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과 이혼한 지 어언 1년, 뜸했던 단톡방에서 뜬금없이 나를 태그한 반하준. [냉전도 이만하면 됐으니까 그만 돌아와. 다시 시작하자.] 나는 쌀쌀맞게 답장했다. [지금 제정신이야?] 눈치 빠른 사람들이 냉큼 분위기를 파악하고 화해를 종용했다. 반하준이 참지 못하고 또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뭘 하고 지냈어?] 나는 아기를 토닥이는 다정한 남편을 슬쩍 보고는 답장을 보냈다. [산후조리 중.] 시끌벅적하던 단톡방이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반하준이 108통의 전화를 걸어왔지만, 나는 싸늘하게 외면했다. 한때 그를 목숨처럼 사랑했던 여자는 이제 그의 곁에 없었다.
もっと見る“반현민, 너 왜 그래?”반 아이들이 궁금한 듯 물었다.민이는 그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옷 한 벌을 품에 안고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저택으로 돌아온 그는 몹시 풀이 죽은 모습이었고 심지어 오소정조차도 그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도련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학교 선생님께 전해 듣기로는 오늘 쉬는 시간에 우셨다고 하던데, 혹시 강윤정이 괴롭혔나요?”민이의 일거수일투족은 반 씨 가문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소정은 민이가 정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다는 것밖에는 알지 못했다.민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힘없이 대답했다.“정이는 절 때리지 않았어요. 제발 저 혼자 내버려 두세요. 잠시 혼자 있고 싶어요.”민이는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종이봉투에 포장된 옷을 꺼내 들었다.그는 그 옷을 끌어안고 침대에 앉아 얼굴을 옷에 파묻었다.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그 냄새는 마치 따뜻한 양수처럼 그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불안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듯했다.하지만 민이는 옷에 밴 이 냄새를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민아를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게다가 정이는 민이에게 이 옷 한 벌만 줄 것이고 앞으로는 다른 옷을 주지 않을 거라고 했다.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한 가족이 아니니까.“흐윽...”눈물이 쏟아지자 민이는 황급히 눈물을 닦고는 옷을 멀리 치웠다. 강민아의 옷에 눈물과 콧물이 묻을까 봐 걱정됐던 것이다.이것은 강민아가 유일하게 남겨준 옷이므로 소중히 간직해야 했다.밤이 되자 반하준이 돌아왔고 오소정은 그에게 민이의 학교 상황을 보고했다.“담임 선생님 말씀으로는 도련님이 강윤정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에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분명 강윤정이 도련님을 때린 게 틀림없어요. 도련님은 체면도 있고 강윤정을 여동생이라 생각해서 그러는지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것 같더
정이가 말했다.“이건 우리 생일날 엄마가 특별히 새로 사 입었던 옷이야. 너는 제대로 본 적도 없을걸.”정이가 이 말을 하자 민이는 고개를 숙였다.“그날은 나와 엄마에게 끔찍한 날이었어. 며칠 전부터 너와 생일을 함께 보내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제대로 보내지도 못했잖아. 엄마는 그때 입었던 옷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슬픈 기억 때문에 아마 다시는 안 입을 것 같아.”정이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민이야, 내년 생일에도 우리 같이 보낼 수 없겠네.”민이는 기억력이 좋은 아이였다. 그날 생일날 강민아가 왔을 때, 그냥 대충 한 번 쓱 훑어봤을 뿐인데도 강민아가 그날 입었던 옷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언제부터인가 그는 강민아에게 점점 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강민아의 얼굴만 보면 가슴속에서 짜증스러운 열기가 솟아올랐던 것이다.강민아가 입만 열면 민이는 귀를 막고 싶었다. “엄마는 너무 촌스러워요! 현이 형처럼 옷도 멋있게 입으면 좋잖아요!”“엄마, 이제 학교에 데리러 오지 마세요. 창피해요!”“현이 형처럼 멋진 오토바이 타고 데리러 올 수는 없어요?”그즈음 그는 강나현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며 강나현의 모든 행동을 따라 하려 했고 강나현 같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엄마는 다른 재벌가 사모님들보다 옷차림이 수수했지만 학교 학부모들은 강민아의 옷차림이 단아하고 친근하게 느껴져 호감을 가졌다.하지만 엄마가 강나현처럼 옷 잘 입고 멋진 바이크 타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할머니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저 촌스럽고 무능한 시골 여자일 뿐이었다.생일날, 강민아는 신경 써서 예쁘게 꾸몄다. 민이 기분 생각해서 일부러 튀는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 민이한테 창피함을 주기 싫었던 것이다.하지만 화장하고 머리까지 예쁘게 한 강민아를 민이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지난 시간 동안, 민이는 애써 자신의 생일날 겪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외면하려 발버둥쳤다. 그는 끊임없이 강민아를 찾으며 그녀가 다시 돌아와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길 간절히
양자 테크, 대표실.강민아는 무심코 휴대폰을 들었다가 회사 단체 채팅방에 안 읽은 메시지가 수천 개나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회사 내부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그녀는 서둘러 채팅방을 열어 채팅 기록을 오늘 아침 시간대로 스크롤 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단체 채팅방에 사진 한 장을 게시한 것을 발견했다. 사진 속에는 안채린이 양손 가득 커피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저 커피,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열다섯 잔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누가 부신에 정보원 심어놨냐? 자수하면 용서, 저항하면 엄벌한다!][누가 부신에 정보원 하나 없겠어? 이건 내 친구가 보내준 거야.]잠시 후, 또 다른 익명의 사용자가 양자 테크를 퇴사한 직원들의 근황 사진을 공유했다. 이들은 한때 부신의 파격적인 제안을 받고 이직했지만 현재는 모두 최하위 직급으로 강등되어 고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친구가 그러는데, 안채린 따라간 사람들 모두 제대로 낚였다고 생각한대. 지금 안채린한테 해명하라고 난리도 아니라던데.][내가 그랬잖아. 부신 그 보스는 사람 뼈까지 발라 먹는 냉혈한이라고. 서경에서 유명한 흡혈 자본가 밑에 들어갔으니 껍데기라도 안 벗겨진 게 다행이지.]강민아는 채팅 기록을 대충 훑어보다가 육성민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육성민은 깨진 드론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오늘 아침, 드론이 네 집 발코니에 침입했었어. 드론에 저장된 코드와 메모리 영상을 분석해 보니 부신 소유였어. 아침에 단지 밖 CCTV에 찍힌 영상을 확인해 보니 아침 7시에 반 씨 그 개자식의 차가 단지 밖에 멈춰 서있더라고. 아마 그놈이 드론을 조종해서 네 집 발코니로 보낸 것 같아. 드론이 빨래 건조대에 걸린 옷을 훔쳐 가려고 할 때 내가 격추시켰어.]육성민이 또 물었다.[그 개자식은 네 옷 훔쳐서 뭐 하려는 수작이야?]강민아도 반하준이 왜 저러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답장을 하려다 문득 그녀는 아침에 정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민이가 그녀의 옷 한 벌
“반하준 씨,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죠? 당신 비서가 저한테 커피 열여덟 잔이나 사 오라고 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업무 리스트에는 전부 서류 출력에 제본 작업뿐이더라고요.”안채린은 분을 참지 못하고 반하준에게 달려들어 따지듯 말했다. 남자는 냉랭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추며 되물었다.“그 정도 업무 처리 능력도 안 된다는 건가요?”안채린은 심호흡을 한 후, 억울한 듯 강조했다.“지금 저를 단순 잡무나 시키려는 거냐고요. 우 대표님께서 엄청난 연봉을 제시하며 저를 미린국에서 스카우트해 왔다는 사실을 잊으신 건 아니겠죠? 양자 테크에서는 이사 자리까지 보장받았었는데 강민아 씨만 중간에 끼어들지만 않았더라면 저는 분명 양자 테크의 CEO 자리에 올랐을 거예요.”반하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당장 부신을 떠나 양자 테크로 복귀하든가, 아니면 주어진 허드렛일이나 성실히 처리하든가.”안채린은 격앙된 표정으로 반하준을 응시하며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반하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이렇게 단순한 잡무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부신의 청소 부서에서 사람을 더 뽑고 있으니 그쪽으로 가시죠. 청소는 할 줄 알겠죠?”안채린은 거의 이를 갈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런 잡일이나 시키려고 날 스카우트 한 거예요?”반하준은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럼 뭘 기대한 건데요? 언제든 부신을 떠나도 상관없어요. 내가 억지로 붙잡아 둔 것도 아니고.”안채린은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부신에 첫 출근한 날,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면 서경에서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순간, 안채린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다시 물었다.“거금을 들여 날 데려와서 직원들 허드렛일을 시킨다고요? 그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신다면 기꺼이 해드리죠.”“거금?”반하준은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생활 보조 인턴 월급이 백만인데 제대로 못 하면 인사팀에 당장 해고하라고 할 겁니다.”안채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한
강민아는 잠시 멈칫했다. 민이의 상황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평소에 그녀가 곁에 없으면 잠을 못 잤다.민이는 어렸을 때부터 예민한 아기여서 강민아가 시시각각 신경 쓰지 않으면 끝없이 울었다.다만 철이 들면서 자신이 강민아에게 너무 의존한다는 것을 깨닫고 일부러 그녀를 멀리했지만, 잠잘 때는 여전히 강민아가 필요했다.‘내가 없는 밤에 민이는 어떻게 지냈을까?’강민아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그녀가 말했다.“우리가 반 씨 가문을 나올 때, 옷들을 다 챙겨 오지 않았어.”“나도 민이에게 그렇게 말했어요.”정이는 입을 삐죽 내밀며 덧붙였다.“근데 민이가 그러는데 엄마가 남겨둔 옷은 다 버렸대요.”이런 짓을 한 사람이 반하준인지 연진숙인지는 강민아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그녀는 반 씨 가문을 떠날 때, 짐 가방 하나를 들고 바로 나왔다. 전부 다 챙겨갈 수도 없으니 반 씨 가문 사람들이 남은 물건들을 모두 버릴 거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강민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옷 가지고 와.”정이의 얼굴에 순식간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고마워요. 엄마.”아이는 의자에서 깡충 뛰어내려 강민아에게 달려가 그녀의 볼에 뽀뽀했다.강민아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정이가 제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봤다.정이는 옷장을 열었다. 강민아의 옷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이는 턱을 매만지며 민이에게 어떤 옷을 줘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강민아가 정이를 배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론 한 대가 그들의 집 베란다 창문 앞에 멈춰 섰다.드론에는 정교한 기계 발톱이 장착되어 있었는데 기계 발톱이 베란다 방충망을 열자 드론이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그 시각,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검은색 마이바흐가 서 있었고 반하준은 차 안에 앉아 드론을 조종하고 있었다.드론 카메라를 통해 강민아의 베란다에 널린 옷들을 관찰하던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빨래 건조대에 널린 속옷을 무시하려 했다.그는 변태가 아니었으니
반하준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욕망의 빛으로 물들어 어두운 밤보다 더 짙은 색으로 번뜩였다.제대로 미쳤다. 어떻게 이런 이상한 꿈을!꿈속의 장면은 다시 생각해 봐도 수치스러웠다.이불을 움켜쥐던 반하준은 축축한 열기를 느끼고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샤워기 아래에 서서 물을 맞아도 몸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는 강민아가 머물렀던 침실로 향했다.도우미가 정리한 탓에 강민아의 침실은 텅 비어 있었다.반하준은 강민아가 자던 큰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였다. 몇 번이나 세탁해서 이부자리에 강민아가 남긴 체취는 완전히 사라졌다.“아빠.”갑자기 앳된 목소리가 들려 깜짝 놀란 반하준이 서둘러 두 손으로 지탱한 채 몸을 일으키자 잠옷을 입은 민이가 두 손으로 손잡이를 감싼 채 조심스럽게 문 앞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반하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꾸짖었다.“한밤중에 안 자고 뭐 해, 몽유병이야?”“아빠는 왜 엄마 방에 있어요?”반하준은 2초간 멍하니 있다가 답했다.“몽유병 때문에.”그의 말이 떨어지자 아들이 손발을 동원해 침대 위로 오르려는 모습이 보여 서둘러 쫓아냈다.“왜 여기로 올라와? 내려가!”민이는 두 손으로 침대에 엎드린 채 불쌍한 표정으로 반하준을 바라보았다.“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 방 엄마가 자던 침대에서 자면 꿈에서 엄마를 볼 수 있을까요?”아들의 말에 반하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다리가 불편해 침대에 오르는 것조차 힘든 민이를 반하준은 손을 뻗어 침대 위로 들어 올렸다.그가 민이를 침대에 눕히자 민이는 베개를 껴안고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볼을 부풀렸다.“이젠 여기서 엄마 냄새가 안 나요.”반하준의 목울대가 꿈틀거리다가 그가 입을 열었다.“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으면 정이한테 연락해서 내일 학교로 몰래 엄마 옷 한 벌 가져다 달라고 해.”침실이 어두워서 민이는 반하준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그저 아빠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생각뿐이었다.“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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