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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Autor: 네입클로버
한때 강지연은 사랑만 있다면 서로 한 발씩 물러설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며 원칙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사소한 불편쯤은 얼마든지 넘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확신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뒤 강지연은 대충 저녁을 먹고 씻은 뒤 침대에 누웠다.

지금은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다음 날 아침, 장시범이 아침을 들고 찾아왔다.

“나 이미 먹었어.”

강지연은 우유에 말은 시리얼과 작은 빵 하나로 간단히 끼니를 끝낸 상태였다.

“아직도 화났어?”

그가 다가와 그녀를 안았다.

“우리 냉전을 벌이지 말고 문제 있으면 지금 풀자.”

강지연은 숨을 고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풀자.”

그녀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장시범, 내 기준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만 요구를 제기할 수 있어. 나는 너에게 단 한 번도 미안한 행동을 한 적 없다고 생각해. 너와 함께한 날들 전부 진심이었고 다른 마음을 품은 적도 없어.”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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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560화

    강지연은 의외로 차분한 얼굴로 임유경이 끌어모아 세운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은 뒤, 조용히 물었다.“내가 동의하지 않으면?”임유경이 비웃듯 웃었다.“그럼 안 오면 되죠. 고소하시든가요. 기껏해야 손해배상 아닌가요?”“계약도 책임도, 무대에 대한 존중도 없는 이런 태도로 앞으로 다른 무용단이 너희를 받아줄 거로 생각해?”강지연은 문득 장시범을 떠올렸다. 돈이 있으니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태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면 그만이라는 방식이 지나치게 닮아 있었다.예상대로 임유경은 웃음을 터뜨렸다.“단장님, 그건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어요. 뭐 하러 힘들게 무용단 공고를 기다려요? 돈도 많은데 제가 직접 무용단을 만들면 되죠. 내 무용단에 오는 사람들한테 월급 다섯 배, 열 배는 더 줄 수 있어요. 오늘 저랑 나가는 이 친구들 전부 제 무용단 창립 멤버예요. 절대 손해 보게 안 할 거예요.”“안타깝네.”강지연은 가볍게 한숨을 섞었다.“넌 춤을 정말로 사랑하는 게 아니구나.”임유경은 크게 웃었다.“너무 웃기네요. 우리 같은 집안이 춤으로 밥 벌어먹을 필요는 없잖아요. 단장님은 상상도 못 하겠죠? 저는 돈을 번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자란 사람이에요. 집에 앉아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데 내가 왜 단장님처럼 춤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죠? 저는 그냥 재미로 추는 거예요.”“그래.”강지연은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는 임유경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고 진심으로 춤을 사랑한다면 조금 더 기다려 볼 생각도 있었다.하지만 이제는 더 기다릴 이유가 없어졌다.강지연은 한 발짝 물러서 무용단 전체를 바라본 뒤 말했다.“내 입장은 변함없어. 가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지 않아. 임유경을 따라가고 싶은 사람은 말리지 않을 거야. 위약금은 임유경이 대신 내준다니까 남고 싶은 사람은 이쪽으로 오고 가고 싶은 사람은 가.”말이 끝나자마자 임유경 주변에 서 있던 몇 명을 제외한 모든 단원이 일제히 강지연 쪽으로 달려왔다.강지연을 중심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559화

    사실 앨런 일행은 바로 근처에 있었다.그날의 사건 이후로 경호원들의 임무는 단 하나로 바뀌었다. 강지연을 시야에서 절대 놓치지 않는 것.그녀가 소리만 질러도 앨런은 즉시 나타날 수 있었다.하지만 임유경은 강도가 아니었고 여자였으며 무엇보다도 같은 무용단의 단원이었다.몇 초간의 팽팽한 대치 끝에 임유경이 손을 놓자 강지연은 그대로 문을 닫았다.문이 닫히는 순간, 장시연이 폭발하듯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임유경! 너 또 언니 괴롭히러 간 거야?”“난 진짜 이해가 안 돼. 네 오빠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을 왜 이렇게 감싸?”“네가 뭘 알아? 오빠 일이 왜 언니 탓이야? 그리고 언니는 나한테 정말 잘해 줬어!”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강지연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장시연은 옆집에 살며 꼬박 일 년을 함께 지냈다. 그 일 년은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나란히 보낸 시간이었다.낯선 나라는 처음이었기에 장시연은 가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앓아눕기도 했고 감기에 걸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강지연은 늘 친동생처럼 여기며 살뜰히 돌봤다.장시연이 잘해 줬다고 느끼는 이유도 그것일 터였다.하지만 이제 자신과 장시범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틀어졌으니 그 지난 감정이 장시연과 자신 사이에서 얼마나 오래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란 결국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일일 뿐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지금 강지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임유경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거나 대비할 것인가였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미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그런데 그날 이후 임유경은 무용단에서 갑자기 얌전해졌다. 더 이상 트집을 잡지 않았고 팀원들을 비꼬지도 않았다.오히려 몇몇 단원들과 제법 잘 어울렸고 자주 밥을 사주거나 립스틱이나 핸드크림 같은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무용단 분위기가 정말로 좋아진다면야 그걸로 다행이었다.다만 강지연은 이런 평온 뒤에는 종종 더 큰 폭풍이 숨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그녀의 일정은 숨 돌릴 틈 없이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558화

    강지연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등 뒤에서 임유경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거기 서요.”강지연이 돌아보자 임유경이 바짝 따라와 서 있었다.“진짜 여우였네.”임유경은 냉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나이 많은 이혼녀가 어떻게 오빠랑 시연이를 다 꼬셔 놨나 했더니 역시 이렇게 가까이 살고 있어서였어.”강지연은 말다툼할 생각이 없었다.“임유경, 네가 실력 있는 무용수라는 건 알아. 그리고 지금 우리는 같은 팀이야. 계약을 해지할 생각이 없다면 관심은 춤 그 자체에만 두는 게 좋겠어.”임유경의 붉은 입술이 비웃듯 휘어졌다.“지금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말 하는 거예요? 단장으로서? 아니면 장시범 전 여자 친구로서?”강지연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게 답했다.“무용수로서.”그녀의 목소리는 유난히 또렷했다.“나는 재능 있는 무용수들이 춤이 아닌 것들 때문에 망가지는 걸 너무 많이 봐 왔어.”“지금 나를 훈계하는 거예요?”임유경은 목을 더 높이 치켜세운 채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강지연을 노려봤다.“잘난 척, 고결한 척 좀 그만하세요. 시범 오빠를 만난 덕에 그의 아이디어를 도용해서 유명해진 거잖아요. 춤 말고 다른 데서는 나보다 한 수 위니까.”그녀의 시선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그거 알아요? 지금 시범 오빠는 당신 얘기만 나오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라고 하던데.”“임유경, 네가 한 가지 착각하는 게 있어.”강지연은 낮게 숨을 내쉬고 담담하게 말했다.“나랑 장시범 사이는 과거가 어쨌든 이미 끝난 일이야. 네가 나한테 무슨 말 하든 그걸로 날 모욕할 수도, 상처를 줄 수도 없어.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도 부끄러운 짓 한 적 없어.”그녀는 시선을 곧게 두고 말을 이었다.“이 정도까지 말했는데도 네가 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네 말 그대로 돌려줄게.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네가 뭘 하든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강지연은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 했다. 그 순간 임유경이 손으로 문을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557화

    강지연은 자기 단원의 일에 더 이상 장씨 가문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이번 일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마당 쪽에서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잔챙이야, 여기서 뭐 하고 있어?”“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장시연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마당 쪽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어머, 공주님 오셨네. 미안한데 우리 집이 좀 초라해서 공주님 모시기엔 부족하거든.”“이 잔챙이야, 너는 적이랑 아군도 구분 못 해? 왜 남이랑 붙어서 수다 떨고 앉았어? 머리 어디 고장 난 거야?”임유경은 장시연에게 욕을 퍼부으면서도 시선은 강지연에게 고정돼 있었다. 남과 적을 가르는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분명 강지연이었다.장시연은 오히려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넌 얼른 가던 길 가.”임유경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너 그게 무슨 뜻이야?”“남이랑 말 섞지 말라며. 그런데 네가 여길 왜 와? 이만 가주시죠, 공주님.”장시연은 손을 쭉 뻗어 정중하게 출구를 가리켰다.“너!”임유경은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나를 남이라는 거야?”“아니면 뭐야? 나랑 오빠는 장 씨고 너는 임 씨잖아. 네가 우리 집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장시연이 콧방귀를 뀌자 임유경은 강지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높였다.“그렇게 따지면 저 사람이 더 남이지. 너랑 나랑 안 시간이 얼마고 저 사람이랑 네가 안 시간이 얼만데!”“지연 언니는 남이 아니라 내 언니랑 마찬가지인 사람이야.”장시연은 강지연의 팔을 자연스럽게 끌어안았다.“네 성은 장 씨고 강지연 성은 강 씨인데 무슨 언니야?”임유경은 금세라도 폭발할 듯한 얼굴이었다. 자기 앞에서는 고고하고 오만하던 그녀가 장시연 앞에서만큼은 유난히 쉽게 흥분하는 모습이 묘하게 대비되어 보였다.장시연은 강지연에게 몸을 기댄 채 말했다.“내 입은 내 몸에 달렸거든? 누구를 언니라고 부르던 그건 내 맘이야. 네가 뭔데 참견해? 나한테서 언니 소리 듣고 싶으면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556화

    그 두 사람은 모두 이미 귀국한 상태였다. 들리는 말로는 방예란 역시 어느 무용단에서 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방예란?”강지연이 그 이름을 입에 올렸을 때 임유경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강지연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장시범?”이번에는 임유경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임유경이 말한 ‘원작자’가 누구인지 강지연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임유경.”강지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우리 무용단에 이렇게까지 불만이 많다면 계약을 해지하면 돼. 협업은 원래 쌍방이 원해서 하는 거니까. 하지만 네가 무용단과 내 창작을 공개적으로 훼손한다면 나는 법적 대응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임유경은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이길 자신 있으면 고소해 보세요. 단장님, 전 준비 안 된 싸움은 안 하거든요.”그녀는 ‘단장님’이라는 호칭을 유난히 또렷하게 비아냥을 섞어 발음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강지연 옆을 지나 문 쪽으로 향했다가 문 앞에서 다시 돌아보며 덧붙였다.“아, 참고로 전 계약 해지 같은 건 원하지 않아요. 단장님도 저를 계약 해지할 명분은 없고요. 전 계약서에 적힌 어떤 조항도 어긴 적 없거든요. 부당해지라면 그땐 제가 단장님을 고소할 거예요.”문이 닫힌 뒤에도 강지연은 한동안 그 뒷모습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임유경은 장시범이 보낸 사람인 걸까? 그를 대신해서 복수라도 하라는 건가?’그날 밤, 강지연은 학교 근처의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무렵 장시연이 과일 타르트를 들고 찾아왔다.“언니, 과일 타르트 사 왔어요. 같이 먹어요.”혹시 거절당할까 봐 걱정되는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덧붙였다.“저 혼자서는 다 못 먹어서요.”날씨는 아직 온화했다. 장시연은 정원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놓고 차까지 준비해 두었다. 저녁 식사 전의 느긋한 이브닝 티였다.강지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시연아, 임유경이라는 사람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555화

    예컨대 이미 완성 단계에 들어선 ‘단군신화’에서조차 그녀는 동작을 바꾸자며 의견을 제출했다.처음에 강지연은 임유경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다. 이 작품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면 어떤 가능성도 열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지연은 깨달았다. 임유경의 말은 작품을 위한 제안이 아니라 그저 트집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강지연은 임유경이 내놓은 하나의 의견을 곱씹는 데 하루를 쓰기도 했고 때로는 밤을 새우기도 했다.하지만 임유경은 하루에도 다섯, 여섯 개씩 새로운 주장을 던졌다.하나를 소화하기도 전에 다음이 이어지고 또 그다음이 밀려왔다. 그제야 강지연은 상황을 이해했다.그 무렵부터 다른 무용수들도 하나둘씩 찾아와 이야기를 꺼냈다.임유경이 팀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말들이었다. 다른 사람을 향해 춤을 못 춘다며 빈정대는 일, 연습 중 일부러 사람을 툭 치고 지나가는 일까지.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강지연은 어느 날 연습이 끝난 뒤 임유경을 따로 남겼다.임유경은 강지연이 자신을 남긴 이유를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거만한 태도를 유지했다.백조처럼 길게 뻗은 목을 치켜세운 채 노골적으로 얕잡아보는 시선으로 강지연을 내려다봤다.강지연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임유경, 네가 뛰어난 무용수라는 건 알아. 하지만 지금 우리는 같은 팀이야. 팀 전체를 먼저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임유경은 비웃음을 흘렸다.“어떻게요? 제 주변 사람들이 형편없다고 저까지 그 수준에 맞춰야 하는 거예요?”“임유경.”강지연은 미간을 찌푸렸다.“동료들을 그렇게 깎아내리는 게 옳다고 생각해?”“그게 뭐 어때서요? 난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요.”그녀는 냉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그리고 단장님도 마찬가지예요. 대단한 무용단이라길래 단장은 또 얼마나 신화적인 인물인가 했더니 별거 없네요. 소문만 요란했지. 뭐, 작은 제비라더니 이제는 다 늙은 암탉 아닌가요?”임유경은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자신의 젊음과 신체 조건을 거리낌없이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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