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 씨,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에요?”곽정희의 어색한 물음에 연소희가 답했다.“조급해할 필요 없어요. 도착하면 알게 될 거예요.”연소희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기가 몰고 왔던 슈퍼카에 다시 올라탔고, 강한나와 곽정희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윤지은의 차에 올라탔다.나 역시 올 때와 마찬가지로 연소희의 차에 타려던 그때,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 무의식적으로 윤지은 쪽을 돌아봤다. 그랬더니 윤지은이 눈을 부릅뜬 채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차에 오르는 게 아니겠는가?그 눈빛에 나는 너무 두렵고 불안해 순간 연소희의 차에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소희야, 난 저쪽에 탈게.”“왜요?”연소희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정희 누나랑 같이 타고 싶어서.”나는 결국 정희 누나를 내세웠다.“그런데 정희 언니는 이미 떠났는데요.”연소희의 말에 고개를 돌려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윤지은의 차는 이미 멀리 떠나버렸다.보아하니 나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결국 나는 걱정을 뒤로한 채 순순히 연소희의 차에 올라탔다.얼마 지나지 않아 추량 두 대는 수정궁이라는 유흥업소에 도착했다.수정궁의 화려한 인테리어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강북에 이토록 화려한 유흥업소가 있었단. 참으로 가난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가요. 내가 오늘 제대로 구경시켜 줄게요.”연소희는 싱긋 웃으며 내 팔짱을 꼈다.우리가 수정궁에 들어서자 예쁘게 차려입은 여직원과 멋진 남자 종업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그 모습은 그렇게 사치스러울 수가 없었다.여직원과 남자 종업원들의 안내하에 우리는 아주 큰 룸으로 향했다.미리 안내받지 않았다면 나는 이토록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곳이 유흥업소 룸이라는 걸 몰랐을 거다.룸 면적은 엄청 컸는데, 안에는 일반 노래방에서 볼 수 있는 소파나 테이블, 노래방 기계와 술 등을 제외하고 심지어 침대까지 갖춰졌고, 샤워도 할 수 있었다.‘대박. 여기 설마 천국은 아니기?’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속으로 중얼거
“싫어!”연소희는 단번에 거절했다.이에 공세빈이 의아한 듯 물었다.“왜 싫은데요?”“가도 우리끼리 가지 왜 너까지 끼워줘? 네가 흑심을 품은 건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연소희는 공세빈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직설적으로 말했다.하지만 공세빈은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나를 대체 뭐로 보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그래도 명문가 자제인데, 어떻게 그렇게 미친 짓을 하겠어요?”“난 정말 소희 씨와 친해지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래서 성의를 표시하려고 초대하려고 했던 거고요.”연소희는 공세빈의 말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안 된다면 안 되는 줄로 알 것이지. 입 아프게 말할 필요 없어.”공세빈은 화가 나 속으로 중얼거렸다.‘뭔 여자가 이렇게 고지식해?’연소희는 한다면 하는 성격인 지라 계속해서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공세빈을 남겨둔 채 우리만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공세빈은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자 결국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젠장!”공세빈은 화가 나서 앞에 있는 변기를 발로 걷어찼다.2천만 원 넘게 소비했는데 신뢰도 얻지 못했으니 기분이 언짢은 건 당연했다.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 공세빈의 일행은 무서워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이럴 때 입을 열면 불똥이 그 사람에게 튈 게 뻔했다.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입을 다물고 있어도 공세빈의 분노를 피할 수는 없었다.“젠장. 다들 벙어리야? 왜 아무 말도 안 해?”“혹, 혹시 무슨 말을 하길 바란 거예요?”조권우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공세빈은 다물없이 조권우를 발로 걷어차 바닥에 넘어뜨렸다.“넌 내 개잖아. 내가 말 안 해도 대신 척척 계획해야지. 그것도 몰라서 나한테 물어봐? 이렇게 쓸모없이 굴 거면 너를 옆에 두는 의미가 없잖아.”조권우는 발에 차여 넘어졌는데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그 순간 조권우는 문득 저와 똑같은 신세였던 지혜영을 떠올렸다. 다만 슬프게도 지혜영은 이미 깨달음을 얻고 자기 인생을 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연소희한테 이런 조롱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세빈이 얼마나 뻔뻔한 놈인지 다시 알 수 있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정수호 씨한테 시비 걸었다니, 내가 정수호 씨를 얼마나 존경하는데요”공세빈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없는 말을 잘도 했다.그 말을 들은 연소희는 공세빈을 째려봤다.“하. 귀신을 속여.”하지만 공세빈이 떠나지 않으니 연소희도 별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상대를 쫓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식사는 계속되었다. 다만 가장 거슬렸던 강민주가 없으니 식사하는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복수에 성공했다는 거였다.“오빠. 앞으로 누가 도 오빠 괴롭히면 저한테 말해요. 누가 감히 우리 연씨 가문을 상대로 맞서는지 두고 볼 거예요.”연소희는 말하면서 일부러 공세빈을 흘긋거렸다.하지만 공세빈은 마치 그 뜻을 알지 못한 듯 여전히 히죽히죽 웃는 표정을 유지했다. 참으로 뻔뻔함이 극치에 달하는 듯싶었다.나도 가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공세빈을 따라 배우고 싶을 지경이었다.결국 우리는 너무 귀찮은 나머지 공세빈이 뭘 하든 무시했다.식사를 마친 뒤, 연소희는 또 나를 끌고 승마장으로 향했다.그 뒤로 공세빈이 뻔뻔하게 따라붙었다.“연소희,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연소희는 공세빈을 힐끗 째려봤다.“싫거든. 넌 이미 쓸모없어.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해.”“에이, 그러지 말고 다 같이 놀면 재밌잖아. 우리 앞으로 싸우지 않는 게 어때?”공세빈은 뻔뻔하게 말했다.그 말에 연소희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지금 나한테 화해를 청하는 건가?”공세빈은 또 한 번 히죽 웃었다.“맞아. 화해하자는 뜻이야. 그러니까 지난날의 잘못은 너그러이 잊고, 기회를 한 번 주는 건 어때?”연소희는 눈알을 굴리면서 공세빈을 강민주보다도 더 끔찍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강민주는 적어도 싫은 티를 얼굴에 드러내면서 오만하고 되바라지게 굴지만, 공세빈은 겉으로는 생글생글
강한나는 씩씩거리며 나를 쳐다봤다.“그날 밤 저 남자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될 일도 없었다. 고작 별것도 아닌 의사 주제에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나는 피식 차갑게 웃었다.“너는 의사가 모두 일반인이고 너희 같은 부잣집 자제들은 다른 사람들 위라고 생각하지?”“아니야?”강민주는 당연하다는 듯 되물었다.“당연히 아니지! 재산으로 볼 때 네가 나보다 더 우세한 건 맞아. 하지만 생명과 건강 측면에서 볼 때 넌 아무것도 아니야.”“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급할 거 없어. 내 말 아직 안 끝났으니까. 내가 너를 버러지라고 한 건, 네가 본인의 건강과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야. 돈이면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것 같지?”“네가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이 세상을 곧 떠날 때 우리 같은 의사야말로 너희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강민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의사는 나도 아는 사람 많아. 그리고 다 당신보다 의술도 뛰어나니까 그런 거로 겁줄 생각 하지 마.”“그래. 이 세상에 나보다 의술이 뛰어난 사람은 많지. 하지만 강북에서 나보다 의술이 뛰어난 사람은 몇 안 될걸.”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이건 내 자랑이자 능력이기도 하다.“난 네 목숨을 구해줄 수도 있지만 널 죽일 수도 있어. 알겠어?”내 말에 흠칫 놀란 강민주는 눈빛이 공포로 물들더니 한참 뒤 달갑지 않다는 듯 말했다.“그럴 배짱은 있어? 나는...”“배짱이 있을지 없을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내가 너를 죽일 방법은 수천 가지야. 심지어 네 가족들조차 그 사인을 찾지 못하게 할 수 있어.”“지금처럼.”나는 갑자기 강민주의 손을 덥석 잡은 채 꽉 힘주었다.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강민주는 식은땀을 흘리더니 온몸에 힘이 빠진 채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이게, 지금 나한테 뭘 한 거야?”강민주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이에 내가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무서워할 것 없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너를 죽이지는 않아.
지혜영의 마음은 갈대처럼 미친 듯이 흔들렸다.“난...”“지혜영!”그때 강민주가 버럭 소리쳤다.“넌 머리가 장식이야? 자기 주견도 없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뭐야?”강민주는 지혜영에게 미안헤하기는커녕 오히려 화내고 꾸짖어댔다.지혜영은 순간 너무 서러워 눈시울이 붉어졌다.조금 전 사실 강민주가 모든 책임을 짊어지라며 지혜영을 협박했다.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강민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혜영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현재 강민주는 미안함을 느끼기는커녕 이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꾸짖기만 하고 있다.그 순간, 지혜영은 자기가 강민주한테 빚진 것도 없는데 왜 그래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연소희의 말을 듣고 나니 스스로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얻는 것 하나 없이 강민주의 시녀 노릇만 하게 될 테니까.지혜영이 망설이고 있을 때, 강민주가 또 갑자기 미친 듯이 욕설을 퍼부었다.이번에 지혜영은 완전히 분노했다.“강민주, 닥쳐!”지혜영의 호통에 강민주는 일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동안 지혜영은 강민주에게 아부하며 시키는 건 뭐든 거역하지 않았었는데, 그랬던 지혜영이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소리쳤다.한편 지혜영은 마치 그동안 쌓였던 게 폭발한 것처럼 자기 마음을 공제하지 못한 채 큰 소리로 말했다.“연소희, 조금 전 내가 인정했던 건 강민주 협박 때문이야. 사실 나 저 사람 몰라.”연소희는 빙그레 웃으며 강민주를 바라봤다.“강민주, 더 할 말이 있어?”강민주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난 저 사람 몰라. 지혜영이 나 모함한 거야.”“당신은 이 사람 알아?”연소희는 강민주를 가리키며 조끼남에게 물었다.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남자는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자 결국 순순히 인정했다.“알아요. 강민주 씨잖아요. 바로 저 아가씨가 저더러 정수호를 죽이라고 지시했어요.”강민주는 피식 냉소를 지었다.“저 사람 말 곧이곧대로 믿어? 저 사람이 뭔데? 내가 지시한 거
조끼남은 내 말에 반박했다.“본인 입으로 상대가 밤에 죽이려 했다면서 상대의 생김새는 어떻게 알아?”“하. 빠져나거려는 것 좀 봐. 상관없어. 나 말고 여기 증인 한 명 더 있으니까.”나는 곽정희에게 다가갔다.조끼남이 사람들을 데리고 계곡 아래까지 찾아왔을 때 곽정희도 조끼남 얼굴을 본 적이 있다.그때 곽정희가 즉시 입을 열었다.“나 저 사람 알아요. 저 사람이 사람들을 데리고 수호 씨를 찾아다녔어요.”조끼남은 바로 반박했다.“이봐. 난 그쪽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사람 함부로 모함할 수 있지?”“나도 그때 수호 씨와 함께 숨어 있었으니까. 당신은 나를 보지 못했겠지만 난 당신 똑똑히 봤어. 그때 나한테... 욕구를 풀겠다고 했었지?”조끼남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윤지은은 다시 강민주를 바라보더니 마지막으로 연소희에게 시선을 멈추었다.“소희야, 네가 저번에 정수호 해친 놈 찾아내겠다고 했잖아. 사람은 이미 잡아왔어. 이놈이 배후를 가리키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거야.”연소희는 다짜고짜 조끼남의 뺨을 후려갈겼다.“말해 누가 수호 오빠를 죽이라고 했어?”조끼남은 머릿속에 수만 마리의 벌이 소란을 피우는 듯 머리가 ‘윙윙’ 끊임없이 울려댔다.그때 연소희는 조끼남이 미처 반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말 안 해도 돼. 하지만 그러면 후회하게 될 거야. 이 안에서 나와 지은 언니 외에 당신 안전 보장해 줄 사람은 없거든.”“당신 같은 건달은 저지른 죄도 적지 않을 텐데, 여기 있는 한나 언니가 경찰이거든.”강한나는 싱긋 웃으며 수갑을 꺼내 들더니 눈을 가늘게 접었다.“자백하면 정상 참작해 줄 수는 있으니 잘 선택해.”그 말에 놀란 조끼남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나 감옥 가기 싫어. 감옥 안 갈래...”끝내 멘탈이 무너진 조끼남이 강민주를 가리키려고 할 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지혜영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스스로 자백했다.“물어볼 필요 없어요. 다 내가 지시한 거예요.”‘엥?’나, 연소희,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