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서로 다른 상처와 사랑을 품은 은율, 도진, 홍시혁. 세 사람은 함께한 시간을 통해 사랑이 반드시 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애정과 우정, 희생과 용서가 교차하는 끝에서,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만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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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세상엔 여러 가지 형태의 애정이 있다고 한다.
사랑도, 우정도, 동경도.
사람마다 이름 붙이는 방식은 달라도…….
결국 모든 애정에는 끝이 있다.
"어디가, 밖에 추워. 몸도 안 좋으면서."
그렇다면…….
나의 애정의 결말은 무엇일까.
언제쯤이면 이 빌어먹을 애정은 끝날까.
***
< 서은율 >
비가 내리던 밤이었다.
숨이 막힐 것처럼 모든 게 젖어 있었고, 너는 모든 것을 말려 버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미안해요. 급한 일이 생겨서… 메일로 파일 보내겠습니다.”
- 아뇨, 괜찮아요. 새벽에 전화드린 제 잘못이죠. 죄송함다. 확인 후 아침에 연락드릴게요.
전화가 끝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손목을 놓은 너는, 만족한 표정으로 긴 다리를 꼬아 안경을 쓰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바라본 손목에는 어찌나 강하게 잡은 건지 새붉은 자국이 그대로 나타났다.
“하…….”
그 자국을 빤히 바라보며 짧게 내쉰 한숨.
매서운 눈빛이 느껴져 그대로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나보다 먼저 그 큰 몸을 일으켜 새하얀 우유가 담긴 컵을 쥐여 주고는 먼저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몇 번이나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얼떨결에 받아들인 우유는 아마 밤새 작업하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일 것이다. 본디 자신도 촬영을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생체리듬이 깨진 다나 뭐라나,
하여튼 이번 초에 있던 광고 촬영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일정이 없다고 매니저에게 언질을 들었다.
그렇다는 건, 당분간 이 넓은 집엔 둘뿐이다.
괜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데 이 심장은 또 눈치 없이 잿더미 속에서 불을 지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제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영영 이대로 얽혀 있어야 하는 건가?
그러면 내 20년 인생이 너무 불쌍한데.
어쩌면 이건 이제 반사적인 감정일지도 모르는데.
갑갑한 마음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파일을 보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봤다.
SNS에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본능적으로 그 이름을 누르자, 5년 만의 활동으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 논란 딛고 활동 개시? 아이돌 타이거즈 출신 ‘청호’ 드라마 OST 참여.
> 드라마 OST로 2주 연속 1위 자리 지킨 ‘홍시혁’ 누구?
> 타이거즈 출신 청호 ‘홍시혁’ 5년 전 논란 재점화
> 공식 입장 발표 ‘방송 복귀 생각 없어.’ 팬들 아쉬워….
홀린 듯이 홍시혁의 솔로곡인 드라마 OST를 들었다.
잔잔하면서 무거운 음을 꾹꾹 눌러 담는 창법은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담담하게 이별을 뱉는 목소리는 내가 알던 그 목소리와 달리 굵고 농익었지만… 여전히 감미로웠다.
왜 한참 활동 중인 가수들을 OST 곡으로 무너뜨렸는지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나랑 듀엣 하자, 응? 응???’
‘… 싫어. 너 노래 못해.’
‘아, 왜~! 내가 조금 더 노력할게. 응?’
노래 많이 늘었네.
속없는 헛웃음이 입가를 맴돌았다.
***
“왜 가야 하는데?”
“녹음하니까.”
내 말을 도무지 이해할 생각 없어 보이는 얼굴에 뭘 더 설명해야 하나?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애써 삼켰다.
“하지…….”
“할 거야.”
“그럼 같이 가.”
“뭐, 나란히 가서, 우리 사이좋은 남매랍니다. 소문이라도 내려고?”
현관 앞에서 한참을 내 손을 붙잡고 늘어지던 손이 마지막 말에 뚝 멈췄다. 슬쩍 올려 본 얼굴은 고운 피부가 구겨질 만큼 나를 노려보았다. 물론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는 한다. 하지만 다 큰 성인이 일하는 현장까지 보호자를 끌고 오는 건 여러모로 웃기는 상황 아닌가?
“하….”
혀를 강하게 차더니, 냅다 내 손을 잡아끌었다. 신발을 벗지도 못한 나를 짐짝처럼 안아 소파에 앉히고는 전화를 걸었다.
무서웠지만, 끝까지 몰아붙였다.
“무, 뭐야? 오늘 무조건 갈 거야!”
“알았어.”
“… 어?”
그런데 또 너무 순순히 포기하는 모습에 입이 바짝 말랐다.
“영웅이랑 같이 가.”
그럴 줄 알았다. 화가 나 벌떡 일어나 그 잘난 얼굴을 노려봤다.
‘이것도 불만이면 가지 마.’라는 눈빛으로 나를 압도했다.
그래… 이 정도면 황송할 따름이다.
더 이상 기싸움도 말싸움도 할 기력이 없어 소파베드에 기대 영웅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밤샘의 후유증일까?
기댄 머리는 무거웠고, 눈꺼풀이 견디지 못하고 자꾸 감기려고 했다.
차로 이동하면 20분 정도 여유가 있는데, 저 얄미운 표정을 보면 절대 깨워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너 말도 없이 어디 다녀왔어?”가뜩이나 머리가 지끈지끈 울리는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내게 다그치는 도진이의 모습을 보니 혼이 나갈 것만 같았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괜한 사람에게 풀게 됐다.“걱정 마. 내가 이 집에서 나가도 아무도 네 가족인 거 몰라!”“그런 뜻이 아니라….”“지금, 아무 말도 못 해! 머리 아파! 쉬고 싶어!”앞을 가로막는 도진이를 거칠게 밀치고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몸을 던졌다. 얼굴을 이불에 파묻으니, 헛웃음이 났다. 아마 어린 시절 서은율이 보면 기절할지도 모른다.어떻게든 도진이와 말 한마디 더하기 위해 새우잠을 자던 서은율은 어디 갔나?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발 그만두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나에게 곡 주기로 한 거, 약속 지켜야지.’그리고 홍시혁에게 곡을 준다는 약속도 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홍시혁은 대체 무슨 생각이람?진심인지 장난인지 여전히 구분할 수가 없다. 홍시혁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머리가 또다시 지끈지끈 울렸다.그래, 이 녀석은 정말로 변함이 없다. 단순해 보이고 기분이 고스란히 다 드러나는 주제에 막상 속내를 알기는 힘들었다.원래 연예계에 종사하는 놈들은 다 이런 건가?아니면 내 주위의 놈들이 이런 걸까?‘약속해! 네 이름 걸고 해!’‘알았어. 알았다니까. 괜찮은 게 나오면… 그때….’‘앗싸!!!’하지만 마지막이 좋지 않다고 한들, 함께 있었던 시간이 즐겁지 않은 게 되는 건 아니다.빌어먹게도,내 인생에서 이도진을 제외하고는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광고?”“그게… 대표님이… 그… 나를 노려봐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는데….”소파베드에 머리를 젖힌 채 바라보자, 영웅이가 새파랗게 질려 시선을 피했다.“내가 분명 활동 쉰다고 말했는데.”“아니, 뭐… 그렇긴 한데, 뭐! 그렇다고 너 평생 놀고먹을 생각이야?! 아래에서 치고 오는 젊고
들떴다.그래,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정확했다.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거울을 보며 잘생긴 얼굴에 취하기도 전에 동생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이미 익숙했기에 머리를 매만지며 새카만 휴대폰 화면을 빤히 바라봤다.“어디 가는데?”“몰라도 돼.”내 대답이 퍽 수상했는지, 노려보는 눈초리가 한결 진해졌다. 하지만 더 이상 사고 치지 않겠다고 약속한지라,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채 듣기도 전에 ‘반짝’이며 전화가 울리는 것에 다급히 나가자, 뒤에서는 인사 대신 험한 욕이 나오고 있었다.그건 지금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6년?정말로 우연을 빙자한 만남 때, 그토록 보고 싶던 동창은 자신의 눈을 겨우 바라보며 심호흡하고 있었다.그때도, 지금도.“변했네.”“… 뭐가?”“아! 네가 변한 게 아니라 이도진이 변한 건가?”일부러 그 속을 후벼 팠다. 역시 제대로 먹힌 건지 씁쓸하게 웃는 얼굴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6년 만에 본 동창은 머리가 짧아졌고, 아마 일에 찌든 삶을 지내고 있던지 퀭해 보이기도 했고 어딘가 아파 보이기도 했다.그 개자식은, 돈을 그렇게 벌면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짧은 머리, 잘 어울리네.”“너도.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나의 말에 결국 짜증이 났는지, 눈썹이 움찔하는 것에 조금 기뻤다.“그리고 조금… 단정해지고 어른스러워졌네.”겨우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누르며 뱉는 목소리는 감추려고 해도 떨림이 묻어 있었다. 게다가 여전히 시선은 뜨거운 커피잔에 고정되어 있다.그것이 기쁘지 않다.“율아, 너 왜 노래 안 해?”그래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기다리고 있었는데.”“아….”“어떻게든 성공해 보이겠다고, 노래하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했잖아.”뜨거운 커피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옛일을 꺼내 또박또박 말하자,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아주 미세하게.좋았는지 나빴는지조차
이도진, 서은율….성도 호적도 피도 다르지만, 같은 집에서 사는 ‘가족’ 같은 거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 엄마는 여느 날 평소와 달리 한없이 행복하게 웃었다. 그런 엄마에게 ‘기쁜 일이 생겼어?’ 물은 내게 엄마는 ‘은율이에게 새아빠가 생겼어.’라고 말을 하며 데리고 간 곳에는 원래 살던 낡은 집과는 다르게 처음 보는 커다란 집, 그리고 그만큼 커다란 아저씨… 아니, 나의 새아빠.아빠의 옆에서 무표정으로 나와 엄마를 바라보던 도진이는 나보다 두 살 더 어렸지만, 그 뚱한 표정이 잘생겨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처음 생긴 좋은 집, 커다란 아빠, 잘생긴 동생에 나는 들떴었다.‘도진아!’대답은 없었다.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졸졸졸 따라다녔다. 그런 내가 귀찮았던 도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나를 밀쳤는데, 하필이면 계단이라 나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그 와중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내 눈에 보인 것은 나를 보고 새파랗게 질려 놀란 이도진의 얼굴이었다.나는 그 와중에 ‘쟤도 저런 표정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어찌 됐든 그날 이후, 내게 미안한 건지 조금은 마음을 열었는지 이도진의 그 바운더리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그 작은 손으로 나를 꽉 잡기도 했다.‘아이고, 같은 학년이 되어버렸네.’생일이 빠른 도진이와 여러 가지 형편으로 시기를 놓쳐 1년 늦게 학교에 가게 된 나는, 같은 학년으로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와 은율이가 가족인 것을 몰랐다. 그것은 반도 다르고 굳이 말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쯤 엄마가 도진이만 데리고 한참 돌아다녔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아빠, 엄마랑 도진이는 어디 간 거야?’‘하하! 이제 곧 볼 거야.’안 그래도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TV를 틀자, 그 네모난 곳에서는 도진이가 나왔다. 그것이 몹시 신기해 한참 쳐다보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을 기점으로 이도
목소리를 뱉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며 그 날카로운 눈매를 크게 휘어 웃었다.그 모습은 여전히 강아지 같았다.“나는 진짜 보고 싶었는데.”그 말에 몸이 바짝 굳었다.문득 떠오른 생각은 ‘애초에 우리가 이렇게 살갑게 인사를 할 사이가 맞나?’ 였다.몸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지금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 건지 자각조차 할 수 없었다.나를 보며 웃는 저 얼굴은 진짜인가?“왜, 나보니까 엿같아?”“… 그런 거….”“나는 너 보니까, 진짜 좋은데.”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이건 확실했다.“진심인데.”속에서 역한 기운이 올라와 장기를 뒤흔들었다.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나 진짜로….”“그, 그만.”“…… 율아.”“아, 알았으니까. 그, 그만….”“언제는 내 목소리가 좋다며.”그래.사실 지금도 듣기엔 좋다.하지만 아직은 듣는 것까지가 한계였다.***뒤늦게 나타난 영웅이 덕분에 상황은 어찌저찌 수습됐지만,여전히 속은 뒤틀리고 머리를 어지러웠으며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다.“누나!”영웅이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집 앞이었다. 두 눈에는 못마땅한 표정을 한 도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표정을 보며 애써 외면한 채 방으로 들어와 한참을 심호흡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벗은 웃옷에서 종이가 떨어졌다. 종이를 확인하자 알 수 없는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숫자가 춤을 추듯 일렁거렸고, 다리에는 힘이 풀렸다.사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웃으며 인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은 했다.그렇지 않은가?시간도 오래 지났고, 마지막에 싸우기는 했지만 내게는 덧없이 소중한 첫 친구였다. 당연히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나와, 밥 먹어.”혼자만의 굴에 들어가기 직전, 나의 정신을 깨운 것은 도진이의 목소리였다. 멍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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