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집사의 충고밤에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정집사가 지도를 그려 그들에게 보여주며 설명했다.“남강은 산성으로,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산으로 들어간 뒤에야 비로소 남강성(南疆城)으로 사방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쳐져 있어 조정이 공격해 들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이게 황제 폐하께서 남강 스스로 내전을 치르고 조정이 지원하는 방식을 생각하신 이유기도 합니다. 남강 북쪽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눠져 있습니다. 첫번째 길은 남강 남쪽을 지나치는 길이지만, 중간에 여러 산이 남북을 갈라놓고 있는 관계로 이 산들을 넘어야만 합니다. 지금 남강 남 북쪽 변방을 전부 군이 주둔해 지키고 있으므로 남강 남쪽을 지나가는 경로는 발각되기 쉽지요.”정집사는 잠시 지도를 조정하더니, 다른 길을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여기는 직접 남강 북쪽으로 진입하는 길로 변경에 주둔군이 없습니다. 산세가 험준하고 일부 밀림은 일년 내내 아무도 다니는 사람이 없고 독기와 독사가 출몰해서 보통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려운 건 독사가 아니라 독기로 입산할 때는 반드시 대낮에 해가 비칠 때, 얼굴에 수건을 하고 거독환(祛毒丸, 해독제)을 먹어야 합니다. 입산한 뒤 앞으로 10리 정도 가면 남강 북쪽 지대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제부터가 진짜 위험합니다. 백성 모두가 병사로 외부인을 보면, 바로 공격해 들어올 게 틀림없죠. 그들의 무고술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닙니다. 그 곳의 아름다운 꽃을 만져서도 안되고, 짐승도 잡아서는 안되며, 독충, 개미 같은 게 발 밑을 지나갈 때도 최대한 밟지 말아야 합니다.”정집사가 손가락을 위쪽으로 이동해 지도를 가리켰다.“여기가 남강 북쪽에서 제일 높은 산 입니다. 그래서 들어가 사람을 구하려면, 이 산을 무조건 올라야 합니다. 무당은 전부 산꼭대기에 사는데 무당이 지내는 진법이 깔려 있고 아홉 고개 13구비마다 길을 잃게 만들어 놔서 모두 같이 가야만 하고 흩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에서 길을 잃고 혼자의 힘으
남강북쪽 산길정집사가 위왕에게 말했다.“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이성을 잃은 자의 목숨은 다른 목숨을 대신하는 겁니다. 이성을 잃은 자의 피를 입에 쏟아 부어 피로 깨어나게 부르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 피 두세방울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신속하게 대량의 피를 주입해야 합니다. 그렇게 때로는 피를 전부 흘려 넣어 불러도 깨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깨어났다고 해도 이미 방대한 양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무당 지대라는 위험한 곳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될 뿐입니다.”위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머리로 기억해 두었다.정집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이번에 남강 북쪽 길을 통해 무당 지대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도중에 틀림없이 위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꼭 명심해야 하는 점은, 시작엔 서로 도우며 지켜줘야 하지만, 무당 지대에 들어선 뒤론 누군가 실종됐다 해도 절대 구하려 들면 안 된다는 겁니다. 심지를 굳건히 하여 기이한 것을 대했을 때 감히 흥미를 느끼거나 만져서는 안됩니다. 특히 아름다운 꽃, 특이한 무늬와 색의 동물과 짐승이 신비롭고 기이하게 느껴질 텐데 경외하는 마음을 품되 절대로 멀리 해야 합니다. 조종당하고 싶지 않다면, 제 말을 꼭 기억하셔야 할겁니다.”위왕이 나가서 장수들에게 정집사의 말을 전달한 후 모두에게 이번 작전의 위험을 알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게 했다.다음날 대오가 출발해 반나절이 지난 뒤 서일과 사식이가 역참에 도착해 그가 이미 남강 북쪽 산길로 진입했다는 걸 알아냈다. 대략의 루트를 물어보고 사식이와 서일도 출발했다.가는 길을 재촉해 날이 저물기 전, 대오를 따라잡을 수 있길 바랬다.만아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도 환각이 보이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에 갇힌듯 했다.만아는 처음엔 억지로 참고 견뎌냈다. 하지만 해질 무렵 산꼭대기에서 굽이굽이 이어진 산봉우리를 보는데 갑자기 눈앞에 한 폭의 광경이 나타났다. 전에 한번
만아의 신내림정집사가 품에서 약병을 꺼내더니 한 알을 만아에게 먹이고 우문천에게 전했다.“열이 나는 게 틀림없어요, 열로 머리가 멍해 졌나 봅니다.”“정집사가 먹인 약은 뭔가? 열을 내릴 수 있나?” 우문천이 만아 얼굴을 보니 무서울 정도로 하얀데 눈 밑만 어지럽게 검붉은 것이 열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기도 했다.“가능합니다. 이 약이 몇 알 있으니 계속 약을 줘서 호전 시킬 수 있어요.” 정집사가 대충 말하며자기가 돌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문천은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만아는 다섯째 형수 측근으로, 가장 총애하고 신뢰하는 아이다. 만약의 경우가 생겨서는 안되지만, 성인 남자인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답답했다.“그럼 자네가 잘 돌봐 주게. 한 시진 정도 더 가서 우리는 야영을 해야 할 것이야.”남강 북쪽에서는 해가 진 뒤에 갈 수가 없어 밤에는 반드시 야영을 하며 쉬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지만 이 곳에서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다.우문천이 간 뒤 정집사는 만아를 가슴에 품더니, “내 말 들어, 넌 지금 아무 생각도 하지 마. 그저 어서 빨리 정화군주를 구해내서 태자비 마마께서 기뻐하는 생각만 하면 돼. 머릿속에 모든 잡념은 전부 버려. 알겠지?”만아는 몸을 약간 떨며 말했다. “정집사님이 저에게 먹인 약이 뭔 가요?”“안심해라, 이 약은 너에게 해가 되지 않아. 그저 체력을 증가시켜 주려는 거야.” 정집사는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이 신내림의 악독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집사도 지금 환청이 시작되었지만, 본인은 만아와 달랐다. 정집사는 피맺힌 원한을 품고 누구보다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술도 정집사를 무너뜨리지 못한다.그리고 만아에게 먹인 약은 무슨 체력 증진제나 보약이 아니라, 사실 고독의 일종으로, 만아가 미쳐서 날뛰거나 이성을 잃었을 때 바로 혼절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적어도 만아가 정집사의 시선 밖으로 벗어날 리 없게 하기 위해서다.“정집사님, 제가 병에 걸린
만아는 남강 북쪽 무녀한편, 우문천이 머리가 온통 피로 물든 만아를 안고 돌아왔는데 만아의 두 손은 축 쳐져 있는 게 이미 정신을 잃은 것 같았고, 피가 머리부터 베어 나와 상처가 어떤 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정집사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어떻게 된 거요?”우문천이 만아를 평지에 내려놓고 말했다.“일단 지혈부터.”정집사가 덜덜 떨며 금창약(金瘡藥, 외상에 뿌리는 가루)을 꺼냈다. 정집사는 오기 전에 약을 여러 개 챙겼는데 마침내 쓰게 되었다. “어떻게 된 거야?” 위왕과 안왕이 같이 와서 물었다.우문천의 얼굴에도 손에도 온통 피투성이라 그는 대충 쓱쓱 닦더니 답했다. “셋째형, 넷째형, 저도 쟤가 왜 저런 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내가 쫓아가지도 못하게 빨리 달리다가 결국 혼자 나무에 부딪혔어요.”위왕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왜 쟤를 데리고 왔지?”그의 물음에 우문천이 고개를 흔들었다.“자기가 따라온 거예요! 그리고 오기 전에 절 찾아와서 무당 지대의 진법을 무력화 시키는 걸 안다며 자기가 정화군주를 구출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어요.”“무당지대의 진법을 파괴할 수 있다고?” 위왕이 이 말을 듣자 안색이 풀어지며 말했다.“그럼 지금은 어떻게 된 거야? 아픈 건가?”정집사가 침통함을 숨기고 말했다.“만아는 지금 저항하고 있는 겁니다. 남강 북쪽 무당의 힘에 대항해서, 쟤는……대단해요.” 정집사의 고독을 이겨내고 무당의 부름에 대항하는 심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무에 부딪히고 바로 달려나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무당의 힘에 대항하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위왕이 물었다.정집사가 만아의 상황에 대해 목구멍까지 할 말이 차 올랐지만,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안왕이 오히려 더 조급해 졌다. “아는 게 있으면서 말을 안 한다면, 쟤가 모두를 해칠 수도 있어.”정집사는 이 길이 상당히 험난할 거라 숨길 수 없겠다 싶어 대강의 전후 사정을 털어놓았지만, 만아 엄마의 신분만은 숨겼다.
남강으로 북당으로위왕이 목소리를 낮춰 으르렁댔다.“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닥쳐!”하지만 안왕의 말을 따라오던 병사 중 일부가 듣고 이번 작전이 원래부터 위험한데 이제 남강 북쪽의 무녀까지 있다는 생각에 자연히 공포에 휩싸였다.만아를 야영지로 보내고 장수들이 만아를 죽이자고 제안을 하자 위왕이 기가 막혀서 물러가라고 꾸짖었으나 군사들의 들끓는 여론을 차마 막을 수 없었다.이때 군사들이 무질서해졌고 박원이 나서서 설득하자 잠시 진정이 되었다.그런데 사식이와 서일이 아직 쫓아오지 못해 20여리 정도 차이가 나는데 날은 이미 어두워져 산속에서 하룻밤 보내고 내일 다시 쫓아갈 수 밖에 없었다.그리고 대주 쪽에서는 우문호와 원경릉이 현대에서 돌아와 하루를 묵은 뒤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진정정은 우문호가 이렇게 빨리 돌아갈 줄 모르고 한 번은 만류했지만, 우문호가 걱정하며 말했다.“남강 북쪽에 변수가 많아. 원 선생은 돌려 보내고 난 서둘러 남강 북쪽으로 지원을 가야겠어.”진정정이 제안하기를, “어쨌든 우리 부부도 지금 일이 없으니, 나와 자네가 사람들을 데리고 남강 북쪽으로 지원을 가고, 근영이가 태자비와 아이들을 호송해 귀국하는 건 어때?”그러면 당연히 최고다. 하지만 우문호가 반대했다.“자네 그렇게 오래 떠나 있어도 되나?”“괜찮아, 지금 대주는 태평성대라 건곤검이 국내로 들어오면 내가 몇 개월 떠나 있는 건 문제 안돼.” 진정정이 은은한 눈빛으로 말했다.“그리고 자네와 같이 손 잡고 전장에 나갈 수 있으면 내게는 영광이지.”우문호가 진정정과 같이 갈 수 있다면, 험하고 힘든 여정은 바로 허니문으로 변할 것이다.우문호는 혼례를 올리고 두 사람이 허니문을 간다는 얘기를 현대에서 배웠다. 근데 두 사람의 흥겨운 여행이 바로 허니문이라니! 직진밖에 모르는 두 남자는 각자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바로 얘기했다. 근영은 기뻐하며 마침 북당에 연 정풍호를 시찰 하겠다고 했다.원경릉도 바라 마지 않는 것이 원경릉 맘속엔 한쪽은 정화군주 걱
거스를 수 있는 죽음자리에 앉은 뒤 진근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공자께서는 역시 북당에 정착하실 예정이십니까?”“예, 북당은 산수가 훌륭해 건강에 좋지요!” 홍엽이 담담한 눈빛으로 진근영을 흘끔 보는데 진근영을 바라보는 걸 조금도 감출 기색이 없었다. “다른 의도가 없다면, 경치가 좋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근영이 말했다.홍엽이, “군주께서는 참 지혜롭게 말씀하시는 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서로 띄워주는 걸 싫어해서요.” 진근영은 솔직해서 까놓고 말하는걸 좋아하지, 과장하는건 몹시 싫어한다.홍엽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아뇨, 띄워주는 게 아니라 그토록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지만, 군주는 저를 가장 탄복하게 했던 적수였습니다.”진근영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당신이 전에 나를 적수로 여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보처럼 가지고 놀았죠. 대주와 선비 북막의 전쟁이 시작된 것을 빌어 앉은 자리에서 어부지리까지 얻으셨으니.. 뜻대로 돼서 아주 좋으셨겠습니다?”홍엽이 눈살을 찌푸리며 따져 물었다.“군주께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주와 선비 북막의 전쟁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전 개전 시기를 조금 앞당겼을 뿐으로 대주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았고 오히려 대주를 도왔습니다. 안 그러면 황제 폐하께서 왜 저를 군왕으로 삼으셨겠습니까?”“당신들 같이 사람을 가지고 놀며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뭐든 말이 되게 만들죠.” 진근영은 홍엽과 말다툼하기를 깔끔히 포기했다. 싫어하는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은지 벌떡 일어나 인사하고 총명 현명이에게 문 앞에서 지켜보게 했다.홍엽이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군주께서는 절 싫어하시니 저도 억지 부릴 필요가 없군요.”“군주가 당신을 좋아하든 말든 나도 신경 안 쓰니까.”“그래요!” 홍엽이 젓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더니 원경릉에게 말했다. “입궁해서 태후 마마를 뵙고 사흘간 사라지셨다는데 사흘 동안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저한테 알려주실 수 있나요?”원경릉이 고개를 들고 답
고민하는 원경릉홍엽은 원경릉이 냉정하게 전혀 동요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며 분노했다.“당신을 줄곧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고자세로 생사 따위 깔보는 걸 보니.. 제가 당신을 잘못 봤군요. 자신은 생사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라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이 제가 보기엔 위선자로 밖에 안 보여요. 제가 가식적이라고요? 만약 죽은 사람이 우문호나 당신의 아이면? 당신이 여전히 이렇게 동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홍엽이 말을 마치자마자 차갑게 원경릉을 째려보고 소매를 홱 떨치더니 가버렸다.원경릉은 홍엽의 분노한 뒷모습을 보며 쓴 웃음을 졌다. ‘에휴, 진짜 본 모습의 홍엽을 만난 셈 치자, 정말 유쾌하지 않았지만.’위선자다, 가식적이다, 구구절절이 핵심을 가르는데 반박할 수가 없다.왜냐면 원경릉이 바로 사망을 거스른 사례로, 본인은 죽음을 거스른 특권을 누리면서 다른 사람이 누리지 못하도록 때려 부숴버린 점은 경멸 받을 만한 행동이기 때문이다.진근영이 원경릉 앞에 나타났다. 홍엽에 대해 계속 경계하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듣고 있다가 홍엽이 가자 방으로 들어온 것이었다.“홍엽 말 마음에 두지 마요, 태자비가 잘못 한 거 없으니까.” “전 괜찮아요. 홍엽의 분노를 접할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놨으니깐요. 이건 처음부터 제가 잘못한 일이었어요. 다행히 바로잡아 정상으로 되돌릴 기회가 있어 계속 잘못한 채로 있지 않아도 됐지만.”“흠,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쓸 필요 없다 생각해요.”원경릉은 마음을 굳혔으나 홍엽의 말에 괴롭고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시무룩하게 방으로 돌아가자 우리 떡들과 쌍둥이가 방에 있어 원경릉은 유모들을 내보내고 쌍둥이를 품에 안은 채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실 엄마는 너희들이 보통의 애들이었으면 하고 더 바래.”경단이가 자상하고도 예민하게 원경릉 무릎에 엎드렸다.“엄마, 기분 안 좋아요?”“아니.” 원경릉이 쌍둥이를 내려놓고 경단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입구는 어디인가남강 북쪽, 서일과 사식이가 마침내 다음날 대오를 따라 잡았다.만아가 이미 배제된 상황으로 사식이가 만아에게 약을 먹인 후 위왕과 안왕에게 만아가 남강 북쪽의 무녀가 될 리 없다고 보장했다. 그러나 어젯밤 발광한 일로 많은 사람들이 만아를 불신하자, 사식이는 화를 내며 원씨 집안의 명예를 걸고 만약 만아가 대오에 해를 입히는 일이 발생하면, 원씨 집안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맹세했다.사식이 본인은 어려서 위세가 없지만, 원씨 집안은 그렇지 않다 생각했다. 이렇게 큰 소리를 치자 비로소 사람들은 진정됐지만, 만아에 대해서는 계속 신경을 곤두세웠다.만아가 약을 복용한 뒤로 종생술이 전부 풀렸다. 즉, 덮어두었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멸문을 당하던 비참한 상황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어 만아는 거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다행히 사식이가 계속 곁에서 달래고, 이끌어 줘서 천천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아는 정집사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았다.생긴 것도 심하게 다르고 목소리조차 닮지 않았다.사식이가 하나 더 가지고 온 해독약으로 정집사에게도 먹였는데, 전력으로 신내림에 대항할 필요가 없으니 정집사의 외모도 점점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고 때가 되면 만아도 자연스럽게 정집사를 인정할 것이다. 대략 사흘쯤 갔을까, 만아가 선두에 서서 순탄하게 독기를 피했고, 마침내 운무가 감도는 무당 지대에 도착했다. 하지만 무당 지대에 도착하자 정집사는 바로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무당 지대의 진형을 정집사가 어느 정도 아는데 원래 입구는 산 아래 있다. 하지만 지금 여기 구름에 둘러 쌓인 사이에 처음에 입산하던 입구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만약 입구조차 찾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돌격하면 더욱 길을 잃기 쉽다.“어떻게 된 거지?” 위왕이 정집사의 안색이 갑자기 변한 것을 보고 다가와 물었다.“왕야, 무당 지대의 진법이 바뀌었습니다.” “바뀌었다고?” 위왕이 당황해서, 눈 앞에 우뚝 솟은 큰 산을 바라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
원경릉은 발끝을 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우문호는 그런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원 선생, 행복하오?”“행복하오.”“하하하. 지금이 아닌, 나와 함께했던 모든 날이 행복했냐고 물어보는 것이오.”“모든 순간이 당연히 행복하고, 기쁘오!”원경릉은 스스로를 자조하듯 웃었다.“나 같은 집순이가 이렇게 결혼생활이 행복할 줄 누가 알았겠소?”한때 그녀는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사랑 없는 삶도 부족함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사랑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었지만, 사랑은 사실 정말로 중요했다.산꼭대기에 앉아, 차가운 바람을 맞고 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풍경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다.그리고 함께 늙어간 후, 다시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영산에서 내려온 후, 그들은 다시 여정을 이어나갔다. 이번 목적지는 바로 남강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아홉째는 여덟째를 데리고 먼저 남강으로 돌아갔다. 다들 그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남강 땅은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건, 정화를 구하러 갔을 때였다.남강으로 가는 내내 홍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냉정언이 물었다.“남강에 가면, 못난이를 만날 것이오?”“만나야지.”홍엽이 답했다.“물론 만나야지!”못난이는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던 사람이니, 만나야 했다. 못난이가 종종 편지를 보내오긴 했지만, 자기 상황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반면 아홉째는 편지에서 북강의 소식을 자주 전해주었다.지금의 남강은 어느 정도 통일되어 있었고, 북강과 남강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익 문제로 양측의 왕래가 더욱 빈번해졌다.아홉째는 편지에서 못난이가 북강의 민심을 얻었고, 성격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고 전했다.홍엽의 마음엔 기대와 기쁨이 섞여 있었다. 그도 지금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이도 잘 지내길 바랐다.우문호는 남강에서 돌아온 후, 변방으로 갈
그 일을 떠올리자, 꿈에서 본 일이라 그런지 마치 얼마 전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그때 그들은 죽을 만큼 힘든 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한없이 한가한 노인이 되었다.세월은 덧없이 흘러갔고,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무상황은 자신의 황후였던 소봉을 떠올렸다.그들은 줄곧 전형적인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라를 다스렸고, 그녀는 후궁을 다스렸다. 비록 그가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애정을 주지도 않았다.그렇게 평범하게 평생을 함께했지만, 그녀가 떠나는 날, 그는 마음속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슬픔을 느꼈다.평생 함께했던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떠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다.세 사람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섰다.유아독존과 관련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지만, 모든 소란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모든 소문도 점점 사그라들기 마련이니,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세 사람이 여행하는 영상이 점점 유명해지면서, 유아독존은 더 심하게 비난을 받았다.현실에서 함부로 욕설을 내뱉으면 얻어맞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기에 악성 댓글을 다는 자들은 마음껏 욕을 퍼부었다.그리고 어느 날, 추 어르신이 오래도록 인터넷의 댓글을 훑어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는 이내 해가 지는 장면을 찍어 짧은 영상을 올렸다. 그리고 영상에 한마디만 덧붙였다.“분쟁 없이, 오직 평화만 있기를.”그는 모든 다툼이 끝나길 바랐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기를 바랐다. 단지 말로만 승부를 겨루는 사람은 그들의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음... 무엇보다 적이 될 자격도 없었다!영상이 올라간 지 이틀 뒤, 유아독존은 마침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질투와 시기로 무술을 모독한 것을 사죄했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직접 그들의 계정을 태그해 진심으로 사과했다.진심 어린 사과는 항상 용서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들도 마침내 욕설을 멈췄다.
삼대 거두는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일어났고, 숙취에서 깨어나니, 이미 날이 밝아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눈앞의 모든 것이 몽롱해 오늘이 무슨 날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주황빛 구름은 점점 짙은 금빛으로 변했고, 금빛 가장자리에는 붉은색이 덧씌워져, 눈부시게 아름다웠다.소요공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꿈을 꿨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무슨 꿈을 꿨는가?""꿈에서 숭이가 사내에게 속았는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해줬다네."추 어르신과 무상황은 놀라서 동시에 숨을 들이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 외쳤다."자네도 꾼 것인가?""그렇네!""그렇네!""설마 우리 셋이 똑같은 꿈을 꾼 것이오?"소요공도 깜짝 놀랐다.그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였는데, 꿈에서는 그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그리고, 이 꿈은 당시 엄청난 부담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정말 훌륭한 감정 해소가 되었다. 그들은 모든 고통과 억울함, 스트레스를 주먹질로 시원하게 풀어냈다.한편, 무상황은 자신이 황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기억하는가?"추 어르신이 흥분한 듯 말했다."물론 기억은 나네. 당시엔 소봉이가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적성루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했네. 게다가 나도 자네들과 어울리느라 바빠서 황후를 소홀히 했네. 그래서 적성루 상궁과 숭이를 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했지."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꿈속에서 다시 겪은 덕분에 자세히 생각났다.그때 어서방의 회의가 끝나고, 소복이 무심히 물었다."폐하, 황후 마마를 오랫동안 못 뵙지 않으셨습니까?"그는 소복의 말이 소봉을 보러 가자는 암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