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색의 변신원경릉 마음이 바뀔까봐 이리 나리는 다음날 수도권으로 돌아가야겠다며 눈늑대를 데리고 갔다.이리 나리는 불식에게 눈늑대를 안아서 마차에 태우라고 하더니, 눈늑대가 마차를 타자 꽉 끌어안고 몇 번이나 뽀뽀하며 사람들 앞에서 보이던 냉담함은 완전 사라지고 없다.이리 나리가 갔지만 미색은 초왕부에 남았다. 핑계는 불식이 경성에서 움직이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여기 남아 불식을 도와 초두취를 관장하는 것이지만, 당연히 최대의 목적은 자신의 혼사였다.미색은 사실 다급한 나머지 원경릉 앞에서 일부러 한숨을 푹푹 쉬며 자기가 곧 스무 살이 되는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꽃 같은 시절에 혼례를 치르지 못하는 것을 마치 존속살인이라고 하는 것처럼 극악무도한 일로 생각했다.원경릉은 당연히 말뜻을 알아차렸지만 바로 문둥산에 가야하고, 황제는 여전히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으니 재촉하기가 뭐했다.하지만 문둥산에 가기 전에 갑자기 궁에서 전갈이 와서, 노비가 회왕부로 갔으니 원경릉에게 와서 차나 한잔 하자는 것이다. 말을 전하는 사람이 원경릉에게 미색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원경릉은 우선 사람을 시켜 물어보니 노비가 회왕부로 갔는데 친정 동서도 같이 오라고 청했다는 걸 보니 미색을 본 뒤에 결정을 내리겠다는 의미다.원경릉이 얼른 미색에게 알리니, 미색이 이 말을 듣고 너무 좋아서 바람처럼 날아가 화장을 하고 불식에게 예물을 준비하라고 했다.불식은 빈틈 없는 성격으로 미색의 혼사도 늑대파의 대사로 미색이 순조롭게 시집가는 건 늑대파의 큰 경사다.노비가 마지막으로 아무래도 미색을 만나겠다고 결정한 건 회왕의 혼사를 더이상 미룰 수 없기 때문으로 반드시 연말까지는 마무리 지어야 했다. 해를 넘기면 한 살을 더 먹으니 궁 안팎으로 회왕이 폐병 귀신이라 아무도 시집오려 하지 않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노비가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도 사실 이런 괴상망측한 말을 참을 수 없어서다. 원경릉은 미색이 예물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눈알이
회왕부로 가는 미색미색이 이 말을 듣고 의미심장하게, “사식 아가씨, 아직 젊으셔서 제 곤경을 이해 못하시겠지만 제 나이가 되면 다급한 게 뭔 지 알게 되실 거예요, 그땐 척정도가 아니라 전신을 전부 뜯어고치라고 해도 혼사에 도움이 되기만 하면 얼씨구나 하고 할 겁니다.”사식이가 혀를 날름 내밀며, “전 걱정 안 해요, 17살이 되면 할머니가 제 혼사를 도와 주실 게 틀림없거든요.”미색이 한숨을 쉬더니, “가족이 있으니 좋겠어요.”사식이가 깜짝 놀라며, “미색 아가씨는 가족이 없어요?”“아버지가 너뎃 있는데 제 혼사를 망치기만 했어요, 늘 남자치고 좋은 놈 없다며 저더러 혼인하지 말라고 했죠.” 미색이 말을 꺼내니 또 열 받는다.원경릉과 사식이는 서로 마주보고, 아버지가 너뎃? 아버지는 한 분인데? 어떻게 너뎃이지?원경릉과 사식이가 묻지 않아도 미색이 이야기를 시작했다.“제 친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아내로 맞고, 또 계속 두 명의 첩을 맞아들였는데 우리 엄마가 분을 못 참고 저를 임신한 채로 나왔어요. 저를 낳았을 때 낡은 절간 안이었는데 밖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어서 마침 몇몇 사람들이 안으로 비를 피해 들어왔죠. 저는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저녁에 태어났고, 엄마는 저를 낳고 ‘꼴까닥’ 해서 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제가 가엾다며 저를 거두기로 했어요. 서로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싸우다가 한 사람이 1년씩 키우기로 했죠. 그래서 저에게 아버지가 너뎃 계신 거예요.”원경릉과 사식이가 듣더니 신기하기 이를 데 없는 게, 낡은 절간에 버려진 아기를 상상 외로 네 사람이 서로 키우겠다고 싸웠다고? 그 사람들 아내는 자기가 아이를 못 낳나? 만약 불쌍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면 아무나 한 사람이 맡아서 키우는 게 맞지, 왜 돌아가면서 한 명이 1년씩 키우지?미색이 키득키득 웃더니 두 사람을 째려보며, “달리 말하는 방법도 있죠, 저는 대흥국의 군주로 제 아버지는 대흥국의 왕야인데 우리 엄마는 첩에게 살해당하고 저는 북당으로 도망왔죠. 그래서 제 아버지는
미색과 노비의 첫 만남노비는 이번 출궁 행장을 소박하게 하고, 내명부의 부인들도 거진 초대하지 않은 게, 당분간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아서다. 그 여자는 전면에 내세우기에 부족한 사람으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동안 황제는 태자비가 이 여자를 소개했다는 말을 안 하더니, 노비가 계속 물어보니 마지못해 태자비가 좋게 봤다는 걸 실토했다.당초에 원경릉이 회왕의 병을 치료한 것과 회왕의 자금단을 원경릉에게 준 것에, 노비는 양가 감정이 들었으나 두 가지 일은 결코 대등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가 언제나 가장 큰 법이다. 그래서인지 원경릉에게는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그런 원경릉이 보증하고 추천하는 여자라니 원경릉에 대한 마음과 여러 원인이 겹쳐서 노비도 일단 보자고 결정한 것이다.노비는 조각해 놓은 듯한 아들을 바라보며,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관에 한발짝을 넣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그때 얼마나 절망적이었던가.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너무 큰 바램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저 회왕이 평안하고 즐거우면 그만이지 않나. 만약 회왕이 그 여자를 마음에 들어 하면 이대로 정하면 그만이지, 더 고민할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에 회왕을 상처 입히지 않아도 된다.이렇게 생각하자 노비의 눈빛은 다시 굳건해 졌다.태자비가 왔다는 보고들 듣고 회왕이 일어나 맞으러 나갔다.회왕이 막 도착하니 원경릉이 절세 미인을 데리고 들어오는데, 옷자락이 살랑거리는 것이 마치 선녀가 하강한 듯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얼른 예를 취하며, “시동생 다섯째 형수를 뵙습니다.”원경릉이 미소를 머금고, “여섯째 도련님 예의 차리실 필요 없어요, 여긴 바람이 차니 어서 들어가요.”회왕은 감히 미색을 쳐다보지 못하고, 미색의 눈동자는 회왕의 얼굴을 향해 굳어버린 듯 떨어질 줄을 모른다. 전에 그를 한 번 봤을 때도 잘생긴 게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일반적으로 선물이라고 하면 금은보화나 도자기, 그림, 골동품 등을 뜻하며, 그런 비싼 선물들은 많이 가져올 수 없기에 곱게 포장을 해 시녀를 시켜 들고 오게 하면 된다. 하인이 미색이 선물을 가지고 들어온다고 하자 조씨와 오씨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미색이 가지고 온 선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켜봤다.그런데 놀랍게도 선물이 담긴 상자가 하나같이 다 저렴한 목재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평소 백성들이 쓰는 흔히 볼 수 있는 포장 상자였다. 조씨와 오씨는 소리를 내어 웃더니 서로 눈을 맞추며 조롱의 목소리를 내었다.“설마 이부자리 따위를 혼수라고 가져온 것은 아니겠지요?”“누가 선물을 저런 상자에 담아 옵니까?”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성의없다고 욕할 수 있는 상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색도 어쩔 수 없었다. 수많은 보석들을 담으려면 큰 상자가 필요했고, 그만한 크기의 상자는 가장 저렴한 것뿐이 없었다. 노비(魯妃)는 투박하고 평범한 상자를 보고 기분이 언짢았다. ‘선물이라더니 이렇게 후려치는 것이야? 하긴 별 볼일 없는 가문의 여식이 황실의 예의범절을 어떻게 알겠어?’노비는 상자를 보며 다른 사람들이 흉을 보면 어쩌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미색은 노비를 보고 한달음에 걸어 나와 인사를 했다.“노비 마마, 이것은 제 오라버니가 마마님께 보내는 선물입니다. 마마님의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정성껏 준비했습니다.”조씨는 깔깔 웃으며 미색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무슨 선물까지 준비를 해요? 그나저나 상자가 무식하게 큰 것을 보니 뭐가 들어있는지 도통 감이 안 잡히네. 호호.”원경릉은 조씨가 미색이 준비한 성의를 비꼬는 듯한 말을 하자 기분이 나빴다. 아무리 미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선물까지 바리바리 준비한 사람에게 저렇게 함부로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원경릉이 미색의 기분을 살피기 위해 그녀를 보니, 이미 미색의 눈동자에서도 분노가 치미는 듯했다.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 궁금하다는 뜻으로 알고, 한번 열어봐드리지요.”미색이
미색은 조롱 섞인 말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이러한 선물은 저희 가문에 차고 넘치기에 노비 마마께서는 부담 갖지 마시고 받으십시오. 게다가 저희 오라버니께서는 이 정도를 혼수품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십니다. 이 정도를 혼수품이라는 게 말이 됩니까? 너무 초라하지 않습니까?”미색의 말을 듣고 조씨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어디서 이런 비싼 것들이 났다는 말이냐? 게다가 마마님은 이런 사치스러운 물건에 넘어가실 분이 아니다!”조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미색은 고개를 돌려 노비 마마를 바라보았다.“마마, 소인 마마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조금씩 많은 종류를 가져와 본 것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저 마마님을 뵙는 게 기뻐서 성의 표시라고 조금 가져온 것인데, 이게 이렇게 큰 문제가 될 줄은 소인 꿈에도 몰랐습니다. 마마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조씨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노비 옆에 딱 붙어 말했다.“마마님께서는 이런 사치스러운 것들을 좋아하지 않으시니 도로 가져가라!”사실 노비는 조씨와 오씨가 나대는 모습을 보고 매우 불쾌했다.‘세상에 보물을 싫어하는 여인이 어디 있단 말이야? 게다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보물 아니겠느냐?’노비는 매번 귀걸이며 목걸이며 하던 것만 해서 지루하던 참에 이렇게 예쁘고 세련된 것들 보니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팔과 목에 둘러보고 싶었다.조씨와 오씨의 오지랖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던 노비는 차라리 미색에게 이 상황을 맡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미색은 조씨가 뱉은 ‘사치스럽다’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부인, 제 출신 때문에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이 선물을 준비하면서 다른 뜻이 없었습니다. 그저 마마님께서 좋아하시길 바라는 단순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이런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다들 얼굴도 예쁜 미색이 돈까지 많은 부러워서 저러는구먼, 사람은 왜 저리 솔직하지 못할까?
노비는 금은보화가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다시 한번 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얼굴도 예쁘고, 집안에 돈도 좀 있는 것 같고…… 저렇게 내 아들을 사랑해주다니 저런 사람이 내 아들에게 또 나타날 수 있겠는가?’노비는 손짓으로 하인을 불렀다.“여보게, 미색을 데리고 가 옷을 갈아입히거라! 그리고 여섯째야 넌 같이 가서 운동도 할겸 미색을 데리고 왕부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주거라.”미색은 고개를 들어 노비를 바라보았다. “제 모친께서는 저를 낳다가 돌아가셨는데…… 만약 모친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감격하셨을까요! 망극하옵니다 노비 마마!”미색의 아름다운 눈에서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노비의 긍정적인 대답에 회왕의 새하얀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예, 모친.”미색과 회왕이 나간 후 노비는 오씨와 조씨에게도 돌아가라고 분부했다. 두 사람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노비를 화나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저희가 있으면 방해만 되는 것 같으니 가보겠습니다. 마마님 실례가 많았습니다.”두 사람은 문밖을 나가는 순간까지 금은보화가 가득찬 상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 저렇게 귀한 물건을 상자에 가득담아주다니…… 만약 회왕이 미색과 혼인이라도 한다면 지참품을 얼마나 많이 가져오겠는가?’조씨는 생각만으로도 노비가 부러워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 장면을 보고있던 원경릉은 속으로 조씨와 오씨가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미색은 출신을 제외하고는 여기에 있는 어느 부인보다 나은 금전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외모는 월등하게 빼어났으며 심지어 똑똑하고 배려심이 깊다. 조씨와 오씨는 미색보다 나은 것이 출신 뿐이니 그것만 믿고 미색을 얕보는 것이다. ‘자격지심 때문에 사람이 저렇게 흉해지기도 하는 구나……’조정에 은화 융통이 되지 않으니 이리 나리가 이백만 냥이라는 큰 금액을 기부한 게 아니겠는가? 조정에 어느 부인의 집안이 한번에 이백
“맛있습니다!”미색은 하얀 이에 노란 국화 꽃잎이 묻어있었다.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미색의 엉뚱한 모습에 회왕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왕야께서는 웃는 모습이 참 예쁘십니다!”회왕은 미색의 말에 웃음을 멈추고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미색, 도대체 왜 본왕과 혼인을 하려고 합니까? 미색 정도라면 본왕보다 더 훌륭한 신랑감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회왕의 진지한 표정에 미색은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왕야께서는 모든 면에서 훌륭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민망하지만, 왕야께서는 제가 바랐던 이상형이십니다. 만약 제가 왕야께 시집을 가게 된다면 제 평생소원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회왕은 미색의 진심 어린 표정과 말투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대청에는 원경릉과 노비만 남아있었다. 노비는 머쓱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본비가 미색을 받아주려는 이유는 미색의 돈 때문이 아니라, 미색이 아들인 회왕을 끔찍하게 아끼는 것 같기 때문일세……”그러자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노비 마마께서 굳이 설명하지 않으셔도 잘 압니다. 그나저나 마마님 만약에 회왕이 미색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면 어떻겠습니까?원경릉이 알고 있는 미색의 성격이라면 회왕을 선택한 후에 주변 사람은 물론 가족들까지 모두 설득을 마쳤을 것이다. 노비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원경릉을 바라보았다.“태자비가 중매를 선 사람인데, 아무렴 믿을만한 사람이겠지요.”원경릉은 노비의 말을 듣고 방긋 웃었다.*회왕과 미색은 이미 정원을 몇 바퀴를 돌았다. 두 사람은 목적 없이 무작정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미색은 자신이 이렇게 재잘거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녀는 행복에 겨워 허리를 젖히고 웃다가 잠깐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갈 뻔했다. 그 순간 회왕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고, 미색은 그의 손을 잡고 설렘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미색은 왕부로 돌아오기 위해 사식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
노비는 회왕부에서 환궁하자마자 명원제를 찾아갔다. 명원제는 갑자기 찾아온 노비(魯妃)를 보고 당황했지만, 그또한 그녀가 얼마나 급했으면 이렇게 달려왔을까 싶었다.노비는 미색이 보낸 금은보화 중에서 몇 가지만 골라 가져왔고, 나머지는 모두 회왕부에 남겨두었다. 명원제는 주수보에게 이리 집안과 혼사를 맺게 가보라고 했다. 주수보는 이 말을 듣고 바로 직예부(直隸府)로 가서 이리 나리를 만났다.혼담을 나누기 시작하면 자연히 서로의 사주를 교환할 것을 미리 안 이리 나리는 이미 회왕의 사주를 받아 조사를 해본 적이 있었다. 이리는 관상가를 불러 회왕의 사주와 미색의 사주 그리고 그 두 사람의 관상이 잘 맞는지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 그래서 주수보가 그를 찾아와 미색의 사주를 요구했을 때 이미 관상가를 통해 알아낸 회왕과 잘 맞는 사주를 적어 그에게 주었다. ‘미색 사주에 두 살 정도 어리게 적었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괜찮겠지.’주수보는 미색의 사주를 받아 사주가를 찾아갔다. 사주가는 두 사람의 사주를 유심히 보더니 무릎을 탁 쳤다.“이 두 사람은 볼 필요가 없습니다! 사주가 어쩜 이리 잘 맞는 거죠?”그 말을 들은 주수보는 명원제를 찾아가 결과를 전했고, 명원제는 두 사람을 하루빨리 혼인시키라고 명했다.*미색은 회왕과 혼인을 허락한다는 명원제의 성지를 받고는 원경릉을 안고 엉엉 울었다.“태자비, 제가 드디어…… 시집을 갑니다!”원경릉은 미색의 등을 다독이며 흐르는 땀을 닦았다.‘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게 이건가? 나도 중매 사례금을 받을 수 있겠구나.’*우문호가 일을 마치고 왕부로 돌아오자 원경릉은 회왕과 미색의 혼인 소식을 그에게 알렸다. 그리고 그녀가 받게 될 중매 사례금도 얘기했다. “근데, 혼사에서 진짜 중매인은 네가 아니라 재상이야.”“왜? 내가 중매를 섰는데?”“넌 소개를 해줬을 뿐이잖아. 결과적으로는 재상이 중간에서 사주를 받아 전해주었기에 부황께서 혼사를 허락하신 거고.”“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혼사에서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