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순식간에 또 다른 기사가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치고 올라왔다.[최악의 불륜녀 연다인. 상류층 입성을 위해 자작 교통사고. 본처에게 죄 뒤집어씌워]임슬기의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요동치며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켰다.그녀는 기사 제목을 눌러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심지어 의사의 증언까지 실려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연다인은 정말 끝이었다.댓글은 하나같이 연다인을 향한 비난으로 가득했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도 많았다. 보다 못한 임슬기는 결국 화면을 닫아버렸다.“현정아...”눈물이 저절로 흐르기 시작했다. 임슬기
“임슬기 씨?”임슬기가 고개를 들자 위용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다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고 안쪽을 가리켰다.“현정이... 빨리! 현정이 좀 살려줘요!”둘이 병실 문 앞까지 달려갔을 때 안에서 김현정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악!”위용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뛰어들어 남자를 제압했고 임슬기는 쓰러진 김현정을 얼른 안았다.그때 임슬기의 눈에 들어온 건 김현정의 가슴에 깊이 꽂힌 칼과 피였다. 임슬기는 순간 얼어붙었다.김현정의 가슴팍은 피로 뒤덮였고 선홍빛이 임슬기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현정아!”목소리는 떨렸고 눈물은 김현
지금 이 순간 임슬기는 배정우와 말다툼할 기력조차 없었다.“당장 놔!”“말해!”하지만 배정우는 그녀를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손에 힘을 더 주며 움켜잡았다.“왜? 그렇게 다인이가 죽길 바라는 거야?”“아파, 이거 놔!”“하, 아프다고? 다인이가 죽으려고 손목 그었어. 너 알고나 있어?”그 말에 임슬기는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곧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그래, 난 걔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 걔는 집사님이랑 우리 엄마를 죽였고, 아빠도 죽게 만들었어. 게다가 이제 너까지 빼앗아 갔어. 그런 인간은 죽어 마
배정우는 걸음을 멈췄지만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목소리는 거칠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다인이를 죽게 둘 수 없어.”그 말을 들은 임슬기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의 등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허탈하게 웃었다.가슴 어딘가에 날카로운 칼이 꽂힌 듯 그 틈으로 스며든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얼려버렸다. 슬픔도, 원망도 전부 꽁꽁 얼어붙었다.연다인이를 죽게 둘 수 없다는 그 말은 곧 임슬기는 죽어도 상관없지만 연다인은 절대 안 된다는 뜻이었다.배정우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그렇게도 하찮은 존재인데, 대체 왜 지금까지 놓아주지
진승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였어.”그 말에 임슬기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뜨거운 눈물방울이 진승윤의 손등에 뚝뚝 떨어졌고 그가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고마워, 승윤아. 정말 고마워...”임슬기가 죽음 직전까지 갔던 그때 그녀가 17년을 사랑했던 남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녀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던 사람이었던 진승윤은 아무 대가도 없이 그녀를 살렸다.그 은혜를 임슬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은 자신이 사랑했던 그 남자에게 철저하게 부서졌다.진
“말해!”배정우는 온성현의 멱살을 낚아채 들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잔혹하게 번뜩이며 그를 내려다보았다.“누가 시킨 거야? 누가 내 아내를 해치라고 했지?”이때의 온성현은 이미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더는 도련님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온성현은 울먹이며 애원했다.“배, 배 대표님... 제발 죽이지 말아 주세요.”배정우는 싸늘하게 웃으며 손을 놓고 곧바로 그의 배를 짓밟았다. 살짝만 힘을 줬을 뿐인데 온성현은 피를 쏟으며 고꾸라졌다.“온성현. 지금 네가 운 좋은 건, 죽어가는 사람
임슬기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오랜만에 어머니를 만났고 울면서 안기려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엔 투명한 벽이라도 놓인 듯 가까이 갈 수 없었다.어머니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초조해진 임슬기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엄마!”하지만 어머니는 그저 슬픈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을 뿐, 점점 멀어져 갔다.“엄마, 가지 마!”임슬기는 울부짖으며 투명한 벽을 깨뜨리려 몸을 던졌다.“나도 데려가 줘... 엄마, 제발...”그렇게 울던 임슬기는 눈을 떴다. 손은 아직도 진승윤의 팔을 꼭 붙잡
칼이 내리꽂히자 온성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비명과 살려달라는 외침만 반복할 뿐이었다.그 광경에 진승윤조차도 깜짝 놀랐다. 몸이 순간적으로 떨렸고 그는 한동안 임슬기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방금 임슬기가 온성현의 검지를 잘라버린 것이었다. 바닥엔 피가 낭자했고 장면은 말 그대로 끔찍했다.임슬기의 얼굴에까지 핏방울이 튀었지만 그녀는 단지 당근을 썬 것처럼 표정이 이상할 만큼 차분했다.곧 그녀는 피 묻은 과일칼을 툭 하고 옆으로 던지고는 또박또박 말했다.“온성현, 오늘을 똑똑히 기억해. 다음번엔 네 목이 날
반달이 지난 뒤 임슬기는 여전히 제대로 걷지는 못했지만, 의사에게서 이틀 뒤면 퇴원이 가능하다는 허락을 받았다.“너무 잘 됐어요! 드디어 퇴원할 수 있다니! 뭐 드시고 싶어요? 내가 다 준비할게요! 이건 꼭 축하해야죠.”임슬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현정아, 너 먹방 유튜버나 해볼래? 그럼 돈 좀 벌 수도 있겠다.”“진짜요? 근데 난 언니한테 해주는 게 제일 좋아요.”김현정은 그렇게 말하며 임슬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말았다.“언니, 우리 그냥 앞으로 같이 살래요? 내가 언니 먹여
“꺅!”연다인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현정을 노려봤다.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임종현이 있는 앞이라 억지로 연기해야 했다.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김현정 씨, 왜 이러는 거예요?”그녀는 곧바로 임종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억울한 척 말을 이었다.“종현아, 누나는 그런 뜻 아니야. 나는 그냥... 다들 알고 있는 줄 알고...”울먹이는 얼굴에 눈가가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그 모습에 임종현은 약간 망설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됐어요. 형이랑
임종현이 부탁하면 임슬기는 늘 거절을 잘 못했다.하지만 배정우와 다시 잘 지내라는 이 부탁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가 원한다 한들 배정우가 원하지 않으니까.배정우는 그녀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어떻게 다시 처음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하게 아팠다.“종현아.”임슬기는 고개를 숙이며 쓴웃음을 지었다.“그 부탁은... 누나가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아.”그녀는 억지로 울음을 삼킨 채 고개를 들었다.“이미 그 사람은 연다인이랑 함께잖아.”임종현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
이제 이 동생도 부끄럼을 탈 줄 안다니.임슬기는 피식 웃으며 종현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종현아, 누나 좀 도와줘. 침대 좀 올려줄래?”임종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 발치로 가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이 정도 높이면 돼요? 더 올려요?”“응, 지금 딱 좋아. 고마워.”임슬기는 그의 손에 감겨 있는 붕대를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종현아, 그 손... 필기하는 데는 지장 없겠어?”그 말을 들은 종현은 고개를 숙여 손을 내려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요. 그렇게 심하진 않아요. 그리고 이번에
“현정아.”임슬기는 김현정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있어도 속으론 여전히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사랑 문제는 본래 타인이 쉽게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이번 일은 그녀로 인해 시작된 일이기에 그냥 모른 척할 순 없었다.김현정은 조용히 다가와 침대 옆에 앉더니, 임슬기의 팔에 감긴 붕대를 보며 마음 아픈 눈빛을 보냈다.“언니, 내가 전화 안 했으면 나한텐 아무 말 없이 계속 숨길 생각이었죠?”“...나는 그냥 네가 걱정할까 봐.”“나도
차로 돌아온 배정우는 주머니에서 단추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는 손에 쥔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권민, 연다인 행적 좀 추적해 봐.”권민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그가 들고 있는 단추를 보고 물었다.“단추도 조사해 볼까요?”배정우는 단추를 권민 손에 툭 던지며 말했다.“조사해. 그리고 지난달 파티 밤의 CCTV 영상도, 빠짐없이 확인해.”그 말을 들은 권민은 잠깐 눈썹을 찌푸렸다.“대표님, 그날 CCTV는 이미 없어진 상태입니다. 호텔 쪽 말로는 장비 고장이 있었다고 합니다.”‘고장? 참 타이밍 좋게도.
하지만 임슬기는 결국 찌르지 못했다. 칼끝은 배정우에게 닿지 않았다.배정우는 놀라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슬기야...”“배정우, 여긴 왜 온 거야?”그 순간 진승윤이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그는 배정우를 거칠게 끌어내고는 병실 문을 쾅 닫아버렸다.그리고 곧장 임슬기 곁으로 달려가 그녀 손에 들린 칼을 빼앗아 침대 옆에 내려놓은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진정시켰다.“괜찮아, 슬기야. 이제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아무 일도 안 생겨.”임슬기는 마치 이제야 정신이 든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눈물
“내 입이 독하긴 해도, 배정우 씨는 손에 칼을 숨기고 있잖아요.”임슬기는 고개를 들어 배정우를 바라보며 입가에 비웃음 섞인 미소를 띠었다.“그런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이기겠어요.”그 말은 마치 날이 서 있는 칼처럼 배정우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배정우는 잠시 멍해있더니,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려고 했다.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임슬기가 눈을 감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잔뜩 겁먹은 표정까지 떠오르자 배정우는 어쩔 수 없이 손을 거두었다.“넌 내가 그렇게 무서워? 응?”임슬기는 눈을
‘진성한?’임슬기는 얼떨떨했다.“그게 어떻게 너희 아버지랑 관련 있어?”진승윤은 미간을 찌푸렸다.“전에 파티장에서 우리 아버지 널 따로 불러냈었지?”“응.”“그 사람, 절대 신사 같은 인물 아니야. 자기 계획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전부 제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넌 그 사람 눈에 발목 잡는 존재였을 뿐이야.”진승윤의 눈빛 속에 이전과는 다른 차가움이 스쳤다.“방해가 된다 싶으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없애버려.”이미 직접 전화로 확인하긴 했지만 그 위선적인 인간을 진승윤은 끝내 믿을 수 없었다.임슬기도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