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담다

봄을 담다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1-07
Por:  딸기팝콘Actualizado ahora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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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살리는 일에는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자신의 행복에는 한없이 서툰 흉부외과 교수 '유봄'.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슴에 품은 채 오직 환자만 바라보며 살아온 그녀는 감정보다 책임을 먼저 선택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삼진그룹 대표 '강민재' 역시 성공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남자다. 냉철한 판단력과 완벽한 리더십으로 모두의 신뢰를 받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전혀 다른 세상에 살던 두 사람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서로의 삶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차가운 겨울 같던 삶에 봄이 스며들 듯, 서로는 서로에게 가장 따뜻한 계절이 되어 간다. 상처를 안고 살아온 두 사람이 사랑을 통해 서로를 치유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감성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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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ítulo 1

1

봄이었다.

하필이면 거절하기 가장 어려운 계절이었다.

 

"이번 한번만 나가라"

조부의 말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그는 결국 넥타이를 고쳐 매며 한숨을 삼켰다.

관심도 없는 사람들, 의미도 없는 대화 그리고 뻔한 인연타령까지.

이런 자리는 늘 그랬다. 시간 낭비였다.

그녀를 보기 전까지는.

쿵.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한 중년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순간 주변이 술렁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하얀드레스

...여자였다.

또각

가느다란 굽이 바닥을 두드리다 멈췄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벗어 던졌다.

맨발.

망설임이 없었다.

"비켜 주세요"

짧고 낮은 목소리.

그 한마디에 사람들 사이가 갈라졌다.

이상하게도 그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손이 남자의 턱을 들어올렸다. 고개를 젖히고 숨길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탁, 탁, 탁-

일정하고 강한 압박.

망설임 없는 리듬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도 남자의 몸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숨이 돌아오지 않는다.

아주 미세하게 그녀의 눈이 달라졌다.

처음으로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기도가 막혔어..."

낮게 흘러나온 목소리.

그 한마디에 주변의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뾰족한거 있어요?"

몇 초.

그 짧은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떨리는 손으로 작은 금속 장식을 건냈다.

설마 그녀의 손이 남자의 목으로 향했다.

위치를 짚는다.

망설임이 없다.

이상하게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푹.

짧은 소리.

그리고 하얀 드레스 위로 붉은 피가 번졌다.

누군가는 고개를 돌렸고, 누군가는 숨을 삼켰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오직 한곳 쓰러진 남자만 보고 있었다.

그 직후 미세하게 남자의 가슴이 들썩였다.

그는 그 장면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이 여자가 한 일을.

그리고 그걸 해낸 표정이 너무도 담담했다는 걸.

"119는요?"

여자의 단호한 목소리였다.

방금 전까지 들리던 안도의 기운이 순식간에 다시 조여졌다.

"부...불렀습니다!"

누군가 급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도착하면 바로 이쪽으로 안내하세요."

그리고 다시 시선을 내렸다.

남자의 호흡을 확인하고 가슴의 움직임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완전히 안정된 거 아니니까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조용하지만 분명한 말.

그 말은 환자에게 하는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경고 같았다.

드레스는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손은 여전히 남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고, 눈은 단 한 번도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았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점점 가까워졌다.

누군가가 외쳤다.

"구급차가 왔어요!"

들것을 든 구급대원들이 들어왔다.

"환자 상태는요?"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숨은 조금 가빠보였지만 말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CPR시행했고 기도폐쇄 의심돼서 기본 기도 확보 시도했지만 안 됐고"

그녀의 시선이 환자의 목 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응급으로 윤상갑상막 절개해서 기도 확보했습니다."

구급대원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바뀌었다.

"지금은 자발순환 돌아온 상태고, 호흡은 아직 불안정합니다."

하얀 드레스 위에 번진 피, 맨 발,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얼굴.

그 모든 게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구급대원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이송하겠습니다."

그 말에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저 의사입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결론처럼 들렸다.

들것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그 옆을 놓치지 않았다.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붙었다. 시선은 끝까지 환자에게만 가 있었다. 

사람들은 길을 비켜섰고, 그 사이로 그녀가 지나갔다.

점점 가까워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거리.

맨발.

차가운 바닥 위를 그대로 밟고 있었지만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하얀 드레스 위로 번진 피.

그 선명한 색조차 그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보였다.

쾅.

구급차 문이 닫히고 사이렌이 울렸다.

위잉 위잉-

점점 멀어지는 소리.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시선은 계속 그녀가 사라진 방향에 머물러 있었다.

이미 보이지 않는데도 눈을 감지 않아도 떠올랐다.

하얀 드레스 그리고 그 위에 번지던 붉은색, 맨발로 바닥을 딛고 서 있던 모습,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던순간, 그리고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던 눈, 이상할 정도로 또렸했다. 

그는 원래 이런 걸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 이름도 남기지 않는 인연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은 달랐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만 유독 선명했다. 마치 그날의 기억이 그녀를 중심으로 남아버린 것처럼.

이름도 모른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확신이 들었다.

저 여자를 잊지 못할 거라고  그리고 찾을 수 있을 거라고.

***

알람소리가 울리기 전 눈이 먼저 떠졌다. 몸이 무거웠다. 팔다리에 남아있는 묵직한 피로감, 어제 일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천장을 바라봤다. 파티장, 쓰러진 남자, 손에 닿던 감각.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익숙한 동작처럼 몸을 일으켰다.

세면대 앞에 멈춰 섰다. 

거울 속에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눈가에 아주 옅은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그조차 크게 티나지 않았다. 피부는 유난히 희었다. 

빛을 받은 듯 맑고 잡티 하나 없이 정리된 느낌 그리고 커다란 눈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길게 내려온 속눈썹 아래로 피곤함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콧날은 단정하게 곧았다. 과하지 않게 오똑하게 올라간 선이 얼굴 전체를 또렷하게 잡아주고 있었다. 특별히 꾸민건 없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인데도 어딘가 정리된 인상이었다. 

누가봐도 쉽게 시선을 두 번쯤 머물게 할 얼굴.

하지만 그녀는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아무 감정도 없이 그저 익숙한듯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머리를 묶었다. 거울속 여자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예쁜 얼굴이 아니라 일을 하러 가는 의사의 얼굴로.

숙직실 문을 밀고 나왔다.

복도는 이미 환하게 켜져 있었다.

밤과 아침의 경계가 흐릿한 공간.

병원은 늘 그렇듯 누군가의 하루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가운을 한 번 정리하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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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곰돌
바리스타곰돌
설마 강민재 한테 접근해서 임신으로 어떻게 하는건 아니겠지요 그렇게 막장은 아닐거라고 믿어도 되겠지요
2026-11-06 12: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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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곰돌
바리스타곰돌
유지원이 친딸 아닌거 유재원이 빨리 알았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그 모녀 말 듣고 봄이 한테 모질게한거 후회 하겠지요 지원이 친 아빠가 배신감에 밝혔으면 좋겠네요
2026-10-30 17: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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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이정민
너무 설레고 재미있게 잘 보고 있는데 진짜 업데이트 팍팍 해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ㅠㅠ
2026-10-07 15: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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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림
김태림
매일매일 업데이트 되서 좋긴 하지만.. 1편은 여전히 아쉽네요!! 작가님.. 하루 2편은 안될까요??
2026-10-04 1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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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림
김태림
작가님! 하루 1편은 너무합니다!! 최소 2편, 아님 4편도 좋습니다!!!
2026-09-23 13: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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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었다.하필이면 거절하기 가장 어려운 계절이었다."이번 한번만 나가라"조부의 말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그는 결국 넥타이를 고쳐 매며 한숨을 삼켰다.관심도 없는 사람들, 의미도 없는 대화 그리고 뻔한 인연타령까지.이런 자리는 늘 그랬다. 시간 낭비였다.그녀를 보기 전까지는.쿵.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한 중년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순간 주변이 술렁였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그때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하얀드레스...여자였다.또각가느다란 굽이 바닥을 두드리다 멈췄다.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벗어 던졌다.맨발.망설임이 없었다."비켜 주세요"짧고 낮은 목소리.그 한마디에 사람들 사이가 갈라졌다.이상하게도 그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그녀의 손이 남자의 턱을 들어올렸다. 고개를 젖히고 숨길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탁, 탁, 탁-일정하고 강한 압박.망설임 없는 리듬이었다.하지만 이상했다.시간이 조금 지나도 남자의 몸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숨이 돌아오지 않는다.아주 미세하게 그녀의 눈이 달라졌다.처음으로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기도가 막혔어..."낮게 흘러나온 목소리.그 한마디에 주변의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그녀가 고개를 들었다."뾰족한거 있어요?"몇 초.그 짧은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그리고 누군가가 떨리는 손으로 작은 금속 장식을 건냈다.설마 그녀의 손이 남자의 목으로 향했다.위치를 짚는다.망설임이 없다.이상하게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푹.짧은 소리.그리고 하얀 드레스 위로 붉은 피가 번졌다.누군가는 고개를 돌렸고, 누군가는 숨을 삼켰다.하지만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오직 한곳 쓰러진 남자만 보고 있었다.그 직후 미세하게 남자의 가슴이 들썩였다.그는 그 장면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방금 이 여자가 한 일을.그리고 그걸 해낸 표정이 너무도 담담했다는 걸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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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복도.익숙한 소리.바쁘게 오가는 발걸음 사이로 자연스럽게 몸이 스며들었다.“선생님, 나오셨어요?”병동 쪽에서 간호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밤은 어땠어요?”“새벽에 한 번 좀 바빴어요.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요.”짧은 보고.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고생 많았어요.”말은 짧았지만, 그 한마디에 간호사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병실 앞을 지나며 몇 명과 더 눈이 마주쳤다.“안녕하세요, 선생님.”“네, 안녕하세요.”자연스럽게 오가는 인사.특별할 것 없는 풍경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어제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멀어지는 느낌이었다.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병동 깊숙한 쪽으로 들어가며 그녀는 차트를 하나 집어 들었다.이름을 확인하고, 상태를 훑는다.머릿속이 빠르게 정리됐다.피곤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손은 가벼웠다.이곳에 있으면,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지니까.그녀는 차트를 덮었다.그리고, 다음 병실로 향했다.그녀가 병실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복도가 조금 조용해졌다.남아 있던 간호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듯 시선을 주고받았다.그리고,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생님… 진짜 대단하지 않아?”작은 목소리였다.다른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솔직히 처음엔 좀 무서웠거든.”“맞아. 말도 별로 없고.”둘 다 웃음을 참듯 입을 다물었다.잠깐의 정적.그러다, 다른 간호사가 조용히 덧붙였다.“근데… 환자 볼 때 보면 완전 다르잖아.”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아까도 봤지? 어젯밤 응급수술하고도 저렇게 바로 들어가는 거.”“그러니까…”누군가 한숨처럼 말했다.“진짜,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어.”시선이 자연스럽게 병실 문 쪽으로 향했다.닫혀 있는 문.그 안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듯.“얼굴도 예쁘고…”“일도 잘하고…”“집안도…”말이 거기서 잠깐 멈췄다.굳이 이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때였다.뒤쪽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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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병원 외과. 그 중심에는 늘 이름이 함께 따라붙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철중. 대한병원 재단 이사장. 그리고 유재원. 현 대한병원 원장. 두 사람 모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외과 의사들이었다. 수많은 수술을 집도했고,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얻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유봄.이사장의 손녀이자, 원장의 딸.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길 위에 있는 사람.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병원 사람들 대부분이, 그녀를 볼 때면 한 번쯤은 같은 생각을 했다.“결국 저 자리에 올라가겠지.”하지만, 유봄은 이름에 기대지 않았다. 아니, 기대지 않으려 했다. 같은 외과. 같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들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더 멀리 두려 했다. 그래서였을까. 유봄을 평가하는 말은 항상 비슷했다.“실력은 인정.”“근데…”,그 뒤에 붙는 말은 조금씩 달랐다.“집안 때문인지, 본인 실력인지 모르겠어.”그 말은 직접 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익숙한 시선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유봄은 더 많이 서 있었고, 더 오래 버텼다. 남들보다 먼저 수술실에 들어가고, 더 늦게 나왔다. 피곤하다는 말도, 힘들다는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증명해야 했으니까.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가 그들의 이름 때문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였다. 수술실 안에서만큼은, 누구도 그녀를 다르게 보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이름도 배경도 의미 없었다. 오직, 손과 판단만 남으니까. 수술실 문이 열렸다. 밝은 조명이 꺼진 자리에서 현실의 공기가 다시 밀려들어왔다. 마스크를 내리고, 장갑을 벗어냈다. 손끝이 약간 얼얼했다. 길었던 긴장이 이제야 풀리는 느낌이었다.“수고하셨습니다.”스쳐 지나가는 인사들. 유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복도로 걸어 나왔다. 잠깐, 걸음을 멈췄다.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짧은 울림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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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잡힌 오프날이었다.수술도, 당직도 없는 하루. 유봄은 오랜만에 느껴지는 여유에 잠깐 숨을 고르려 했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할아버지의 전화 한 통.“오늘 집에 좀 와라.”짧은 말이었지만 거절할 수 없는 어조였다.유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집으로 향했다.도착한 본가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공기부터가 미묘하게 달랐다.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기운이 먼저 그녀를 맞이했다.거실에는 이미 누군가 자리하고 있었다.유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그리고 그 자리에는, 그녀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가족의 얼굴들 사이에 낯선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있었다.김지숙.아버지의 첫사랑이자, 지금 이 집에 존재하는 또 다른 축.그 이름이 주는 의미를 유봄은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유지원.김지숙의 딸이자, 유봄보다 한 살 많은 이복언니.차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은 자연스러웠지만, 그 존재 자체가 만들어내는 거리감은 분명했다.유봄은 인사를 건네면서도 속으로 미묘한 불편함을 느꼈다.겉으로는 평온한 분위기였지만, 이 집 안에는 보이지 않는 과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아버지와 김지숙은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다.유봄의 엄마, 최진희를 만나기 전까지.그리고 그 관계는 단순한 이별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외과 의사로 같은 동문이었던 두 가문.그들의 아버지들 사이의 약속이 개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할아버지들의 결정.그 약속으로 인해 아버지는 최진희와 결혼하게 되었고, 그 결과 유봄이 태어났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겨진 감정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지금 눈앞에 있는 김지숙과 유지원은, 그 과거가 만들어낸 또 다른 현재였다.하지만 그 복잡한 배경 속에서도, 유봄이 흔들리지 않고 설 수 있게 해주는 존재는 결국 하나였다.할아버지.이 집에서 그녀가 진정으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유봄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았다.불편함과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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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봄이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된 것도,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들은 자신이 책임지지 못했던 과거를 들고 와, 뒤늦게 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던 여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느새 시간이 흘러 15년을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유철중에게 그 존재들은 여전히 낯설었다. 겉으로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마음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감정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이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는 예의는 지켰지만, 거리감은 유지했다. 필요한 말만 하고, 불필요한 감정은 섞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었다. 이미 마음을 두고 있는 대상이 따로 있다는 것. 그에게 있어 진짜 가족은 따로 정해져 있었다. 유봄. 손녀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졌다. 그녀가 자신의 선택을 이어갈 사람이라는 확신. 그리고 이 집에서 진심으로 지켜야 할 존재라는 인식. 다른 관계들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의 기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한 사람을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유철중은 식탁에 앉은 유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덜어 그녀 앞에 놓았다.“왜 이렇게 말랐냐.”짧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유봄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접시에 제철 생선과 나물을 넉넉히 담아 다시 밀어주었다. 평소라면 본인이 먼저 손을 댔을 음식이었지만, 오늘은 전부 손녀 쪽으로 향했다.“이건 다 먹어라. 제철 보약이다.”말은 투박했지만 행동은 분명했다. 자신의 몫까지도 기꺼이 손녀에게 내어주는 태도. 유봄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젓가락을 들었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모를 수는 없었다. 저녁 식탁 위에는 조용한 대화만 오가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김지숙은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아버님.”잠시 타이밍을 보던 그녀는,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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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잡힌 오프를 기억하고 있었다.유봄과 함께 조용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가볍게 드라이브를 하며 시간을 보내려 했던 계획.평소라면 쉽게 맞지 않는 타이밍이었기에, 더 의미 있는 하루가 될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유봄은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호출로 본가에 다녀와야 했고, 그 사이 둘의 일정은 엇갈려 버렸다.이진성이 유봄을 처음 본건 대학졸업을 얼마 안 남겼을 때이다.실습과 시험, 졸업을 앞둔 긴장감 속에서도 이진성 주변은 늘 조금 다른 공기를 가지고 있었다.조용한 성격과 단정한 외모, 그리고 성적과 평판까지 더해져 그는 자연스럽게 많은 시선과 관심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같은 학과의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여러 번의 호감과 접근이 있었지만, 이진성은 누구에게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누군가는 그를 어렵다고 했고, 누군가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사실은 단순했다.그의 기준에 닿는 사람이 아직 없었을 뿐이었다.그날도 평소처럼 강의동을 나서던 길이었다.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건물 주변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그때였다.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유봄.유봄의 얼굴은 단순히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연예인들의 화려한 미모처럼 꾸며진 느낌도, 누군가의 시선을 끌기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매력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에 가까웠다.깨끗하게 정돈된 이목구비는 군더더기가 없었고,빛이 닿을 때마다 또렷하게 살아나는 선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맑았고, 표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그 안의 감정이 은은하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웃지 않아도 충분히 눈에 들어오고, 말을 하지 않아도 시선이 머무르게 만드는 얼굴.이진성의 기준에서조차,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화려한 외모보다도 유봄의 얼굴은 더 오래, 더 자연스럽게 시선을 붙잡아 두었다.과하게 돋보이려 하지 않는데도 주변과는 다른 결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얼굴.그래서 더 쉽게 잊히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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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봄의 곁에 서 있는 사람.그 사실 하나가 만들어내는 무게와 의미를 그는 알고 있었고, 동시에 그로 인해 생기는 주변의 반응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특별히 과시하지는 않았지만, 유봄과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안정감과, 그 관계가 외부에 주는 영향은 분명했다.그리고 그 모든 시선 속에서도, 이진성은 유봄을 중심에 두고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이진성은 병원 안에서는 늘 한 발 물러난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겉으로 보기엔 그저 능력 있는 의료진 중 한 명일 뿐, 유봄과의 사적인 관계는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았다.그 점이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졌다.유봄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남자들, 업무를 빌미로 말을 건네거나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시선들.그 모든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미세하게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쉽게 나서지 않았다.관계를 드러내는 순간 생길 수 있는 파장, 유봄이 감당해야 할 시선과 부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유봄과의 통화는 언제나 이진성의 마음을 미묘하게 풀어주곤 했다.짧은 말 한마디,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안부조차도 그의 긴장을 자연스럽게 낮춰주는 힘이 있었다.그날도 마찬가지였다.하지만 통화가 이어지는 동안, 이진성은 곧 이상한 점을 느꼈다.유봄의 목소리가 평소와 같지 않았다.평소보다 조금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미세하게 힘이 빠진 듯한 톤.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느낌이 섞여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오늘 무슨 일 있었어?”짧게 물었지만, 답을 듣기 전부터 이미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유봄은 잠시 말을 고르듯 침묵했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냥."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이진성의 표정이 바뀌었다.더 묻지 않았다.대신 결정을 내렸다.“지금 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통화를 정리하고, 그는 곧장 차로 향했다.지체할 이유를 찾지 않았다.엔진을 걸고, 핸들을 잡은 그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머릿속에는 이미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유봄을 직접 확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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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재는 한 번 보면 시선이 그냥 지나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키가 큰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비율, 모델보다도 더 완성된 듯한 피지컬에 정제된 선으로 떨어지는 얼굴까지. 무심하게 서 있기만 해도 주변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 누군가는 그를 한 번 보고 지나쳤다가도, 이상하게 다시 고개를 돌려 한 번 더 보게 된다. 과하게 꾸민 티는 없는데도, 오히려 그래서 더 눈에 들어오는 외모. 단정하게 정리된 헤어, 깔끔한 수트, 그리고 필요 이상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표정까지.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배우 같다”는 말을 가볍게 꺼내지만, 실제로 마주하면 그보다 더 현실감 없는 느낌을 받곤 했다.그런 강민재가 움직이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삼진건설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회장의 하나뿐인 손자인 그는 이미 국내를 넘어 해외 사업까지 직접 관리하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해외 지사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움직여야 하는 상황. 삼진건설이 진출해 있는 국가는 여러 곳이었지만, 이번 문제는 규모와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단순한 현지 해결로 끝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삼진건설의 유럽 지사. 동유럽 대규모 도시 개발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던 현장에서 문제가 터졌다. 당초 계획했던 인허가 절차가 갑작스럽게 지연되었고, 현지 정부와의 계약 조건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자금 흐름까지 막히면서 공사 전체가 멈출 위기에 놓였다. 단순한 현장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와 자본, 그리고 현지 세력까지 얽혀 있는 복잡한 상황. “민재야, 네가 직접 가라.”회장의 한마디. 강민재는 짧게 상황을 정리한 뒤, 더 묻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움직여야 할 타이밍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유럽. 겉으로는 안정적이고 세련된 시장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철저한 계산과 이해관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곳. 그곳에서 흔들린 사업을 바로잡는다는 건 단순한 실무 능력만으로 해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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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멈춰 있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엉켜 있던 인허가는 다시 흐름을 찾았고, 막혀 있던 자금 라인도 그의 지시 한 번으로 방향이 잡혔다.흔들리던 현지 파트너 역시, 직접 나선 그의 한마디에 태도를 바꿨다.처리는 빠르고, 판단은 정확했다.불필요한 과정은 과감히 잘라내고, 핵심만 남기는 방식.짧은 시간 안에 상황은 눈에 띄게 정리되고 있었다.하지만 강민재는 알고 있었다.지금 해결되고 있는 것들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일 뿐이라는 걸.이 사태의 뿌리는 더 깊숙이 박혀 있었고, 한 번의 정리로 완전히 끝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겉을 정리하는 것과, 완전히 잘라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그는 창가에 서서 잠시 도시를 내려다봤다.차갑게 정돈된 유럽의 풍경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들이 얽혀 움직이고 있었다.“……”짧게 숨을 내쉰 그는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이번 건은 단기간에 끝낼 일이 아니었다.겉으로는 빠르게 수습하고 있었지만, 남아 있는 문제들까지 완전히 도려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최소 몇 달.그는 머릿속으로 일정을 다시 정리했다.본사와의 조율, 현지 라인 정리, 새로운 구조 재편까지.모든 걸 끝까지 잡으려면,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강민재는 망설이지 않았다.이미 선택한 일이었고, 시작한 이상 끝을 내는 성격이었으니까.“정리한다.”짧게 중얼거린 말처럼,그의 시선은 다시 냉정하게 가라앉았다.이번에는 단순한 해결이 아니라, 완전히 정리하기 위해서였다.늦은 밤, 일정이 겨우 끝난 뒤였다.강민재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창가에 섰다.하루 종일 이어진 회의와 정리, 끝없이 이어지는 보고들로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그는 말없이 위스키를 한 잔 따랐다.잔에 부딪히는 얼음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낮게 울렸다.한 모금.목을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감각이, 쌓여 있던 피로를 조금씩 눌러내렸다.창 너머로는 유럽의 밤거리가 펼쳐져 있었다.정돈된 가로등, 잔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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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이진성은 혼자 서 있었다.머릿속에는 계속 같은 장면이 맴돌았다.유봄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남자,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시선들.“…하.”짧게 숨을 내쉰 그는, 고개를 들었다.더 이상 애매한 위치에 둘 생각은 없었다.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유봄을 자신의 사람으로.그는 조용히 결심했다.청혼하겠다고.그리고 같은 시기.대한병원 인턴 오리엔테이션 날.유지원은 병원 복도를 따라 걷다가,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이진성.단정한 가운, 흐트러짐 없는 태도, 그리고 한 번 보면 쉽게 눈을 뗄 수 없는 분위기.유지원의 걸음이 멈췄다.“…누구지.”짧게 중얼거린 말.하지만 시선은 이미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그 순간 유지원 역시 한눈에 빠져버렸다.인턴 배정 희망서를 받아 든 순간, 유지원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다른 인턴들이 과를 두고 고민하는 사이, 그녀의 펜은 이미 한 곳에 멈춰 있었다.일반외과.원래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과였다.힘들고, 거칠고, 버티기 어려운 곳.하지만 유지원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이진성.그 한 사람.단상 위에서 내려오던 순간 스쳐 지나간 그 눈빛.차갑게 정리된 말투, 그리고 쉽게 가까이 갈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감까지.오히려 그래서 더 욕심이 났다.유지원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체크를 마쳤다.며칠 뒤, 일반외과 첫 출근.스테이션은 예상대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짧게 오가는 지시, 빠르게 움직이는 발걸음들.그 혼잡한 흐름 속에서, 유지원은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폈다.그리고 찾았다.이진성.차트를 넘기며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는 모습.군더더기 없는 동작, 짧고 정확한 말.멀리서 보기만 해도, 다른 사람들과 결이 달랐다.유지원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스쳤다.하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았다.젊은 나이에 조교수 자리까지 오른 이진성은, 애초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병원 안에서 그의 위치는 분명했다.실력으로 올라온 사람, 그리고 그만큼 철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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