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수호 씨가 저 돈을 밖에서 사용하면 경찰이 수호 씨를 추적할 거예요.”너무 충격적인 사실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가슴이 벌렁거렸다.돈세탁은 영화나 소설에서만 봤지 현실에서 마주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게다가 이게 임천호가 나를 해치려고 파놓은 함정이라니.나는 일개 평민인데 이런 일을 겪을 뻔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벌렁거려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젠장. 너무 괘씸하네. 감히 이런 방식으로 모함해?”“저 신고할 거예요.”나는 핸드폰을 꺼내다가 문득 불안해 서은성을 바라봤다.“제가 경찰에 신고하면 저 사람들 유죄판결 날 수 있어요?”“증거가 명확하니 유죄판결은 문제없을 거예요. 만약 뒤에 있는 큰놈까지 잡아내면 큰 공을 세우는 셈이고요.”큰놈이든 작은 놈이든 나에게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단지 저놈들을 편히 살게 두고 싶지 않았다.감히 이런 방식으로 나를 해치려 하다니. 내가 서은성을 데려왔으니 망정이지, 데려오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쯤 꼼짝없이 돈세탁한 범죄자가 되었을 거다.나는 다른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장 경찰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경찰이 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기에 계속 밖에 서 있는 것도 방법은 아니었다.“우리 돌아가서 저놈들 잡아둬요.”“난 이것만 도와준다고 했지, 다른 일은 나랑 상관없어요.”서은성이 덤덤하게 말했다.그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상관없다니요? 지금 가겠다는 뜻이에요? 은성 씨가 가면 전 어떡해요?”“그건 저한테 물을 게 아니죠.”서은성은 말을 마친 뒤 곧바로 뒤돌아 떠나갔다.그 순간 나는 당장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심지어 황용길이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올까 봐 두려웠다.역시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내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황영길이 똘마니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정수호 씨, 친구는요?”“이미 갔어요.”“그럼 금액 확인하고 문제없으면 교환 절차 진행하죠.”나는 호랑이 굴 같은 사무실에 제 발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황용길과 그의 똘마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기 바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때 나를 발견한 황용길은 다급히 똘마니들에게 소리쳤다.“당장 저 자식 막아.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해!”똘마니 세 명은 한꺼번에 나를 향해 돌진했다.가까워지는 경찰차와 함께 희망도 점점 나에게로 다가왔다.나는 나를 쫓아오는 똘마니 한 명을 발로 걷어차 넘어뜨렸다. 하지만 나머지 두 명은 그새 내 옷과 가방을 잡아 나를 묶어 두었다.놈들은 있는 힘껏 내 손에 든 가방을 빼앗았고 황용길도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머니에 담으며 도망칠 각을 재고 있었다.급한 나머지 나는 그중 한 놈에게 달려들어 몸으로 돈가방을 눌렀다.“젠장. 죽어!”화가 잔뜩 난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황용길이 손에 비수를 들고 나를 향해 내리 찔렀다.나는 급히 몸을 피했지만, 비수는 여전히 내 어깨를 스쳤다. 나는 다행히 어깨를 살짝 베었지만, 나와 실랑이를 벌이던 똘마니는 그대로 비수에 찔리고 말았다.그때, 경찰차가 마침 멈춰 섰다.황용길과 나머지 두 똘마니는 다급히 밖으로 도망쳤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모두 붙잡혔다.그리고 현장 조사를 담당한 베테랑 형사가 다가와 내가 신고한 게 맞는지 물었다.“네. 제가 신고했어요. 이 돈에 문제가 있으니 가져가서 확인해 보세요.”“다친 것 같은데 병원으로 데려다주라고 일러둘게요.”베테랑 형사의 말에 나는 내 팔을 봤지만 심각해 보이지 않아 괜찮다고 대답했다.형사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내 개인정보만 받아 떠나버렸다.형사들은 돌아가서 돈의 출처를 확인해야 했기에 나는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떠났다.4억짜리 수표도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나는 바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 상처를 치료했다.다행히 피부만 까진 수준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내가 상처를 치료하고 있을 때 윤미화가 다급히 내 방에 쳐들어왔다.“어쩌다 이렇게 됐어?”“말하자면 길어요.”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내 말을 듣는 내내 윤미화는 긴장을 늦추지
나는 너무 아쉬웠지만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솔직히 나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현재 상황에 돈을 받아내기는커녕 임천호가 나를 죽이지 않으면 다행이다.“그럼 오늘 오후 강북으로 돌아가자. 임천호를 귀찮게 하면 안 되니까.”윤미화가 제안했다.이에 나도 동의했다.S시는 임천호의 구역인데, 내가 오자마자 이렇게 큰 일을 벌였으니 임천호는 절대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거다.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 남지 않고 곧바로 체크아웃하고 강북으로 돌아갔다.하지만 가는 도중에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검은 세단 한 대가 계속 우리 뒤를 쫓고 있었다.내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일부러 멀리 빙 돌았다. 그랬더니 검은색 세단은 역시나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망했어요. 누가 우리를 미행해요.”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윤미화에게 말했다.윤미화는 뒤를 돌아보더니 바로 결정을 내렸다.“경찰서로 가.”“경찰서는 왜요?”나는 의아했다.“이변이 없는 한 저거 임천호 사람이야. 저놈들이 아무리 우리를 미행해 봤자 경찰서까지 쫓아오겠어?” 나는 윤미화의 두뇌 회전에 존경심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듣고 보니 확실히 좋은 방법인 듯하여 나는 부근에 있는 경찰서를 검색해 그곳으로 향했다.아니나 다를까 검은색 세단은 우리가 경찰서에 도착하자 더 이상 따라오지 못했다.우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경찰서에 들어가 신고했다. 우리의 말을 듣고 나온 경찰들을 보자마자 검은색 세단은 바로 꽁무니를 내뺐다.결국 경찰도 이번 사건은 입건하기 어렵다며 우리에게 주의만 줬다.우리는 서둘러 경찰서를 나오는 대신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토론했다.“아까 그놈들 멀리 도망쳤을까요? 아니면 다른 곳에 숨어서 지키고 있을까요?”“임천호 밑에 있는 애들은 모두 겁이 없어. 우리가 나가면 얼마 뒤 또 따라붙을 거야.”윤미화는 자기 생각을 말했다.이에 나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놈들 목표는 저예요. 두 분한테 폐 끼치기 싫으니까 두 분은 먼저 강북
경찰서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제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그 남자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황용길 일당을 잡을 때 현장을 지휘했던 베테랑 형사였다.“외삼촌, 어서 와요.”윤미화는 기쁜 얼굴로 얼른 달려갔다.그 모습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베테랑 형사가 바로 윤미화의 외삼촌이었다니.이건 너무 기막힌 우연이다.베테랑 형사도 나를 보고 놀랐는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이 총각이 여긴 왜 있지?”“두 사람 혹시 알아요?”나는 얼른 설명했다.“윤 사장님 외삼촌이 황용길을 체포한 형사예요. 전에 본 적 있어요.”“그렇구나. 삼촌, 누가 우리를 미행해요. 사람 좀 붙여서 우리 지켜줘요.”그 말에 도지섭은 이내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 대체 누가 그런 짓을 벌이는 거야? 대낮에 미행이라니.”“임천호 쪽 사람일 가능성이 커요. 삼촌이 점심에 잡은 황용길이 임천호 사람이거든요.”도지섭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다.“그런데 그 자식은 임천호와의 관계를 부정해. 딱 잘라서 자기가 한 짓이라네.”나는 진작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들으니 실망감이 밀려왔다.임천호는 법을 이리저리 너무 잘 피해 다닌다. 그런 사람을 하루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난 하루도 편히 살 수 없다.하지만 임천호를 상대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도지섭은 윤미화와 한참 동안 얘기하다가 나를 바라봤다.“정수호 씨, 이번 일은 정수호 씨 공이 커요. 내가 이미 상부에 포상금을 신청했어요.”‘이건 또 어디서 갑자기 굴러들어 온 복이지?’“감사합니다, 도 형사님.”“감사할 거 뭐 있어요. 수호 씨가 응당 받아야 할 건데요.”이런 게 바로 전화위복이라는 건가?비록 정부에서 주는 포상금은 많지 않겠지만 이런 영예는 돈 얼마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거다.게다가 도지섭의 말을 들어보면 포상금 외에도 우수 청년상까지 수여한다고 했다.그 상장을 우리 천수당에 걸어두면, 더할 나위 없는 큰 영광일 거다.그 뒤, 도지섭이 경찰차로
“네!”강용재는 곧바로 뒤돌아섰다.조용히 시가에 불을 붙인 임천호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원래는 나를 끌어들여 감옥에 처넣을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은 셈이었으니. 그것도 모자라 중요한 부하 한 명을 일기까지 했으니 임천호는 그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렸다....오후에 출발한 우리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강북에 도착했다.오는 내내 또 사고라도 날까 봐, 우리는 휴식도 하지 않고 끼니도 챙겨 먹지 못했다.그렇게 겨우 강북에 도착하니 나와 윤미화는 그제야 안심했다.다만 오는 동안 배를 쫄쫄 굶은 탓에 나는 당장 배부터 채우고 싶었다.“내가 알아봤는데 임천호가 아직 강북에 있대. 이따 혼자 돌아갈 때 조심해.”사실 인맥이 넓은 윤미화는 강북에 도착하기 전에 임천호의 행방을 수소문해 냈다.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윤 사장님도 조심해요.”식사를 마친 우리는 각자 헤어졌다.나는 차에 앉아 월세방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형수 집에 갈지 고민했다.만약 임천호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라면 분명 또 사람을 붙일 거고 강용재도 또 뭔가 손을 쓸 게 뻔했다.나는 형수와 형수 동생들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았다. 주선영한테도 마찬가지였고. 때문에 나는 결국 호텔 방에 묵기로 했다.비록 혼자라 불안하고 위험했지만, 다른 사람한테 폐 끼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았다.‘S시 한 번 갔다가 이게 뭔 봉변인지.’하지만 난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내가 그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도 황용길은 절대 나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됐어. 그만 생각해. 지내다 보면 답은 나오겠지.’하루 종일 분주하게 돌아다닌 데다 계속 유지하고 있던 긴장감이 풀린 탓에 나는 너무 피곤했다.때문에 샤워를 하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그 잠은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이어졌다.평온한 밤을 보낸 나는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청수당으로 향했다.민우와 현성은 내가 S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했다. 이에 나는 두 사람을 사무실
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직원이 갑자기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정 사장님, 주 사장님이 볼일 있다면서 찾아오셨어요.”“그래요. 알았어요.”우리는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 그렇게 중앙홀에 도착했더니 주해진이 허허 웃으며 사람들에게 뭔가를 소개하고 있었다.“사자님들, 우리 가게 약재는 모두 최상품입니다. 특히 야생 산삼과 영지는 최상급 중의 최상급이죠. 다들 제 체면을 봐서 구매해 준다면 가격은 제가 싸게 해드릴게요.”주해진은 혼자 온 게 아니라 사람을 몇 명 데리고 왔다. 보아하니 주해진과 함께 온 사장들은 야생 산삼과 영지와 같은 약재를 원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우리 가게에 있는 최상급 야생 인삼과 영지는 모두 임천호에게 팔아버렸다. 게다가 아직 재고 보충을 하지 않은 상태다.나는 얼른 민우와 현성이를 불러내 사장님들을 응대하게 하고 주해진을 옆으로 불러냈다.“우리 가게에 산삼과 영지가 없어.”“왜?”“이틀 전에 다 팔았어.”“헐. 정말이야? 얼마나 벌었는데?”그걸 다 팔면 어마어마한 가격이기에 주해진은 단번에 흥분했다. 누구에게 팔든 그로서는 돈만 벌 수 있으면 그만이었으니까.하지만 이번 사태는 조금 복잡해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사실...”나는 결국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그걸 들은 주해진의 안색은 어둡다 못해 흉측하기까지 했다.“지금 그러니까 사기당했다는 거야? 그걸 다 가져갔는데 일전한 푼도 못 받아내고 오히려 몇천만 원이나 꼬라박았다고?”주해진의 언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바람에 가게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이에 나는 다급히 낮은 소리로 귀띔했다.“그 돈은 다 내가 책임지고 메꿀게.”“정수호. 이렇게 큰일이 있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어?”“나 어제 한밤중에 도착했어. 오늘 아침 가게에 도착하자마자 주 사장이 들이닥친 거고.”“지금 내 탓이라는 거야?”“그런 뜻 아니야. 누가 사기당할 거라고 생각했겠어? 이미 벌어진 일인데 이제 와서 나
“안돼.”주해진은 여전히 거절했다.나는 애써 화를 눌러 참으며 말했다.“그럼 어떻게 할 건데?”“네가 정호섭 가게에 가서 인삼과 영지를 빌려와.”‘사 오는 것도 아니고 빌려 오라니.’이 상황에서도 주해진은 원가로 물건을 들여와 최대 수익을 낼 생각만 하고 있었다.‘머리 참 잘 굴리네.’돈은 벌고 싶고, 손해는 나더러 메꾸라고 하고, 화인당에 진 빚도 내가 갚게 할 생각이라니.누가 잘못했으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니 이건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다지만, 주해진이 이번 수익을 독식하겠다고 한 건 용납할 수 없었다.나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해 언성을 높였다.“내가 왜 그래야지?”“고객을 데려온 사람이 나인데, 당연히 내가 가져야 하는 거 아니야?”나는 너무 화가 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그렇게 치면 우리 셋은 매일 가게 돌보니까 평소 수익은 우리가 가지면 되겠네?”“애초에 가게를 돌보겠다고 한 건 너희들이야. 처음부터 나랑 진호는 가게에 관한 모든 걸 관여하지 않기로 해서 난 그냥 앉아 놀면서 연말 보너스만 받아 챙기면 그만이었어.”“그런데 내가 왜 고생하면서 손님 데려왔는데? 이게 다 돈 좀 더 벌려고 그런 거 아니야.”주해진은 이것도 말이라고 당당하게 뱉어냈다.나는 이제야 주해진이 왜 김진호와 붙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두 사람보다 더 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마 찾아보기도 힘들 거다.나는 더 이상 실랑이 벌이기 싫어서 손을 휘휘 저었다.“그럼 약재 빌리러 가는 건 네가 알아서 해결해. 난 안 가.”말을 마친 뒤 나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그때 주해진이 나를 붙잡았다.“물건을 네가 팔았으면 네가 해결해야지. 누구한테 떠넘겨?”“그게 말이야 방귀야? 주해진, 가게 물건은 우리 모두의 것이야. 네가 가게 물건을 팔아 네 주머니를 채우겠다는데, 내가 동의할 것 같아?”“그딴 건 모르겠고, 네가 약재를 팔아서 손해를 봤으니 네 책임이지.”“말이 안 통하네.”내가 떠나려 하자 주해진은 또다시 나를 붙잡았다.“가겠으면 어
“정수호, 지금 나를 찼어? 사람 많다고 나 하나 괴롭히는 거야? 너희만 똘똘 뭉친 한식구고 난 남이지?”나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난 널 내 사람으로 생각한 적 없어. 처음 협상할 때 말했지. 가게 일은 내가 관리한다고. 너랑 김진호는 빠지라고.”“그래도 난 손해는 안 끼쳤잖아.”주해진은 씩씩거리며 맞받아쳤다.나는 여전히 차갑게 쏘아붙였다.“손해 본 건 내가 메꾼다고 했어. 장부는 공용이야, 공동 재산은 일전한 푼도 손해 안 보게 할 거야.”“하지만 네가 딴 주머니 챙기는 건 용납 못 해. 그렇게 돈 벌고 싶으면 네가 가서 약재 알아봐. 이 가게의 모든 약재는 내가 직접 찾아온 건데, 네가 딴 주머니 챙기는 데 왜 내 약재를 갖다 바쳐야 해?”주해진은 할 말이 없어지자 아예 생트집을 잡았다.“나도 가게 약재 쓰고 나중에 메꿀 거야. 그리고 내가 뭔 딴 주머니를 챙겼다고 그래?”“쓸데없는 말 그만해. 오늘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하든지, 아니면 네가 데려온 사람들 데리고 나가든지 해.”나는 최후의 방법을 제시했다.그러자 주해진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바락바락 우겼다.“나가라고? 말도 안 돼. 내가 저분들을 어떻게 모셔왔는데...”“그럼 약재가 부족해서 이틀 뒤에 오라고 해. 그때 번 돈은 장부에 다 기록할 거야. 혼자 빼돌릴 생각 하지 마. 그게 싫으면 지금 당장 사람들 데리고 나가.”나, 현성 그리고 민우는 나란히 서 있었고 주해진은 혼자 우리를 마주한 채 서 있었다.저 혼자서는 똘똘 뭉친 우리 셋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주해진은 결국 한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새로운 약재는 언제 도착하는데?”“정확한 시간은 말할 수 없지만 약 사흘에서 닷새 정도 걸려.”“그래.”주해진은 말을 마친 뒤 씩씩거리며 떠나갔다. 그는 너무나도 화가 났지만 현재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탄 신세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자기가 데려왔던 사람들을 거느리고 떠나가는 주해진을 보며 현성이 말했다.“저 자식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야.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