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지은은 말하다가 갑자기 일부러 멈추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그 눈빛에 나는 너무 불안해졌다.“그리고 뭐요? 하던 말 계속하지 왜 그렇게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그때 지은이 갑자기 내 다리 위에 손을 올려 놓아 나는 흠칫 놀랐다.순간 심장이 철렁하고 머리가 백지장이 되어버렸다.‘이게 무슨 상황이지?’‘이 여자가 왜 갑자기 나한테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행동하지?’‘너무 무서운데?’나는 다급히 거절했다.“함부로 굴지 마요. 나 점잖은 사람이에요.”사실 나는 내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점잖긴 무슨, 단정한 척하는 거 아니에요? 그날 아주 섹시하게 입은 여자랑 복도에서 속닥속닥 잘도 말하더만.”지은은 말하면서 내 다리를 쓰다듬었다.그 순간 찌릿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흘러들어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나도 왜 지은한테 갑자기 이렇게 예민한 건지 의아했다.나는 다급히 지은의 손을 쳐냈다.“이러지 마요. 운전 중이니까.”지은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다행히 이번에 나한테 손을 대지는 않았다.오히려 팔짱을 낀 채 마치 신이라도 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래요, 안 만질게요. 그럼 솔직하게 말해요.”“그쪽이 내 여자 친구도 아닌데, 내가 왜 솔직히 말해야 하죠?”나는 절대 지은의 꿰임에 들지 않았다.“점잖은 사람이라면서요? 그러면 그걸 증명해야죠. 잊지 마요, 내 인상 속에 그쪽은 절대 점잖은 사람 아니에요.”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그건 그쪽 사정이지 나랑 무슨 상관있어요? 난 그딴 이미지 신경 안 써요.”말이 끝나자마자 지은이 내 허리를 꼬집었다.“또 뭐 하는 거예요?”그러고는 내가 묻자 화를 내며 말했다.“난 알고 싶어요. 말할 거예요? 말 거에요?”“말 안 해요.”나는 너무 언짢았다. 같이 쇼핑하자고 강요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사생활까지 영탐하려 하다니.‘대체 뭐 하자는 거지?’지은은 아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말
“그 누나가 나를 좋아한다고만 말했지, 뭘 했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점잖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나는 불만 섞인 투로 반박했다.그랬더니 지은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그 여자한테 사적인 감정이 없었다고요? 그날 그 여자를 안는 걸 분명 봤는데.”“그건 자꾸 놀려대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거예요.”나는 내가 점잖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계속 부인했다.“흥, 아닌 건 아닌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요? 사람은 한 일을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해요.”지은이 계속 나에게 원망을 퍼부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나한테 생트집을 잡는 것 같아서.하지만 내가 무시했는데도 지은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혹시 여자 친구 있어요? 연애는 해 봤어요? 여자와 스킨십해 본 적 있어요? 만져는 봤어요?”문제가 하나같이 너무 어이없는 것들이라 나는 점점 더 참기 어려워 안절부절못 했다.급기야 지은에게 눈길조차 하지 않았다.특히 검은 스타킹을 신은 예쁜 다리가 나에게는 너무 큰 유혹으로 다가왔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운전하는 데 집중하는데 말 좀 그만하면 안 돼요?”‘오늘따라 왜 또 말이 이렇게 많은 거야?’나는 순간 함께 쇼핑하러 나온 게 후회되었다.하지만 지은은 여전히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기분이 꿀꿀해서 함께 쇼핑하러 가자고 한 건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석처럼 앉아만 있을 거면 왜 나왔어요?”“알았으니까 낯부끄러운 질문 좀 하지 말아줄래요? 정상적인 대화를 나눠요, 우리.”내가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 여자가 너무 이상한 거라 대답하기 싫은 거다.그때 지은이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그래요, 그럼 다른 질문할게요. 혹시 원나잇 해본 적 있어요?”‘젠장...’‘이게 질문을 바꾼 건가?’‘정말 감당을 못하겠어.’“없어요.”나는 분노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난 했었어요.”지은은 이번에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그 순간 내 심장도 따라서 철렁
‘지금 나더러 나를 찾으라는 건가?’그게 가능할 리가.나는 다급히 거절했다.“싫어요. 이미 많이 도와줬잖아요. 그러니 더 이상 그런 부탁하지 마요. 사람이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안 되죠. 안 그러면 친구도 못 사귀어요.”나는 병원을 떠난 뒤 이 여자와 완전히 관계를 쫑내려고 했는데 다시는 엮일 리 없다.때문에 깔끔하게 거절했다.그러자 지은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개 같은 놈.”“아니, 왜 사람을 욕해요?”“내가 언제 욕했어요?”지은은 끝까지 부인했다.“개라고 욕했으면서 욕한 게 아니라고요?”“생긴 게 개 같아서 그런 건데 뭐가 문제 있어요? 그저 비유법일 뿐이에요.”‘이건 대체 무슨 궤변이지? 분명 욕했으면서 인정하지도 않고. 정말 너무하네.’나는 지은의 예쁜 다리를 보며 어떻게 하면 이 여자에게서 제대로 받아낼까 생각했다.‘나를 협박하고 욕했다 이거지?’차는 어느새 세기 쇼핑몰에 도착했다.그 순간 나는 지은의 기분이 빨리 풀려, 나도 한시 빨리 이 지옥에서 탈출하기를 바랐다.하지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모양이었다.여자랑 쇼핑하는 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인 것 같다.끝도 없이 피곤함도 모른 채 계속 돌아다니는 바람에 나는 다리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이봐요, 좀 휴식하면 안 돼요? 나 정말 걷지 못하겠어요.”나는 휴식하는 의자에 앉아 한 걸음도 내딛고 싶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다리가 돌멩이처럼 떡 굳어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에 반해 지은은 마치 힘이 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무슨 상황이에요? 어쩜 하이힐 신은 나도 뭐라 하지 않는데 남자라는 게 힘들다고 난리예요?”나도 답답했다. 하이힐을 신은 지은은 대체 어떻게 버티는지.‘발은 안 아픈가? 다리는 힘 빠지지 않나?’내가 궁금한 걸 묻자 지은이 말했다.“안 힘들어요. 발 아픈 줄도 모르겠고. 그래서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의심돼요.”“이봐요, 나 거짓말 아니거든요. 다리가 단단해졌어요. 믿지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내가 너무 마음이 켕겨 대답하자 지은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차갑게 말했다.“거짓말, 아까 내 가슴 본 거죠?”“정말 아니에요.”나는 끝까지 잡아뗐다.그러자 지은이 일부러 내 앞에서 허리를 숙여 일부러 내 쪽으로 가슴을 들이밀었다.심지어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 은은한 체향이 코끝에 전해졌다.내가 너무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며 지은은 그 방향으로 따라오고 다른 쪽으로 또 고개를 돌리면 또 그쪽으로 따라왔다.결국 나는 침지 못하고 화를 냈다.“지금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그냥 표정이 어떤지, 정말 군자가 맞는지 보려는 거예요.”나는 진작 이 여자가 일부러 나를 시험할 줄 알았다.하지만 하필이면 내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반응해 버렸다.결국 마지못해 손으로 그곳을 가리고 지은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안 그러면 분명 끝없이 추궁할 게 뻔하니까.그런데 공교롭게도 나의 이 행동이 마침 지은에게 들키고 말았다.“그곳은 왜 막고 그래요? 손 좀 비켜요.”나는 지은의 말을 무시했다.하지만 사람들도 많은 곳에서 이렇게 마구 행동하는 걸 보니 너무 심장이 철렁했다.“그만 좀 하면 안 돼? 다른 사람이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 줄 알 거잖아요.”나는 너무 어이없었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봤더니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하지만 지은은 상관없다는 듯 내 손을 쳐냈다.“훔쳐보지 않았다면서요? 그럼 그곳 좀 보여줘 봐요. 정상인지 아닌지. 정상이면 용서해 줄게요. 하지만 정상이 아니면 거짓말했다는 증거잖아요.”“내가 거짓말했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거짓말했다고 하면 그게 뭐 의미가 달라져요?”내 반박에 지은이 강조했다.“당연하죠. 그쪽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거든요.”우리 두 사람의 행동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지은의 손을 잡고 떠났다.그렇게 손을 잡은 채 사람이 없는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보고 싶
지은의 그 모습을 보니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음식에 대한 욕구와 성에 대한 욕구는 사람의 본성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그때 지은이 내 그곳을 빤히 쳐다보며 농담조로 말했다.“얼씨구, 또 흥분했네요? 이런데 뭘 더 망설여요? 얼른 해요.”지은은 말하면서 치마를 들어 올렸다.그 행동에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심지어 당장이라도 지은을 자빠뜨리고 마음껏 취하고 싶었다.하지만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정말이에요? 지금 나 속이는 거 아니죠?”“내 상태를 봤는데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지은이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로 말하니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대담하게 행동했다.“정말이죠? 그럼 나도 안 봐줘요.”나는 말하면서 지은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지은이 갑자기 하하 웃기 시작했다.그 순간 나는 제대로 속았다는 걸 알아챘다.“이러고도 마음이 없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럼 지금 이건 뭐죠?”나는 완전히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는 한편 슬프기도 했다.‘이 여자는 나를 갖고 노는 게 재밌나? 이러면 내 자존심이 얼마나 깎일지 모르나?’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곧바로 뒤돌아 떠났다.그러면서 속으로 이번에 지은이 뭐라 하든 절대 말을 들어주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단숨에 세기 쇼핑몰을 달려 내려와 대문 앞에 섰을 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확인해 보니 지은이 걸어온 음성통화였다.나는 두말없이 전화를 꺼버렸다.잠시 뒤, 지은이 또다시 전화를 걸어오니 또 꺼버렸다.“흥, 뭐라고 말하든 절대 안 돌아가!”나는 화가 나서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바로 떠나려 했다.지은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그게 지은이 보낸 메시지라는 걸 알기에 대체 나한테 무슨 말을 보냈을지 한 번 보자는 심정으로 확인했다.하지만 지은이 보낸 문자를 본 순간 나는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그도 그럴 게 지은이 나한테 ‘그쪽 물건 나한테 있는데 안 가질래요?’라는 문자를
“형수한테 목걸이 주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한다지만 형수 친구한테 주는 건 또 뭐예요?”나는 귀찮아서 대충 설명했다.“그냥 주고 싶어 주는 것도 안 돼요? 뭘 그렇게 많이 참견해요? 이건 그쪽과 상관없는 거잖아요.”내가 화를 내자 지은도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고 선물 두 개를 나한테 건넸다.“됐어요, 안 물어볼게요. 나 바래다주는 것 정도는 괜찮죠? 나 짐 이렇게 많은데 택시 타라고 하는 건 아니죠?”난 가끔 내 성격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 마음 약하고 귀가 얇은 거.지은이 나를 그렇게 괴롭혔는데 애원하는 눈빛 한번 보내왔다고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내가 착해서 도와주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쪽이 죽든 말든 상관 안 했을 거예요.”나는 말하면서 지은의 짐을 들어주었다.‘정말 돈 많네. 몇백만 원짜리 물건을 눈도 깜빡하지 않고 구매하다니.’돌아가는 길에 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가 내가 동네에 차를 세우자 갑자기 물었다.“수호 씨도 여기 살아요?”나는 그제야 지은이 아직 우리가 같은 동네에 산다는 걸 모른다는 걸 인식했다.이에 곧바로 설명했다.“형과 형수가 이 주변에 사는데 잠깐 얹혀살아요.”“그런데 내가 여기 사는 줄은 어떻게 알아요?”지은은 여전히 나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바라봤다. 하지만 나도 지은의 질문을 진작 생각해 둔 적이 있기에 침착하게 대답했다.“출근할 때 한 번 봤어요.”“아.”나는 주차하고 나서 지은의 짐을 차에서 하나하나 내렸다.그때 짐을 보던 지은이 머리 아픈 듯 말했다.“물건이 너무 많아요. 혼자 들고 갈 수 없으니 좀 도와줘요.”“그래요. 한번 도와주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도와줘야죠. 오늘이 지나면 보지 못할 테니까.”지은을 도와 크고 작은 쇼핑백을 들고 있으니 왠지 내가 지은의 부하직원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하지만 아까 실수한 경험이 있던 지라 앞에서 걷지 않고 지은이 길을 안내하게 했다.우리는 곧바로 지은의 집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지은이 문을 열며
“네?”‘내가 남기고 간 물건이라고? 뭐지? 왜 기억이 없지?’나는 갑자기 너무 불안했다.그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은이 방에서 양말 한 짝을 가져왔다.그 양말은 내 것이 틀림없었다. “이 양말 알아요?”지은의 질문에 나는 가슴이 콕콕 찔렸다.“이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이렇게 평범한 건 널리고 널렸어요. 게다가 지금 사람들은 자기 옷을 자기 집에 걸어두는데 누가 어떤 걸 신었는지 어떻게 알아요?”“하긴, 내가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어요.”지은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하지만 나는 정말 여기에 있기 싫었다. 계속 있으면 언젠가 들통날 것만 같으니까.“저기, 혹시 다른 일 있어요? 없으면 난 이만 가볼게요.”나는 변명을 대며 곧바로 이곳에서 도망치려고 했다.하지만 지은이 갑자기 말했다.“또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입을 탁 쳤다.‘왜 그런 말을 해서는.’“왜요? 싫어요?”“솔직히 말하면 마음속으로는 싫어요,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니까 말한 대로 하다는 심정으로 하는 거예요. 말해요, 뭘 도와줄까요?”지은은 커다란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나 오늘 침구 세트를 샀잖아요. 그걸 펴줘요.”지은이 침구 세트를 산 건 나도 안다, 그것도 32만 원 넘는, 가격도 어마어마한 거로.하지만 지은은 이런 가격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돈 많은 사람은 역시 달라. 생활할 줄 아네.’그에 반하면 나는 생활하기 바빠 매일 뛰어다녀야 한다.나는 쇼핑백 네 개를 들고 지은이 가리키는 침실 쪽으로 걸어갔다.“여기예요?”“맞아요. 바로 그 방이에요.”나는 침실에 도착해 낡은 침구 세트를 모두 새것으로 갈아주었다.새로 산 침구 세트는 너무 예뻤다. 따뜻한 분위기에 편안해 보이는 재질, 한눈에 봐도 즐거웠다.‘여기서 자면 어떤 느낌일지.’그때 지은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느껴보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으면 누워 봐요.”“아니에요.”절대 그렇게 할 수 없지.만약 더럽히기라도 하거나 냄새라도 묻히면
나는 조금 화가 났다.“웃음이 나와요?”“이 봐요, 너무 심각한 거 아니에요? 하고 싶다는 건 생리적 욕구 때문이지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지은이 웃으며 하는 설명을 듣자 나는 순간 난처해졌다.“네?”‘내가 오해한 거였네.’사실 지은은 남주 누나와 같은 생각이다. 그저 본능적으로 그런 행위를 하고 싶은 거다.남자든 여자든 그런 쪽으로 욕구가 있는 건 정상이다.욕구가 있으면 해결하고 풀고 하는 것도 당연한 거고.나는 너무 난처해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그런데 평소에는 이러지 않았잖아요. 왜 갑자기 나한테 그런 말을 해요? 사람 난감하게.”“흥, 그러게 누가 출근하는 그날 나를 희롱하래요? 첫 이미지가 나쁘게 박혀 버리니까 일부러 안 좋게 대한 거죠, 그런데 오후 내내 지내보니까 사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몸매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고, 같이 하면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어때요? 한번 해볼래요?”지은은 말하면서 나한테 추파를 던졌다.솔직히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아 당장이라도 지은을 자빠뜨리고 싶었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 했다.내 신분이 노출되거나, 여자가 나한테 들러붙을 까 봐.이 여자와 더 이상 어울리지 않기로 했으면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게 좋은 선택이다.그러지 않으면 관계를 끊기 어려우니까.이에 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됐어요. 난 일이 있어 먼저 가볼게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 두 다리는 바닥에 못 박힌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지은은 내 모습을 보더니 웃으며 다가왔다.그러고는 손을 내 가슴에 얹더니 천천히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간질거리는 숨결이 자꾸만 얼굴에 닿아 나는 너무 괴로웠다.‘참 요물이 따로 없네. 어쩜 작고, 차갑고, 청순하고, 여성스러운 걸 완벽하게 다 갖고 있지?’특히 지은의 손이 너무 예뻤다.나는 저도 모르게 지은과 몸을 섞는 장면이 생각나면서 아래가 뻐근해졌다.지은도 그걸 느겼는지 일부러 부드러운 몸을 나한테 딱 붙였다.“이거 봐요, 하고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