요.”“이진아, 큰아버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네가 나서서 하예정 자매에게 좋은 말을 좀 해서 우리 엄마가 가벼
룸에서 나온 전이진은 여운초를 데리고 다른 룸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음식을 주문한 후 그녀더러 밥을 사달라고 했다.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내가 네 큰아버지에게 강요당해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까 당연히 밥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야?”여운초는 웃기면서도 어이없었다.“밥 안 사주겠다고 말한 적 없으니까 핑계 안대도 돼.”“밥 다 먹고 집까지 바래다줄 테니까 물건들 챙겨서 집에서 나와. 큰아버지가 너에게 못되게 굴까 봐 걱정돼.”“집에서 나오면? 갈 데도 없는데.”“우리 집에 와. 나 너희 집 근처에 집이 있으니까 우리 집으로 이사 와. 내가 도우미를 청해서 널 돌봐주도록 할게. 걱정하지 마, 난 그곳에서 살지 않을 거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결혼하기도 전에 동거한다고 말할 수도 있으니까.”“...이진아, 더 이상 결혼이라는 말 입에 담지 말았으면 해. 난 큰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을 거니. 그리고 점원에게 가게 안의 작은 방을 치워달라고 부탁할 거야. 잠시 가게에서 지내면 돼. 훨씬 편하기도 하고.”그녀는 큰아버지까지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 다시 여씨 집안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그전에는 나와서 사는 것이 확실히 더 안전했다.큰아버지가 급한 김에 그녀를 죽일지도 모를 일이니까.처음에 큰아버지와 엄마는 짜고 들어 그녀를 죽이려고 했는데 그녀는 두 눈을 대가로 목숨을 건졌다.“그래.”전이진은 자신의 명의하에 있는 별장으로 이사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어둠이 찾아왔다. 또 하루가 지났다.전태윤 부부는 우빈을 데리고 캠핑카를 타고 병원에 왔다.무당의 굿이 정말 유용한 건지, 아니면 엄마가 깨어난 것을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후에는 편히 잠들어 지금은 컨디션이 평소처럼 회복되었다.그에 비해 하예정의 컨디션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녀는 이틀 동안 잠을 잘 자지 못하여서 두통이 심했다.집을 나서서 병원에 오기 전에 그녀는 전태윤 몰래 약효가 센 약을 먹었다. 머리가 아플 때는 계속 이 약을 먹었었다. 부작
“이모, 안녕히 계세요.”우빈이는 성소현을 향해 작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면서 뽀뽀를 날리는 제스처까지 해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전태윤이 직접 이경혜 모녀를 병원 건물 밖으로 배웅했다.“전 대표, 요즘 수고했어.”이경혜는 감격스러운 듯 말했다.“자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자네가 도와준 덕분에 예정 자매가 위기를 잘 넘기게 됐어. 고마워.”전태윤은 부드럽게 말했다.“예정이는 제 와이프고 예진 씨는 제 처형이에요. 모두 제 가족이니 제가 그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그가 하예정 자매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자매가 그와 만난 후부터 시비에 휘말리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자네처럼 책임감 있는 남자에게 예정이를 맡기니 안심이야.”이경혜는 줄곧 전태윤이 관성의 걸출한 인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 딸의 안목은 이만저만 높은 것이 아니니까. 다만 인연이 없을 뿐.하지만 그녀의 조카사위가 되었으니 적어도 남의 집 사위가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이경혜 모녀는 떠났다.전태윤은 그들이 차에 타는 것까지 보고서야 돌아갔다.“태윤아.”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자 노동명이 한 손에는 과일 바구니를, 다른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든 채 그에게 다가왔다.“동명아, 처형 병실에 지금 넘쳐나는 게 과일 바구니랑 꽃다발이야.”“그건 다른 사람이 준 거잖아.”노동명은 하예진의 병실에서 어떻게든 존재감을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날도 어두워졌는데 또 와서 우리와 자리다툼 할 작정이야? 지금 처형은 깨어나서 네가 다시 남아서 밤을 지새우면 오히려 안정을 취할 수 없게 될 거야. 그러면 처형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거고.”어젯밤, 하예진은 아직 혼수상태라 노동명이 옆에서 밤을 새우며 지켜도 괜찮았다.이젠 그녀가 깨어났으니, 전태윤은 노동명이 다시 밤을 지키는 것을 반대했다.그의 처형은 노동명이 자기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다.노동명은 그에 대답했다.“그냥 보러 온 거야. 안 보면 마음이 놓이지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