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나는 차에 앉아 조용히 담배 한 대를 피우면서 마음의 안정을 취했다.그러고는 얼른 윤지은에게 전화해 방금 전 상황을 설명했다.[에이, 설마. 우리 이모랑 연주 엄청 괜찮은 사람인데...]윤지은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지금 내가 거짓말한다는 거예요?”내가 되묻자 윤지은이 대답했다.[그게 아니라... 아니다. 우선 돌아와. 내가 연주한테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볼게.]나는 전화를 끊고 조용히 운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가는 도중, 윤지은이 또 전화를 걸어와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윤지은의 이모네 식구는 택시를 타고 곧장 윤지은의 집으로 간 모양이었다.그래도 친척이니 만남을 피할 수는 없어, 나도 결국 윤지은의 집으로 향했다.어쨌든 가족이니 풀 수 있는 모순은 푸는 게 상책이었다.하지만 내가 윤지은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세 사람은 여전히 싸늘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마치 내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사람인 것처럼.“연주야, 이모...”윤지은은 애써 좋게 말하려고 노력했다.“이러지 마요. 이제 수호 씨를 처음 봐서 아직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있어요?”손연주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내가 저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건 맞지만, 분위기나 옷차림으로만 봐도 언니한테 한참 부족하다는 거 알겠어.”“연주야!”윤지은은 내가 자존심 상해할까 봐 얼른 손연주의 말을 잘랐다.나는 계속 입을 다물기도 싫었고, 윤지은 뒤에 숨어 있기도 싫었다. 이러면 마치 뭐든 윤지은이 대신 나서줘야 하는 것 같으니까.나는 손연주 앞에 다가와 싱긋 웃으며 말했다.“연주 씨가 볼 때 난 어떤 스타일인 것 같은데요?”손연주는 ‘쳇’하고 혀를 찼다.“엄청 칙칙해 보여요!”나는 자조적으로 웃었다.“음, 맞는 것 같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연주 씨 언니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니 나도 어쩔 수 없어요.”“그리고, 난 연주 씨 사촌 언니랑 결혼하는 거지, 연주
결혼 날짜는 10월 1일로 정해졌다.약혼은 윤지은의 집에서 책임졌기에, 결혼만큼은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싶었다.이날, 내가 한창 호텔을 고르고 있을 때, 윤지은이 전화를 걸어와 나더러 공항에 가서 이모네 가족을 픽업하라고 했다.이영미의 동생 가족이라면, 당연히 열정적으로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그렇게 약 30분쯤 기다렸을 때, 세 가족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저기 혹시 지은 씨 사촌 동생 손연주 맞아요?”윤지은은 나에게 사촌 여동생 손연주의 사진을 보내 줬다. 물론 사진은 내 눈앞에 있는 여자와 차이가 좀 컸다. 사진 속 소녀는 젊고 풋풋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세련되고 서구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번에 상대의 얼굴을 알아봤다.손연주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갑자기 유창한 영어를 내뱉었다. 그 순간 나는 어리둥절해졌다.“뭐예요? 못 알아들어요?”알아듣긴 했지만 귀국했으면서 영어를 쓰는 소녀가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영어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자랑하려는 건가?’‘굳이 그럴 필요 있나?’나는 웃으며 말했다.“알아들었어요. 영어 회화 능력이 뛰어나네요.”“하. 알아들었으면 내가 방금 뭐라고 했는지 번역해 봐요.”나는 소녀가 내 칭찬을 아부로 받아들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나를 망신 줄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못해 기분이 팍 상했다.‘너무 잘난 체하네?’‘좀 칭찬해 줬더니 본인이 뭐라도 되는 줄 아나?’하지만 상대가 윤씨 가문 친척인 데다, 몇 년 동안 해외에서 지내다가 나와 윤지은의 결혼식 때문에 특별히 귀국한 걸 봐서 나는 끝까지 예의를 지켰다.나는 비록 어색했지만 예의 있게 방금 소녀가 한 말을 번역했다.그러자 손연주는 또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아니, 틀렸어요...”곧이어 손연주는 강의라도 하는 것처럼 쏼라쏼라 설명하기 시작했다.나는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젠장. 여기가 뭐 영어 실력 자랑하는 덴 줄 아나?’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손연주의 말을 끝까지 들은
[수호야, 오늘 바빠?]남주 누나한테서 걸려 온 전화에 나는 바쁘지 않아 사실대로 말했다.그러자 남주 누나가 말을 이었다.[오늘 나랑 거래처 고객 좀 만나줘.]“네.”나는 별생각 없이 남주 누나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약속 장소로 나갔다.지난번 경험도 있어 나는 남주 누나가 또 진상을 만났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조금 달랐다. 이번에 온 거래처 고객들은 모두 매너 있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옆에서 함께 먹고 마시기만 했다.남주 누나는 그런 나를 보더니 웃으며 다가왔다.“수호야, 오늘 온 고객들 뭐 하는 사람들인 줄 알아?”나는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그러자 남주 누나가 설명했다.“저기 양복을 입은 사람은 S시에서 큰 사업을 하시는 사장님이야. 예전에 탄광으로 부자가 됐는데, 지금은 부동산을 주로 하고 있어.”“지금은 부동산도 경기가 안 좋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청 인기 있었잖아. 저분 정부 프로젝트를 몇 번이나 맡았어, 소유 자산은 수천억이고.”남주 누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기색을 살펴봤다.그러다 내 표정에 큰 변화가 없자 말을 이었다.“저기 키 큰 분은 너랑 동업자라고 봐도 돼. 한의학 분야에 종사하고 있거든. 하지만 저분은 투자만 담당하고 있어.”“저분이 현재 투자한 한의원이 몇 군데인 줄 알아?”나는 고개를 저었다.그 모습을 본 남주 누나는 얼른 손을 내밀었다.“50군데! 우리나라 동부 지역에 전역으로 퍼져 있어.”나는 여전히 큰 반응이 없었다.그러자 남주 누나는 나를 노려봤다.“내가 이렇게 많이 말했는데 부럽지 않아?”“제가 왜 부러워해야 하는데요? 저는 제 현재 생활에 만족해요.”나는 솔직히 말했다. 이건 확실히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남주 누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만족? 저분들에 비하면 네 성과는 아무것도 아니야. 저분들도 만족하지 않는데, 네가 만족한다고?”나는 이제야 남주 누나가 나를 불러낸 의도를 알았다.“남주 누나,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와 원하는 바가 달라요.
윤지은은 내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다.하지만 나는 그 일을 윤지은에게 털어놓지 않았다.윤해철은 강북에서 유명한 기업가이고, 윤지은도 훌륭한 의사다. 나는 두 사람을 임천호의 일에 끌어들일 수 없었다.때문에 나는 강용재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그가 남주 누나를 풀어줬다고 거짓말했다.“진짜야? 거짓말 아니지?”“진짜예요!”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마저도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윤지은은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좋아. 믿을게.”나는 더 이상 그 일을 떠올리지 않았다.하지만 그날 밤, 침대에 누웠더니, 저도 모르게 남주 누나가 말했던 200억이 뇌리를 스쳤다.심지어 꿈속에서는 내가 돈더미에 누워 있는 장면이 나왔다.돈은 역시나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욕망까지 끄집어내는 물건인 듯하다.하지만 이른 아침, 잠에서 깬 나는, 그 생각을 모두 부정했다.나는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아무 일에나 발 담그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부한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 내 사업을 하면서 성실하고 편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한 지역을 주름잡는 거물이 되어 온 세상을 종횡무진하는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내용이지,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라고 믿었다. 때문에 이튿날 나는 강용재의 제안을 완전히 뒤로 했다.“수호야. 오늘 바빠? 안 바쁘면 네 아버지랑 내가 너한테 할 말 있는데, 얘기 좀 해.”어머니는 아마 진작 나한테 이 말을 하고 싶었을 텐데, 이제껏 기회가 없었다.그러다 지금 나는 자유로운 데다 시간도 많았다.“어머니, 무슨 일인데요?”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약혼식 날 있었던 일은 어떻게 처리했어?”“다 처리했어요.”“그럼 다행이네. 하...”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었다.그 모습에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왜 그래요?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요?”내 말에 아버지가 대뜸 끼어들었다.“그날 그런 일이 있었으니, 사돈댁에서 오해라도 했을까 봐 걱정했어. 나
나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강용재는 나더러 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라고 설득했다.그의 말은 왠지 모르게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강용재의 제안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했더니, 마치 마법처럼 내 마음속에서 마구 요동쳤다.하지만 이건 모두 나중의 일이다.나는 남주 누나를 구하기 위해 강용재의 제안을 고민해 보겠다고 대답했다.그러자 강용재도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고 나와 남주 누나를 풀어주었다.“남주 누나, 타요.”나는 다급히 남주 누나를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차 올라탄 뒤, 남주 누나가 물었다.“수호야, 아까 그 사람이 한 말 어떻게 생각해?”나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뭐요?”“임천호 산업에 관한 일 말이야.”나는 남주 누나가 이 얘기를 먼저 꺼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곰곰이 생각하고 대답했다.“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임천호가 어떻게 됐는지 다 봤는데, 저도 임천호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하지만 세탁하면 되잖아.”‘남주 누나는 내가 그 산업을 인수하길 원하나?’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남주 누나. 누나는 왜 제가 그러길 바라는 것 같죠?”남주 누나는 웃으며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해? 수백억대 산업을 공짜로 준다는데, 왜 거절해?”“너 혹시 수백억이 얼마인지 몰라?”“잘 생각해 봐. 이 차에 현금을 꽉 채워도 200억이 안 돼. 그런데 지금 네 앞에 차 두 대를 꽉 채울 정도로 많은 현금이 있는데, 그걸 거절한다고?”남주 누나가 구체적인 숫자를 예로 드니, 수백억이 얼마인지 단번에 감이 왔다.사람은 무엇 때문에 바삐 일할까? 당연히 돈과 권력, 지위를 위해서 아닌가?만약 나한테 200억이 있다면, 나는 매일 고생스럽게 일할 필요가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여행도 다니고, 느긋하게 차도 마시고, 온천욕도 하면서...이런 생활은 얼마나 여유로운가?남주 누나의 말은 마치 바늘처럼 내 심장에 정곡으로 박혀, 나중에 내가 결정을 내리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동을 걸었다.내
“그래.”“못 믿겠어.”내 말에 강용재는 웃으며 답했다.“내가 말했지. 난 주인이 필요하다고. 그것도 욕심 없고, 임 회장님 사업에 너무 익숙하지 않은 주인이 필요해.”“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제격이야.”“그런데 네가 그런 말 하니까 도저히 못 믿겠어.”“정수호. 머리 좀 굴려 봐. 내가 널 죽이려면 기회는 많아. 그런데 왜 번거롭게 이런 짓을 벌이겠어?”강용재는 마스크를 벗더니 나를 빤히 쳐다봤다.강용재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정수호, 뭐가 겁나? 임 회장님을 상대하던 그 패기는 어디 갔어?”“난 네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너도 겁쟁이였네?”강용재는 일부러 나를 자극했다.나는 차갑게 말했다.“날 자극할 필요 없어. 난 단지 네가 왜 나를 선택했는지 이해가 안 될 뿐이니까. 그런데 이제는 좀 알 것 같아.”“겉으로는 내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욕심이 없다고 하지만, 중요한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컨드롤하기 쉬워서잖아? 넌 임천호가 기르던 개일뿐인데, 네가 임천호를 대신하면 남들이 승복하지 않을까 봐.”“그래서 넌 통제하기 쉬운 사람을 골라 그 자리에 앉히고, 모두 네가 컨트롤하려는 거잖아. 나를 네 꼭두각시로 세워 네가 가운데서 이득 보려는 거 모를 줄 알아?”나에게 속내를 들킨 강용재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하하’ 웃었다.“정수호. 내가 역시 사람 하나 제대로 봤다니까. 역시 총명해. 머리가 잘 돌아가네.”나는 눈살을 찌푸렸다.강용재의 반응은 도저히 일반적인 사고로 이해할 수 없었다.‘저 자식은 속내를 들켰으면서 뭐가 좋다고 웃어?’그때 강용재가 말을 이었다.“맞아. 그게 내 진짜 목적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좋은 기회를 포기할 거야?”“임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산업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 줄 알아?”강용준은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200억!”그 숫자에 나는 너무 놀라 멍해졌다.‘200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