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주종현의 대혼 날, 그의 첩과 어린 딸은 기이한 화재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가 마주한 것은 오직 잿더미로 변한 폐허뿐. 그곳에서 그는 난생처음으로 울부짖으며 오열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천 리 떨어진 우주에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경성 출신의 아름다운 객상이 나타났다. 그 후, 주종현이 황명을 받아 우주에 주둔하게 되었을 때, 그는 밤마다 꿈속에 맴돌던 그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 곁에서 고운 미소를 흩뿌리고 있었고, 그녀의 딸은 다른 이의 품에 안겨 환한 얼굴로 그 자를 아버지라 부르고 있었다. 그는 핏빛으로 물든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으르렁댔다. “넌 어째서 나를 피해 숨었던 것이냐?” 그녀는 그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공자께서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View More복동이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며 자랑했다.“저 이제 컸습니다! 아버지가 저 데리고 쉬했어요!”춘행이 순간 멈칫했다.고개를 돌리자 막 바깥에서 들어오는 주종현과 눈이 마주쳤다.그는 이미 말끔한 무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고 머리끝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어 막 아침 수련을 마친 듯 보였다.다만 그 준수한 얼굴 위에는 어쩐지 지워지지 않는 얕은 불만이 드리워져 있었다.춘행은 감히 오래 바라보지 못하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상황을 다 짐작한 듯,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그녀는 맹시은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아, 도련님을 사위 어른께서 직접 데리고 다니셨군요. 참 자상하십니다.”그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감탄이 담겨 있었다.“이처럼 신분이 높으신 분이 밤중에 아이 뒷바라지까지 직접 하시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 아가씨께서 괜히 기다리신 게 아니네요.”맹시은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달콤해졌지만 겉으로는 괜히 민망해졌다.그녀는 춘행을 흘겨보며 말했다.“말이 너무 많구나.”주종현은 한쪽에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그의 얼굴에 드리운 불만은 오히려 더 짙어졌다.자상하다고?그가 정말 마음을 쓰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그럴 기회를 누가 주기나 했던가.생각할수록 속이 답답해졌다. 가슴 한켠에 맺힌 것이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채 막혀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나가서 수련 좀 하고 오겠다.”그 뒷모습에는 억울함과 답답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맹시은은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깨닫고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맹시은이 두 아이와 함께 아침상을 들고 있을 때였다.집안의 관사가 급히 들어왔다.“아가씨.”그녀는 공손히 예를 올렸다.“어르신께서 전갈을 보내셨습니다. 아가씨와 사위 어른, 그리고 두 아이까지 모두 모시고 화청으로 오셔서 함께 아침을 들라고 하십니다.”맹시은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화청에서 함께 아침을? 이건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진국공부
주종현은 맹시은을 안은 채, 막 무언가 말을 꺼내려 했다.품 안의 온기와 부드러움이 그를 거의 집어삼킬 듯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그때, 문가에 서 있는 자그마한 아이가 말랑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주종현의 관자놀이가 미세하게 꿈틀했다.아이는 아직 완전히 잠에서 깨지 못한 듯, 몸을 살짝 비틀거리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어머니, 안아주세요. 쉬…”두 사람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맹시은이었다. 얼굴을 붉히던 열기도 순식간에 가라앉고 어이없음과 웃음이 뒤섞인 표정만 남았다.그녀는 주종현의 가슴을 가볍게 밀었다.“뭐 하고 있어요. 참다 터지겠어요.”주종현은 이를 악물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앞의 이 꼬마를 번쩍 들어 엉덩이를 한 대 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눌렀다.그래도 제 자식이니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날 밤, 주종현은 좀처럼 깊이 잠들지 못했다.두 사람 사이에는 언제든 깨어날 수 있는 복동이가 누워 있었다.역시나였다. 자시가 조금 지난 즈음, 막 잠이 들려던 찰나 옆에서 사락사락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번쩍 눈을 떴다.어둠 속에서 복동이가 또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며 웅얼거렸다.“어머니… 쉬…”맹시은은 깊이 잠든 채, 가볍게 미간만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주종현은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아들을 안아 들고 뒤채로 향했다.아이를 달래 다시 재우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잠기운이 반쯤은 달아나 있었다.그는 옆으로 돌아누워 고요히 잠든 맹시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가라앉았던 감정이 다시금 불쑥 치솟았다.그는 조용히 몸을 기울여 살짝 입을 맞추려 했다.“음… 아버지…”복동이가 잠결에 입맛을 다시며 뒤척이자 주종현의 동작이 그대로 멈췄다.그는 이를 갈며 아들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이 녀석… 분명 일부러다.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되었고 날이 밝아올 무렵이 되어서야 주종현은 겨우 지쳐 잠에 빠져들었다.꿈속에서 무언가 말랑한 것이 자신
남녘과 북녘, 온갖 곳에서 모인 식재료들. 아삭하게 씹히는 생죽순이든, 부드럽게 익는 버섯이든, 이 작은 냄비 하나 안에서 모두가 어우러져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맛이 된다.이처럼 제대로 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은 경성 같은 데서 나 가능한 일이었다.희뿌연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 흐릿한 열기 너머로 바라보니 주종현의 눈에는 맹시은의 얼굴마저 어딘가 또렷하지 않게 느껴졌다.그녀는 분명 맞은편에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앉아있는데, 어쩐지 그녀가 아득한 강산 너머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이유를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며 나왔다.그는 문득 생각했다. 자신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던 것만 같다고.마치 전생에서부터 말이다.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고, 사랑하고 싶어도 닿지 못하던 그 씁쓸한 감정이 너무도 또렷해 그를 그대로 잠식해 버릴 듯했다.맹시은은 그의 멍해진 기색을 눈치챘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얼굴을 덮쳐오는 김을 비켜냈다.김에 살짝 달아오른 얼굴이 더욱 곱고 선명하게 빛났다.“왜 그러십니까?”그녀는 멍하니 있는 그를 바라보며 걱정스레 물었다.“혹시 입에 안 맞습니까?”주종현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그녀의 눈에 담긴 걱정을 보는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그 알 수 없는 감정은 순식간에 따뜻한 기운에 밀려 사라졌다.입가에 번지는 미소도 저절로 깊어졌다.“아주 입에 맞아.”그는 고개를 저으며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랑 함께라면 뭐든 다 좋다.”맹시은은 그의 너무도 솔직한 말에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흘겨보며 갓 익힌 양고기 한 점을 집어 그의 그릇에 얹어 주었다.“빨리 드세요. 말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주종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그 고기를 집어 들었지만 속으로는 묘하게 씁쓸했다.아무래도 그녀 마음속에서는 아이들이 자신보다 조금 더 위인 모양이었다.*두 사람이 진국공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고 연아와 복동이
맹시은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 담긴 걱정이 또렷이 마주쳐왔다.그 순간, 그녀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눈꼬리와 눈썹 끝까지 환하게 물들 만큼 밝고도 생기 넘치는 웃음이었다.그녀는 손을 내밀어 손목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목소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가볍고도 당당했다.“왜 안 좋아하겠어요? 당연히 좋죠! 껴 주세요.”주종현의 가슴 깊숙이 걸려 있던 돌덩이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방금의 그 짧은 기다림이 전장에서 칼을 맞대고 싸우던 순간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듯 했다.그는 서둘러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는 조심스럽게 그 질 좋은 옥팔찌를 그녀의 손목에 끼워주었다.옥의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자 그녀의 피부는 한층 더 눈처럼 희게 빛났다. 크기도 꼭 맞았다.그때였다. 차가운 감촉이 두 사람이 맞잡은 손등 위에 살짝 내려앉았다가 이내 사라졌다.맹시은이 순간 멈칫했다.곧이어 또 한 점이 그녀의 코끝에 내려앉았다.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어둠이 내려앉은 밤하늘에서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하얀 눈송이들이 하나둘 흩날리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조용히 내려앉는 눈이었다. 올해의 첫눈이었다.“전골집에 가서 먹자.”주종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눈빛은 별빛이 떨어진 듯 눈부시게 빛났다.그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말릴 틈도 주지 않고 강 건너편의 가장 번화한 식당가로 향했다.맹시은은 그에게 이끌려 휘청거리며 따라가다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금 가서 먹는 거예요?”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마차를 바라보았다.“연아랑 복동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기다리게 두거라.”주종현의 말투에는 거스를 수 없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집에는 하인도 많고, 외조부도 계시는데 굳이 우리가 같이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깊이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뜨겁게 타올라 마치 그녀를 녹여버릴 듯했다.“이런 좋
시은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장부를 조작하고 돈을 빼돌렸는데 내가 어떻게 대하길 바라는 것이냐?”“무, 무슨 장부 조작입니까!”관사가 말을 더듬었다.“아무 근거 없이 사람을 모함하지 마십시오!”시은이 아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설은 곧장 장부를 펼쳤다.“장요에서 들여온 도자기, 매입가가 칠십 냥인데 판매가는 이십 냥?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냐, 자선을 하는 것이냐?”“전조의 명장 옥병, 매입가가 육백삼십 냥인데 판매가가 오십 냥?”아설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이건 장사가 아니라, 그냥 헐값에 넘긴 거지. 이해가 안
아설은 마차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셋째 아가씨는 송하윤과 같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요.”시은이 고개를 저었다.“셋째 아가씨는 성정이 단순해. 국공부인도 돌보지 않았으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지. 그래서 송하윤과 지낼 때는 송하윤이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고 송하윤이 미워하면 함께 미워했어. 애증은 분명하지만 사람을 잘못 사귀는 타입이지.”두 사람은 나란히 마차 쪽으로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헌데 방금 셋째 아가씨가 말한 제안은 뭐였어?”아설의 눈이 반짝였다.“셋째 아가씨의 혼수로
“아버지…”연아가 막 달려가려는 순간, 아람이 아이의 팔을 붙잡아 마차 안으로 끌어당겼다.“어머니, 아버지예요.”아람은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헌데 지금은 아니란다.”“왜요?”그녀는 연아를 품에 안았다.“이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야.”연아는 가슴이 조금 아파 고개를 숙였다. 왜 아버지는 더 이상 자기를 원하지 않는 걸까?단낭은 선아를 안은 채 아람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를 맹시은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지금에서야 그녀는 이 여인의 지난 삶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았다. 이 모든 일이 자기에게 닥
맞은편 찻집 위층에서 두 명의 관리가 찻잔을 들고 아래의 소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난장판이 바로 그들이 기다리던 장면이었다. 저 아설이라는 계집아이가 자신들이 구멍을 메우느라 전 재산을 털어 넣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갓 세상에 나와 두어 해 떠돌아다닌 것을 가지고 스스로 대단한 인물이라 여기는 꼴이 가소로웠다. 이번에 제대로 넘어뜨려 속 시원하게 갚아 주지 않으면 차라리 그녀 앞에 무릎 꿇고 어미라 부르겠다며 이를 갈았다.“원 장객, 저들이 혹시 이 계약서가 가짜라는 걸 알아채지는 않겠습니까?”원 장객이 가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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