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혜는 어머니와 내기를 했다. 서진우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 두 사람의 사랑을 허락한다는 조건이었다. 서진우가 온순하고 굳센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가난한 여대생으로 위장해 그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서진우는 첫사랑을 품에 안고 그녀를 비웃었다. “너처럼 속물에 찌든 거지가 어떻게 서아랑 비교가 되겠어?” 그녀는 비참하게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가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시간이 흘러 안다혜는 값비싼 명품 옷을 입고 엄청난 권력자인 금욕적인 불자의 손을 잡고 화려하게 서진우 앞에 나타났다. 그때서야 서진우는 후회했다. 곧 그는 트위터에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예전에는 내가 씩씩하고 독특한 여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다혜야. 너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예외라는 것을 알았어.] 그날 밤,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윤씨 가문의 도련님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사진 속 소녀는 자유분방하고 생기발랄했다. 그는 안다혜의 손을 잡고 정식으로 발표했다. “윤 여사, 예외는 없어. 넌 내가 늘 그리워하고 오랫동안 꿈꿔온 사람이니까.”
View More다만, 그동안 쌓아온 정이 있다고 해도 차수가 많아지다 보면 성가실 수밖에 없다. 윤해준도 자기만의 생활이 있는데 시간을 한유라에게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아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아침을 먹은 안다혜는 직접 운전해서 태안 그룹으로 향했고 데스크 직원들이 평소처럼 인사를 건넸다.“아참, 대표님, 이모건 씨가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안다혜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러면서도 의문이 생겼다.‘약속한 3일에 비해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완성한 건가?’안다혜의 기대치가 높아지기 시작했다.접견실로 와보니 예상대로 이모건이 이아린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힐 소리를 들은 이아린이 겁을 내다가 안다혜를 발견하고 다시 차분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와서 미안.”안다혜가 웃으며 반박했다.“내외하지 말라고 했지. 게다가 지금은 출근 시간이잖아.”잠깐 뜸을 들이던 이모건이 이렇게 말했다.“맞는 말이네.”안다혜가 허리를 반쯤 숙이고 이아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이아린도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아린이 오늘 너무 귀엽다. 공주 드레스 입었네? 다만...”안다혜가 엉망으로 묶어 올린 이아린의 머리를 보며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모건도 안다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고 난감한 표정으로 헛기침했다.“오늘 집에 사람이 없어서 내가 묶어줬거든. 너무 서툴러서...”“귀여워.”안다혜가 웃으며 말했다.“좋은 오빠니까. 아린이도 네 마음 알아줄 거야.”이아린은 입을 꼭 다물고 있었지만 이모건의 다리에 올린 손으로 얼마나 그를 의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훈훈한 모습에 안다혜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다혜야, 네가 다시 묶어줄래?”이모건이 난감한 표정으로 코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이모건 본인도 “작품”을 봐주기 힘들었지만 이아린이 싫은 티를 내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이 머리를 하고 나온 것이었다.안다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잠깐 손을 들었다가 놓은 것
하지만 이튿날 같은 방에서 나오는 두 사람을 보고 한유라는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안다혜는 놀란 한유라의 표정이 우스워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좋은 아침이에요. 아침부터 입은 왜 그렇게 크게 벌리고 있어요?”이 말에 한유라가 얼른 표정을 정리하고 윤해준을 바라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후자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불안해진 한유라가 난감한 표정으로 설명했다.“새언니, 다른 뜻은 없고 요즘 통 안 보이다가 봐서 놀란 거예요. 화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이 말에 윤해준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겨우 달래놨는데 지나간 일을 다시 들추는 한유라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한유라는 칼과도 같은 윤해준의 시선을 느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쌓아온 정이 있는데 누군가 떠나야 한다면 뒤에 등장한 안다혜가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한유라는 안다혜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이혼 절차를 밟기를 바랐다. 윤해준도 긴장한 표정으로 안다혜를 바라보며 뭔가 말하려는데 후자가 오히려 가볍게 웃었다.“한유라 씨가 내 기분을 이렇게 챙길 줄 몰랐네요. 마음은 알겠으니까 밥부터 먹죠. 회사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요.”안다혜가 이 말만 남기고 먼저 주방으로 향했다. 어제 일이 있고 안다혜도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했다. 중요한 건 한유라가 윤해준의 첫사랑인지가 아니라 지금이었다. 윤해준의 와이프는 그녀라는 것, 그것만 알면 그녀가 장애물이든 아니든 급한 건 남은 두 사람이었다.안다혜가 턱을 살짝 들고 한유라 옆을 지나갔다. 말문이 막혀 입이 떡 벌어진 모습이 참으로 우스웠다.윤해준도 안다혜의 뜻을 알아채고 얼른 주방으로 따라 들어갔고 한유라만 궁색하게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두 사람이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는 걸 본 순간 한유라는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저 빌어먹을 년이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거지? 화내면서 해준 오빠에게 따져야 맞는 거잖아.’윤해준에게 완벽한 연인은 그녀여야만 하는데 자꾸만 나타나 알짱대는 안다
안다혜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요?”“집까지 데려와 놓고 모른다고 발뺌할 생각이에요?”안다혜는 아직도 모른 척하는 윤해준을 보며 남자는 누구든 다 똑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윤해준은 안다혜가 톡 까놓고 말해서야 그녀가 말한 첫사랑이 한유라를 가리킨다는 걸 알았다.‘아, 이 일로 내게 화가 난 거였구나. 왜 자꾸 성질부리나 했네. 우리 다정이 질투한 거였어.’이렇게 생각한 윤해준은 순간 기력을 회복하고 눈빛마저 초롱초롱해졌다.“내 첫사랑이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어?”이 말에 안다혜가 놀란 표정으로 윤해준을 바라보는데 시야에 웃는 듯 마는 듯한 눈동자가 보였다. 은하수가 내린 듯한 눈동자는 너무 예뻤지만 안다혜가 모르는 정서가 담겨 있어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내가 알아야 하는 거예요?”안다혜가 빨간 입술로 자신감 없이 되물었다. 너무나도 귀여운 모습에 윤해준은 그녀를 품에 더 꽉 끌어안고 이마를 갖다 댔다.“다정아, 너 정말 너무 귀여워.”안다혜는 이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도대체 뭐 하자는 거지?’항상 냉철하고 차분한 안다혜였지만 이번만큼은 머리가 모자란다는 느낌이 들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 우리 같은 얘기하는 거 맞아요?”안다혜가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윤해준은 그런 안다혜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더니 가볍게 말했다. “잘 자. 다정아.”안다혜는 묻고 싶은 말이 남았지만 윤해준의 눈동자에 서린 실핏줄을 보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면서 내비친 피로감이 그녀에게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떠난 지 고작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병든 거야? 이렇게 자기 몸에 소홀해서야 되겠어.’이미 눈을 감은 윤해준은 안다혜의 눈동자에 담긴 원망을 보지 못했다.안다혜는 원래 윤해준이 잠들면 품에서 몰래 벗어나려 했다. 두 사람이 이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될뿐더러 그녀는 그렇게 쉽게 풀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옷장 앞에 선 안다혜는 퍽 난감했고 이런 윤해준을 보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평소 그는 하늘에서 사는 신선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도도했고 잠자리를 가질 때에만 정서를 밖으로 드러냈다. 다른 때도 늘 온화하고 차분하고 점잖은 편이라 오늘처럼 불안한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안다혜의 목소리도 따라서 낮아졌다.“이거 놓고 얘기해요.”“싫어...”윤해준은 머리가 점점 무거웠지만 뭘 하고 있는지는 잘 알았고 품에 안긴 사람을 더 꽉 끌어안았다.안다혜는 그제야 윤해준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는 마음속으로 솟구쳐 올라오는 감정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몸을 돌려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가 소리를 질렀다.“왜 이렇게 뜨거워요?”“열난 거 아니에요? 약은 먹었어요?”하지만 윤해준은 고집스럽게 대답을 들으려 했다.“화내지 마.”“다정아, 난 대답을 듣고 싶어. 다른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어떻게 중요하지 않아요.”안다혜가 언성을 높였다.“왜 이렇게 막무가내에요 몸 좀 신경 써요.”“가요. 병원으로.”윤해준이 안다혜의 손목을 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약 좀 먹으면 괜찮아져. 걱정하지 마.”“약을 먹긴 했어요?”윤해준은 걱정이 눈동자를 뚫고 나올듯한 안다혜를 보며 진짜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안다혜가 돌아올 때 불을 켜지 않았던 건 침대에서 휴식하기 위해서였다.안다혜는 윤해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한시름 놓으며 그를 침대로 부축했다. 남자는 침대에 눕자마자 자연스럽게 안다혜를 침대로 끌어당겼고 그녀는 힘을 이기지 못한 채 그대로 그의 품에 엎어졌다. 이윽고 들려오는 짧은 비명에 놀란 그녀가 얼른 몸을 일으켰다.“괜찮아요?”그 말투는 분명 관심이었다. 사실 안다혜 본인조차 이미 화가 풀렸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아니, 어쩌면 화를 낼 겨를도 없이 윤해준의 몸 상태를 걱정하느라 바빴는지 모른다.윤해준은 고개를 저으며 평소와 달리 하얘진 입술로 말했다.“난 괜찮아. 한잠 자면 나아질 거야.”
팀장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답답했다.“그렇죠. 태안 그룹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와 겹치는 게 많아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회사는 태안 그룹과...”팀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유라가 잘라버렸다.“그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아요. 앞으로 태안 그룹과의 경쟁은 내가 책임질게요.”이 말에 팀장이 넋을 잃었다.태안 그룹은 확실히 강력한 경쟁상대였다. 게다가 요즘은 풍산 그룹과 연줄이 닿아 민성에서의 지위가 일취월장한 상태였다.“한유라 씨, 지금까지 쭉 외국에 있어서 태안 그룹이 어떤 회사인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사실 매우 실력 있는 회사입니다.”한유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래서 뭐요? 전혀 두려워할 거 없어요. 실력이 없으면 오히려 재미없죠. 태안 그룹과의 경쟁 건은 내가 맡을 테니까 다른 건 하나도 걱정하지 말아요.”한유라는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팀장은 그런 한유라를 보며 주먹이 불끈 쥐어졌지만 윗분이 했던 말이 떠올라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네. 알겠습니다.”“한유라 씨의 능력이라면 무조건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을 거예요.”한유라는 이런 추앙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제야 한유라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아챈 팀장은 속으로 한시름 놓았다.‘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는 걸 좋아하네.’그렇게 한유라는 해성 그룹에서 디자인 총괄이라는 자리를 맡게 되었다....태안 그룹.일과를 마친 안다혜는 돌아가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고작 하루인데도 김미진이 의심하는데 오늘도 집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다. 게다가 늘 이렇게 도망칠 수 없을뿐더러 안다혜의 성격에도 맞지 않았다.집으로 돌아온 안다혜는 불조차 켜지지 않은 텅 빈 집안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첫사랑이 돌아왔으니 이제 둘만의 세상을 만끽하러 간 건가?’이 결혼이 우스워진 안다혜가 차갑게 웃더니 두 사람이 집을 비운 틈을 타 전에 지내던 게스트룸과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몇 벌 정리했다.안으로
생각을 마친 안소현은 절대 안다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준비해야 했기에 안소현은 일단 환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정말 부드럽고 배려가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안다혜는 그런 그녀가 마음을 곱게 먹었을 리 없다고 생각해 소름이 쫙 돋았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뭘 할 수는 있는 건 아니었기에 안다혜는 티 나지 않게 표정을 정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식사를 마친 김미진과 안다혜는 나란히 차에 올라탔고 회사로 가는 내내 꽤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마치 어제 일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말이다.안다혜는 김미진과 이렇게 지내는 게 좋아 이 시간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지만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도착했고 두 사람은 각자 사무실로 향해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다른 건 안다혜도 이미 숙지한 상태라 남은 건 이모건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만약 이모건과 협업할 수 있다면 태안 그룹의 설계 능력은 한층 더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일이 이모건이 약속한 마지막 날이었다....한편, 정교하게 화장한 한유라는 유명 브랜드 L에서 만든 오트 쿠퀴르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해성 그룹으로 향했다. 해성 그룹은 민성에서도 손꼽히는 건축 회사였는데 제일 중요한 건 안씨 가문이 이끄는 태안 그룹의 경쟁사라는 것이었다.한유라는 민성으로 오기 전부터 이 소식을 특별히 알아봤다. 요 며칠 안다혜가 원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은 건 맞지만 윤해준의 태도도 180도 달라졌다. 집에서 나갔는데도 윤해준을 홀리고 있으니 한유라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팀장은 범상치 않은 아우라의 한유라가 걸어오자 바로 신분을 알아챘다.“한유라 씨 되시죠?”한유라가 턱을 살짝 든 채 오만하게 말했다.“네. 맞아요. 내가 그 한유라예요. 입사 절차 밟으러 왔어요.”팀장이 아부하듯 웃었다.“네. 입사를 도와줄 팀장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한유라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팀장을 따라 사무실로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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