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이 이 말을 할 때, 눈빛 속의 감정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격렬하게 드러났다. 바로 곁에 서 있던 임원조차 그의 눈을 마주하지 못했음에도, 그가 속으로 얼마나 간절한지를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그 간절함은 바로 김단을 향한 것이었다!임원은 그제야 정말로 소한의 마음속에 김단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자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가슴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치솟아 올랐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바닥에 떨어지게 내버려 두었다.그때, 그녀의 눈앞에 느닷없이 손수건이 나타났다.그것은 바로 소한의 손수건이었다.임원의 가슴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들었다.소한은 담담히 한마디를 건넸다. “이만 가자.”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를 기다리지도 않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임원은 손수건을 손에 쥔 채 그대로 멈춰 서서, 그가 멀어져 가는 크고 우직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보며 그녀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남자는 삼처사첩이 당연한 일 아니던가? 소한과 김단은 오래전 혼약을 맺었던 사이였다. 그의 마음속에 아직도 김단이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렇지 않다면 그는 오히려 무정하고 냉혈한 사내일 것이다.하지만 소한과 김단은 이미 과거의 일이다. 이제 황제께서 직접 명을 내리셨으니, 소한이 아무리 큰 담력을 가졌다고 해도 황제의 아들과 여인을 두고 다툴 수는 없을 것이다.결국, 소한이 맞이할 여인은 자신임이 분명했다.지금 그녀가 손에 쥔 이 손수건처럼, 결국 소한의 모든 것은 자신이 쥐게 될 터였다.그렇게 생각하니, 임원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추슬렀다.임원은 코를 훌쩍이며 손수건을 소매 속에 고이 넣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소한을 따라갔다. “오라버니, 잠시만요. 저도 함께 가겠나이다.”그녀는 여전히 한결같은 나긋한 목소리였다.그러나 소한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늘 그랬듯,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임원
임원의 얼굴에서 방금 전의 억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기쁨 가득한 표정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김단은 속으로 냉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임원의 저런 모습이 단지 자신을 의식해 일부러 꾸민 건지, 아니면 소한이 짧은 시간 안에 무슨 수를 써서 달랜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었다.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방 문이 갑자기 열렸다.숙희는 급히 김단의 뒤로 물러섰고, 김단 또한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예를 갖추려 했다.그러나 문 앞에 선 사람을 본 순간, 김단의 행동은 멈추고 말았다.명정대군이 아니었다.대신, 다부진 체격의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그들의 체형으로 보아 무예를 익힌 자들임이 분명했다.김단은 즉시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당신들은 누구시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러는 것이오?”“진산군의 큰 아씨 아니시오?”상대방 중 한 명이 갑자기 말을 받아쳤다.김단의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처음에는 단순히 방을 잘못 찾아온 무례한 자들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분명 자신을 노리고 온 것임을 깨달았다.하지만, 분명 명정대군이 이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던 장소였다.“그대들은 명정대군의 사람이오?”김단은 마지막 남은 희망을 안고 물었다.그러나 두 남자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더니, 김단을 향해 말했다.“아씨께서 오해하셨소. 우리 형제는 단지 돈을 받고 남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뿐이오.”두 사람은 명정대군이 보낸 사람이 아니었다.김단의 마음은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그 순간, 김단의 뒤에 있던 숙희가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가 한 남자에게 달려들며 외쳤다.“아씨, 어서 도망치십시오!”김단은 깜짝 놀랐으나, 어떤 행동을 취할 새도 없이 숙희는 남자의 손에 힘없이 밀려나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너무나도 간단했다.숙희는 마치 사람이 아니라 자그마한 토끼처럼 힘없이 밀려났고, 그 과정에서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정신을 잃게 되었다.찻집 밖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이 작은 방 안에서 벌
두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순간, 김단은 마침내 크게 외쳤다.“멈추시오!”그녀의 가슴은 격렬히 요동치고 있었다. 두려움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여전히 스스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그 두 남자는 잠시 그녀의 기세에 눌린 듯 걸음을 멈추었다.김단은 말했다.“방금 내가 이미 말했다시피, 전하께서 나를 명정대군과 혼인하도록 하사하셨소. 나는 이제 명정대군의 약혼자요. 나를 건드리는 것은 단순히 진산군과 대립하는 것만이 아니라, 명정대군과 대립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당금 전하와 적대하는 것이오!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시오. 당신들을 이곳에 보낸 자가 과연 당신들을 지킬 수 있겠소?”그 말을 들은 두 남자는 서로를 쳐다보며 뭔가 생각하는 듯했다. 김단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그러자 두 남자는 김단에게 공손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 말투와 태도도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다.“우리 둘은 강호를 떠도는 무사라, 당신들 고관대작들의 원한 관계는 알지 못하오. 우리는 단지 받은 돈에 따라 일을 하는 것뿐이오. 하지만 아씨께선 안심하시오. 우리 둘은 당신을 해칠 생각은 없소. 다만, 아씨께서는 우리와 함께 가주셔야겠소.”그들의 말을 들은 김단은 비로소 숨을 한 번 고를 수 있었다.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두 사람이 강호의 의리는 지키는 듯 보였다.그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면, 목숨만은 지킬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당신들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이오?”김단은 다시 물으며, 그들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했다.그러나 두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더는 말씀드릴 수 없으니, 아씨께서 용서하시오.”그 말을 끝으로 두 남자는 다시 다가오려 했다.“잠깐!”김단이 또다시 외쳤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냉혹한 기운이 서려 있지는 않았다.그녀는 더 이상 냉정을 유지할 힘도 없었다.예전에 세답방에서 상대하던 이들은 모두 여자였지만, 이렇게 건장한 남자 두 명과 맞서는 것은 처음이었다.그녀는 남녀 간의 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낭자가 마음에 드십니까?”장터 상인이 눈썰미가 좋았던지라, 임원을 발견하고는 바로 그 토끼 모양의 등을 떼어 건네며 말했다.“다섯 냥이면 됩니다.”소한은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은화를 꺼내 상인에게 건넸다.상인은 은화를 받아들고 미소 지으며 등을 소한에게 넘겼다. 하지만 소한이 등을 임원에게 건네기도 전에, 뒤쪽 군중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무언가 큰일이 벌어진 듯했다.임원과 소한 역시 그 소란에 이끌려 시선을 돌렸다.소한은 키가 크기에 임원보다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군중 너머로 그는 얼굴에 피투성이가 된 한 몸종을 발견했다.어딘가 낯익은 얼굴이었다.그녀는...김단의 몸종이었다!순간 놀란 소한은 서둘러 숙희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임원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소한이 들고 있던 토끼 등이 땅에 떨어져 불길이 일었다.불길은 점점 그녀의 치맛자락을 향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임원은 겁에 질렸지만, 다행히도 상인이 재빠르게 물 한 바가지를 가져와 불을 꺼뜨렸다.그러나 임원은 아직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멍한 눈으로 소한이 달려간 방향을 바라보았다.소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지 못한 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뒤를 따라갔다.그 사이 소한은 이미 숙희 앞으로 도착해 있었다.“무슨 일이냐? 네 아씨는 어디 있느냐?”숙희는 피투성이 얼굴로 찻집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아씨를 찾고 있었다.그동안 울지도 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 사이를 샅샅이 훑던 그녀는, 소한을 보자마자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흑흑! 장군님, 제발 제 아씨를 구해주세요!”숙희는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의 아씨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소한뿐이라고 생각했다.소한은 눈빛을 매섭게 빛내며 숙희를 번쩍 들어 올렸다.“울지 말고 말해 보거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숙희는 울음을 멈추고 훌쩍이며 찻집에서 있었던 일을 소한에게 전했다.그제야 소한은 김단이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단이 눈을 떴을 때, 앞은 여전히 암흑이었다. 눈이 무언가로 가려져 있는 것 같았다.본능적으로 손을 들어보려 했으나, 두 손이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제야 그녀는 찻집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떠올렸다.그렇다면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몸 아래가 제법 푹신한 걸 보니,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는 듯했다.희미하게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도 들렸다.아직도 춘산 거리에 있는 것 같았다!아마도 이곳은 춘산 거리에 있는 어느 여관 방일 것이다.하지만 눈이 가려져 있어 자신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없었다.얼마나 오래 끌려왔던 걸까?그렇게 생각하던 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그 두 남자가 돌아온 것이다.김단은 그중 한 명의 발소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들었다.아마 그녀가 깨어났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김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다행히 그 남자는 그녀가 깨어난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비웃으며 말했다.“형님, 이번에 형님이 산 수면제가 참 잘 듣네요!”그 말을 하며 남자는 다시 걸어갔다.“그렇지! 이 약이 약왕곡에서 가져온 거라더라!”술 냄새가 풍겨왔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 듯했다.“형님, 그런데 밖에 관찰사들이 왜 이렇게 많죠? 설마 우리를 잡으러 온 건 아니겠죠?”그중 한 명이 불안한 듯 물었다.그러자 다른 한 명이 답했다.“이 멍청아, 밖에 있는 놈들이 어디 관찰사들이냐? 관찰사들이 저렇게 살벌한 기운을 풍기는 걸 본 적 있니?”그렇게 말하며 그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내 생각엔 그놈들은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여본 병사들일 것이다.”그 말이 끝난 뒤, 잠시 침묵이 흘렀다.두 사람 모두 기분이 나빠진 듯했지만, 김단은 그들이 술을 마시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잠시 후, 한 사람이 다시 물었다.“그럼, 그 병사들이 우리를 쫓아온 거야? 저 진산군 댁의 아씨 때문에?”“아마도 그럴걸.”다른 사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진작에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이었으면, 은화를 더
손발이 너무 저려서 조금만 움직여도 찌르듯이 아프다 보니, 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낮은 신음소리를 내고 말았다.자신이 소리를 냈다는 걸 깨달은 순간, 김단은 몸을 다시 바짝 굳혔다.다행히 두 사람의 코고는 소리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그제야 김단은 그들이 깊이 잠들었다는 것을 확신했다.망설임 없이,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보기 시작했다.하지만 상대방은 분명히 숙련된 자였다.그들이 묶은 밧줄은 너무나도 단단하게 매어져 있어, 한참을 버둥거려도 손목에 묶인 줄이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그러나, 그녀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아까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그들은 그녀를 망가뜨리고, 명정대군과의 혼약을 깨려는 것이 분명했다!비록 김단은 그런 혼약에는 관심 없었고, 명정대군과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조모께서 이 일을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상심하실 것이 분명했다.조모의 몸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었다.김단은 진산군댁으로 돌아온 뒤, 조모에게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했다.지금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조모께 조금의 걱정이라도 끼치지 않는 것이었다!머릿속에는 조모가 그녀를 안으며 부드럽게 위로해주던 모습이 떠올랐다.김단의 마음속에는 불길이 솟구쳤다.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여기서 끝낼 수 없었다.절대로, 절대로 그렇게 되게 놔둘 수 없었다!두 사람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지금이 그녀가 도망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결코 밧줄 한 가닥 때문에 자신의 앞날과 조모의 목숨을 끊어지게 할 수 없었다!그렇게 결심하며 김단은 왼손을 힘껏 뽑아내기 시작했다.손목에 묶인 밧줄이 너무 단단하게 조여 살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녀는 필사적으로 손을 빼내기 위해 힘을 주었다.아프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당연히 아팠다!거친 밧줄이 피부를 갈라놓으며 살을 베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반드시 도망쳐야만 했다!김단은 온 힘을 쏟아냈다.마
김단은 순간 멈칫했다가 마침내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정, 정 종사관이시군요….”“김단 아가씨!” 정암도 그제서야 상대를 알아보고 무의식적으로 김단 뒤의 방을 흘끔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김단을 자기 뒤로 끌어당겼다.“사람들에게 제가 잡혀온 걸 알려서는 안됩니다.” 김단이 작게 속삭였다.정암은 상황을 똑똑하게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뒷문으로 모시겠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김단을 데리고 나가려 했다.그런데 김단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닌가.정암이 놀라 돌아보니 김단의 안색이 창백하고 이미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아가씨, 왜 그러십니까?”정암은 김단이 두 괴한에게 다친 게 아닌가 걱정돼서 물었다.그런데 뜻밖에도 김단은 축 늘어진 왼손을 받쳐 들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정 종사관,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이딴 상처쯤이야!전장에서 무수한 적을 죽이며 소한을 따랐던 정암에게 그 정도 상처쯤은 문제도 되지 않았지만, 김단의 다친 손을 보고 있자 가슴이 시큰거리며 아려왔다.그가 방금 들었던 여자의 비명은, 김단 아가씨가 억지로 밧줄을 벗겨내느라 탈골하면서 지른 비명이 분명했다.정암의 낯빛이 확 어두워지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조금 아프실 테니, 참아 주십시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고 입술을 꽉 물었다.정암은 조심스럽게 김단의 왼쪽 손을 들어올렸는데, 그녀가 다친 것이 자신의 몸에 난 상처보다 더 아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모질게 마음 먹지 않으면 김단의 상처는 더욱 깊어지고 만다.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순간 손에 힘을 줬다.“윽!”김단이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참아내느라 입술에 피가 맺혔다.입 안에 비릿한 피맛이 느껴지자 비로소 입술에 힘을 풀었는데, ‘어라?’ 그녀는 왼손이 아까처럼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김단이 정암에게 미소를 지었다.“정 종사관, 고마워요.”그녀는 이런 일을 겪고도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정암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리고 그는 몇 년 전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여자에게 정절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니까.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소한은 진산군의 인사에 화답하고 김단을 향해 말했다.“명정 대군은 연래 차관이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복래 차관으로 바뀐 겁니까?”김단은 한 켠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는데, 손에 상처는 처치를 마쳤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여전히 아팠다. 의원 말로는 상처가 심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볍게 여겨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적어도 한 달 간은 손에 힘을 주지 말라고 했다.이때 소한의 질문을 받고 김단은 일어나 소한에게 말했다.“제가 서신을 받았을 때 서신에 분명 복래 차관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그 서신은 아직 분명히 제 화장대에 들어 있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김단은 고개를 돌려 임학을 바라봤다.임학은 별로 멀지 않은 후미진 구석에 서 있었는데, 사람들 눈에 띌까봐 몸을 사리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임학이 들어올 때 벌써 김단은 그를 눈여겨 봐뒀다.그녀가 사뿐사뿐 임학에게 걸어갔다.“도련님께서는 오늘 아주 얌전하시네요. 어떻게 된 거죠? 무슨 일 있으셨어요?”임씨 부인은 김단이 왜 갑자기 임학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어리둥절해 하며 그녀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네가 아주 큰 봉변을 당했는데 가만 앉아서 쉴 일이지, 오라비 일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돼.”하지만 김단은 임씨 부인을 밀쳐냈다.손에 힘을 전혀 주지 않고 임씨 부인의 손은 뿌리친 뒤 가려던 것 뿐인데, 임씨 부인 뒤에 하필 태사의가 놓여 있어 김단에게 밀쳐진 순간 태사의에 철퍼덕 주저앉는 꼴이 되었다.이를 보고 임원이 바로 달려나왔다.“언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머니는 언니를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 어떻게 이럴수가….”“닥쳐!”김단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임원을 노려봤다.“이 일에 네가 관련이 됐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네가 한마디만 더 지껄였다간 맞을 줄 알아.”임원은 무공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녀가 임원을 때리기로 마음 먹으면 식은 죽 먹기였다.그러나 김단
김단은 맹영지를 소하가 있는 곳으로 보게 하였다.허나 맹영지는 반응이 느리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에 소하를 바라보지 않았다.“소하라고 하는 사내입니다. 기억하십니까?”김단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허나 소하의 이름을 들어도, 맹영지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소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이리 상황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소.”김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소하 오라버니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여 낭자를 보살 피겠나이다.”곧이어 소하의 시선이 김단을 향했다.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사실 그는 맹영지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눈앞의 감회는 그저 오늘날과 이전의 다름에서 온 것이라 말할까,마음에는 김단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 하지 말라고 말할까.헌데 만일 그녀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소하는 여러 생각에 휘잡혔다.허나 생각했던 말은 내뱉지 않았다.“중전 마마께서 낭자와 맹 낭자를 처소로 들이시는 것은, 분명 다른 생각이 있으실 것이오.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사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어쩌면 맹 씨 집안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어찌 되었든 간에, 낭자가 중전의 처소로 들어갔으니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과 같소. 항상 조심해야 하오.”“소하 오라버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제게는 오라버니께서 가르쳐 주신 방도가 있지 않사옵니까.”그녀의 말에 소하가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돌을 은침으로 대신하여, 민대부를 반나절 동안 아우성치게 하지 않았소.”“반나절이라니요, 반 시진도 가지 못했나이다!”김단은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래도 큰 인물이 되지 않았는 가.”“스승이 잘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김단은 서로 치켜세우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렸다.“중전 마마께서 기다리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 무렵, 김단이 맹영지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경씨가 옆에 서있었다.그의 얼굴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허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전하가 김단에게 맹영지와 함께 궁으로 들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는 가.만일 대군께서 한양에 계셨다면 막을 수 있었을 터, 한낱 마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궁궐은 워낙 넓고, 궐 안의 금군 중에는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넘쳐 난다.더하여 내각에는 임금을 지키는 호위들이 따로 존재한다.자신이 몰래 궁에 들어가 낭자를 지키려 든다면, 날이 밝기도 전에 역적이라 오해를 받아 온몸이 찢길지도 모른다.김단은 경씨의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경씨 도령, 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제 몸 하나는 제가 잘 챙길 수 있사옵니다.하물며 소하 오라버니는 금군의 총령이니, 만일 무슨 일이 생기게 되어도 도움을 청할 수 있나이다.”경씨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부디 조심하시오.”경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숙희가 붉은 눈가를 한 채로 입을 열었다.“아씨, 노비는 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옵니까?”숙희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저 김단과 함께 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여도 자신이 뒤집어쓸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은 만일 하나 일이 생겨도, 숙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그저 작은 의녀에 불과해.중궁전에 거처하면서 내 몸종까지 데려간다 하면, 중전의 사람을 꺼려 한다면서 입을 놀릴 것이야.”숙희는 어렴풋이 그저 둘러대는 것일 뿐이라 느껴졌다.허나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궁 안의 규칙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진정 구설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 가.혹여 자신이 아씨를 해할 수도 있지 않은가.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숙희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뜬 눈으로 김단이 맹영지와 함께 궁궐 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양쪽으로 큰 성벽이 둘러쌓여 있어,알 수 없는 압박감에 맹영지가 긴장을 했다.그녀의 두 손은 김단의 팔을 꼭
“황공하옵니다, 마마.”향 하나를 다 피우고 나서야, 김단은 중전의 처소를 떠났다.그리고 서아름을 살피기 위해, 복화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서아름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안색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허나 자신의 나인 앞에서는 이따금 지친 기색을 보였다.마치 나인에게 곧 죽을 사람처럼 행실 하곤 했다.다행히도 나인은 눈치가 없었다.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서아름을 살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그 덕에 서아름도 마음이 편했다.김단을 보자 서아름이 서둘러 그녀를 배웅했다.“의녀께서 오셨나이까! 어서, 안으로 들이시옵소서!”김단은 서아름에 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물을 따라 주었다.“다 의녀의 덕분이옵니다. 근래에 걸음걸이도 훨씬 가벼워졌나이다!”사람의 몸은 아프지 않아야, 건강하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다.낮에는 정신이 또렷하고, 밤에는 편히 잘 수 있었다.허나, 김단의 안색이 그녀와 반대로 어두웠다.“오늘 날, 전하께서 중전 마마를 옆에 두시고 숙원 마마의 상태에 대해 여쭈셨나이다.소신은 전하께 마마의 몸이 연약하지만,아이는 무탈하다 아뢰었사옵니다.”서아름이 움찔했다.그녀는 덕빈을 오랜 시간 시중을 든 사람이다.어찌 김단의 뜻을 모를 수 있는 가.자신은 살지 못하지만, 아이는 살 수 있다는 뜻이다.서아름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만 무탈하면 돼옵니다. 소인은 그저 덕빈께 아이 하나만 남겨두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아이만 무탈하면, 제 미천한 목숨 하나가 중요하겠나이까.”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그녀는 서아름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아이와 그녀의 목숨은 똑같은 것이라고.사람의 목숨에는 신분이 없듯이, 미천한 목숨이라는 것은 없다.더하여 귀식환 제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제조에 성공만 하면, 서아름을 궁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보낼 수 있었다.허나 김단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귀식환 제조를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실패로 돌아간다
김단은 중전의 뜻을 금방 알아챘다.중전이 서아름을 해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뱃속의 아이 때문이었다.만일 김단이 아이가 무탈하다 말했다가, 훗날 서아름이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게 되면, 임금이 그녀를 의심할 것이 뻔하다.중전은 김단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김단은 시선을 거두었다.고개를 숙인채, 자신의 발만 쳐다보며 말했다.“중전 마마께서 내려주신 귀한 보약 덕에, 숙원 마마의 태아는 무탈 하옵니다. 숙원 마마께서 끝까지 버텨내신다면, 태중의 용태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김단의 말에도 중전의 살기 서린 눈빛은 여전했다.허나 임금은 만족한 듯, 미소가 짙어졌다.그는 뒤를 돌아 중전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을 잡고는 다정하게 말했다.“다 중전 덕분이오.”중전은 살기 서린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임금의 칭찬에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주상께서 후궁의 일을 신첩에게 맡기셨으니, 어찌 주상의 근심을 덜어드리지 않겠사옵니까.”“잘하셨소!”곧이어 임금은 몸을 뒤로 옮기더니, 중전의 귓가에 속삭거렸다.중전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기다리고 있겠나이다.”“하하하, 알겠소.”임금은 그제야 손을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짐은 아직 정사가 남았소, 자네는 중전 곁에서 말동무를 해주시오.”뒷부분은 김단을 향한 말이었다.김단은 예, 라 대답하며 임금을 배웅했다.임금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중전이 김단을 바라보았다.쌀쌀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의녀는 주상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주관이 뚜렷 해지셨소.”중전의 말투에 김단의 심장이 철렁했다.김단은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부디 중전 마마께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소신은 마마를 위함이었나이다.”그녀의 말에 중전이 코웃음을 쳤다.그제야 천천히 물어보았다.“말해 보시오.”“부디 마마께서 깊이 헤아려 보시옵소서. 전하께서 후손을 이토록 중히 여기시거늘, 만일 소신이 숙원 마마의 태중이 위태롭다 아뢰
임금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수고가 많았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전이 입을 열었다.“전하, 신첩 또한 의녀가 수고가 많다 생각하옵니다. 영지를 돌보시는 것도 벅차신데, 궁중의 후궁들까지 살펴야 하시니 말이옵니다. 차라리 영지를 신첩의 처소로 옮겨 이곳에서 돌보게 하는것이 어떠하옵니까? 의녀는 본디 평양 대군의 관저에 임시로 거처 중이시고, 그런 곳에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체면상 온당치 않은듯하여 감히 아뢰옵니다.”평양 대군 관저에 김단은 손님에 불과하다.어찌 손님이 손님을 데려갈 수 있단 말인 가.하물며 맹 씨 집안의 자녀가 평양 대군 관저에 머무는 것에 대해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임금도 같은 생각이다.맹영지를 중전의 처소에 머물게 하는 것이, 평양 대군의 관저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중전은 맹영지의 친 고모이며, 처소에서 병을 돌보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가.허나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허나 맹 가의 계집은 이 자만 알아본다 하지 않았소? 만일 이곳으로 옮겨,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중전의 병세를 더욱 악화 시킬지도 모르오.”임금은 중전을 걱정하고 있었다.다정한 말투에 중전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의녀도 처소로 옮겨와 머물면 되지 않겠나이까.”맹영지가 알아보는 사람이 김단 뿐 이라면, 김단을 중전의 처소에 머무르게 하면 되지 않는가.그녀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굳어졌다.중전의 자신의 제안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그리하면 의녀도 수고를 덜 하겠지 않나이까.”임금도 중전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곧이어 김단을 향해 물었다.“자네는 어찌 생각하는 가?”김단은 내키지 않았다.궁중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허나 김단은 공주의 사람이다.공주와 중전이 같은 편이니, 중전의 제안을 감히 거스를 수는 없었다.곧이어 절을 하고 말했다.“중전마마의 각별한 보살핌에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그녀의 대답은 다른 자가 듣기에는,중전의 제안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옆에
김단의 미소를 보아도, 맹 씨 부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맹 씨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서, 어찌 김단의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 가.비록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온화하기 그지없지만, 자칫하면 그들을 물어 집안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었다.또한 김단의 뒤를 봐주는 자들은, 감히 그들이 거들떠도 보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닌가.오늘 김단은 말리려고 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맹 씨 집안의 체면을 고려하여, 그녀가 맹영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맹 씨 부인은 답답함을 느꼈다.허나 김단을 향해 미소를 짓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맹 씨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김단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곧이어 숙희가 김단의 곁으로 다가갔다.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맹 아씨의 친 모친이옵니다. 어찌 친 딸을 해하겠나이까, 혹여 아씨께서 너무 깊게 염려를 하신 것이 아니옵니까.”“내가 그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더냐.조금만 생각하면 알게 되는 법이지.”김단은 말하면서 맹영지에게 시선을 돌렸다.맹영지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금색의 계화 꽃잎이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치마를 바라보았다.만일 맹 씨 부인이 ‘맹영지의 상황이 이리 심각할 줄 몰랐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단이 직접 맹영지를 맹 씨 집안의 마차로 올려 보냈을 지도 모른다.자신의 피가 흐르는 친 자식을, 어찌 사, 오 년 동안 상황을 몰랐던 것일까.마치 그녀가 세답방에 버려지고, 삼 년 동안 어떠한 안부도 묻지 않는 그 자들과 같은 모습과 같았다.허나, 정승댁은 세답방이 아니다.맹영지는 노비가 아닌 그저 댁의 맏며느리가 되기 위해 정승댁으로 향한 것이다.어찌 친부모가 되어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는 가.더하여 중전이 독이 맹 씨 집안의 소행이라 의심을 품고 있는 중이다.오히려 정승댁이 맹 씨 집안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겉으로는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수 앞을 보아 맹영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한
맹 부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손을 거두고 두려운 표정으로 맹영지를 바라보았다.“어찌 이럴 수 있으십니까?”무언가 떠오른 것 마냥 김단을 향해 바라보았다.“의녀, 영지가..”김단은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맹영지의 곁으로 다가갔다.“다 나았나이다.”그녀의 한 마디에 맹영지는 천천히 진정을 되찾았다.두려운 눈빛이 점차 평온해졌다.맹 씨 부인은 이러한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김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낭자께서는 소인만 알아볼 수 있으십니다. 다른 이들이 다가간다 하여도,밀쳐 내실 겁니다. 부인도 똑같이 밀쳐 내실 것이옵니다. 제 몸종도 낭자에게 긁혀 손에 상처를 입었나이다.”김단의 말이 끝나자마자, 숙희가 맹 씨 부인에게 손을 보여 주었다.어제 맹영지에게 긁혀 생긴 상처였다.다행히도 김단의 설득 아래,맹영지는 드디어 숙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그제야 그녀의 시중을 들게 해 주었다.김단의 말에 맹 씨 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오늘 데려 가지 못한다는 뜻이옵니까?”“아니옵니다.”김단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소인은 그저 맹 낭자께서 이곳에 계시는 게 나을 듯 하옵니다. 허나, 낭자께서는 맹 씨 집안의 자식이 아니 옵니까. 부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데려 가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다.현재의 맹영지의 상황으로 보아, 억지로 데려 가는 수 밖에 없었다.부모가 되어 어찌 자식에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단 말인 가.맹 씨 부인은 어찌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대감이 맹영지를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허나 이 상황에 평양 대군 관저의 문을 나갈 수 있다 한들,맹영지가 소리치는 모습에 다른 이들이 소문을 퍼트릴 수 있다.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의녀께서는 높은 의술을 가지고 계시라 믿나이다. 혹여 영지를 잠재울 수 있는 수가 있사옵니까?”‘잠’ 이라 했지만, 사실 기절을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그리해야 조용히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인에게 약은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