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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소나은은 난감했다.

랭킹 1위인 러블리는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사람으로서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반면, 소나은은 작년에 운 좋게 5위 안에 들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실력 차이는 현저했다.

그러나 이런 성적 또한 은하 그룹에는 기적이다. 회사 직원들은 모두 소나은을 신처럼 모셨다.

"바질 사장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야 다들 편할 거 아닙니까?"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임현재가 입을 열었다.

그는 소이연을 한껏 조롱했다.

소나은은 속으로 웃었다.

‘소이연, 은하 그룹을 되찾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줄 알았어?’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유정하를 제외하고는 모두 소나은과 소승영의 심복이다. 그들은 소이연이 보나 마나 그 자리에서 3개월도 못 버티고 도망갈 거라고 생각한다.

"전 문씨 그룹에서..."

소이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씨 그룹이 장안시 고급 의류 업계에서는 손꼽히는 회사인 건 인정해요. 그러나 회장님은 홍보팀에서 일한 경력만 있지 디자인에 참여해 본 적은 없잖아요."

임현재는 계속하여 조롱했다.

"디자인이라는 게 해본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니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소이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람들은 소이연이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갈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차분하게 USB를 꺼내 회의실 컴퓨터에 꽂고 프로젝터를 연결하였다.

"이건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은하 그룹에서 출시한 디자인이에요. 보시다시피 시즌마다 디자인이 비슷하죠. 게다가 이번에 소나은 부장이 제출한 디자인은 작년과 거의 똑같아요. 컬러만 변했죠."

"최근 트랜드가 그런 거예요..."

소나은은 반박하려 했다.

"오늘 문씨 그룹 사내 패션쇼를 직접 보고도 전혀 생각이 없던가요?"

소이연은 차갑게 비웃었다.

"직업윤리가 있어야지 어떻게 다른 회사 제품을 카피해요."

소나은이 당당하게 말했다.

"올해 봄부터 트랜드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이건 현재 글로벌 패션쇼의 자료 화면이에요. 소나은 디자이너의 디자인 이념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죠."

소이연은 소나은의 체면을 전혀 세워주지 않았다.

그녀의 디자인은 도저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디자인 하나를 2년이나 우려먹으니 실적이 매년 내려갈 수밖에…

소이연의 말에 소나은은 얼굴이 빨개졌다.

최근 몇 년 동안 디자인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아이디어도 없었다. 그래서 소이연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자리에 있는 임원들은 모두 소나은의 편이지만 이렇게 뚜렷한 대비 사진이 있는 이상 더는 입을 함부로 놀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소나은 때문에 다들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부터 디자인팀의 모든 원고는 제가 직접 확인할 거예요. 소나은 디자이너한테는 일주일 정도 시간을 더 줄 테니까, 다음 주 화요일 전으로 원고 수정해서 단독으로 저한테 보고하세요."

소이연은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려 계속 말을 이어갔다.

"오늘 끝내지 못한 업무는 내일 아침 9시에, 출근하자마자 저한테 보고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번 달 성과금은 한 푼도 지급하지 않겠습니다."

소이연은 카리스마 넘치게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유정하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모든 사람은 하나같이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패기 넘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고작 25살밖에 안 되는 여자에게서 이런 아우라가 나오다니?

...

사무실.

소이연은 유정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임원진은 전부 소승영의 사람들이에요. 회사 경영권을 확실하게 가져오려면 물갈이할 수밖에 없어요."

"오자마자 임원을 교체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힘들 거예요. 회사 조직은 인심이 필요하죠."

유정하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일벌백계할 생각이에요. 일단은 이현아부터 바꿔야겠어요. 안 그러면 소승영이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거예요."

유정하는 흠칫했다.

소이연은 확실히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단지 소이연 어머니의 은혜를 갚기 위해 충성을 다할 뿐이었다. 그러나 소이연의 지혜로운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

육씨 그룹.

이명진은 육현경 뒤에 서 있다. 육현경이 정신이 딴 데 팔린 모습을 보고도 차마 원인을 물어볼 수가 없다.

육현경이 일할 때는 절대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명진."

육현경은 갑자기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았다.

"네."

"그쪽은 어떻게 됐어?"

육현경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쪽?!

그쪽이라니?!

동쪽 서쪽 남쪽 북쪽?!

그 순간 이명진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갑자기 뭔가 번뜩 떠올랐다.

‘사모님 쪽 상황!

근데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믿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쓸데없이 참견하지 않은 것인데.’

"지금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명진은 곧장 사무실을 나가 통화를 한 뒤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보고했다. "사모님께서 오늘 임원 회의를 소집하였다고 해요. 억울함을 당하신 건 같지 않아요. 반면, 회의를 마치고 나온 임원들이 벌컥 화를 냈다고 하네요. 그리고 듣자 하니 소나은은 눈시울을 붉히며 회의실을 떠났대요."

하루 종일 굳어있던 육현경의 얼굴은 그제야 활짝 피었다.

그는 옆에 있던 커피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사모님?"

"아닌가요?"

이명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바 하지마."

이명진은 육현경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역시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는 '소년 감성'이 있는 것 같다.

"대표님, 방금 회의 들어가셨을 때, 하도경 씨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이명진은 갑자기 생각났다.

"뭐래?"

"오늘 문서아 그 여자가 사무실로 찾아가서 미친 듯이 행패를 부렸다고 해요. 화가 잔뜩 나 있던데요. 문서아가 대표님한테 얼마나 큰 미움을 샀길래 대표님께서 그러시냐고 물었지만.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예전에 문서아가 하도경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니 그 대신 갚아주는 거라고 전해."

"…"

이명진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

밤 10시.

늦은 시간까지 일에 몰두하고 있던 소이연은 그제야 기지개를 켰다.

사실 문씨 그룹에서 출근할 때,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라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다.

예전의 일은 잠시 접어두자.

소이연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서서 장안시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그녀한테는 지금 엄마가 남긴 회사를 잘 경영하고, 소씨 가문의 사람한테 회사가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랑 같은 건 이미 잊은 지 오래다.

갑자기 눈앞에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키가 크고, 성격은 차갑고 카리스마 넘치지만 부드러움도 겸비한 사람…

소이연은 입술을 오므렸다.

그녀는 자꾸 떠오르는 그 남자를 무시하기로 했다.

그녀는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커피를 내려놓고 소이연은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도착하자 배달원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이연 씨?"

소이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영양죽인데요. 사인해 주세요."

배달원이 펜을 건네주었다.

거절하려는 찰나, 그녀는 서명란에 '민'이라고 적힌 이름을 보고 단번에 알아차렸다.

집으로 돌아와 소이연은 맛있는 죽을 먹으며 육현경에게 감사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말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도 헐떡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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