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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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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94화
지언은 순간 멍해졌다.‘뭐라고?’마치 누군가 리모컨으로 정지 버튼을 누른 듯, 방 안의 시간이 한순간 멈춘 느낌이었다.“크흠!”정적을 깬 건 다름 아닌 조기봉이었다.그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 말했다.“그 여자분, 이쪽으로 모셔 와요.”잠깐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다.“예의 바르게요.”“네.”지언의 비서는 짧게 대답한 후, 조용히 고개 숙이고 문밖으로 나갔다.지훈은 아직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조차 못 하는 큰형과 벌써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는 부모님, 그 옆에서 팝콘이라고 꺼낼 기세로 구경하는 재석과 정은을 번갈아 쳐다봤다. “크흠...”지훈은 일부러 크게 헛기침하며 말했다.“그러게 난 아니라니까? 진짜 아니라니까? 근데 형, 진짜 대단하다... 말없이 애 하나 키워버렸네? 와, 진짜 대단하다니까...”“됐고, 지훈아. 입 닫고 구석에 앉아 있어. 분위기 더 망치지 말고.”조기봉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지훈이 말문이 막혔다.‘내 인생, 왜 이렇게 대접 못 받냐...’잠시 후, 문 너머에서 다시 노크 소리가 났다.그 소리에 방 안의 모두가 숨을 삼켰다.‘왔어...!’조기봉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들어오세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딸깍’ 열리고, 비서가 문 옆에서 조용히 손짓했다.그다음 한 여자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트렌치코트, 청바지, 낮은 굽의 플랫슈즈.단정하지만 수수한 옷차림.키가 크고, 이목구비는 뚜렷했으며, 무표정한 얼굴에서 묘한 고요함과 단단함이 느껴졌다.눈에 확 들어오는 타입이었다.지훈은 들어오고 있는 여자를 찬찬히 훑어보며 속으로 생각했다.‘아, 저런 게 형 취향이었구나... 양유미랑은 완전 반대네?’양유미는 전형적인 재벌가 스타일.고급스럽고, 정제돼 있고, 가끔은 사랑스럽게도 굴 줄 아는 여자.누구에게 소개해도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맞선 상대’.하지만 지금 이 여자는 편한 옷차림에 표정도 싸늘하고... 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그와 달리, 지언은 여자의 얼굴을 보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93화
“하지만 지금 문제는, 우리가 확신할 수 없다는 거야. 혹시나 착오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네가 말했듯이, 가장 빠른 방법은 유전자 검사겠지. 근데 그건 시간이 걸려. 그런데 지금은 네가 검사 결과지를 갖고 있잖니?”“그게 너랑 이 중 누군가의 관계를 확실히 증명할 수 있다면, 한번 보여줄래? 진짜라면... 우린 반드시 받아들일 거야.”현우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할아버지 말, 틀린 건 없지.’잠깐 후, 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메고 있던 작은 가방을 풀어 앞에 두고 뒤적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문서 한 장을 꺼냈다.지언이 손을 내밀려는 순간, 조기봉이 재빠르게 가로채며 먼저 받았다.지언은 민망한 듯 손을 거두고, 주먹을 쥐어 헛기침만 했다.“아버지, 어때요? 대체 누구예요?”지훈은 목을 꿀꺽 삼켰다.‘설마 진짜 내가 무심코...?’그동안 계속 부정하던 지훈조차 지금은 약간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반대로 지언은 전혀 흔들림 없이 여유로웠다.‘나는 아니야. 절대 아니야. 100%.’‘이건 누가 봐도 둘째 쪽이지.’하지만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설마’가 ‘진짜’가 될 수도 있는 법이었다. 조기봉은 결과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한순간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리고 단번에 지언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지언은 자기 아버지의 눈빛을 마주하자 점점 불안해졌다. 강서원이 뒤이어 결과지를 낚아채 보더니, 똑같은 반응으로 큰아들을 바라봤다.지언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아니, 아버지, 어머니, 제발 말 좀 해주세요! 왜 두 분이 다 저만 보시는 거예요?!”참다못한 지훈도 훅 앞으로 달려와 직접 보고 말겠다는 듯 얼굴을 들이밀었다.그리고 역시 똑같은 얼굴로 지언을 바라봤다.‘이거, 진짜 나야?’지언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믿기지 않는 눈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진짜 제 아들인가요?”조기봉은 결과지를 지언 가슴팍에 ‘탁’하고 눌러주며 말했다.“직접 확인해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92화
지언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남자아이에게 물었다.“맛있어?”남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냥 그래요. 우리 집 과수원에서 직접 키운 사과보단 덜 달아요.”지언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마당도 아니고, 너희 집에 과수원이 있어?”“네, 있는데요? 그게 왜요?”‘어디서 굴러들어 온 애길래 저렇게 당당하지...?’지언이 뭐라고 더 물으려던 찰나, 문이 벌컥 열렸다.조기봉과 강서원이 먼저 들어왔고, 그 뒤를 따라 눈을 굴리며 딱 봐도 온갖 상상을 하고 있는 조지훈이 들어섰다.마지막으로는 재석과 정은이 함께 들어왔다.양유미는 옆방에 따로 대기 중이었다. 조씨 가문 내부의 문제에 외부 사람을 들일 수는 없으니까.결과가 나오는 대로 양유미에게는 따로 알려줄 예정이었다.정은은 잠시 주춤했다.‘나... 들어가도 되는 건가?’그 순간, 재석이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정은은 좀 어색했다.‘신부도 못 들어오는 회의실에... 나는 왜...?’하지만 재석은 단단한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넌 내 사람이야.’강서원은 정은의 존재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강서원의 모든 시선은 소파에 앉은 아이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계속 보면 볼수록 낯이 익다.’‘저 표정... 저 눈매... 설마...?’그 순간, 지언이 다시 아이에게 조용히 물었다.“이름이 뭐니?”“아레스요.”“우리가 다 알아듣는 말로 해줄래?”“현우라고 부르면 돼요.”지언은 잠시 숨을 고르며 말했다.“좋아, 현우.”그는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낮추고, 표정도 가라앉혔다.“네가 이 유전자 검사지를 들고 왔다는 건, 이미 누가 너의 친부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여긴 다 가족이야. 굳이 숨기지 않아도 돼.”현우는 망설임도 없이,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당연히 아저씨죠, 아빠.”지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지금 농담할 분위기 아니야.”“저도 농담 아니에요.”“정말로 내가 네 아빠라고 생각해?”“그럼요.”현우의 말투엔 1도 흔들림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91화
지언은 유전자 검사 결과지의 마지막 페이지를 곧장 펼쳤다.검사 결과, 제출된 샘플 A와 샘플 B는...그 문장을 보는 순간, 지언의 얼굴은 당혹감을 넘어서 완전히 얼어붙었다.‘이게 무슨 말이지?’지언은 재빨리 고개를 들어 재석과 정은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재석은 당황한 얼굴로 멈춰 섰다. 정은은 수상하다는 듯 재석을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재석 씨, 지언 오빠... 지금 당신을 본 거 같은데요?”재석은 인상을 찌푸렸다.“왜 나를 봐?”정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정확히 말하면,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본 직후에 당신을 봤다는 거죠. 그러니까...”정은의 입에서 나지막이 흘러나온 말.“저 아이, 당신이랑 관련 있어요?”재석은 너무나 억울했다.“내가 뭘 했다고 갑자기 나야?!”정은은 조용히 아이를 바라보았다.“근데 저 아이... 낯이 익지 않아요? 어디서 본 거 같은데요...”‘설마... 아니겠지.’정은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기억이 떠올랐다.하지만 먼저 입을 연 건 재석이었다.“그날 밤, 퀴즈 맞히고 상품 받은 그곳... 그리고 친화수...”‘맞아, 그 아이야.’정은은 천천히 말했다.“그날 당신 머리카락 뽑혔다고 했었잖아요. 그러니까...”정은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렷이 말했다.“저 유전자 검사 결과, 진짜 당신 거...?”재석은 허둥지둥했다.“아냐... 나도 몰랐어... 정은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 진짜 너밖에 없어!”정은은 팔짱을 끼며 비꼬듯 물었다.“그럼 하필 왜 당신 머리카락만 뽑혔어요? 다른 사람도 있었잖아요.”“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큰형 머리카락도 뽑혔을 수 있고, 작은형 것도 그럴 수 있어!”정은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셋 다 뽑혔을 수 있다고 쳐요. 그런데 왜 유독 당신이랑 관련된 친자확인서만 나온 거죠?”정은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재석을 쳐다보았다. 재석이 바로 변명했다.“큰형은 항상 경호원이 따라다니고, 작은형은 직업상 사생활 보호가 철저하잖아. 머리카락 뽑히면 바로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90화
현장은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지금 저 꼬마가 조씨 가문의 식구라는데... 무슨 뜻이야?”“무슨 뜻이긴? 이건 그냥 대놓고 약혼 반대잖아.”“조 대표님 약혼 막겠다고 자기가 조씨 가문의 식구라고 밝히는 거면... 백 퍼 조지언 대표님의 숨겨진 아들이지, 뭐.”“말도 안 돼! 조 대표님 지금껏 스캔들 하나 없던 사람인데, 완전 바른생활 아이콘이라면서!”“조지훈 변호사님이 그랬다고 하면 좀 믿겠는데, 조지언 대표님은 진짜 아닌 듯.”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는 지훈은 속으로 아주 어이가 없었다.‘지금 나 디스한 거지? 무례하네?’...강서원과 조기봉도 충격에서 벗어나 서로를 바라봤다.“저 애... 누가 데려온 거예요?”“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나도 몰라.”강서원의 눈썹이 바짝 올라갔다.“우리 집안 사람이라는데요? 오늘 온 친척들은 당신이 전부 인사받았잖아요. 낯익은 애 아니에요?”“아니야! 친척 중에 애 데리고 온 집 딱 한 군데 있었는데, 그건 여자애였다고. 근데 혹시... 그게 말이지... 지언이가...”조기봉이 급히 대답했다.“잠깐만, 당신 지금... 우리 아들을 의심하는 거예요?”강서원의 얼굴이 단박에 굳어졌다.“우리 지언이가 어떤 성격인지 성격 몰라서 그래요? 절대 그럴 리 없다고요!”조기봉이 약간 억울한 듯 반박했다.“아니, 지언이도 나이가 서른 넘었잖아. 밖에서 몰래 연애 좀 하거나 여자 친구가 있었을 수도 있잖아. 그게 뭐 이상해?”강서원도 속으로 너무나 답답했다.“내가 그 얘길 하는 게 아니잖아요?”조기봉은 더욱더 이해가 안 됐다.“그럼 뭔데?”강서원은 결국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해 줬다.“내 말은, 지언이가 여자가 있건 연애하건 상관없어요. 근데 그 애가...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애까지 만들고도 숨긴다?”“심지어 오늘 같은 날, 이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게 내버려둔다고요? 그건 절대, 지언이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조기봉이 머쓱하게 입술을 씹었다.“근데 혹시 모르잖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189화
신랑도, 신부도 보이지 않았다.강서원은 방금 입장한 하객의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하곤, 입꼬리를 살짝 내렸다.“지언이는 또 어디 간 거예요? 신부는 드레스 입고 메이크업하느라 못 나온다 쳐도, 신랑까지 아침 일찍부터 안 보이면 어쩌자는 거예요?”“결국 나랑 당신만 입구에서 인형처럼 서 있는 거잖아요. 나 지금 입 근육 다 굳었어요.”조기봉이 헛기침했다.“조용히 좀 해. 좋은 날인데 싫은 티 내지 말고.”“됐고요. 지언이는 어디 갔냐니까요?”“회사 쪽에 급한 회의가 생겨서 안쪽 대기실에서 노트북 들고 화상 회의 중이래.”“지금 뭐라고 했어요? 약혼식 시작까지 두 시간도 안 남았는데 회의요? 지금 이게 말이 돼요?!”강서원의 눈썹이 씰룩거렸다.‘아니, 아무리 일이 중요해도... 오늘은 약혼식이잖아, 약혼식!’조기봉은 어깨를 으쓱였다.“당신도 알잖아. 지언이는 원래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니까.”강서원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돌렸다.‘진짜, 이 집안 남자들은 하나같이 일에 미쳐서야...’그때 조기봉이 손을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어, 재석이랑 정은이 왔네!”강서원도 고개를 돌렸지만, 정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입꼬리가 다시 내려갔다.“그래요?”조기봉이 부드럽게 말했다.“당신 피곤하면 좀 들어가 있어. 재석이한테 맡기지, 뭐.”강서원은 멀리서 다가오는 두 사람을 힐끔 쳐다보곤 시큰둥하게 말했다.“알겠어요. 내가 들어가서 둘째 불러올게요.”잠시 후, 지훈이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등장했다.지훈은 잘나가는 변호사답게 사교성 하나는 끝내줬다. 어떤 하객이 와도 바로 대화를 이어가며 분위기를 띄우는 재능은 타고난 수준이었다.“어이, 재석이랑 정은이. 너희 그냥 들어가지 말고 여기서 하객 좀 맞이해줘라!”재석의 이마에 핏줄이 살짝 떠올랐다.“됐어. 난 이런 거 안 맞아. 그런 건 형이 딱이지.”“야! 웬일로 내 칭찬이야? 쑥스럽게. 구체적으로 말해봐. 형이 뭐가 그렇게 잘 맞는데?”재석은 단박에 쏘아붙였다.“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