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시후가 눈을 떴을 땐, 이미 병실로 옮겨지고 난 뒤였다.공기엔 진한 소독약 냄새가 맴돌았다. 손등에 꽂힌 링거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고 의식은 반쯤 물속에 잠긴 것처럼 흐릿했다.몸을 조금 움직이자 마른 목에서 겨우 소리가 새어 나왔다.“수아야...”이도현이 급히 달려왔다.“대표님, 깨셨어요? 정말 다행입니다. 하루 종일 비 맞고 쓰러지신 거, 알고 계세요? 의사 말로는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화가 치민 몸에 한기가 들어서 쓰러지셨답니다.”몸을 일으켜보려 했지만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머리는 여전히 무겁고 어지러웠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눈 속엔 불쾌감만 가득했다.백시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수아야, 화내도 되고 짜증 내도 돼. 다 괜찮아. 하지만 헤어지자는 말은 장난으로도 해서는 안 돼. 난 너랑 헤어질 생각 없어.”“백시후, 넌 왜 이렇게 고집이 세니? 내가 하는 말, 이해 못 하겠어? 헤어지자고 했잖아.”“왜?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잖아. 어젯밤도 같이 있었고 돌아오면 결혼하자고 약속도 했잖아.”그는 손을 뻗어 엄수아의 어깨를 붙잡았다.“수아야, 난 이유가 필요해. 왜 헤어지자는 건데.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엄수아는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도 백시후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그를 살리고 싶었다.평생을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게 둘 순 없었다.햇살 속에서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날이 그에게도 오기를 바랐다.진세윤은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사람들에게 마약 밀매범의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랐다. 그 뒤로부터 고통의 그림자가 그의 삶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그 자신도 사고로 절벽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그의 그렇게 늘 어둠뿐인 인생을 살아갔다.그는 빛에 닿기 위해 백시후
그는 짧은 메모 한 줄을 여러 번 읽었다. 잘못 본 줄 알았다. 엄수아는 이별을 통보했다.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불과 어젯밤, 그녀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돌아가자마자 바로 결혼하자고 둘은 약속까지 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이별이라니,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백시후는 바삐 옷을 챙겨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민박집 주인은 웃으며 말했다.“깨셨네요. 아내분 먼저 나가시던데요?”그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우리 와이프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공항 간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돌아가신다던데요.”
오늘 밤의 백시후는 좀처럼 거절하기 어려웠다.꿈처럼 달콤한 이 밤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서로를 떠나기 전, 오늘 밤만은 아름답게 기억되길 바랐다.백시후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녀와 결혼하는 일이 그의 오랜 꿈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그는 정말로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다. 자신의 곁에서, 평생을 함께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백시후는 두 손으로 엄수아의 작은 손을 감싸 쥐었다.“수아야, 나 한 번만 더 하면 안 될까.”엄수아는 할 말을 잃었다.자신은 이미 진이 다 빠졌는데 정작 그는
두 사람은 금세 침대 위로 몸을 옮겼다. 백시후는 망설임 없이 목욕 가운을 벗었고 엄수아는 손끝으로 그의 단단한 근육을 어루만졌다.“아, 맞다. 여기 아무것도 없어.”백시후는 입을 맞추며 말했다.“그럼 안 쓰면 되지.”엄수아가 조용히 말했다.“그래.”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밤은 그냥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두 사람은 아직 젊었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더욱 겁이 없었다. 청춘과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밤이었다.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를 끌어안고 사랑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다.백시후는 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