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딱 보름만 제 애인인 척해 주시죠. 원하는 건 뭐든 들어드릴 테니."
View More도현은 핸들을 꺾어 차를 차선 밖으로 돌렸다."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제 집 방향이 아닌데요."소율이 물었지만 도현은 답하지 않았다. 차는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익숙한 빌딩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며칠 전 가짜 커플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했던 도현의 펜트하우스 건물이었다."내려요.""팀장님 집에는 안 갑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차에 있겠습니다.""감기 걸려 골골대다 이사회 서류 구멍 낼 작정입니까?"도현이 냉정한 어조로 받아쳤다."옷 말리고 비 그칠 때까지만 있는 겁니다. 쓸데없는 고집 피우지 말고 따라오세요."도현은 차에서 우산을 꺼내지도 않은 채, 조수석 문을 열어 소율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거절할 틈도 주지 않는 단호한 행동이었다.띠리릭-펜트하우스의 도어록이 열리고, 두 사람은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거실 조명이 켜지자 빗물에 젖은 두 사람의 몰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도현의 고급 와이셔츠는 젖어서 몸에 딱 붙어 어깨와 가슴 근육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고, 소율 역시 젖은 블라우스가 살갗에 달라붙어 속옷 라인이 어렴풋이 비쳐 보이고 있었다.도현이 소율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그의 눈동자가 커지며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도현의 목울대가 크게 꿀컥 움직였다."…잠시 기다려요."도현은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더니 커다란 타월 두 장과 자신의 하얀색 오버핏 드레스 셔츠 한 장을 가지고 나왔다."욕실로 들어가서 씻고 나오세요. 젖은 옷은 세탁기에 넣고, 당장 입을 옷이 없으니… 내 셔츠라도 걸치고 나와요."도현이 셔츠와 타월을 소율의 품에 쥐여주었다."팀장님 옷을 입는 건 좀….""그럼 그 축축하고 투명하게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겠다는 겁니까?"도현의 날 선 지적에 소율은 자신의 옷 상태를 깨닫고 뺨을 발갛게 물들였다. 소율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욕실로 들어갔다.따뜻한 물로 씻고 나온 소율은 거울 앞에 섰다.도현이 준 드레스 셔츠를 입은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도현의
"남 대리 앞에서도 그렇게 웃습니까? 남 대리가 어깨를 잡고 손을 대도 그렇게 가만히 있어요?""팀장님이 무슨 자격으로—""자격?"도현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이 소율의 입술로 떨어졌다."14일 동안 넌 내 애인이야. 적어도 이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넌 내 눈 앞에서 다른 놈 보고 웃지 마."억지와 질투, 그리고 인정할 수 없는 끌림이 뒤섞인 도현의 선언.두 사람의 호흡이 밤공기 속에서 뜨겁게 부딪치며, 6일 차 밤의 어둠이 지독하게 깊어가고 있었다.가로등 불빛 아래 내던져진 도현의 목소리는 밤공기보다 서늘했고, 동시에 끓는점 직전의 물처럼 뜨거웠다.소율은 손목을 잡아챈 도현의 손아귀 힘에 눌려 숨을 헐떡였다. 도현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타오르는 불꽃을 안고 있었다. 언제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계산만을 해대던 그 차도현이, 오직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팀장님… 이거 놓으세요."소율이 손목을 비틀어 빼내려 하자, 도현은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악력에 힘을 주어 소율의 몸을 제 가슴 앞으로 더욱 밀착시켰다. 두 사람의 조용한 마찰음 사이로, 하늘에서 우르릉하는 불길한 뇌성이 울려 퍼졌다."안 놓는다고 했습니다, 한 대리.""지금 무슨 억지를 부리시는 겁니까? 남 대리는 제 동기일 뿐입니다. 제가 누구와 웃고 누구와 대화하든, 그건 제 사생활입니다. 계약서 어디에도 제 일상적인 인간관계까지 통제받아야 한다는 조항은 없었습니다!"소율의 또렷한 반박에 도현의 눈썹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사생활?"도현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그 사생활 때문에 회장님이 붙인 감시망에 오점을 남기게 된다면, 그건 더 이상 사생활이 아니라 업무 태만입니다. 내 계약 파트너로서의 자격 문제라고요.""핑계 대지 마십시오!"소율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가슴 밑바닥에서 3년 동안 쌓여온 설움이 울컥 터져 나왔다."오늘 회식 자리에 감시원은 없었습니다. 팀장님도 그걸 아시면서 왜
도현은 쥐고 있던 소주잔을 무의식적으로 꽉 쥐었다. 소주잔의 얇은 유리 벽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자신 앞에서는 매번 긴장하거나, 단단하게 경계 태세를 갖추거나, 비즈니스용 미소만을 보여주던 한소율이었다. 그런데 저 남 대리라는 녀석 앞에서는 저렇게 눈꼬리를 접어가며 편안하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심지어 남 대리가 소율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장난을 치자, 소율 역시 자연스럽게 남 대리의 팔을 가볍게 치며 타박하고 있었다.스윽-도현의 미간이 완전히 찌푸려졌다.'남궁혁 대리. 입사 3년 차, 기획 2팀. 일 처리는 나쁘지 않으나 사적으로 친밀감을 과도하게 표출하는 경향이 있음.'도현의 머릿속에서 남 대리에 대한 정보가 차갑게 정리되었지만, 가슴 밑바닥에서 요동치는 본능은 철저히 이성을 압도하고 있었다. 지독하고 불쾌한 열감. 그것은 다름 아닌 '질투'였다.소율은 도현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남 대리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아, 맞아! 너 파리 지사 파견 신청서 냈다며? 진짜 가는 거야? 가면 나 심심해서 어쩌냐.""아직 확정은 아니야. 그래도 준비는 꾸준히 하고 있어.""가게 되면 내가 파리 여행 갈 테니까 가이드 해줘야 된다, 진짜!""알았어, 맛있는 거 사주면 생각해 볼게."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도현의 참을성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승인해 주기로 약속한 그 '파리 파견' 건을, 저 남 대리라는 녀석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 지독하게 신경을 긁었다.쿵-!도현이 술잔을 테이블 위에 다소 거세게 내려놓았다. 왁자지껄하던 회식자리의 분위기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팀장님?"팀원들이 일제히 도현을 바라보았다. 도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시계를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1차는 여기까지 하죠.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차비는 법인카드로 결제해 둘 테니 남아서 더 마실 사람들은 마시도록.""와! 팀장님 최고입니다!"팀원들이 환호하는 사이, 도현은 소
도현의 펜트하우스 거실에서 일어났던 그 아슬아슬한 사고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이질적이고 팽팽한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계약서 조항… 지키기가 생각보다 어렵군요."그 나직하고 서늘한 음성이 소율의 귀에 닿았던 순간, 도현은 이내 자신의 행동에 당황한 듯 허리를 감싸 쥐었던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정돈했다."오늘은 이쯤 하죠. 사진은 내가 선별해서 커플 계정에 올리겠습니다. 늦었으니 택시를 불러주죠."그것이 4일 차 밤의 전부였다. 도현은 지극히 이성적인 정적이 자신의 이성을 집어삼키는 것이 두려운 사람처럼 빠르게 소율을 집 밖으로 배웅했다. 택시에 올라탄 소율은 창밖에 멍하니 서 있는 도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빛은 낯선 열기에서 다시 단단한 얼음 벽으로 돌아가 있었다.계약 5일 차, 화요일.오전 출근길부터 도현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평소에도 냉철하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팀장이었지만, 오늘은 지독할 정도로 사무적이고 차가웠다."한 대리, 3분기 해외 사업 전략 기안서 폰트 크기랑 줄 간격이 안 맞습니다. 기본 양식 재확인하고 다시 올리세요.""팀장님, 그 양식은 지난주 이사회 보고용으로 승인받은 표준 서식입니다만.""내가 새로 가이드라인을 내렸을 텐데요. 내 지시대로 재작업하세요."사무실 안의 다른 팀원들도 얼어붙을 만큼 도현의 지적은 매서웠다. 소율은 가슴속에서 서운함과 황당함이 불쑥 솟구쳤지만, 곧바로 도현의 의도를 파악했다.'선 긋기.'도현은 전날 밤 자신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정한 '감정 과입 금지'라는 4번 조항을 지키기 위해, 역으로 소율에게 철저하게 사무적인 차가움으로 벽을 치는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소율은 서류를 거두어들였다. 3년 동안 그를 짝사랑하면서 터득한 단단한 자존심이 고개를 들었다. 차도현이 원하는 게 완벽한 부하직원과 이성적인 비즈니스 관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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