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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Penulis: 십일
감시 화면에 나타난 시간은 오후 6시였고, 넓은 거실에서 정은은 혼자 소파에 앉아있었다.

도겸은 단번에 그녀가 자신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핸드폰도 놀지 않으며 그냥 이렇게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시들고 있는 장미와 같았다.

원래 도겸이 좋아하던 ‘집의 느낌’은 한 여자가 하루하루 타협하고, 싫증조차 내지 않은 기다림, 심지어 자아를 완전히 포기란 희생으로 바꿔온 것이었다. 그가 언제 돌아오든 거실에는 늘 불이 켜져 있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일하느라 바쁘셨고, 어머니는 놀러다니느라 바쁘셨어. 그럼 난 혼자 집에 남아 이모님과 함께 했지. 그래서 비록 부모님이 모두 계시고, 집안 형편도 아주 좋지만, 난 지금까지 포근하고 따뜻한 집의 느낌을 느끼지 못했어...”

“정은아, 난 가끔 정말 네가 부러워... 간단하고 깨끗한 가족 관계, 한 쌍의 금슬이 좋은 부모님, 그리고 어릴 때부터 사랑으로 널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널 위한 모든 일이라면 직접 나서셨잖아...”

“오늘까지도 내 부모님은 돈이 만능이라고 생각하셔. 돈을 쓰면 좋은 아들을 키울 수 있고. 만약 이 아이가 좋지 않다면, 틀림없이 돈을 많이 쓰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실 거야.”

“정은아, 내가 널 만난 게 너무나도 큰 행운인 것 같아. 네가 나로 하여금 이런 따뜻함을 느끼게 했거든...”

“너와 함께 한 후로, 내 머릿속에는 항상 이런 화면이 나타났어. 퇴근하자마자 네가 주방에서 바쁘게 돌아치는 모습, 아이가 거실에서 놀고 있는 모습. 우리 가족은 세 식구 심지어 네 식구 다섯 식구는 함께 모여 저녁을 먹고 있었어...”

“식사를 한 후, 아이들은 정원에서 놀고, 넌 그네에 앉아 있었어. 그럼 난 네 뒤에 서서 가볍게 널 밀었고.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이 서로를 쫓아다니며 웃고 떠드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정은아, 날 믿어. 우리는 계속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갈 거야. 늙은이가 될 때까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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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겸은 최근 한 달의 감시 화면을 기록한 파일을 클릭했다.연희는 이미 잠들었다. 아래층에서 어렴풋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바로 정신을 차리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떠날 때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 겨우 몇 시간 지났다고. 결국 이렇게 다시 돌아왔잖아? 흥, 재벌 집안 사모님도 별거 아니네! 아니면 정말 나 혼자 여기에 내버려두든가. 어차피 내 뱃속의 아이로 천 억을 바꿀 수 있으니까. 누가 누굴 무서워한다는 거야?’서영숙이 돌아오면 왕미자와 임강주 그들도 함께 돌아올 것이다. ‘마침 배도 고프니 이모님에게 보신탕 좀 끓여 달라고 해야지.’연희는 거실과 주방을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의혹을 느끼며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이때 연희는 현관에 남자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도겸 씨가 돌아온 거야?’생각을 하다가 연희는 얼른 침실로 돌아가서 섹시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살금살금 서재로 걸어갔다.똑똑-“도겸 오빠, 돌아왔어요?”그녀는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서재의 불이 켜져 있었으니 도겸 말고 또 누가 안에 있겠는가?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할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연희는 흥분한 심정을 꾹 누르며 웃으며 문을 밀었다.“도겸 오빠...”도겸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여자를 바라보았다.그녀는 빨간색 레이스로 된 잠옷 치마를 입고 있었다. 가슴이 푹 파인 스타일에 가느다란 끈 두 개가 새하얀 어깨에 걸려 있었다.경망스럽고 저속한 모습이었다.남자가 자신을 쫓아내지 않자, 연희는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언제 돌아오셨어요? 또 야근하신 거예요? 이주 동안 계속 힘들게 일하셨으니 많이 피곤하시겠죠? 자, 제가 안마해드릴게요...”연희는 남자가 그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은 일에 적당한 핑계를 찾았다. 그리고 마치 전에 다투지 않았던 것처럼 활짝 웃었다.연희가 비위를 맞추며 가식적으로 웃는 것을 보면서 도겸은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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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일은 미리 식당에 가서 번호표를 뽑아두고, 다시 정문 앞으로 와서 모두를 데리러 왔다. 타이밍 딱 맞게, 도착하자마자 입장 순서가 돌아왔다. 진일이 웃으며 말했다. “이거 민지가 알려준 방법인데, 진짜 유용하더라.” 민지는 두 손을 뒤로 깍지 끼고,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요! 먹방러의 기본 소양이죠, 몰라요?” ‘어디 가서 굶을 일은 절대 없겠네, 저 열정이면.’ 서준의 원래도 안 밝던 표정이, 살짝 더 어두워졌다. ‘계속 민지 타임이네.’ 진일은 자리 잡고 메뉴판을 민지에게 건넸다. “추천한 식당이니까, 네가 주문해.” 민지는 망설임도 없이 받으며 말했다. “오케이! 시그니처 마라샹궈 하나 가고, 탕수육이랑 깐풍기, 마파두부도 넣자! 아, 너무 기름진 것만 시키면 안 되니까 양배추 볶음도! 국물은 혹시 야채와 두부 들어간 맑은탕 있어요?”직원이 바로 대답했다.“있습니다!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진짜 잘 먹는다. 메뉴에 없는 국까지 시키는 거 보면 내공이 느껴지네.’ 음식이 곧 하나둘씩 테이블에 차려졌다. 민지는 다시 직원을 불러 탄산 칵테일 몇 병을 추가 주문했다. “자, 다들 한 잔씩 들고, 우리 진일 선배의 박사 진학을 축하합시다!” 병과 병이 부딪치는 순간, 생각보다 근엄한 분위기가 시작되었다. 진일은 머쓱한 듯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다들. 예전엔 그냥 대학원만 빨리 끝내고 나가고 싶었어. 근데 여러분을 만나고, 오미선 교수님을 만나고 나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 ‘부모님과 여동생도 점점 나아지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고, 좋은 실험실에 좋은 교수님까지... 이게 바로 버팀목이지 뭐야.’ 서준도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축하해요.” ‘그 누구보다 쉽지 않은 길이었으니까.’ 건배 후, 민지가 텐션을 높이며 모두를 둘러봤다. “이 집 평 진짜 좋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72화

    그 이야기는 정은과 그녀의 친구들과는 딱히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그런 일이 또 있었구나, 하고 넘기면 그만. 하지만 ‘졌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학문적 명예라는 건 단순히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국가의 자존심과도 이어지는 문제니까.‘뭐, 어차피 우리 일이 아니긴 하지.’ 정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잠깐 스쳐 지나간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식판을 들고 배식 창 앞에 다다르자, 갓 볶아진 제육볶음의 윤기와 고소한 향이 그녀의 시선을 강탈했다. ‘됐다, 오늘 점심은 이걸로 힐링.’ ...한편, 같은 시간. 본관 최상층, 총장실.송영한 총장은 무력하게 의자에 깊게 몸을 기대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또 졌군.” 그 앞엔 부총장 한중기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표정은 침울했지만, 충격의 강도는 총장보다 덜해 보였다. 게다가 애초에 기대가 크지 않았던 만큼, 받아들이는 것도 담담했다. “총장님... 너무 낙담하지 마십시오. 승패는 늘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송영한은 냉소적으로 웃었다. “그래도 왔다 갔다 해야 말이라도 되지. 우린 지금 몇 년째 내리 패배야. 이걸 윗선에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한중기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제가 소정은 팀으로 교체하자고 제안드렸을 때, 총장님께선 ‘지금 와서 팀을 바꾸면 혼란만 부를 거다’ 하셨죠. 하지만, ‘안정’이라는 게 때로는 ‘무난한 패배’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안정적인 실패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송영한은 말없이 눈만 감았다. 그 사이 한중기는 뜨거운 차를 따라 책상 위에 조용히 올려두었다. “총장님, 진짜 두려운 건 ‘실패’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졌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이번엔 졌지만, 내년에 다시 준비하면 됩니다.” “내년에... 소정은 팀으로 나가겠다는 거야?” 이번엔 한중기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느낌이 옵니다. 이번만큼은, 그들이 뭔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71화

    이런 민지를 봐 온 서준은 아주 익숙했다. 그리고 곧바로 펼쳐진 건 민지의 실시간 홈쇼핑 쇼. “헐!! 뭐예요 이거?! 대박 맛있어요!!!” “양념이 좀 맵긴 한데, 그 알싸한 매운 게 아니라 기름지면서도 고소한 매콤함! 거기에 향신료 향이랑 쪽파 올라간 게 완전 핵심이에요.” “지글지글한 겉은 바삭하고, 안은 쫄깃쫄깃한데 속에 또 한 겹의 바삭한 반죽 있는 거 실화예요? 입에 넣자마자 바삭! 쫀득쫀득! 폭발했어요.” “정은 언니, 이거 어디서 샀어요?” 정은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만들었어.” ‘정은 언니, 대체 아직 공개 안 한 능력 몇 개 더 있는 거지?!’ 민지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나 진심으로 말하는데요, 실험실에 있는 새 냄비랑 팬들... 그냥 언니를 위해 샀다고 보면 돼요. 그러니까... 자주해 먹자고요.” 말투는 거의 논문 발표 급으로 진중했다. 서준은 냉소적으로 한마디 던졌다. “지금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 귀에 다 들림.” “쉿! 조용히 해!” “...” “언니! 내일 바로 밀가루 한 포대 사 올게요. 실험실 간식 테이블 옆에 놔둘 거예요. 그리고 전기 팬도 사야겠네요.” ‘야망이 이렇게 노골적일 수 있나... 귀엽다 진짜.’ 정은은 그런 민지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래, 좋아.” “예쓰!!” ‘행복 또 적립 완료!’ 민지는 자기 몫의 전병을 금세 해치우고, 우유도 벌컥벌컥 마신 뒤, 서준 옆으로 빼꼼히 다가갔다. “서준아, 왜 말이 없어? 맛있긴 했어?” 서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천천히 먹어? 배 안 고파? 그럼 내가 조금 도와줄게.” 말하면서 슬그머니 손이 나가려는 찰나, 서준은 정확히 예상한 듯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왜, 내 거 뺏으려고?” 민지는 민망하게 헛기침했다. “뺏는다니! 말이 너무 심하다. 난 그냥! 아침을 남기면 안 되니까, 환경을 위해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70화

    아침 일찍, 정은은 알람도 없이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몸이 먼저 하루를 시작하려는 듯 움직였다. 그녀는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머리를 정리했다.오늘 오전 수업은 조금 늦게 있어서, 평소와 달리 부엌부터 들렀다. 전날 밤부터 저온 조리기에 찬물로 불려둔 죽이 잘 끓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뚜껑을 여는 순간, 뜨겁게 올라오는 김이 정은의 얼굴을 감쌌다. 쌀과 잡곡이 어우러진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정은은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한 입 떠먹어봤다. ‘음... 달지도 않고, 너무 퍼지지도 않았어. 딱 좋아.’ 이어서 전원을 끄고, 불도 내렸다. 그리고 집에 밀가루가 조금 남아 있었기에, 이번엔 자기만의 전병을 해보기로 했다. 정은은 먼저 매콤한 양념장을 만들었다. 양파랑 마늘은 잘게 다지고, 된장에 고추장, 그리고 약간의 물을 넣어 자글자글 볶았다. 거기에 설탕 조금과 굴 소스, 그리고 향신료를 살짝 넣어 풍미를 더했다. 양념장은 따로 식힌 정은이 밀가루 봉지를 꺼냈다. 약 500그램을 큰 그릇에 덜고, 소금을 약간 넣어 섞은 후, 젓가락으로 가운데를 십자로 그어 가르듯 나누었다. 한쪽엔 찬물, 다른 쪽엔 끓는 물을 부어가며 각각 섞어줬다. ‘반죽이 식어도 딱딱해지지 않는 비결. 할머니가 알려준 방식이지.’ 섞은 반죽은 5분 정도 숙성시킨 후, 손으로 부드럽게 치댔다.반죽은 금세 매끈하고 끈적이지 않게 변했다. 15분 정도 덮어두고 반죽을 숙성시키는 사이, 정은은 기름장도 따로 만들어 놓았다. 숙성된 반죽은 전기 팬 크기에 맞게 밀대로 펴고, 표면에 기름장을 바른 후, 피자처럼 8조각으로 칼집을 냈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접어가며 둥글게 뭉친 후, 5분간 더 숙성. 그걸 다시 눌러 납작하게 만들었고, 한 번 더 밀대로 펴줬다. 이제 팬 위에 올릴 차례. 양면이 노릇하게 구워지면, 양념장을 바르고 대파를 송송, 참깨를 솔솔. 정은은 전병을 두 장 부쳐서 작게 잘랐다. 한 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9화

    재석이 문득 물었다. “내가 왜 웃는지 몰라서 그래?” 정은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내가 알아야 해요?” “우리 여자 친구랑 관련된 건데,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남자의 눈을 마주했을 때, 그 안에 담긴 사랑이 넘칠 듯 차오르고 있었다. ‘저 눈은 반칙이야.’ “재석 씨, 우리... 질문 게임할래요?” 재석이 눈썹을 올렸다. “어떻게 하는 건데?” “서로 번갈아 가면서 질문 하나씩 해요. 빠르게 묻고, 빠르게 답하기... 거짓말은 금지...” “좋아, 네가 먼저.” 정은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내가 몇 번째 여자예요?” 시작부터 강수였다. 하지만 재석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첫 번째. 첫사랑.” ‘첫사랑...’ 그 말이 재석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 낮고 묵직한 울림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섹시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톤.이미 예상한 대답이었지만, 막상 재석의 입으로 직접 듣고 나니 조금 놀라기도,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진짜... 한 번도 안 사귀어 봤다고?’ 재석이 질문을 이어갔다. “근데, 왜 그걸 물어본 거야? 그렇게 신경 쓰였어?” 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질문이 두 개잖아요.” “그럼 두 번에 나눠서 대답을 들어야겠네.” “좋아요, 우선 ‘왜 물어봤냐’에 대한 대답부터 할게요.” 정은은 살짝 숨을 고르더니, 또박또박 말했다. “그전까진 재석 씨의 연애사에 관해 물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적인 영역이니까, 굳이 파고들지 않았고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연인이니까...”“그런 건,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쌓아갈지에 대한 기준이 될 수도 있잖아요.” 재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우리 여자 친구 차례.” 정은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언제부터 날 좋아했어요?” 재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몇 초간 고민했다. “왜 망설여요?” 그러자 그가 정은의 말을 따라 하듯 장난스럽게 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8화

    “음... 내가 틀린 말 했어요?”정은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재석의 이마에 살짝 핏줄이 떠올랐다. 정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장은혁 씨한테 그렇게 말한 건, 화를 내거나 따지지 않고 먼저 날 걱정부터 했기 때문이에요. 그건 기본적으로 사람 됨됨이가 괜찮다는 뜻이니까요.” “그 뒤로 계속 들이대지 않고 물러난 것도, 자존심 있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거죠...”“그리고 일 방면에서는... 솔직히 소재 분야에선 장은혁 씨가 겪어온 게 많아요. 그런 경험이 아니었으면, Z시 공장장이 그렇게까지 대우 안 해줬을걸요?” ‘하아... 진짜...’ 재석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운전대가 삐걱하고 미세하게 흔들릴 정도로.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래서...”하지만 그 말은 정은의 장난기 어린 시선과 정면으로 부딪쳤다.여자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으며, 눈빛에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표정이 서려 있었다. “설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야?”정은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객관적으로 평가한 것뿐인데요? 일부러라니요?”“흠흠...” 재석이 괜히 헛기침했다.“그럼, 우리 여자 친구가 보기에... 나랑 장은혁 중에 누가 더 나아? 일로든, 사람 됨됨이로든.”정은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푸흐하하하하...”웃음이 참을 수 없다는 듯 터져 나왔다. 눈매가 접히고, 어깨가 들썩이고, 결국은 배까지 움켜쥐며 웃기 시작했다.“아 진짜... 그런 걸 물어요? 재석 씨, 그런 거 묻는 사람 아니잖아요! 근데 진짜 묻네요?! 아 너무 웃겨요...”재석은 억울한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봐, 일부러 그런 거 맞네. 스스로 실토한 셈이지?”“푸하하하...”“아직도 웃어?” 재석은 눈을 찌푸리며 다시 그녀를 쳐다봤다.정은은 눈물까지 맺힌 얼굴로 말했다. “웃으면 안 돼요? 웃긴 걸 어떡해요? 아, 우리 남자 친구 진짜 귀엽다니까요...”‘이 사람, 질투하면서도 날 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7화

    정은은 바로 정색하고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몇 시에 도착했어요? 솔직히 말해봐요.”재석은 ‘10분 전’이라고 말하려다, 입술이 굳어졌다. 결국 피식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음... 한 시간 전.”“왜 그렇게 일찍 온 거예요? 비행편도 다 보냈잖아요.”“그냥... 널 빨리 보고 싶었어.”두 사람의 시선이 딱 맞닿았다. 정은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난 고작 3일밖에 안 비웠는데요?”재석이 바로 대답했다.“나한텐, 3일이 3년 같았거든.”“재석 씨...” 정은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진짜... 말 너무 잘하네, 이 사람.’“생각보다 말 잘하네요. 그런 거 잘 못할 줄 알았는데요...”재석은 장난기 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거짓말 아니고, 그냥 진심을 말한 거야.”정은의 가슴이 너무나 설렜다.‘이렇게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하니까 더 심쿵하잖아.’‘진짜 반칙이다, 조재석.’이런 다정한 장면이, 멀리서 바라보는 은혁의 눈에는 그야말로 심장을 후벼 파는 칼날과 같았다. ‘조재석...? 그 조재석이라고?’‘병원에서 봤을 땐, 서로 어색하기 그지없던 두 사람이었는데...’ ‘분명히 그땐... 전혀 사귀는 것 같지 않았는데...’은혁의 표정이 굳어지고,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설마... 이거 다 연기인 건가? 날 거절하려고, 연극까지 짠 거야?’점점 차오르는 분노에 못 이긴 은혁은 두 사람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정은 씨!”정은은 좀 놀랐다.“네?”재석도 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은혁은 정은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 나를 거절하는 건 괜찮아요. 근데 이런 식으로 거짓말까지 하면서, 스스로를 망가뜨릴 필요는 없잖아요.”‘스킨십까지... 괜히 헛소문만 나면 손해 보는 건 여자 쪽이라고...’은혁은 이번엔 재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정은 씨가 무슨 이유로 이런 유치한 연극에 합을 맞춰주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행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6화

    정은은 은혁의 그 아련하고 억울한 표정을 보자, 그냥 말이 안 나왔다. ‘대체 지금 머릿속에 무슨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거지...?’ ‘진짜, 할 말 없네...’오후 세 시 정각. 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들이 하나둘 줄을 서고, 정은도 조용히 탑승했다.비행기가 거의 만석이 된 후, 은혁은 이코노미석 안에서 정은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A 열, F 열, 가운데 구역까지 샅샅이 훑었지만, 없었다.잠시 후, 탑승 문이 닫히고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곧 출발하겠습니다.”그제야 은혁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기내 앞쪽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가 봤다.그리고, 비즈니스석 좌석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있는 정은을 발견했다.“정, 정은... 씨? 이코노미석이 아니었어요...? 나는 그게...”‘뭐지, 상황이 이상한데...?’ ‘내가 이코노미석이라 당연히 정은 씨도 그럴 줄 알았는데...’정은은 슬쩍 웃었다. “누가 그래요? 내가 이코노미석 탄다고?”“지난번에 올 때는... 그때는 분명...”“그때는 비즈니스석이랑 일등석이 매진이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코노미석에 탄 거고, 이번엔 자리가 있어서 그냥 비즈니스로 예약한 거죠.”‘아... 나 지금까지 뭐 한 거지. 혼자 다 짐작하고, 혼자 의미 부여하고, 혼자 낭만 타령하고...’은혁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정은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사실 은혁 씨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냥... 본인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을 뿐이죠.”그 말에는 어떤 분노도, 원망도 없었다. 그저 담담히 사실만 전달할 뿐.은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와... 진짜, 뼈 맞았다.’자리에 앉은 은혁은 좌석의 불편함을 바로 체감했다. 다리는 제대로 뻗지도 못하고, 의자도 푹신하지 않고, 무엇보다 공기 중에 떠도는 그 ‘답답한 사람 냄새’가 꽤 거슬렸다.‘내 마음이 아무리 복잡하다지만... 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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