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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작가: 사흘부탁
사랑이 자신을 세 번이나 거절했기 때문일까, 흥이 깨진 태경은 기사에게 그녀를 별장으로 데려다 주라고 지시한 후 아무렇지 않은 듯 떠나버렸다.

샤워를 마친 사랑은 거실에 앉아 케이크를 한 입 먹어 보았다. 달콤해야 할 케이크였지만, 그 맛은 지금의 사랑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 순간, 눈물이 한 방울씩 손등 위로 떨어졌다. 임신 탓인지 사랑은 요즘 감정이 쉽게 요동쳤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은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내렸다.

사랑은 눈물을 훔치고 한동안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음이 차츰 가라앉자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눈은 자꾸 감겨왔지만, 잠은 그저 멀기만 했다.

결국 사랑은 옆에 놓여 있던 핸드폰을 집어 들고, 카톡을 열었다.

[태경 씨, 나 임신했어요.]

삭제하고 다시 편집했지만, 그녀는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됐어. 말하면 뭐가 달라진다고.’

사랑은 주말에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우기로 결심했다. 눈을 꼭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꿈속에서 사랑은 소년 시절의 태경을 보았다. 그의 손과 발은 날카로운 철사에 묶여 있었고, 눈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의 호흡은 너무나 미약해, 마치 이미 숨이 멎은 것처럼 보였다.

어린 사랑은 밧줄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힘이 부족했다. 결국 손가락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뒤에야 철사를 풀 수 있었다.

그러던 찰나, 둘을 납치했던 남자가 다시 돌아왔다. 남자는 사랑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고, 그녀의 귓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그때의 태경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경찰들이 그 남자를 끊임없이 추적하고 있었기에, 그는 화풀이로 태경을 무참히 때렸다.

사랑은 태경이 죽을까 봐 두려워 매일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내 동화까지 들려주며 그의 곁을 지켰다.

“꼭 살아야 해.”

이것은 사랑이 태경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다.

잠에서 깨어날 때, 마침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사랑은 오랜만에 납치 사건과 관련된 꿈을 꿨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는 여전히 그녀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왼쪽 귀는 자극을 받을 때마다 윙윙거려 잘 들리지 않았고, 손가락에는 철사에 베인 흔적이 영원히 아물지 않는 흉터로 남아 있었다.

사랑은 간단히 세수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남청연은 여전히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했다.

강남복은 남청연이 입원하던 당시, 남씨 가문의 재산을 몰래 빼돌리고 결국 남씨 가문의 기업까지 삼켰다. 그 즈음 사랑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역시 의문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남청연, 남씨 가문의 큰아가씨는 자산을 옮긴 남편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혔다.

강남복은 N시에서 C시로 이사했고, 엄수인은 강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변신했으며, 세영은 재벌가 아가씨로서 호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은 오히려 강남복의 사생녀라는 불명예스러운 신분으로 전락했다.

사랑은 남청연의 손을 꼭 잡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려요.”

‘애초에 엄수인 그 여자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엄마가 10층에서 뛰어내렸을까?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것도 많이 수상쩍은데.’

비록 증거가 없지만, 사랑은 이 모든 게 강남복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교통사고가 난 뒤, 두 노인은 차 안에 갇혀 산채로 불에 타 죽었다.

NS 그룹은 바로 강남복의 회사로 되었다. 후에 자기가 권력을 독점하는 것도 모자라, 절반의 주식을 엄수인에게 선물했다.

‘악독하고 못된 사람들이 우리 가문을 망쳤어.’

사랑은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 구역질이 올라왔다.

...

남청연을 면회한 뒤, 사랑은 산부인과에 들렀다. 수술을 미리 예약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일련의 검사를 먼저 받아야 했다.

각종 신체 검사를 마친 사랑은 갑자기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결국 임신중절수술은 다음 주말 아침으로 예약되었다.

병원 복도의 벤치에 홀로 앉아, 사랑은 수술비 납부서를 손에 꼭 쥐었다.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고 나서야 납부서를 조심스레 가방 속에 넣었다.

문득 배에 은근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사랑은 참고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아픔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현미가 다급히 다가와 그녀의 손을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강 비서.”

사랑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현미는 안색이 괴로웠다.

“대표님은 우리에게 사직서 내고 바로 꺼지라고 하셨어.”

사랑은 흠칫 놀랐다.

미현이 말을 이어받았다.

“저희도 오늘 송예진 씨가 갑자기 회의실로 뛰쳐들어갈 줄은 몰랐어요. 이건 확실히 말이 안 되고, 저희의 실수이기도 하지만...”

이 직장은 대우도 좋고 전망도 밝았기에, 모두 이곳에서 잘리고 싶지 않았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사랑은 갑자기 전에 연회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태경이 예진이 자신의 목을 끌어안도록 내버려 두었고, 예진은 까치발을 들고 태경에게 입을 맞췄다.

그때 태경은 깔끔한 양복 차림에, 하얀 셔츠의 두 단추를 풀고 있었다. 그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예진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거절하지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도 않으며 그저 무언의 태도로 예진을 지켜보던 태경... 그는 말없이 있어도 여자들이 좋다고 매달리는 사람이었다.

현미는 사랑에게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했다.

“강 비서, 우리를 위해서 사정 좀 해 주면 안 될까?”

현미의 아련한 눈빛에 사랑은 거절을 하지 못했다.

“설득해볼게.”

사랑은 심호흡을 한 다음,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3초 후, 문을 밀고 들어갔다.

태경은 펜을 돌리며 눈도 들지 않고 입도 열지 않았다. 사무실 안은 질식할 정도로 조용했다.

사랑은 먼저 입을 열어 침묵을 깼다.

“대표님, 송예진 씨의 일은 결국 대표님의 개인적인 일이시니, 이렇게 하시는 건 너무 인정에 어긋나는 거 아닙니까?”

태경은 펜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어 사랑을 힐끗 쳐다보더니 가볍게 웃었다.

“강 비서, 불만 있으면 같이 사직서를 내지 그래.”

사랑은 가시에 찔린 듯 목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경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리 와.”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랑은 천천히 태경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바로 사랑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사랑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곱고 아름다운 얼굴은 긴장 때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태경은 사랑의 허리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태도로 나한테 부탁하는 거야?”

자신의 정장이 구겨진 것을 보고 사랑은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홱 돌렸다. 이미 태경의 속셈을 알아챈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

30분 후, 현미는 사랑이 입술이 붉어진 채 대표실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도 전에, 사랑은 곧바로 화장실로 향해버렸다.

그날, 사랑은 일찍 퇴근해 집으로 돌아갔고, 이후 며칠 동안 태경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우연히 세영의 SNS에서 익숙한 남자의 두 손을 발견했다.

그 남자의 엄지손가락은 길고 유난히 아름다웠으며, 왼손에는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지 않았다.

사랑은 담담하게 세영의 SNS를 차단했다.

핸드폰에서 ‘땡’ 하는 알림 소리가 울렸다. 매달 입금되는 돈이 들어왔다는 알림이었다.

이번 달에 받은 금액이 유난히 많자, 사랑은 잘못된 금액이 입금된 줄 알고 비서실장 덕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덕훈의 답장이 왔다.

[대표님께서 보내라고 하신 금액이 맞습니다.]

사랑은 그제서야 생각났다. 그날 대표실에서의 친밀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녀가 피하려 할 때, 태경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가볍게 그녀의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사랑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강 비서, 여긴 침대는 아니지만 절대 손해 보게 하진 않을 거야.”

태경은 여전히 그때 차 안에서 거절당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많은 돈을 입금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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