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무의식적으로 반지를 만지며 차갑게 말했다.“만약 결혼했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도망치게?”온다연의 심장이 쿵쾅쿵쾅 미친 듯이 뛰었다. 꼭 누군가 그녀의 심장을 움켜쥔 것처럼 호흡이 가빠지는 것 같기도 했다.머릿속은 하얀 백지장이 되어 생각할 수 없었다.유강후는 그녀를 봐줄 생각이 없었는지 그녀의 턱을 잡아 올리며 작고 예쁜 얼굴을 보았다. 그의 두 눈엔 집착이 가득했다.“온다연, 무슨 일이 있든 내 곁에서 도망칠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그에 따른 대가가 어떨지도 생각하고 도망쳐야 할 거야. 네 두 다리도 잃고 싶다면.”그는 이미 두 번이나 그녀를 봐주었다. 또 그의 곁에서 도망친다면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곁에 묶어둘 생각이었다.온다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속눈썹과 입술이 바르르 떨려왔다.“아저씨가 나은별 씨랑 결혼하면 저랑 아저씨 사이는 끝이 나는 거예요.”유강후는 손을 들어 그녀의 입술에 있던 점을 눌렀다. 그는 욕망에 휩싸인 눈빛으로 보았다.온다연 입술에 있는 점을 아주 좋아했다. 옅고 작은 점은 가까이에서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었을뿐더러 한번 발견하고 나면 자꾸 눈에 밟혀 키스하고 싶은 충동이 생겨났다.키스할 때마다 그는 그녀의 작은 점을 자꾸 깨물게 되었다.유씨 집안으로 발을 들인 후 거실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본 순간부터 그 점을 발견했던지라 자주 꿈에 나왔다. 그때마다 꼭 아직 어리니 성인이 되면 잡아먹어달라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금, 그녀는 겨우 성인이 되었으니 당연히 그의 것이어야만 한다.어떤 이유든지 만약 그녀가 그의 곁에서 도망칠 궁리를 한다면 영원히 방에 가둬버릴 것이다.“온다연, 명심해. 넌 내 거야. 태어날 때부터 내 것이라고. 끝이라는 말은 다시는 내 앞에서 하지 마. 듣고 싶지 않으니까!”그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표정도 차가웠다. 마치 당연한 일을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그러나 당연하듯 내뱉은 그의 말에 온다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정말로 나은별 씨랑 해외에서 결
지난 일들이 머릿속에 물밀듯 떠올라 온다연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졌다. 속도 울렁거려 미칠 것 같았다.그녀는 방금 레스토랑에서 먹은 것을 전부 게워낸 것도 모자라 위액까지 게워냈다.화장실로 달려들어 가면서 문을 잠갔기에 유강후는 밖에서 두드리고 있었다.“다연아?”온다연은 고개를 돌려 문을 보았다. 일어선 뒤 간단히 세수했다.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이미 평정을 되찾은 뒤였지만 안색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창백했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방금 먹은 음식이 속을 뒤집히게 한 거야?”온다연은 고개를 저으며 그가 뻗은 손을 피한 뒤 천천히 소파로 다가가 누웠다.너무도 피곤해 잠을 자고 싶었다.유강후는 점점 야위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나은별은 그냥 친구일 뿐이야.”그는 무슨 일을 하든 설명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설명하고 있었다.하지만 온다연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이미 속으로 그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유씨 집안에 오랫동안 지내면서 돈 많은 남자들이 밖에서 내연녀 한 명쯤 키우는 건 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심지어 본처가 내연녀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황당한 일도 많았다.다른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그녀는 아니었다.그녀의 어머니가 바로 내연녀의 손에 사망했으니 말이다. 그녀는 죽어도 내연녀가 되고 싶지 않았다.인생에 결혼도 한 번으로 충분했다. 만약 유강후가 해외에서 이미 결혼하고도 국내에서 그녀와 결혼하려 한다면 그녀의 처지는 내연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그렇게 생각하니 몸이 더욱 아팠다.그녀는 나직하게 말했다.“아저씨, 전 좀 피곤해서 잘게요. 사람들이 아직도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얼른 가보세요. 전 걱정할 필요 없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돌아누우며 유강후에게 등을 보였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에 올린 후 안아 올려 안방으로 갔다.“잘 거면 침대에서 자. 불편하게 소파에서 자지 말고.”온다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움직
그중에 재개발 구역 기초 공사도 있었다. 후반기에 더 큰 추가 투자와 민생 프로젝트가 있을 뿐 아니라 전부 큰 프로젝트였던지라 만약 지금 무산된다면 기초 공사부터 헛수고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유강후가 들어가자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하지만 그는 그들의 시선이 눈에 보이지 않는 듯 무시하며 자리에 앉았다.그가 입을 열지 않자 누구도 먼저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고 긴장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는 천천히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청운 그룹, 흔정 투자, 세원 그룹은 더 이상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마세요. 세 분의 자리는 이미 탈락한 리스트에서 다시 뽑아 채울 겁니다.”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냉담하게 세 회사의 살길을 막아버렸다.다른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지목된 세 회사의 사장들의 안색은 사색이 되었다.“대표님, 대체 왜 저희를 제외하는 겁니까?”유강후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다른 사람이 제 일을 입에 올리는 거 싫어합니다.”그 사람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유강후의 싸늘한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앞으로 더는 저와 나은별에 대한 일을 입에 올리지 마세요. 만에 하나 누가 또 입에 올리기라도 한다면 미래 그룹에서 투자하고 있는 것을 전부 중단할 겁니다.”현장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누구도 입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세 회사의 책임자들은 말이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다른 회사 책임자들이 말렸다.짧은 침묵이 끝나고 현장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한편, 로열 스위트룸에 누워있던 온다연은 핸드폰을 꺼냈다.곰곰이 생각한 뒤 유민준에게 문자를 보냈다.[오빠, 아저씨 정말로 해외에서 나은별 씨랑 결혼한 거예요?]그러자 빠르게 답장이 왔다.[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결혼을 약속했었어. 중간에 어떤 오해가 있는 바람에 아직도 결혼하지 못한 거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다른 나라에서 이미 결혼식을 올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게다가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은 우리 집안에 좋은 일이기도 해. 그런데
이권은 숨길 엄두가 나지 않아 사실 그대로 말했다.“지금 민준 도련님 방에 있습니다.”“안내해!”빠르게 두 사람은 유민준이 체크인한 아래층으로 왔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이효진이 얇은 잠옷을 입은 채 방 문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들리는 인기척에 그녀는 유강후가 왔음을 눈치채고 더 크게 울었다.“작은 아버님, 민준 씨가, 민준 씨가 온다연이랑...”“방금 누가 와서 알려줬어요. 민준 씨가 온다연이랑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고...”눈물을 뚝뚝 떨구는 그녀의 모습은 아주 가련해 보였다.“전 온다연이 유씨 집안사람마저 꼬실 거라곤 전혀 몰랐어요. 심지어 민준 씨는 호적상 오빠잖아요...”유강후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다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닥쳐.”“여기서 한마디라도 더 하면 창문으로 던져 버릴 거니까.”놀란 이효진은 안색이 창백해지며 더는 입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유강후는 다시 시선을 돌려 굳게 닫힌 문을 보았다.“당장 호텔 매니저 불러서 열라고 해.”말을 마치기도 전에 호텔 매니저가 도착했다. 호텔 매니저 뒤로 네 명의 제복을 입은 경찰이 있었다.유강후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하며 여전히 싸늘한 눈빛으로 이효진을 힐끗 보았다.이효진도 당황했다.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제, 제가 연락한 거 아녜요. 전, 전 그냥...”그녀는 그저 온다연을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고 싶었다. 유민준까지 해칠 마음은 전혀 없었다.정말로 유민준과 결혼해 유씨 가문 며느리로 호화롭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호텔 매니저는 유강후도 현장에 있자 이마에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으며 눈치를 보았다.“죄송합니다, 대표님. 방금 그 경찰들은 누군가의 신고로 찾아온 것이랍니다. 경찰이 말하긴 저희 호텔 308호와 309호에서 마약을 팔고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그때 309호의 문이 열리면서 상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남자가 나오며 이효진을 향해 말했다.“자기야, 난 이미 준비가 다 됐어. 그
유민준의 말에 유강후의 이마엔 핏대가 드러났고 찢어 죽여버릴 듯이 이불을 꽁꽁 덮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이불에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유민준은 이런 무시무시한 유강후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황급히 이불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죄송해요, 작은아버지. 저랑 다연이는 정말로,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어요. 다연이한테 평생 잘해줄 거니까 제발 저랑 다연이 사이를 허락해 주세요...”‘사랑? 허락?'유강후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서슬 퍼런 눈빛으로 손을 들어 살인 병기를 휘두르듯 유민준의 머리를 가격했다.그의 눈빛은 유민준을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듯한 눈빛이었다.유민준은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유강후의 살기를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이다.그는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유강후를 불렀다.“작은아버지...”하지만 말을 이을 수 없었다.유강후는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그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 방금 그의 머리로 닿은 것이 유강후의 손바닥이 아니라 총기였다면 그는 바로 사망했을 것이다.이때 이불 속에 있던 사람이 머리를 내밀었다.그를 본 순간 여자도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죄송합니다, 제발 민준 오빠를 한 번만 봐주세요! 저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제발 민준 오빠를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온다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유강후는 고개를 홱 돌렸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공포에 휩싸인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꼭 어디서 본 것처럼.그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조금 전까지 가득하던 살기도 사라지고 손에도 힘이 풀려 툭 내려놓았다.이때 유민준이 고개를 돌리며 놀란 눈으로 침대에 누운 여자를 보곤 소리를 질렀다.“진설아! 네가 왜 거기에 있는 거야? 다연이는?”밖에 있던 경찰이 들어왔다.“누군가로부터 여기서 약을 팔고 성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그러니 협조해주시죠!”유강후의 표정은 빠르게 평상시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너무도 싸늘해 감히 쳐
유강후는 벌을 주듯 그녀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어디 갔었어?”온다연은 고통에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아무리 밀어내도 꿈쩍도 하지 않아 몸을 웅크리며 그의 손길을 최대한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배가 고파서 식당으로 내려가 뭘 좀 먹었어요.”‘뭘 좀 먹고 왔다고?'‘또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품으로 확 당기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온다연은 그의 몸 위로 안긴 꼴이 되었다.“정말로 배가 고파서 식당으로 내려간 거야? 룸서비스도 있는데 굳이?”그의 차가운 시선을 도저히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작게 말했다.“정말로 배가 고파서 뭘 좀 먹으로 내려갔던 거예요. 못 믿으시겠으면 내려가서 물어보셔도 돼요. 음식을 주문한 기록도 있으니까...”유강후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어투는 여전히 냉담했다.“정말로 그랬어?”온다연은 고개를 돌리며 다소 삐친 듯한 모습을 보였다.“못 믿겠으면 믿지 마세요.”작고 나른한 목소리엔 불만이 가득했다. 보기 드물게 삐친 것이다.유강후는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네가 신고한 거야?”온다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른다는 얼굴로 보았다. 아주 순진하고 무구한 눈빛으로 말이다.“아저씨, 무슨 말씀이세요? 신고라니요?”유강후는 그녀의 턱을 잡으며 다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똑바로 말해.”그녀가 장난을 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어떻게든 수습해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온다연은 막막한 눈길로 그를 보았다.“그러니까 누가 신고를 했다는 말씀이세요?”“그래, 누군가 신고했더군. 3층에 누군가 나쁜 짓을 한다고. 호텔 매니저까지 올라왔었어.”그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말했다.“아저씨가 방금 3층에 계셨잖아요. 3층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유강후는 손에 힘을 주었다.“똑바로 말하라고!”온다연은 느껴지는 통증에 유강후의
유강후는 창밖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밖은 추워. 나 오늘 밤늦게 끝날 것 같아.”온다연은 그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했다.“저 혼자 있으면 무서워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럼 두꺼운 패딩 입고 와.”온다연은 곧 가장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집을 나서기 전 유강후가 또 목도리를 둘러주었다.그들이 향한 곳은 경찰서였다. 유민준과 이효진은 그곳에서 심하게 싸우고 있었다.이효진은 유민준과 함께 있던 사람이 온다연이 아닌 진설아라는 사실에 적지 않게 충격받았다. 진설아는 매일 그녀에게 아부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평소에는 잘 유지하던 재벌가 딸의 이미지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진설아의 머리채를 잡고 마구 뺨을 때렸다.진설아는 전혀 반항하지 않고 그저 울기만 했다. 그리고 자신과 유민준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며 이효진에게 양보해 달라고 애원했다.그 말을 들은 이효진은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진설아를 죽을 때까지 때릴 기세였다. 다행히 경찰이 말려선 덕분에 초상 치를 일은 없었다.이때 유민준은 술이 완전히 깬 상태였다. 그는 차갑게 이효진과 진설아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진설아와는 더 이상 엮일 필요가 없었다. 돈 좀 주면 끝날 일이니 말이다. 대신 이효진이 빨리 파혼을 결심해 주기를 바랐다.그는 비교적 평온했다. 온다연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온다연이 유강후와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온다연의 손을 잡으려고 하며 말했다.“다연아, 난 너랑 같이 있는 줄 알았어. 근데 왜 갑자기 진설아가 됐는지는 정말 모르겠어.”온다연은 그를 피하며 유강후의 뒤로 숨었다.“오빠가 사람 잘못 봤겠죠.”그녀의 냉담한 태도와 시선에, 유민준은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하늘에 대고 맹세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니야, 내 기억 속에서는 분명히 너였어. 내가 아무리 취해도 그거까지 착각하지는 않아. 다연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그는 또다
온다연은 처음 스스로 사냥에 나선 어린 짐승과 같았다. 그녀는 어떻게 먹이를 잡아야 할지도 모르는 채, 그저 유강후가 하던 것처럼 입술을 마구 물어뜯었다. 그녀의 작은 혀가 입술을 따라 움직일 때마다, 그는 몸속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그녀는 키스를 하면서 손을 대지 말아야 할 곳에까지 뻗었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였다.그녀의 키스는 처음 하는 것처럼 어설프고 서툴렀다. 이 점이 그는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키스한 적이 없는 게 분명했다.온다연은 힘든 생활을 해왔다. 그렇다 보니 남자들이 접근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유강후가 알기로 그녀의 곁에서 도와준 적 있는 사람은 이웃 한 명뿐이었다. 그마저도 부모가 사망한 후 경원을 떠났다.즉, 지난 몇 년 동안 온다연은 임혜린 이외의 친구가 없었다.이는 그가 바라는 바였다. 그는 자신이 온다연의 유일한 친구이자, 유일한 가족이 되기를 바랐다. 온다연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줄 생각이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도록 말이다.이런 생각과 함께 그는 입을 더 깊게 맞췄다. 주동권을 빼앗은 그는 그녀를 완전히 지배하기 시작했다. 온다연은 당황한 듯 손을 놓으며 눈물을 머금은 채 말했다.“살살해요, 아저씨. 아파요.”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생각으로 그랬어?”온다연은 그의 손가락을 살짝 물며 말했다.“싫어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된 걸 보니, 조금 기뻐서요.”“기뻐서 나한테 키스하고 싶어진 거야?”온다연의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스쳤다. 조금 전에는 이유 없이 그냥 키스하고 싶었다. 그와 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오늘 일어난 일로 봤을 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유강후와 함께 할 날도 얼마 없다는 뜻이다.그녀는 이런 생각들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헤어질 사이에 미련을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은별에게 밟혀
봉현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유강후가 말했다.“목숨으로 바꾼 거야·당시 나의 상황도 지금의 너처럼 좋지는 않았어,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그는 손을 내밀어 봉현수를 일으켰다.“이미 사람을 시켜 단풍 마을에 익숙한 사람을 찾아오라고 했으니 잠시 후 그쪽 상황을 물어보다가 혹시 예솔 씨 소식을 듣게 된다면 상황을 분석해 보고 다시 말해.”잠시 후 비서가 와서 단풍 마을 사람이 왔다고 말했다.유강후와 봉현수는 옆에 있는 작은 회의실로 갔다.그 사람은 50세 전후로 이름은 진민기라고 했다. 단풍 마을 사람으로 현지 상황에 매우 익숙했다.봉현수가 그에게 지예솔이라는 여자에 대해 아냐고 묻자 그 사람은 즉시 대답했다.“알아요. 지석준의 딸이에요. 그 아이는 우리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유명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아이는 엄마를 따라 경원시에 갔어요. 이곳을 떠난 지 십몇 년이나 되였는데 반년 전 갑자기 돌아왔어요.”지예솔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봉현수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지석준은 어떤 사람이에요?”진민기가 말했다.“다른 사람을 물어보면 20여 년 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지석준은 인상이 깊어요.”“지석준은 우리 단풍 마을 사람이 아니에요. 가장 먼저 단풍 마을에 공부를 가르치러 온 대학생이에요. 잘생겨서 여기 모든 소녀를 매료시켰고 나중에는 이곳의 성씨 가문의 소녀와 함께 있었어요. 바로 예솔이의 어머니 성수민이예요.”“이 혼사를 원래 성씨 가문에서는 동의하지 않았어요. 지석준은 잘생기긴 했지만, 다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석준은 성의 표현을 위해 성씨 집안에 큰 금액의 예단을 내놓았죠. 그래서 허락을 받아내고 결혼했어요.”“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솔이를 낳았어요. 부부는 한 명은 공부를 가르치고 한 명은 작은 장사를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요.”“그 후 결혼한 지 약 십 년째 되던 해에 성씨 가문의 막내아들이 결혼해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우리가 헤어진 지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솔이는 정연석과 함께 있었어. 나는 그걸 절대 참을 수 없어...”“솔이는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은 어머니에게 직업을 찾아주기 위해서였고,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정연석이래.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나의 모든 것이 싫다고 말했어.”“심지어 그 아이도 정연석의 아이라고 했어...”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의 일들을 떠올린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고 벽을 짚어야만 겨우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었다.봉현수의 못난 모습을 본 유강후는 그를 데리고 그들이 머무는 곳으로 갔다.“똑바로 서, 여기서 망신당하지 말고. 며칠 전에 경원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이제 청평읍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래?”봉현수는 유강후에게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다.유강후는 그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너의 이런 모습을 보라고 나를 이곳에 데려온 거야? 나는 너랑 3일만 함께 있을게, 3일 후에 네가 죽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을 거야!”봉현수는 무릎에 머리를 묻고 앉았다.“너에게 이미 충분히 폐를 끼쳤으니 남은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너 이젠 가도 돼.”유강후는 퉁명스럽게 웃으며 그를 발로 찼다.“너와 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 나는 내일 개발 현장도 봐야 하고 그들이 말한 여행프로젝트도 봐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 살릴 돈을 네가 줄래? 예솔 씨도 너 같은 등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그리고 너의 머리는 개한테 뜯기기라도 한 거야?”“예솔 씨가 싫다면 하면 정말 싫은 걸까? 정연석을 사랑한다고 하면 진짜 사랑하는 게 맞아? 너 스스로는 생각이 없어?”“너희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서 예솔 씨가 일부러 그랬다는 걸 넌 몰라? 그리고 정연석이 예솔 씨 앞에 나타난 지 몇 년밖에 안 됐어. 정연석을 좋아한다고 쳐, 그럼 정연석이 나타나기 전에는 네 앞에서 일부러 너를 사랑하는 척 연기를 한 거야?”“현수야, 너 계속 이 모습이면 너와 예솔 씨는
청평읍은 서남부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산악지역의 작은 읍이지만 최근에는 큰 인기를 끌고 있다.읍내에 있는 단풍 마을에는 대량의 천연가스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탐사해 냈는데 전국 상위 10위 안에 드는 저장량이었다.각종 요소를 고려 후 국내 최대 에너지 회사에 개발권을 넘겼다.아침부터 청평읍에서는 이번 최대 개발 업체인 미래 그룹과 봉씨 그룹의 책임자가 현장을 탐사하러 올 것이니 시에서는 이미 접대를 맡을 책임자를 파견했고 읍내에서도 기초적인 접대 준비를 잘해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다.이 통지는 모든 사람을 바쁘게 했다.긴 레드카펫이 영빈관에서 건물 밖 백 미터 지점까지 펴져 있었고 팀원들은 긴장하게 접대 준비를 하고 있었다.오후가 되어서야 시에서 온 차량 두 대가 먼저 도착했고 한두 시간을 더 기다린 후에야 두 대의 대형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며 계류장에 착륙했다.비행기에서 사람이 내렸을 때 마중 나온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이번에 국내 최대의 두 에너지 회사의 대표가 함께 이곳에 올 수 있게 된 것은 이 작은 읍내에는 큰 기회인 것이다.읍내에는 가스전 자원 외에도 매우 풍부한 관광자원과 과일 자원이 있다. 만약 두 명의 재력가가 그중 하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이곳에 막대한 경제적 수익을 가져다주고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다.읍내에서는 저녁에 최고 연회 수준으로 그들을 접대했다.유강후는 이곳의 여행프로젝트에 일정한 흥미를 보였지만 봉현수는 연회 내내 기운 없이 핸드폰만 바라보았다.겨우 연회가 끝나자 봉현수는 즉시 단풍 마을에 가려고 했다.유강후가 그를 말렸다.“가서 어쩔 건데? 예전처럼 강제로 데려올 거야?”봉현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모르겠어. 나는 오직 솔이를 빨리 보고 싶어.”“그러나 예솔 씨는 너를 만나려고 하지 않아.”유강후가 말했다.“갑자기 나타나면 사람이 놀라서 달아날 건데 또다시 반년 동안 찾아다닐 거야?”“먼저 사람을 찾아 예솔 씨의 근황을 잘 물어보고 다시 말해. 네가 지금 갑자기 간다면 다시 한번 충돌만
지예솔은 지현우를 노려보았다.“평소에 먹을 때는 맛있다고 하지 않았어? 연석 오빠 앞에서 맛없다고 할 거야·겉과 속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어? 나한테 한번 맞아 볼래?”정연석은 음식을 먹으면서 웃었다.“현우는 아직 어리고 성장 중이니 잘 먹어야 해. 하지만 너의 누나도 분명히 너의 영향 조합을 고려했을 거야. 이 작은 곳은 큰 곳보다 선택의 폭이 넓지 않으니 조금만 참아.”정연석은 식재료가 모두 신선하고 조미료도 갓 따온 것이어서 만든 요리가 매우 맛있었기 때문에 많이 먹었다.마을은 산을 끼고 있어서 밖에서는 찬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방안은 따뜻했다.식후 그들은 거실의 나무 의자에 앉아 옛날 일을 얘기했다.얼마 후 지현우가 잠들었다.지예솔은 몇 마디를 말한 후 정연석에게 여기에서 머물 것인지 물어보았다.정연석이 바랐던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곧바로 대답했다.“밖에 비가 오고 있는 같아. 산길이라 가기 힘드니 여기에서 하룻밤만 머물게.”지예솔은 그녀의 침실 옆에 있는 작은 객실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정연석은 방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지예솔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안정되고 만족스러웠다.그는 그녀를 거의 반년 동안 찾아다녔다. 마침, 하늘이 그를 불쌍히 여겨 봉현수 먼저 그녀를 찾았다.비록 이 부근에도 봉씨 그룹에서 투자한 프로젝트가 있지만 봉현수는 지금 모든 시간과 정력을 지예솔 찾기에 쏟아부어서 투자에 관심이 없었다.게다가 이쪽의 프로젝트는 비록 크지만 봉현수가 직접 와서 감독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래서 지예솔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안전했다.몇 년을 못 본 사이 그녀는 더욱 야위고 초췌해졌지만 오히려 더욱 사람의 연모를 불러일으켰다.그는 그녀를 안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침대를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초라한 침실을 바라보며 지예솔은 약간 쑥스러웠다.“집에 변변한 가구가 없어서 죄송해요. 하지만 침대 커버하고 이불은 새것이에요. 게다가 세탁도 했으니 편히 주무셔도 돼요”‘기뻐할 겨를도 없는데 어찌 싫어하겠어!’날이 어두워지
지예솔이 다른 것을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계속 말했다.“걱정하지 마. 봉현수는 아직 내가 귀국 한 걸 몰라. 내가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바꿨고 또 경원시에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지예솔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여기는 어떻게 찾은 거예요?”정연석은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보고 마음속에 깊은 미련이 남아있었다.“솔아, 넌 나한테 그렇게 신뢰가 가지 않았어? 그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지예솔이 말했다.“저는 원래 모든 일이 잠잠해지면 예전의 친구들에게 연락하려고 했어요. 연석 오빠가 찾아올 줄을 몰랐어요. 예전에 이미 많은 폐를 끼쳤기 때문에...”정연석은 마음이 아팠지만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폐를 끼치고 말고가 어디 있어? 너도 전에 나를 도와줬던 것이 기억이 안 나?”지예솔이 말했다.“제가 도와준 것은 모두 작은 일이에요. 게다가 매번 제가 도와준 후 현수 씨가 찾아와서 괴롭혔잖아요.”정연석이 웃으면서 말했다.“맞다. 아직 너랑 말하지 못한 게 있어. 이번에 귀국하고 다시 외국에 가지 않으려고 해. 최근 나는 운산시에 머물면서 이쪽 시장 상황을 둘러보고 적절하다면 본사를 이쪽으로 옮길 생각이야.”지현우는 갑자기 몸을 돌리며 말했다.“연석이 형, 운산시에서 회사를 차릴 생각인가요?”정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는 수출입 무역을 하는 사람이라 2년 사이에 과일도 수출해 볼 생각이야. 내가 전에 2년 동안 조사해 봤는데 이곳은 과일 시장이 좋고 발전 전망도 커. 그런데 시장 조사를 위해 이곳에 왔을 때 우연히 너희들의 사진을 보게 될 줄을 몰랐어.”그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찾아냈다.“이건 내 친구가 저번 주 이곳에 과일나무 보러 왔다가 우연히 찍은 거야.”사진 속에는 지예솔과 지현우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물건을 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이 어두웠지만 지예솔의 그 얼굴은 유난히 눈에 띄어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밖에 없었다.지예솔은 안도의 숨
지예솔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닐 거야, 단지 개발부만 왔을 거야·현수 씨는 이런 산업을 많이 하고 있으니 직접 오지는 않았을 거야.”지현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러면 됐어.”저녁이 될 무렵 마당 입구에 갑자기 검은색 벤츠 두 대가 와서 멈추어 섰다.이 마을에는 이런 고급 차가 거의 오지 않았다. 차가 갑자기 문 앞에 멈추는 것을 본 지현우는 깜짝 놀라서 문을 닫으려고 하자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검은색 외투를 입은 그 사람은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은색 테두리 안경을 쓰고 있어 매우 점잖게 보였다.지현우는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곧 놀라 소리를 질렀다.“연석이 형?”알고 보니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정연석이었다.정연석은 웃으면서 말했다.“현우 키 컸네.”지현우는 달려가 정연석을 끌어안고 기뻐서 울었다.“연석이 형, 몇 년 동안 어디에 계셨어요?”정연석은 대답 대신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웃었다.“곧 스무 살이 다 되어가는 애가 왜 아직도 이리 어린아이 같은 거야? 너의 누나가 또 뭐라고 하겠어.”이때 인기척 소리를 듣고 나온 지 예술은 정연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달빛이 흐릿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저 평범한 검은색 패딩을 입었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정연석은 그녀를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웃으면서 말했다.“여러 곳을 찾아다니다가 겨우 찾았어.”지예솔은 문 앞에 서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현우는 기뻐하며 말했다.“밖이 추워요. 곧 비도 올 거 같으니 얼른 들어와요, 연석이 형.”정연석은 트렁크를 열고 말했다.“현우야, 와서 도와줘.”또 다른 차의 문도 열리자 두 명의 비서가 내려오더니 물건을 함께 집안으로 옮겼다.잠시 후 두 차의 물건을 모두 옮겨 거실에 가지런히 쌓았다.정연석은 다른 차를 돌려보내고 혼자 남았다.지현우는 흐뭇해서 그 물건들을 지켜보았고 그들이 필요한 좋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가볍고 부드러운
“넌 이쁘고 이런 그림도 그릴 줄도 아는데, 이렇게 좋은 여자아이가 왜 아직도 남친이 없는 거야? 아니면 이모가 남자 친구 한 명 소개 해줄게...”정신을 차린 지예솔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이모,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전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결혼을 못 해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죠.”그녀가 집에 돌아온 반년 동안 중매를 하러 온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외숙모들도 그녀를 설득하면서 자신의 조카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그녀는 그 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하려고 애를 낳을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장미연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아이고! 넌 이쁘게 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만약 이런 문제가 없다면 며느리로 들이고 싶었는데...”장미연은 채소 바구니에 담긴 채소를 꺼냈다.“여기엔 방금 뜯은 채소야, 무와 배추 뭐 이런 것들이 있어. 그리고 달걀도 금방 주운 거야.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나으니 가져다 먹어. 너의 남매는 절약하느라 채소도 별로 사지 않는 것 같더구나.”“가련한 것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집안의 모든 가구도 중고 시장에서 사 온 거고…”“밖에 고기를 파는 노점상이 너희가 매번 고기를 반 근만 산다고 했어. 게다가 매일 사서 먹는 것도 아니라며, 이렇게 큰 성인들이 그것으로 먹자면 부족하지 않아?”...한동안 수다를 떨던 장미연은 끝내 떠났다.지예솔은 한참 넋이 나가 있다가 지현우에게 말했다.“현우야, 그 차가 정말 봉씨 그룹의 것인지 가서 한번 보고와.”지예솔은 스쿠터를 타고 떠나려는 지현우를 붙잡고 말했다.“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가.”지현우가 말했다.“누나, 그렇게 조심할 필요 없어. 반년도 지났어, 아마 우리를 찾는 걸 포기했을 수도 있어. 며칠 전 연예 뉴스를 봤는데 그 주연아란 연예인이 또 새로운 영화를 찍었어.”“그런 연기력으로 이렇게 큰 투자가 들어간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걸 보면 현수 형이 투자한 것일 거야. 주연아는 자신이 현수 형과 죽마고우이며 약혼할 것이라
봉현수가 말했다.“그러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철저히 조사할 거야.”비슷한 시각 남쪽의 읍내 마을에서 지예솔과 지현우가 정원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다.작은 정원이 딸린 농가는 반년의 시간을 거쳐 제대로 리모델링되었다.원래 낡았던 벽돌담은 다시 흰 페인트를 칠했고 진흙투성이였던 앞마당은 절반을 낡은 벽돌로 메웠으며 나머지 절반에는 채소를 조금 심어서 깔끔하고 생기가 넘쳐흘러 보였다.벽 쪽에 있는 몇 그루의 과일나무에는 겨울 대추와 감귤 그리고 감이 가득 달려서 열매들이 나뭇가지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는 기분 좋은 느낌을 주었다.집안도 다시 페인트를 칠했고 집에 쓸 수 있는 나무 가구도 다시 다듬어서 칠했다. 중고 시장에서 구매해 온 오래된 가구는 지현우가 사포로 갈아서 페인트를 새로 칠했더니 꽤 괜찮아 보였다.당연히 지씨 가문의 환상적인 럭셔리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남매 둘 다 마음이 편안하고 안심이 되었다.작은 마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일하러 나갔고 외부인들도 적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택배는 도시와 별 차이가 없어서 남매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지현우는 마을의 중고 시장에서 몇백만 원을 주고 중고 승합차를 샀다. 가끔 지예솔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읍내에 생활용품을 사러 나갔다.천천히 남매는 느린 템포의 마을 생활에 적응했다.지현우는 원래 읍내에서 일자리를 찾고 싶었지만 대학 졸업장을 아직 받지 못했고 심장병도 있는 데다 봉현수에게 실마리라도 들 키울까 봐 연말까지 집에 머물면서 다시 생각해 보려고 했다.요즘 남매는 온라인 액세서리 가게에서 서서히 주문을 받고 있다. 비록 많이 벌지는 못하고 제일 큰돈도 몇만 원 밖에 안되지만 이는 남매에게 좋은 시그널이었다.지예솔은 오늘 또 다른 주문을 받았는데 재료비를 제외하고도 몇만 원 정도를 더 벌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도면을 수정했다.점심쯤 정원의 문이 열리더니 이웃인 장미연이 채소 한
잠시 후 봉현수가 나왔다.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그는 비록 야위어 보였지만 적어도 사람같이 보였다.유강후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먼저 밥부터 먹어.”봉현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먹고 싶지 않아. 지금 바로 예솔이 엄마의 산소에 가봐야 해.”유강후가 말했다.“내가 이미 사람을 보냈어. 조금 있으면 소식이 올 거야, 먼저 밥 먹고 있어. 네 모습 좀 봐봐. 찾았다고 해도 정연석이 그 자리에 있으면 주먹 하나로 너를 이길 수 있어.”봉현수는 대충 몇 입만 먹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제대로 식사하지 않은 탓에 몇 걸음을 가지 못하고 체력이 달려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유강후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전면 검사를 받았다.검사를 받고 보니 장기 음주한 탓에 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게다가 몸에 있는 상처들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일부는 염증이 생기고 헐어서 입원 치료가 필요했다.이런 말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던 봉현수는 주삿바늘을 뽑자마자 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에게 경고했다.“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예솔 씨를 찾는다고 해도 소용없어.”그는 사람을 시켜 거울을 가져오라 하고 봉현수를 거울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지금, 이 거짓꼴을 봐봐, 어딜 봐서 사람 같아 보여?”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본 봉현수는 멍해졌다.거울 속의 남자는 말라서 모양이 빠졌고 이전에 건장했던 몸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몇 달 전 산 셔츠는 마치 빌려서 입은 옷처럼 헐렁하게 몸에 걸쳐있었다.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으나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눈언저리가 푹푹 꺼져 들어가 있었다.머리는 너무 오래 정리하지 않은 탓에 스타일이 하나도 없었다.“내가 왜 이렇게 된 거야?”봉현수의 비서인 안시현이 말했다.“대표님, 최소 30근은 빠지셨어요. 사람이 달라 보여요.”“제가 지금 바로 가서 몸에 꼭 맞는 옷을 사 올게요.”봉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가 있다가 한참 후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