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7화

하도 친척들이 있는 자리라 소이연은 소나은의 체면을 뭉개지 않았다.

소파 한구석에 앉아있는 그녀는 유난히 이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소이연, 할머니 생신인데 넌 선물도 준비 안 했어?"

소승영의 친동생인 소명희가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소명희네 가족들은 모두 소씨 그룹에서 소승영의 덕을 보며 살고 있고 또한 양화랑와도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당시 양화랑이 소승영과 결혼할 수 있었던 건 소명희의 공이 크다고 한다.

소이연은 차갑게 웃었다.

소나은과 문서인이 사귀게 된 건 문서아의 공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소나은은 그 피를 제대로 물려받았구나!’

"쟤 선물 따위는 바라지도 않아!"

유백희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쟤 꼴에 무슨 돈이 있어서 선물을 하겠어? 궁상맞아서!"

"할머니,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언니 지금 은하 그룹 회장이에요. 은하 그룹이 얼마나 승승장구하는데요. 저번에도 우연히 언니를 보았는데 친구들과 함께 '더 청담'에서 식사하더라고요. 그곳은 워낙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에요. 한 끼 식사에 2백만 원은 거뜬히 넘는 곳이라 평소 같으면 저도 부담되어서 잘 안 가요. 그날은 수아가 저녁을 사겠다고 하는 바람에…"

소나은은 말을 내뱉다가 갑자기 자기가 말실수를 한 듯 입을 틀어막았다.

"소이연, 인제 보니 너도 즐길 줄 아는 애였구나!"

유백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소이연, 네가 잘못했네. 그렇게 비싼 레스토랑에서 친구한테 밥을 사줄 돈은 있고 할머니 생신 선물 준비할 돈은 없어? 내가 보기에도 너무 한다."

소명희가 집안 어른 행세를 하며 혀를 찼다.

"그러니까. 소이연, 넌 어쩜 그리 양심도 없어? 어찌 됐든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할머니 생신인데…"

"나은이 봐봐. 할머니한테 직접 옷 디자인해 드렸어. 얼마나 귀티 나고 보기 좋아."

거실에 있던 친척들은 소이연을 비웃었다.

예전의 그녀라면 아마 묵묵히 참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남한테 당하기만 하던 나이를 훌쩍 넘겼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할머니께서 입고 있는 이 옷은 아마 문씨 그룹의 SW 시리즈 모델일 거예요. 그것도 작년 디자인."

소이연은 그 자리에서 바로 폭로해 버렸다.

소나은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녀가 반박하기도 전에 소이연이 재차 입을 열었다.

"이 시리즈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제품이라 디자인도 유명하지 않았고 잘 팔리지도 않았어요. 제가 문씨 그룹에 있을 때 이 옷은 공장 재고량만 해도 만여 벌 이상은 되었을 거예요. 설마 문서인이 너한테 줬어?!"

소나은은 얼굴이 하얗게 질렀다.

소이연 때문에 진실이 드러나서 극도로 난처해졌다.

쉽게 환심을 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들통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할머니, 그런 거 아니에요! 할머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선물 드린 거예요. 유행하는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잖아요. 할머니는 워낙 품위가 있으셔서 남들과는 달라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고모한테 물어보세요, 할머니한테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지?"

소나은은 연신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소명희는 당연히 소나은의 편을 들며 이내 맞장구를 쳤다.

"나 오늘 보자마자 엄마 옷 너무 예쁘다고 했잖아요. 엄마는 워낙 기품이 넘치는 데다가 나은이가 선물한 옷까지 입으니 더욱 우아해 보여요."

"역시 나은이는 눈썰미가 있어. 숙모님이 이 옷을 입으시니 정말 너무 태가 산다."

"난 여태껏 이렇게 예쁜 옷을 본 적이 없는데…"

주위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백희가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인가? 팔리지 않는 옷을 그녀한테 선물했는데 기뻐할 리가 있나?!

하지만 체면이 구겨질까 봐 사람들 보는 앞에서 감히 뭐라고 내색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소나은에 대한 감정에 금이 간 건 사실이었다.

"소이연, 네 선물은?"

소명희는 고의로 그녀를 난처하게 하려고 사람을 윽박질렀다.

"받을 생각이 없다잖아!"

소이연이 말도 꺼내기 전에 유백희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나은도 이렇게 성의 없이 선물을 준비했는데 소이연은 더욱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선물 때문에 계속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았다!

소이연은 유백희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원래는 할머니한테 드릴 선물을 준비했어요."

유백희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소이연은 가방에서 그다지 정교하지 않은 선물 케이스를 꺼냈다.

하지만 박스를 열자마자.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그 안에는 루비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딱 봐도 값어치가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건 지난번 경매회에서 낙찰된 그 중세기 유럽 귀족 목걸이가 아니야? 60억짜리 목걸이, 어떻게 네 손에 있어?!"

소명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 경매회에 참석한 그녀도 이 목걸이가 마음에 들었다.

"설마 짝퉁은 아니겠지?"

누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고모는 줄곧 보석을 연구해 오셨잖아요. 고모가 보기에 짝퉁이에요?"

소이연이 소명희에게 물었다.

소명희는 진짜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자리에서 거짓말을 하면 자기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진품 맞아요."

소명희의 말이 끝나자,

장내가 떠들썩해졌다.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려고 했다.

유백희도 그 루비 목걸이에 홀딱 반해버렸다.

"언니가 어떻게 이걸?"

소나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이연한테 어떻게 이런 귀한 물건이 있다고?!

엄마와 고모가 이 목걸이에 대해 몇 번이고 얘기하는 걸 들은 적 있는데.’

"문서인이 나한테 선물한 거라고 하면 너 피 토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

소이연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순간 소나은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문서인이 소이연한테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했다니!

그녀는 질투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소이연은 소나은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목걸이를 거두었다.

"할머니께서 제 선물은 원하지 않으신다고 하니 저도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유백희는 입을 열려고 했다가 자존심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켰다.

아까 한 말이 있는데 인제 와서 달라고 하면 체면을 구기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 화가 난 유백희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소이연은 마치 유백희의 안색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루비 목걸이를 가방에 도로넣었다. 그녀는 선물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눈치가 빠른 소명희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소이연을 난처하게 하기는커녕 소나은의 체면만 잃게 하고 루비 목걸이 또한 날리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다.

다행히도 친척들이 하나둘 소씨 별장으로 도착했다.

다들 친척들을 대접하느라고 더는 소이연을 상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연회가 시작되었다.

소승영은 유백희의 생일을 맞아 소씨 가문의 별장 뒤뜰에 임시로 자리를 마련했다. 두 모자는 친척들 앞에서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효자 모습을 보여줬다.

소이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에게로 향했다.

"이건 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서프라이즈예요. 영상을 틀 때 이것부터 먼저 틀고 전에 준비한 영상 틀어요."

"네."

직원이 얼른 대답했다.

소이연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와 이따가 벌어질 일을 기대하였다.

넓은 별장 뒤뜰에서, 소승영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다음은 제가 우리 어머니를 위해 준비한 생신 축복 영상입니다. 함께 보시죠"

모든 사람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대형 스크린에서 갑자기 민망한 화면이 나타났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동영상 속 여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남자 주인공은 소승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순간 장내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고 다들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소승영은 여전히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승영이 효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부친께서 돌아가신 후 모친을 지극정성으로 돌봐드린다고 해서 장안시에서 효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