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과 불면 계약을 했다

첫사랑과 불면 계약을 했다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24
Oleh:  소라닌Baru saja diperbarui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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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여름, 한 번의 비극으로 첫사랑은 끝났다. 그리고 10년 뒤— 베일에 싸인 스타 작가'강지음'과 출판사 에이스'마서현'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 우연, 실수 혹은 질긴 악연이 만든 재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음은 서현에게 믿기 힘든 계약을 제안했다. “나랑 계약하자, 마서현” “…계약?” “나랑 계약해. 대신, 조건이 있어.” “…?” “내가 원할 때, 나랑 자자.” “…뭐? 뭘 해?” “뭘 하자는 건 아니고, 나랑 자자고. 네가 날 좀 재워줘야겠어.” 출판사의 위기를 막기 위해. 불면 없이 글을 쓰기 위해. 그리고 잃어버린 우리의 시간을 위해. 불면 계약으로 다시 시작된 첫사랑의 뜨거운 재회로맨스. [첫사랑과 불면 계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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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1화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10년 전, 그러니까―

스무 살.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그를 만났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버지와 그 여자의 싸움을 견디지 못하고 집에서 뛰쳐나온 날이었다.

분명 좀 전까지 시퍼런 하늘에 쨍쨍하게 빛나던 해가 시커먼 구름 뒤로 자취를 감추었고, 잿빛 하늘의 대찬 빗줄기가 땅을 뚫을 기세로 쏟아지고 있었다.

서현은 입술을 잘근 씹어 물고는 그대로 폭포수 같은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빗줄기가 얼마나 세차던지 대문을 나서는 그 짧은 순간에도 벌써 머리통이 얼얼했다. 게다가 신발도 신지 못한 발바닥은 이미 깨질 듯이 시려왔다.

얼마 못 가 내달리던 온몸은 깊은 물 속에 뛰어든 듯, 가득한 물기로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메마른 가슴은 조금도 젖지 않고 텁텁하기만 했다.

우렁찬 빗소리에도 집안에서 나던 굉음이 고막 가까이 진동하는 듯했다.

‘그냥 이대로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으면.’

수없이 되뇌던 말인데 오늘은 좀 더 축축하고 퀴퀴하게 느껴졌다.

서현은 아득해진 시야를 닦고 또 닦으며 계속 달렸다.

하지만 제아무리 지독한 오기라도, 하늘에서 뿜어대는 세찬 빗줄기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서현의 몸은 달리면 달릴수록 심하게 떨려왔고, 발바닥은 얼어붙어 깨질 듯이 아팠다.

한여름의 비가 이렇게 서늘할 일인가. 불규칙하게 터지는 숨결마다 차가운 쇠 맛이 목젖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점점 비릿해지더니 숨구멍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렇게 서서히 눈앞은 캄캄해져 갔고, 더 이상 팔다리에는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을, 딱 그즈음이었다.

‘퍽-!’

시린 물기에 단단한 온기가 세게 맞닿았다.

“야!”

제 몸 안으로 와락 달려든 여린 몸을 한 품에 끌어안은 남자의 가슴팍이 놀란 듯 크게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놀란 가슴께에서 여자의 엷은 숨결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숨소리에 여자의 허리를 감싼 남자의 팔에는 본능적으로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 작은 힘에도 바스러질 듯 파르르 떨리는 몸….

혹시라도 이 작은 숨소리가 정말 꺼져버릴까, 이 작은 몸이 제힘에 바스러질까 봐 무서워진 남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너 미쳤어? 비는 죄다 맞고…이런 날 왜 앞도 안 보고 뛰어다녀?!”

그런 제 목소리에 여자애의 눈꺼풀이 사르륵 진동했다. 그러더니 이내 힘겹게 벌어지는 애처로운 입 모양.

“……말…이…야.”

무슨 말인지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여자가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남자의 놀란 가슴이 잠시 진정됐다.

“그래, 말해 봐. 말. 정신 좀 차려보라고!”

“…너 뭔데…반말이냐고…”

여자의 새파란 입술 새로 나온 말이 제법 까칠해서 남자가 당황해 입을 뻐끔거렸다. 그 찰나에 여자의 고개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야!”

고함과 함께 남자는 서현을 번쩍 안아 들었다. 온몸이 빗물에 흠뻑 젖었는데도, 제 몸이 아닌 양 힘없이 축 늘어졌는데도, 남자에게 서현은 너무나도 가벼웠다.

 * * *

“…으, 으.”

온몸이 뜨겁고 얼얼했다. 가늘게 뜬 서현의 눈이 두어 차례 슴벅였다.

이내 서현의 초점이 낯선 공간을 인식했는지 또렷해질 즈음, 불쑥 시야를 가득 메운 낯선 살색에 눈이 번쩍 뜨였다.

번쩍 뜬 눈으로 다시 본 그것은 분명 남자의 몸이었다.

“으아아아악!”

“악!”

제 비명에 살색의 주인도 덩달아 비명을 질렀다. 남자는 가려지지도 않는 커다란 몸을 가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저보다 더 사색이 된 남자가 서현을 바라보았다.

눈썹께까지 구불구불 흘러내린 검은 머리칼, 쌍꺼풀 없이 길게 뻗은 눈매는 매서워 보였지만, 왼쪽 눈 아래 작은 점과 말간 눈동자 때문인지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았다.

아…여긴 어디고, 저 남자는 누굴까.

그래, 둘 중 하나겠지.

“납치범이세요? 아니면 생명의 은인?”

뻐근한 몸을 일으켜 앉은 서현은 질문을 하고 나니, 집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오피스텔이었다. 딱히 인테리어랄 것도 없는 심플하고 단순한 이 공간은 침대에서 부엌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뭐? 납치범?!”

남자는 빨래 건조대에서 티셔츠 한 장을 휙 집어 입었다. 탄탄한 몸이 커다란 옷에 가려진 그에게서는 소년미가 물씬 풍겼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못마땅한 얼굴로 되묻는 남자에게 서현은 깔깔해진 목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뭐든 상관없어요.”

“어쭈? 상관이 없어?”

서현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포근한 이불 위로 눈물이 떨어지며 툭, 툭 소리를 냈다.

“…야. 상관없다면서…왜 우냐?”

그러게. 나 왜 울지.

남자의 물음과 자신의 반문 이후 눈물은 더 거세게 쏟아져 내렸다. 어깨가 들썩이고 몸이 떨려왔다.

아까부터 느껴진 이 집의 온기 때문일까?

이 별거 없는 집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낯선 남자의 집인데도, 처음으로 안심이 됐다. 뛰쳐나온 그 집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묘한 안도감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야, 야…”

당황한 남자가 말을 더듬으며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납…치 그런 거 아니야. 나 그런 놈 아니야…아, 진짜 아닌데.”

서현이 고개를 들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희뿌연 시야 속 그 남자는 우는 저 때문인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커다란 키를 한창 구부리고 있었다.

끅끅거리는 숨을 간신히 삼킨 서현이 입을 열었다.

“…끅. 흐윽, 끅. 근데…끅. 근데 왜 자꾸…반말이…세요?”

“어…? 아, 미안…근데 나 진짜 나쁜 놈 아니야…요.”

남자는 서현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인지 자세를 더욱 낮추며 침대 가까이로 다가왔다. 서현은 그런 그가 여전히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이 선명해질수록 안심되었다.

나 혹시 외모지상주의였나.

그때, 남자가 조심스럽게 침대에 등을 기대며 바닥에 살포시 앉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서현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다 울었냐?”

어느새 진정된 서현은 눈과 코를 벅벅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돌려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현은 그의 뒤통수를 보며 겨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름, 나이…말해줘요.”

“강지음. 스물셋.”

강지음…오빠였네.

서현은 얕게 헛기침하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마서현. 난 스무 살…”

순간 지음의 뒤통수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곧 저를 슥 올려다보는 지음에게 서현은 입술을 삐쭉이면서 말했다.

“반말해…나도 할게.”

서현의 말에 지음은 금세 픽 웃더니 침대에 머리를 젖혀 기대었다. 그러자 지음의 옆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날렵한 턱선 아래로 두껍게 움직이는 그의 목젖을 보며 서현은 저도 모르게 침을 크게 삼켰다. 때마침 지음의 시선이 서현을 향했다. 서현은 순간 달아오르는 얼굴을 얼른 감췄다.

곧 그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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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asan-ulasan

허연주
허연주
너무잼나요 업뎃많이해주세요
2026-09-06 20:45:44
2
0
앙줼ㄹ
앙줼ㄹ
넘 재밋어요! 마구 업데이트 해주세용
2026-08-31 13:17:27
3
0
해태해
해태해
꺄약~~~~~너무재밌어요~!!! 업뎃만꾸준히 되길바라며 강추합니다^^
2026-08-26 18:18:04
3
0
가이거린
가이거린
집중해서 다 읽었네요 다음 내용이 기대되는 글입니다 업뎃 자주 해주세요
2026-08-25 22:31:28
2
0
rlasang89
rlasang89
오랜만에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2026-08-13 07:01:34
5
0
97 Bab
2화 재워줘
“밥 먹을래?”지음의 물음에 서현이 조심스럽게 다시 그와 눈을 맞췄다.“…아니. 이제 나는…”집에 가보겠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 거지 같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목구멍에 바늘이 박힌 것처럼 뻣뻣해져 말끝이 뭉개졌다.지음은 서현의 하다 만 대답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팔다리를 늘려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는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서현은 그런 지음을 빠르게 눈으로 좇았다. 그러다 보니 이 집에 다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야구 선수? 뭐 그런 거야?”야구공, 글러브, 유니폼, 트로피 등 단순한 이 집 속에 유난히 튀는 물건들이었다. 빨래 건조대에 널려 있는 것들도 전부 운동복이었다.아, 그래서 몸이…!서현의 눈이 다시 그의 넓은 어깨로 향하는 순간, 지음이 봉지라면 세 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나 이거 진짜 아무나 안 주는 거다?”“달라고 안 했는데.”“아, 그리고 나 투수야.”“야구 선수가 아니고?”“……라면 주지 말까.”지음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서둘러 라면 끓이는 데 집중했다.집안은 금방 라면 냄새로 가득해졌다. 나름 상을 차린 지음이 식탁 앞에 앉아 서현을 불렀다.자극적인 냄새에 위장이 반응한 서현은 홀린 듯이 식탁 앞에 가 앉았다. 라면 위로 피어오른 연기 사이로 지음을 흘끗 보곤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잘 먹겠습니다.”“…잘 먹겠습니다.”지음을 따라 인사를 마친 서현은 달란 적 없다던 라면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주렸던 배를 이렇게 마음 편히 불린 게 언제인지. 서현은 불룩해진 제 배에 절로 손이 갔다.지음은 황당한 얼굴로 그런 서현을 빤히 보다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너 솔직히 라면 혼자 몇 개 먹어.”“…1개?”서현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지금껏 이렇게 마음 편하게 밥을 먹어 본 적도 없고, 먹고 싶다고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뻥 치네.”“그럼 2갠가.”“그럼 진작 말했어야지. 내 반토막도 안 되는 게 먹어봤자지 했는데.”지음의 얼굴은 배신이라도 당한 양 억울해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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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가만히 있어
“…나 오늘 재워줘.”“뭐?”지음의 목젖이 크게 반응했다. 마른침을 얼마나 삼켜대는지 알 수 있었다.막상 말을 꺼낸 서현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애먼 티셔츠를 만지작거리던 손도 멈추었다.처음 본 남자한테 재워달라는 말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고통으로 지난했던 일상을 잠깐만 떠올려보면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집에 가기 싫어.”오늘은 정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연신 침을 삼키던 지음이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안 돼. 그리고 너 그러다 진짜 혼나.”알 수 없는 서운함에 서현은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안 재워 줄 거면 말지. 왜 갑자기 선도 질이야?”“너 내가 진짜 나쁜 놈이면 어쩌려고 그러냐?”“집에 가나 여기서 죽나.”“야! 여자애가 못하는 말이 없어”지음의 날카로운 눈매가 저를 꾸짖듯 노려보고 있었지만 역시나 그의 눈동자에선 온기가 흘러나왔다. 저 사람은 뭐 때문에 저렇게 단순하고 따뜻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화가 났다.아까만 해도 집에서 본 아버지란 작자의 살기 어린 눈과 쉴 새 없이 폭언을 해대던 모습이 엉겅퀴처럼 신경 마디마디에 걸려있는 나로선,이 낯선 안온함이 궁금하면서도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짙고 깊은 슬픔은 대체로 분노로 감추는 게 쉽고 빨랐다.“아, 왜 소리를 질러! 가면 되잖아.”“너 집 어딘데.”“내 옷이나 줘.”“아직 안 말랐어. 그리고 너…좀 기다려.”지음은 으름장 놓듯 단단한 말투로 말을 마치더니 얼른 테이블을 치웠다. 서현은 그가 모르게 작은 한숨을 흘리곤 고개를 떨궜다.그래, 내가 이상한 거지…처음 본 사람한테.테이블을 다 치운 지음은 침대 옆 협탁 서랍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이 덜거덕거렸다. 한참 동안 뒤적이는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잦아들자, 서현의 축 처진 고개와 어깨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지음이 가까이 온 걸 알면서도 서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우습지만 작은 반항 같은 것이었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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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상관없어
“재워 줄게, 마서현.”저를 보고 씩 웃는 지음의 얼굴이 서서히 뿌옇게 번졌다. 뜨근해진 눈시울이 기어코 눈물을 퐁퐁 쏟아냈다.서현은 눈물을 지우며 뿌연 시야 속에서 지음의 얼굴을 다시 찾았다. 그의 웃는 입매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굽이굽이 인생을 달려왔지만, 그의 웃는 얼굴은 단숨에 사랑 그 비슷한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이런 게…반한 건가?지음의 커다란 손이 서현의 눈가를 투박하게 쓸었다.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끝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서현은 그런 지음의 손길에 몸이 가늘게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간질거리는 감각이 낯설지만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이어져도 좋을 것 같았다.그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서현의 허리가 구부러졌고, 지음의 얼굴이 눈앞에 가까워져 있었다.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엔 제 얼굴이 비쳐 보였다.심장이 미친 듯 뛰어댔다. 그러다 그냥 미쳐버린 걸까.이번에는 다른 생각이 들기도 전에 서현의 입술이 지음의 입술에 닿았다.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은 다른 모든 감각을 마비시킬 듯 짜릿했다.아…마서현. 이 미친 것…! 이거 성추행 아냐…? 신고하면 어떡하지.입술을 가져다 대기 전 했으면 좋았을 그 생각이 이제야 뇌리를 스쳤다. 제 미친 짓에 간담이 서늘해진 서현이 얼른 입술을 회수하고 허리를 세웠다.일은 저질렀는데, 이 좁은 집엔 홧홧한 얼굴과 달아오른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그때, 서현의 손을 감싸는 커다란 지음의 손. 굳은살이 가득하고 거친 그의 손이 느껴졌다. 도망치려던 손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했다. 아니, 뿌리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지음은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며 물었다.“너 원래 처음 본 남자한테 뽀뽀하고 그래?”지음의 목소리가 미세한 떨림과 함께 늘어져 들렸다.“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은데.”단단하려 애쓴 서현의 목소리가 숨소리와 섞여 빠르게 튀어 나갔다.“나는 처음 본 여자랑 뽀뽀해 본 적도 없고…”잠깐 말을 멈춘 지음의 시선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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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스무살의 나는 그때……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서현!” 내 이름을 부르고, 나를 보며 뛰어오는 저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든 나를 한눈에 알아보는 저 남자, 강지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뛰어오네, 저 바보 진짜.” 서현의 집 앞 골목, 모자를 훌렁 벗어 던지고, 어깨에 메고 있던 짐 가방을 바닥에 휙 버려둔 채 어느덧 한달음에 제 앞으로 달려온 지음은 자신의 커다란 품 안으로 서현의 몸을 가득히 밀어 넣었다. 캄캄한 골목 귀퉁이에 놓인 가로등의 파리한 불빛 아래로 두 사람은 한 몸인 듯 엉겨 붙었다. 지음은 절대 놓아줄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서현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서현은 숨이 컥 하고 막혀 와도 금세 피실피실 웃음이 삐져나왔다. 숨이 막혀도 좋은 행복이란 것을 오직 이 한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이 언젠가, 내가 견뎌 온 모든 상처보다 더 큰 고통으로 돌아올 줄도 모르고. 그렇게 나는 그의 사랑을 온몸으로 마다하지 않았다. “악, 숨 막혀. 켁” “하, 미안해. 너무 좋아서. 보니까 너무 좋아서. 땀 냄새 많이 나지?” 여린 서현의 몸을 조심히 떨어트려 놓고는 유니폼 냄새를 맡으며 바보처럼 웃는 지음이었다. “흙냄새나. 얼마나 구른 거야.”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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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사랑할 수 없는
 쌀쌀한 아침 바람이 코끝에 맺히며, 가을이 무릇 깊어졌다. 사실 서현에게 계절은 흑백사진 같은 것이었다. 내 것이 아닌 누군가의 것이었던 오래된 흑백사진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지음은 가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가을은 보석함 같아.’ ‘보석함?’ ‘응, 하나씩 꺼내서 보답하는 계절이거든. 저기 저만치 높아진 하늘이 무대고, 나는 거기 서서 빨갛게 익은 내 심장을 꺼내서 던지는 거야. 내 혼신을 받쳐서 발을 내딛고, 내 숨을 다해서 반드시 이겨야 해. 그렇게 증명하고 보답하는 계절.’ 새파란 하늘을 그렇게나 한참 올려다본 게 언제였을까. 지음을 따라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본 날, 지음은 그렇게 자신의 가을 그리고 보석함에 대한 이야길 해주었다. 그때는 그저 근사하게만 들렸는데 그로부터 몇 년 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야구’를 제대로 알게 되고 나서야 야구 선수에게 ‘가을’이 얼마나 벅차면서도 버거운지, 고대하면서도 고단한지, 환희로우면서도 처절한 것이었는지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그렇게 찬란한 그의 가을 하늘을 따라 올려다볼 땐, 내가 주워 든 흑백사진에도 푸른 잉크가 배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한동안 보이지 않던 아버지의 신발이 현관에 보인 순간, 모든 것이 착각일 뿐이었다. 내 흑백사진은 결국 흑백으로 끝날 운명이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방 안 구석에 쪼그려 앉은 서현은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핸드폰 너머로 번져오는 온전하고 따뜻한 지음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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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이럴 줄 알았다면
 장대비가 오던 날 영락없는 거지꼴로 내달리던 스무 살의 나는 어느덧 서른 살이 되었다. 서른 살의 마서현은 이제 비가 오는 날이면 출근길부터 걱정하는 영락없는 직장인이 되었다. 평범한 서른 살의 직장인. 가져본 타이틀 중 가장 근사한 타이틀이다. 물론 그 타이틀을 얻기까지 쉽지 않았다. 지옥 같던 집안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온 힘을 다 써야 했으니까. 10년 전 그 일이 있고, 강지음에게서 도망친 나는 가족에게서도 도망쳤다. 죽을힘을 다해서. 몇 년 뒤 어렵게 만난 친엄마마저도 도박 빚에 허덕이고 있었으니, 그때의 나에겐 도망치는 것만이 사는 길이었다. 그래서 나를 아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나마 그 끔찍한 굴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던 건,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내 힘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였다. 대학 생활에 대한 낭만은 없었다. 그저 1분1초라도 멀쩡하게 살고 싶어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알코올중독에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버렸고, 다시 만난 친엄마도 버렸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남자도 버렸다. 그러니까 ‘나’만큼은 멀쩡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 독기가 통했는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몸을 쓰지 않고 돈을 버는 경험도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혼자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버린 것이 가족과 사랑이었는데, 생판 남에게 얼마나 상냥할 수 있었겠는가. 외모 때문인지 다가오는 남자들은 있었지만, 얼마 못 가 재수 없다, 싸가지 없다는 소문만 남겼다. 그러면 같은 집단 사람들은 그 소문을 쉽게 믿고 따돌리기 일쑤였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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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내가 망가트린 내 첫사랑
 며칠 뒤, 전에 서현이 담당했던 강은하 작가의 성공적인 출간 기념 파티가 작게 열렸다. 여러모로 벌써 반응이 좋아 기분 좋게 열린 파티였다. 말이 파티지 그냥 거나하게 술 좀 먹는 회식 자리였다. “강 작가님은 이연 작가 본 적 있다고요?” “아, 이거 나만의 비밀인데. 썰 좀 풀어줘요?” 은하가 새침한 표정으로 빈 술잔을 들었다. 은하의 제스처에 기획팀이고 마케팅팀이고 직원들이 들뜬 함성을 지르며 술을 따라주려고 난리였다. 건하가 이연 작가 이야기에 슬쩍 서현을 바라보았다. 서현은 애써 무감한 얼굴로 소주를 들이켰지만, 사실 서현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간 섭외에 능하다면 능했던 것 같은데, 이 인간은 도대체가 컨택 할 방도가 없었다. 전 담당자들에게 부탁도 해보았지만, 계약 당시에만 쓰는 번호가 따로 있어서 현재는 연락이 닿지 않았고, 오피셜로 뜬 메일주소로도 여러 번 메일 전송을 했지만, 전혀 답이 없다며 함께 난감해할 뿐이었다. 당연히 서현의 메일에도 답은 없는 상태였다. 그나마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다른 메일들은 열어보지도 않았다면, 서현이 보낸 메일은 ‘읽음’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일단 이연 작가가 성별조차도 소문이 많았잖아요? 뭐 일단 남자는 확실하구요. 키는…어, 거의 우리 윤 대표님이랑 비슷한 것 같다. 188cm? 맞죠, 대표님?” 건하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우리 윤 대표님은 누가 봐도 딱 도련님 상이잖아요? 희고 곱고&helli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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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그런 너를 이제는 봐야겠다.
 ‘마서현’ 네가 사라진 그날. 그리고 다시는 야구를 할 수 없게 된 그날 이후, 술이나 약 없이 제대로 된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꼬박 10년이 흘렀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흘러간 적 없는, 흘려보낼 수 없는 그곳에서 나는 혼자 덩그러니 고집스럽게 서 있었다. 너를 기다린 걸까? 나를 버린 너를 기다린 걸까, 정말? 그럴 리가. 분명 그럴 리가 없는데, ‘마서현’ 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고, 굳어있던 심장이 가파르게 조여 왔다. 심지어 눈앞이 뿌옇게 번져가기까지 했다. 지음은 희뿌연 시야를 해치고 노트북 화면에 박힌 그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분명히 ‘마서현’ 이었다. [보낸 사람 : 마서현 / 제목 : 안녕하세요, 이연 작가님.] 강지음이 아닌 ‘이연’을 찾는 그 이름이 설마 너일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지음은 성마른 손으로 그 메일을 눌렀다. 여느 출판사에서 보낼 법한 메일처럼 보였지만, 서현의 글은 묘하게 날이 서 있었고, 뾰족했다. [안녕하세요, 이연 작가님. 출판사 ‘마음의 숲’ 기획 편집자 마서현 대리입니다. 출판사 메일로 드리면 한참 뒤에나 확인하실 것 같아서 제 개인 메일로 발송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 안 읽으시려나…. 하여튼 양해 부탁드립니다.) 작가님의 작품들은 남들만큼 읽었고, 남들만큼 경탄했습니다. 네,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작품들이었습니다. 이 업계에서 이렇게 빨리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모두를 사랑하게 만든 작가는 몇 안 될 거라 생각합니다.] 로 시작한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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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너라는 불면
 그때, 사람들을 택시로 밀어 넣는 작업을 모두 마친 서현이 홀로 비틀거리다 모르는 사람과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다. 자신과 부딪혀 넘어진 서현을 일으켜 주려 남자가 팔을 뻗으려는 순간, 차 안에 갇혀 있던 지음이 어느새 튀어나와 얼른 몸을 숙여 서현의 어깨를 감쌌다.그런 지음의 등장으로 당황한 남자는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 번 뱉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아아…아프다. 엉덩이가 아파.” 반쯤 풀린 눈으로 얼굴을 구기며 연신 아프다던 서현이 불쑥 고개를 젖혔다. 서현의 얼굴이 제 어깨 안에 담겼다. 반지르르 흰 피부에 검고 긴 생머리가 아무렇게나 달라붙어 있었다.그러나 갸름하고 작은 얼굴 속 또렷한 이목구비는 조금도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그려놓은 듯한 눈썹과 오똑한 코, 제법 도톰하면서도 날렵한 입매…까칠하고 차가워 보이는 얼굴이지만, 서현이는 여전히 예뻤다. 스무 살의 서현이도, 서른 살의 서현이도 내가 본 여자 중에 가장 예쁜 여자였다. “이제 다 컸는데, 아직도 길에서 아무 남자 품에 자빠지고 다닐래?” “아…왜 이제와요.” 서현이 제 어깨를 머리로 툭툭 치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왜 이제 오냐는 서현이의 말에 몸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는 지음이 입술만 달싹거리는데, 서현이 눈을 질끈 감으며 이어 말했다. “아 나 몰라…몰라. 나 오늘 술 지인짜 많이 마셨어. 선배가 데려다줘. 자, 알았으면 출발! 윤건하…출바알…!” 윤건하. 양 대리가 알려 준 출판사 대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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