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초는 평소에 자기 의견도 내세우지 않으며 투명 인간처럼 살아왔다. 가끔 몇 마디 할 때도 조곤조곤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가장 독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저는 한 대표님을 100% 믿습니다! 저는 내 편인 사람을 의심하지 않고 의심되는 사람을 내 편으로 들이지도 않아요.”그들은 입을 벌리고 또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신들이 했던 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운초가 한동호를 통해 여씨 그룹을 빠르게 장악한 걸 보면 어쩌면 정말 그들이 부당 수익을 챙기고 탐낸 증거가 있을지도 모른다.“운초야... 앞으로 후회하지 않길 바랄게. 만약 여씨 그룹이 네 손에서 망하면 우리 모두 죽어서 하늘에 계신 작은 외삼촌을 볼 면목이 없다.”최씨 도련님은 그렇게 한마디 내던지고 일행들에게 말했다.“가자.”그러자 여운초가 담담하게 말했다.“사촌 오빠들 그러면 안녕히 가세요. 배웅하지 않겠습니다.”그들은 씩씩거리며 가게를 떠났다.그리고 전이진은 직원과 경호원들에게 말했다.“저 화분들을 다시 선반 위에 놓아.”그들은 400만 원 넘게 배상금을 지불하면서 이 화분들을 가져가는 것을 까먹었다.‘쌤통이다!’전이진은 여운초에게 말했다.“만약 저 사람들이 또다시 소란을 피우러 오면 전화해. 내가 사람을 데리고 와서 때려줄게. 그러면 얌전해질 거야.”“도련님, 저희 두 명이면 제대로 혼 내줄 수 있습니다!”한 경호원이 입을 열었다. 그는 전이진이 자기의 실력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다. 사실 전씨 집안 경호원들은 모두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이때 옆에 있던 다른 경호원이 그를 잡아당겼다.멍청이!‘도련님 매력 어필 시간이잖아. 왜 끼어들어?’그제야 그 경호원은 눈치를 챙기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화분을 옮기면서 전이진의 시선을 피했다.이때 여운초가 말했다.“그러지 않을 거야. 나 혼자 있는 줄 알고 들어오면서 화분을 깨뜨렸어. 만약 네가 있는 걸 알았다면 저
전씨 그룹.전태윤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퇴근 준비를 하였다. 하예정이 그를 데리러 올 것을 알고 그는 일찌감치 건물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가 계단을 내려갈 때 마침 퇴근 시간이라 오가던 직원들은 그를 보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그가 문 앞에 서서 가지 않는 것을 보고 고위층 직원들은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다가가서 물었다.“대표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아니야. 예정이를 기다리는 중이야. 나를 신경 쓰지 말고 얼른 퇴근해.”“...”그들은 전태윤이 이상하게도 일찍 내려간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하예정을 마중 나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꽃필무렵에 먼저 가서 꽃을 샀다.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혀서 조금 늦었다. 그녀가 전씨 그룹에 도착했을 때 직원들은 거의 모두 퇴근했다.그녀의 차가 천천히 전씨 그룹에 들어서자 꼿꼿하게 서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두 사람의 거리는 꽤 멀었고 전태윤은 경호원도 없이 홀로 서있었지만 하예정은 그를 첫눈에 알아봤다.그는 어디에 있든 빛났다. 키 크고 잘생기고 카리스마가 넘쳤다.평소에 하예정은 차를 주차장에 세웠지만 퇴근 시간이 지나자 오늘은 아예 건물 입구까지 몰고 갔다. 전태윤은 하예정의 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방긋 웃더니 그녀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달려갔다.그 모습을 본 하예정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전태윤더러 차에 타라고 손짓했다.그는 조수석에 놓인 장미 꽃다발을 보고 꽃다발을 안더니 웃으면서 물었다.“내꺼야?”“내가 만약 다른 남자를 위해 산 거라면 당신은 사람을 데리고 가서 이 꽃다발을 뺏어올 거예요?”그러자 전태윤이 카리스마 넘치게 대답했다.“그럼! 너는 내 와이프야. 나에게만 꽃을 줄 수 있어. 다른 남자에게 선물하면 뒤져.”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선물할 남자가 없는데.”전태윤은 그녀의 볼을 꼬집으면서 계속 말했다.“나 하나로 만족해. 왜 이제야 왔어? 다음에 꽃 선물 할 거면 일찍 와. 그러면 내가 꽃다발을 들고 퇴근할 수 있잖아. 회사 사람들
그 말을 들은 하예정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도련님들이 아부를 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큰형수인 자기에게 예의를 차린다고 생각했다.전태윤과 할머니가 그녀를 많이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가족들도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하예정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과분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전혀 거만해하지 않았다.“운초 씨와 이진이는 아직 그대로예요. 진도가 너무 느린 것 같던데.”그러자 전태윤이 의기양양해하며 말했다.“다 나보다 못하지. 나는 한 방에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하예정은 그를 째려보면서 말했다.“혼인신고 할 때 당신 표정이 그게 뭐예요. 굳어 있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내가 총을 들이밀면서 강제로 혼인신고 하러 끌고 간 줄 오해하겠어요.”“...”사실 전태윤은 그때 혼인신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그 결정을 후회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급히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합법적인 부부가 되었다. 전태윤은 할머니한테 자기 은혜를 대신 갚아달라고 강요받았기 때문이다.은혜를 갚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꼭 하예정과 결혼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하예정이 할머니에게 애교를 쓰고 달래면서 자기를 손자며느리로 인정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혼인신고를 한 후에야 그는 진정한 이유를 알았다.물론 지금 전태윤은 하예정과 결혼했기에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소현 언니와 상의했어요.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본가 쪽에 많은 마을이 있는데 마을 상태가 다 비슷비슷해요. 젊은이들은 밖에서 일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인과 아이들뿐이라서 일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밭이 대부분 황폐해졌더라고요. 내일 소현 언니와 함께 내려가 보려고요. 계약할 수 있는 건 계약하고 땅을 좀 더 구해야겠어요.”전태윤이 자상하게 대답했다.“둘이 알아서 결정해. 어떤 결정을 하던 나는 당신을 응원할 거야.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랑 말하고. 투자에 필요한 본전은 내가 얼마든지 줄 수 있어.”“먼저 빌리는 거로 할게요. 돈을
전태윤의 할머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성소현과 전태윤은 가문 실력으로 놓고 보면 어울리나 전씨 가문 며느리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호텔에 가서 저녁을 먹을까요? 당신 이따가 손님 접대도 해야 하는데 집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어요.”“그래.”그러자 하예정은 해맑게 웃었다. 비록 두 사람 사이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였지만 전태윤은 점점 더 그녀를 존중하고 그녀의 뜻을 따라줬다. 여느 부부들처럼 평범하고 충실한 삶을 살면서 가끔 낭만도 즐길 줄 알았다.전태윤은 항상 다음 생에도 그녀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전태윤에게 시집가서 다시 부부가 되고 싶었다....노씨 저택.윤미라는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맞은편에 앉은 노진규는 손에 신문을 들고 있었지만 계속 윤미라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윤미라와 노동명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또 뭔 일인데? 요즘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매일 이렇게 화내면 빨리 늙어. 화내지 마. 내일 피부과 예약하고 같이 관리받으러 가줄게.”윤미라는 무능력한 노진규를 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아줌마가 늙으면 늙었지 뭐가 어때서요. 아들이 그렇게 말을 안 듣는데 어떻게 화가 안 나요? 매일 앉아서 신문이나 보고. 당신 아들한테나 좀 신경 써요. 혼 내지도 않고 계속 제멋대로 하게 놔두니깐 얘가 이렇게 된 거잖아요.”그녀는 모든 잘못을 노진규에게 덮어씌웠다. 그러자 노진규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그래. 다 내 탓이야. 내가 잘못 가르쳐서 그래. 좋은 건 다 자기를 닮아서 그렇다고 하고 나쁜 건 다 내 탓이야? 동명이는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손자야. 어머니가 동명이를 응석받이로 키워서 이렇게 된 건데 왜 내 탓이야. 아들이 크면 다 말을 잘 안 듣기 마련이야. 그리고 이젠 나이도 거의 40이 되어가는데 왜 계속 동명의 일에 참견해. 당신이 하라는 대로 동명이가 한 적이 있어? 싫다는데 계속 그러니깐 당신만 화나는 거 아니야. 시어머니가
노진규가 말했다.“나도 동의 안 해. 근데 뭘 어쩌겠어? 이건 오롯이 동명이가 결정할 일이야. 그 녀석은 줄곧 우리 말을 안 듣잖아.”“만약 내가 예진이 찾아가서 얘기하면 그 애가 예정이한테 말할까요?”윤미라가 갑자기 물었다.“예진이는 뭣 하러 찾아가? 동명이한테 아예 마음이 없다잖아! 문제는 당신 아들이야.”윤미라는 잠시 침묵한 후 말을 이었다.“알아요, 나도. 예진이 문제가 아니란 걸. 하지만 동명이가 고집만 부리며 도통 말을 안 듣잖아요. 일단 예진이부터 손을 쓸 수밖에요. 예진이더러 그 가게 빼고 다른 곳에 가서 토스트 가게를 운영하게 하려고요. 동명이랑 멀리 떨어지게요. 나중에 동명이가 전씨 일가에 갈 때면 예진이는 못 가게 해야 해요. 두 사람 또 마주칠라.”“물론 예진이가 관성을 떠나 동명이가 모르는 곳으로 가서 살겠다면 더 좋고요. 그 아이가 동명이를 안 만난다면 나도 거액의 보상금을 줄 예정이에요.”윤미라는 진작 생각을 마쳤지만 하예진의 뒤에는 성씨 일가와 전씨 일가가 뒷받침해주고 있고 하예정과의 자매의 정이 깊어 그녀의 일이라면 하예정도 절대 방관할 리가 없다.하예정이 일단 간섭하면 전씨 일가도 함께 뛰어든다.전태윤은 아내 사랑이 지독한 팔불출이니까.윤미라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전씨 일가의 어르신은 대체 왜 전태윤에게 하예정이라는 신붓감을 정해줬을까.전이진이 말하길 여운초도 어르신이 정해준 신붓감이라고 한다.어르신의 안목 한번 참 독특할 따름이다.손주 녀석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조건을 타고났는데 어르신은 왜 그들에게 이런 조건의 신붓감을 정해준 걸까?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어르신이 전태윤 일행의 친할머니가 맞을지 의심할 지경이다.재벌가에서 서로 조건이 대등한 집안끼리 결혼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니까!“당신 지금 우리 집안과 전씨 일가의 관계를 무너뜨릴 생각이야?”노진규가 윤미라를 힐끔 째려봤다.이에 윤미라가 다급히 대답했다.“그럼 나더러 어쩌라고요? 아무튼 오늘은 싫은 소리부터 할게요. 죽는 한이 있어도
아내가 사고 칠까 봐 걱정된 노진규는 더는 막을 수 없자 마지못해 아내와 함께 문밖을 나섰다.그는 계속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기사더러 운전하라고 했다.부부는 뒷좌석에 앉아서 가는 길 내내 노진규가 아내를 타일렀다.“당신 예진이 찾으러 간 거 동명이가 알면 분명 당신이랑 대판 싸울 거야. 모자지간의 감정만 상하지 뭐. 예정이가 알면 태윤이도 알게 돼. 태윤이가 아내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 당신도 잘 알지? 예진이는 태윤의 처형인데 그런 사람을 관성에서 떠나라고 하는 건 벌집을 건드리는 거나 다름없어. 우리 집안과 전씨 일가의 관계를 완전히 무너뜨린다고.”윤미라는 머리를 기웃거리고 남편을 째려보며 말했다.“그냥 예진이 찾아가서 얘기만 한다고요. 누가 관성 떠나라고 협박한대요? 잔소리 좀 그만해요. 귀찮아 죽겠어. 우리 집안과 전씨 일가는 대대로 내려오며 돈독한 사이로 지냈어요. 내가 예진이 찾아간 걸 그 집안에서 알면 또 어쩌게요? 내가 욕을 한대요 때리기를 한대요? 그냥 얘기 좀 하겠다잖아요. 전씨 일가는 부모를 다 여의고 아무런 가정 배경도 없는 여자를 며느릿감으로 들일 순 있지만 우리 집안은 절대 안 돼요.”“모두가 전씨 일가 사람들처럼 그러지 못해요. 관성 상류층 사모님들 중 99퍼센트가 나랑 똑같은 생각일 거예요. 제 아들이 조건이 대등한 집안의 여자를 만나 결혼하길 바란다고요. 집안 조건은 예로부터 정말 중요해요. 나도 예진이를 겨냥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단지 서로 조건이 안 맞으면 이 결혼도 오래가지 못하고 트러블이 잦을 거예요. 나도 다 애들을 위해서 이런 거잖아요. 나중에 이혼하겠다고 소란을 피우면 꼴이 얼마나 흉해요.”“...”노진규는 할 말을 잃었다. 아내의 말이 일리가 있으니까.“그래 그럼 좋게 얘기해. 너무 강압적인 말투로 예진이 다그치지 말고. 그 아이 속상할라.”윤미라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성씨 일가와 전씨 일가가 뒷받침해주고 있는데 내가 어찌 감히 강압적으로 나오겠어요? 속상하긴 누가 속상해? 당신
거리가 가까워지자 하예진도 그녀를 더 똑똑히 볼 수 있었다.서현주는 전보다 훨씬 야위고 혈색도 안 좋아 보였다. 박시한 옷차림이다 보니 예리한 눈썰미가 아니면 그녀가 임신한 걸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형인 씨, 우리 가요.”서현주가 주형인에게 말했다.그녀는 이젠 주형인이 우빈이와 가까이하는 모습을 매우 꺼린다. 부자지간의 감정이 너무 애틋해 나중에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전념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서현주가 아들을 낳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만약 딸이라면 주 씨네 가족들은 틀림없이 우빈을 편애할 것이다.그녀는 나중에 계속 징역을 집행해야 하니 아이 곁에 머무를 수가 없다. 만약 딸아이가 시댁 식구들의 예쁨을 못 받고 엄마인 그녀조차 옆에 없다면 애가 얼마나 많은 서러움을 당할까?친아빠인 주형인만이 아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주우빈은 그녀의 아이보다 훨씬 행운아였다.우빈이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너무 많고 든든한 버팀목도 많아서 아이가 속상해할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된다.“우빈이 엄마랑 함께 뭐 사러 왔어?”주형인이 아들에게 물었다.“그냥 쇼핑하러 왔어요. 아빠는 뭐 샀어요?”아이는 서현주를 보더니 잠시 침묵하다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아줌마.”서현주는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빠도 이제 막 와서 아무것도 못 샀어. 우빈이 뭐 사고 싶어? 아빠가 사줄게.”주형인은 서현주의 일도 있고 하 영감 부부가 계속 막고 있어서 오랫동안 전처를 만나지 못했고 아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오랜만에 보는 아들이기에 뭐라도 사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서현주는 겨우 짓던 억지 미소마저 사라졌다.다만 딱히 뭐라 하진 않았다.이때 하예진이 이리로 걸어왔다.그녀를 본 서현주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마땅히 하예진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그녀가 하예진을 죽음의 관문을 넘나들게 한 간접적인 가해자이니까.“예진아.”주형인이 그녀를 불렀다.오랜만에 만난 전 와이프가 딴 사람으로 바뀐 것만 같
“동명 아저씨.”우빈은 노동명과 친아빠인 주형인을 대하는 태도가 똑같았다.노동명을 보자마자 하예진의 손에서 벗어나 종종걸음으로 그에게 달려갔다.이에 주형인의 안색이 더 음침해졌다.부모님과 누나가 항상 그의 앞에서 잔소리를 해댔었다. 지금 하예진에게 구애하는 사람이 있으니 당장 서현주와 이혼하고 하예진과 재결합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의 아빠도 딴사람으로 변할 거라고 했다.노동명은 우빈의 새아빠로 강 유력한 후보이다.주형인은 하예진이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고 서현주에게도 미련과 죄책감이 남아있다.감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못해 두 여자를 해쳤다.하예진은 이미 그와 이혼하고 새 출발을 하여 제법 잘살고 있다. 주형인은 더는 서현주를 해치고 싶지 않고 특히 그녀가 감방에 있을 동안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되면 서현주가 석방되어 나왔을 때 돌아갈 집조차 없기 때문이다.서현주의 친정집 오빠와 새언니들은 그녀가 체포된 이후로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렸다.부모님은 비록 그녀를 안타깝게 여기지만 연세가 있고 아들, 며느리에게 노후를 맡겨야 하니 딱히 어찌할 수가 없다.주형인마저 서현주와 이혼하면 그녀는 정말 갈 곳이 없을 것이다.주서인은 그가 하예진에겐 그토록 매정하면서 서현주에겐 뭘 이렇게 정의롭냐고 질책했다.“우빈아.”노동명은 웃으며 앞으로 다가와 우빈을 번쩍 안고 몇 바퀴 돌았다. 신난 아이는 깔깔대며 웃었다.지나가는 사람들은 사이좋은 두 사람을 보며 부자 사이로 착각할 지경이었다.노동명은 제자리에 멈춰서서 다정하게 웃으며 우빈에게 물었다.“우빈이 좋아?”“네, 너무 신나요.”아이는 너무 웃어서 작은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노동명은 아이의 앙증맞은 빨간 볼이 귀여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끝내 참지 못하고 아이의 작은 볼에 입맞춤했다.이때 우빈이도 의외로 그에게 뽀뽀했다.노동명은 기뻐서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우빈이가 뽀뽀를 해주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오늘 밤엔 세수도 하지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