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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Penulis: 동과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고현성은 끝까지 계속 빤히 쳐다보았다.

버스가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고 고현성은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택시를 타고 다시 아까 그곳으로 돌아가 차를 가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

커다란 별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머릿속에 고현성이 했던 그 한마디가 계속 맴돌았다.

“지혜한테 결혼식을 올려주기로 했어.”

자세히 생각해보면 임지혜에게 결혼식을 빚진 건 사실이었다. 3년 전에 임지혜가 고현성을 포기했고 고현성도 임지혜를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임지혜가 6억 원을 받지 않고 운성시를 떠나지 않았더라도 고현성은 그녀와 헤어지려 했을 것이다.

사랑 속에서 누가 옳고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성대한 결혼식을 3년 전에 임지혜에게 줬어야 했다. 나는 그저 우연히 기회가 생겨 그 자리를 차지했고 이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내가 한창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최희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최희연은 몇 안 되는 나의 절친이었고 운성시에서 고양이 카페를 운영했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고양이들이 여유롭게 걸어 다녔다. 그나저나 카페는 항상 적자 상태였고 지금까지 내가 투자한 덕에 겨우 살아남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최희연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음악 센터가 있잖아. 저녁에 피아노 공연이 있는데 미국에서 온 연주가래. 너 피아노 좋아하지? 지금 이리 와. 저녁에 같이 공연 보러 가자.”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공연은 단지 고현성이 연주하는 피아노였다.

고개를 살짝 수그리자 테이블 위에 놓인 10억짜리 은행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길거리를 거닐며 사랑을 사려 한 바람에 미친 사람 취급당했고 고현성에게 초라한 모습마저 보여주고 말았다.

돈이 있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 차라리 최희연에게 카페 운영 자금으로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최희연과 공연을 보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해.”

나는 방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욕실로 가서 메이크업을 지운 다음 다시 정교하게 메이크업했다. 언제 어디서든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파란 코트를 입고 택시를 타고 카페로 향했다. 밖에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아무렇지 않은 척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최희연은 나를 보자마자 재빨리 찻잔을 내려놓고 달려와서 끌어안았다.

“요즘 뭐 했길래 통 가게로 오지 않았어?”

나는 아무 거짓말이나 지어냈다.

“일 때문에 바빴어.”

설명을 듣고서야 최희연이 풀어주었다.

“커피 한잔 가져다주라고 할 테니까 먼저 앉아 있어. 일 끝나고 올게.”

나는 조용한 창가 쪽 자리를 찾아 하얀색 고양이를 안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차들을 멍하니 보았다. 이보다 더 평온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훤칠한 키의 누군가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고 뒷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외로워 보였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웬일인지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렸을 적 그를 따라다녔던 때처럼 모든 게 익숙했고 나의 추억을 끌어냈다.

내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바람에 고양이도 놀라서 도망갔다. 커피숍을 뛰쳐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인파 속에서 그 뒷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달려 나온 나를 본 최희연이 다급하게 따라 나왔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엉엉 울자 걱정스럽게 물었다.

“수아야, 왜 울어?”

그 사람을 본 것 같았다...

처음으로 그 뒷모습이 이렇게도 인상이 깊었다. 드디어 그때 그 따뜻했던 남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짜 고현성이었을까? 근데 고현성 말고 나한테 이런 느낌을 줬던 남자는 없었어. 고현성이 아니면 누구지?’

문득 고민영이 말했던 음악 콘서트가 떠올랐다.

‘여길 말하던 거였나? 고현성도 지금 여기 있다고?’

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런데 최희연도 울고 있었다.

“희연아, 넌 왜 울어?”

“넌 왜 항상 그리 슬퍼 보여?”

최희연은 두 팔을 벌려 나를 꽉 껴안고 울먹거렸다.

“넌 자꾸 아무 이유 없이 울어. 근데 그 사람 3년 전에 네 것이 됐잖아.”

그녀가 말한 그는 바로 고현성이었다. 아직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최희연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눈이 너무 차가워서 그랬나 봐.”

그녀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온 나는 조금 전 놀라서 도망친 그 하얀색 고양이를 찾아 품에 안았다.

“미안. 아까 많이 놀랐지?”

야옹 하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는 머리를 나의 손등에 비볐다. 너무도 고분고분하고 귀여운 모습에 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 예뻐.”

그렇게 저녁까지 카페에 있었다. 최희연은 갑자기 일이 생겨 공연에 갈 수가 없다면서 티켓을 나에게 건넨 후 휙 가버렸다.

나는 은행 카드를 컴퓨터 옆에 놓고 옆의 음악 센터로 향했다.

음악 센터가 사람들로 붐볐고 나는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옆에 커플이 앉았는데 두 사람은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언제 나랑 결혼할 거야?”

그러자 남자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른이 되면.”

고개를 돌려 보니 고작 열네 살, 열다섯 살쯤 돼 보였다.

이 나이쯤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 최희연이 그러했다.

최희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불량배를 좋아하게 되었다. 남자는 가진 게 없어 그녀에게 안정된 삶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최희연은 그 남자를 미친 듯이 사랑했었고 그 남자 때문에 자살까지 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세상에서 그토록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최희연이 이런 말을 했었다.

“그 남자... 겉으로는 건달 같아도 영혼은 참 맑았어. 나약하고 예민할 때도 있었고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다 포기할 수도 있는 남자였어. 수아야, 그 사람 그때 네가 알던 고현성보다 부족하지 않아. 심지어 자기 생각이 있고 패기가 있어.”

그렇다. 그 남자애는 목숨 말고 가진 게 없었다. 그런데 최희연을 위해 기꺼이 목숨도 바치는 그런 남자였다.

최희연이 고3 때 남자애는 그녀 대신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렇게 남자애는 세상을 떠났고 최희연의 마음도 그와 함께 떠났다.

그 후로 지금까지 그녀는 쭉 혼자 살아왔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이 나이 때의 소년 소녀들이 원하는 바가 다 뜻대로 되길 축복했다.

...

시간이 1분 1초 지나갔지만 공연은 여전히 너무 지루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익숙한 멜로디가 귀에 들어왔다.

나의 눈가가 순식간에 촉촉해졌고 경악한 눈빛으로 무대 위를 쳐다보았다. 피아노 건반 위에 예쁜 손 한 쌍이 놓여있었다.

‘바람이 사는 거리... 현성 씨는 기억하고 있을까?’

고현성이 피아노를 연주할 때 참으로 부드럽고 멋졌다. 몇 년 전 따뜻했던 고현성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듯했다.

곡이 끝나고 나는 황급히 무대 뒤로 달려가 그를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그 사람이 떠날까 봐, 내일이 지나면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될까 봐 두려웠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내가 누군지 알려주고 싶었다.

무대 뒤에서 한참이나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실망 가득한 얼굴로 음악 센터를 나왔다.

하늘은 이미 어둑해졌고 눈이 더 세게 내렸다.

나는 하이힐을 신은 채 길거리를 천천히 거닐었다. 가로등이 눈길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런데 그때 앞에 비스듬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남자는 네이비색 롱코트에 안에는 검은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고 베이지색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오후에 봤던 그 뒷모습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아까 카페에서 봤던 남자가 진짜 이 사람이었구나...’

그에게 왜 하필 ‘바람이 사는 거리’를 연주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기도 전에 그가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물었다.

“꼬마 아가씨, 또 날 따라오네?”

나는 힘을 조절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꼬마 아가씨... 날 기억하나?’

그러고는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현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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