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딱 보름만 제 애인인 척해 주시죠. 원하는 건 뭐든 들어드릴 테니." 14일간의 시한부 가짜 연애. 그 아슬아슬하고 잔인한 비즈니스의 톱니바퀴가, 그렇게 소리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View More아침부터 바닷바람을 맞으며 뛰어다닌 피로도, 방파제에서 들었던 고백의 무게도 그 품 안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남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도현의 굳었던 표정이 풀리는 게 보여 웃음까지 났다."왜 웃어?""아까는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계셨으면서, 이름 한 번에 풀리시니까요.""한 번이 아니었어.""그럼 몇 번 더 불러 드려요?"소율이 귓가에 그의 이름을 낮게 불렀다. 도현은 그녀를 그대로 안아 일으켰다."도현 씨, 잠깐만요. 자료가...""테이블 위에 잘 있어.""불은요?""내가 끌게."도현은 한 팔로 소율을 받친 채 거실 조명을 껐다. 어두워진 방 안에서 그녀의 웃음과 그의 낮은 목소리가 가까이 섞였다.잠시 뒤 침실 문이 닫혔다.다음 날 월요일 오전 7시 5분, 관사 2층 복도.도현은 오전 6시 40분에 공용 세탁실을 건너 202호로 돌아간 뒤였다. 25분이 지나 201호 현관문이 열리고 소율이 밖으로 나왔다. 목에는 며칠 전 세탁기에서 겨우 건져 냈던 얇은 붉은 스카프가 둘러져 있었다.축제장에서 이틀 내내 바닷바람을 맞고 큰 소리로 직원들을 불렀더니, 아침부터 목이 따끔거렸다. 소율은 찬 바람을 막으려고 스카프를 한 번 더 여며 목을 감쌌다.마침 세탁실에서 나온 해나가 그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눈이 소율의 얼굴에서 붉은 스카프로 천천히 내려갔다."한 차장님.""좋은 아침이에요, 윤 대리님.""목은 왜 가리셨어요?""어제 바닷바람을 오래 맞았더니 좀 따끔거려서요."소율이 목 앞을 만졌다. 해나는 대답보다 스카프 안쪽을 의심하는 눈이었다."흐응… 정말 바람 때문이에요?""그럼 뭐 때문이겠어요?"그때 202호 문이 열렸다. 도현이 복도로 나오다가 두 사람을 보고 발을 멈췄다. 해나의 눈이 곧장 그에게 향했다."차 과장님.""네, 윤 대리님.""두 분, 사람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거 기억하시죠? 눈에 보이는 흔적 같은 것도 만들면 곤란하다구요."소율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 스카프를 잡은 손을 내렸다."
같은 날 오후 8시 50분, 관사 201호 거실.딸깍.공용 세탁실 쪽 관리 문이 닫히자 도현이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소율은 테이블 위에 축제 자료를 내려놓고 재킷을 벗었다.각자 현관으로 들어온 뒤 도현이 202호에서 갈아입고 건너온 참이었다. 복도와 세탁실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도 확인했다.소율은 소파에 앉으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자, 여기 앉으세요."도현은 바로 앉지 않았다. 아내 앞에 선 채 묻고 싶은 말을 먼저 꺼냈다."강준호가 무슨 말 했어?"돌려 말하지 않는 질문에 소율도 답을 미루지 않았다."저를 좋아한다고 했어요."도현의 입매가 굳었다. 예상했던 말인데도 아내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기분이 달랐다."그래서?""저는 결혼했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고 말했어요. 다른 마음을 받아 드릴 생각도 없다고 분명히 거절했고요."소율은 고백을 받은 장소와 준호가 물러난 과정까지 짧게 설명했다. 준호가 사적인 감정과 협동조합 거래를 섞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도현의 굳었던 입가가 천천히 풀렸다. 그는 그제야 소율 옆에 앉았다."남편 이름은?""말하지 않았어요."다시 입매가 굳었다. 소율이 남편의 표정을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남편 있다고 말했잖아요.""차도현이라고 해야 확실하지.""임무 때문에 남편 신분은 밝힐 수 없다고 했어요. 거기서 전무님 성함을 말하면 비밀 파견도 같이 끝나요.""차도윤이라고 해도 되잖아.""그러면 강 대표님이 당장 차 과장님부터 쳐다봤겠죠."도현은 부정하지 못했다. 준호가 돌아오며 자신을 봤던 이유가 남편을 짐작해서인지 잠깐 생각했지만, 소율은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그리고 도현 씨가 제 남편이라고 직접 말했으면 어떻게 하셨을 건데요?""가서 인사했겠지.""인사만요?""당신 남편이라고 알려 주고...""그걸 남편 행세라고 해요. 지금은 차 과장님이시잖아요.""행세가 아니라 진짜 남편인데..."도현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묻자 소율이 고개를 저으
사람들 사이에 선 도현과 눈이 마주칠 뻔하자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지사에서는 아무도 모르던데요.""이번 파견 때문에 공개하지 못하고 있어요. 윤 대리님은 제 사정을 알고 있지만 다른 분들 앞에서는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고요."준호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소율이 거짓말로 자신을 밀어낸다고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장면들을 하나씩 맞춰 보는 표정이었다."남편분이 누구인지 물어봐도 됩니까?""그건 임무가 끝나기 전에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남편의 신분도 이번 일과 연결돼 있거든요."소율은 다시 한 번 선을 분명히 그었다."누구인지 밝히지 못해도 제 대답은 같아요. 저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다른 마음을 받아 드릴 생각은 없어요."준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늦었네요.""누가 먼저였는지의 문제는 아니에요. 오래전부터... 제가 이미 선택한 사람이라서요."그 대답에 준호가 짧게 웃었다. "하, 하하…"마음이 편해서 나온 웃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미련을 붙여 둘 여지는 없다는 걸 받아들인 얼굴이었다."확실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괜히 애매하게 굴지 않으셔서요.""강 대표님께서 솔직하게 말씀하셨으니 저도 그래야죠."준호는 방파제 아래로 밀려오는 파도를 잠깐 봤다. 고백하기 전까지 준비했던 말들이 더 있었지만, 이제는 꺼낼 이유가 사라졌다."협동조합 일에는 제 감정을 섞지 않겠습니다. 해담지사하고 다시 거래하기로 한 것도 차장님 한 사람만 보고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 직원들이 움직이는 걸 봤고, 생산자들도 변화를 확인했으니까요.""네. 저도 오늘 이야기를 업무에 섞지 않을게요. 강 대표님을 피하거나 불편하게 만들 생각도 없어요.""앞으로는 동료로 돕겠습니다. 남편분이 누군지는... 나중에 알려 주실 수 있으면 꼬옥… 알려 주세요."소율의 눈에 웃음이 조금 돌아왔다."그때는 강 대표님도 많이 놀라실 거예요.""그 정도입니까?""네. 아마 오늘보다 더요."준호도 따
그다음 날 일요일 오후 7시 15분, 해담 지역축제장 해변 임시 판매장."한 차장님, 잠깐 단둘이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마지막 판매 상자를 접던 강준호가 한소율 앞에 섰다. 평소처럼 시원하게 웃는 얼굴이었지만, 상자 끈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조금 떨어진 천막 아래에서 차도현의 손도 멈췄다.축제 둘째 날 판매가 끝난 참이었다. 해담지사는 낮 동안 본 부스를 운영하고, 저녁에는 해변 쪽 임시 판매장으로 일부 물량을 옮겼다. 직원들은 남은 상품을 세고 생산자들은 빈 상자를 정리하느라 분주했다.전날 온담 생중계에 잡힌 도현의 얼굴은 원본과 확인된 공유 게시물에서 내려간 상태였다. 다만 누가 영상을 저장했는지까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해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지만, 축제 둘째 날까지 현장을 멈출 수는 없어 휴대전화 알림을 계속 확인하며 일했다.소율은 준호의 굳은 표정을 살폈다."업무 이야기인가요?""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준호가 방파제 쪽 쉼터를 가리켰다. 판매장에서 걸어서 1분도 걸리지 않고, 직원들 눈에도 보이는 곳이었다."네. 저쪽에서 말씀하세요."소율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준호는 들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고 그녀를 따라갔다.도현도 손에 든 생수병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두 사람을 따라가려는 듯 발끝이 방파제 쪽으로 돌아갔다.윤해나가 재빨리 그의 앞을 막았다."앗! 그… 어… 차 과장님은 여기 계시는 게… 하, 하하.""비켜… 주십시오.""시, 싫어요. 한 차장님이 단둘이 이야기하겠다고 하셨잖아요. 저희가 따라가면 더 이상해져요."도현은 해나의 어깨 너머를 봤다. 소율과 준호는 사람 없는 쉼터 앞에서 마주 섰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파도 소리와 철거 작업 소리 때문에 대화까지 들리지는 않았다."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막으시는 겁니까?""대충은요. 그래서 더 막는 거예요."해나가 양팔을 벌렸다. 체격 차이만 보면 도현이 옆으로 한 걸음 움직이는 순간 끝날 방어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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