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 누나는 아직 차에 있어요. 혼자서 세 명을 부축하는 건 무리라서 형수와 애교 누나를 먼저 부축해 왔어요.”“그럼 수호 씨가 두 사람 돌봐 줘요. 아내는 내가 데려올 테니까.”“형수 차예요. 쉐보레, 번호는...”내가 말하자마자 고정훈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근데 왠지 내 마음은 순간 허전해졌다. 마치 고정훈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는 것처럼.하지만 두 사람은 부부니까 본인 집에 돌아오는 건 당연한데, 내가 돌아오지 말았ㅇ면 할 자격이 있을까?나는 소파에 앉아 잠깐 멍때렸다.그때 갑자기 내가 준비했던 콘돔이 아직 차에 있다는 게 떠올랐다. ‘고정훈이 만약 그걸 보면 날 의심하지 않을까?’나는 형수와 애교 누나가 누운 걸 확인하고는 얼른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고정훈 먼저 콘돔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하지만 내가 쫓아갔을 때 고정훈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차 앞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이 다급히 쫓아갔다.그런데, 내가 도착했을 때 쉐보레 차 안은 이미 불이 켜져 있었고 고정훈과 남주 누나는 서로 껴안은 채 키스를 하고 있었다.남주 누나는 아주 몰입한 채 즐기는 듯했다.고정훈 역시 지방에 내려가 있으면서 오래 참은 상태였다.고정훈이 남주 누나의 옷을 모두 벗기더니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뜨겁게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전조등이 꺼졌다.하지만 나는 남주 누나의 흥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여보, 너무 대단해. 너무 좋아.”남주 누나는 아주 즐거운 듯 말했다.고정훈도 매우 즐거워 보였다. 그는 아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매우 좋아했다.솔직히 고정훈의 아내는 완전히 요물이다.본업도 잘하고 내조도 잘하고 저녁에 또 이토록 적극적으로 노력하니까.그 덕에 고정훈도 나이가 들었는데 아직도 혈기 왕성한 거다.남자가 되는지 안 되는지는 사실 대부분 여자에게 달렸다.여자가 열정적이고 매력적이고 사람을 잘 홀린다면 남자는 안 되더라도 그 여자 앞에서만은
자기 아내가 흐물흐물해진 것을 보자 고정훈은 무척 흐뭇해했다.그도 그럴 게, 아내를 만족시켰다는 뿌듯함과, 만족한 여자는 밖에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 때문이었다.밖에서 모든 걸 엿듣고 있던 나는 점점 더워 나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뒤돌아 떠났다.그리고 쉐보레 안에서 남주는 만족한 듯 남편 품에 안겨 말했다.“왜 갑자기 돌아왔어? 이틀 뒤에나 올 거라면서?”“자기가 보고 싶어서 특별히 왔지.”고정훈은 말하면서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그러다가 무의식중에 남주 누나의 목에 난 키스 마크를 보고 경각심을 높였다.“목에 이건 뭐야?”남주 누나는 손을 뻗어 목을 쓱 만지다가 갑자기 그날 흥분한 나머지 나더러 목에 키스 마크를 내달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누나는 싱긋 눈웃음치며 말했다.“강아지가 그런 거라면 믿을래?”“당연히 안 믿지. 자기가 그런 사람 아닌 건 알지만 이게 뭔지는 궁금해.”남주 누나는 요염하게 남편을 째려봤다.“오늘 마사지숍에서 전신 오일 마사지했거든. 마사지사가 그랬는데 내 몸에 독소가 많아 마사지하고 나면 몸에 멍이 들 수 있다고 했어. 못 믿겠으면 봐 봐, 배와 다리에도 있어.”남주 누나는 전혀 숨김없이 몸 곳곳에 있는 키스 마크를 보여주었다.하지만 누나의 이런 방법이 오히려 남편의 의심을 사그라들게 했다.“전신 오일 마사지? 마사지사는 여자야 남자야?”“당연히 여자지.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내가 오일 마사지 받으면서 남자 마사지사를 부르겠어?”남주 누나는 남자의 마음을 어떻게 쥐락펴락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는 제멋대로 행동하기보다 남편의 의심을 완전히 없애는 게 상책이었다.아니나 다를까 남주 누나의 말을 들은 고정훈은 이내 표정을 풀었다.“평소 일이 힘든 데다 양가 부모님까지 보고 아이까지 돌봐서 몸이 피곤했나 보네. 우리 여보 고생했어.”고정훈은 말하면서 남주 누나의 얼굴에 진한 키스를 했다.남주 누나는 얼른 가련한 여자처럼 남편의 품에 기댔다.“내가 고생하는 걸 알
남주 누나의 남편도 누나한테 정말 잘해주는 것 같았다.더욱이 40대인데도 전투력이 대단하다는 게 실로 존경스러웠다.고정훈은 남주 누나를 소파에 내려 놓고 다정하게 말했다.“오늘 친구들과 파티하는 줄 몰랐어. 이따 난 또 나가봐야 하니까 계속 놀아. 너무 늦게까지 놀지는 말고. 몸조심해. 자기가 힘들면 내가 마음 아파.”남주 누나는 작은 새처럼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이 나한테는 너무 충격이었다. 그렇게 요염하고 섹시하던 남주 누나가 이렇게 고분고분한 모습도 있다는 게 놀라웠으니까.심지어 남주 누나가 남편을 무척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남편을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남편한테 미안한 일을 하는지?남주 누나의 마음은 정말 종잡을 수 없었다.고정훈은 남주 누나와 말을 마치고 난 뒤 나를 바라봤다. 이에 나도 벌떡 일어섰다.“저도 이제 가봐야겠어요.”“그래요, 그럼 멀리 안 나갈게요.”고정훈은 훈훈한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오히려 불안하고 당황했다.고정훈은 겉보기에는 매너 있고 다정한 사람 같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앞으로 대면할 때마다 긴장을 늦추면 안 되겠어.”아래층으로 내려와 차에 올라탄 순간 나는 조수석에 있는 콘돔을 발견했다.다행히 내 외투 때문에 가려져 고정훈이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나는 황급히 물건을 치웠지만 여전히 심장은 벌렁거렸다.그도 그럴 게, 오늘 저녁 벌어진 일은 너무 의외였으니까.형수를 떠올렸다가 남주 누나와 남편이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떠올리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나는 고개를 들어 위층을 바라봤다.‘위층 상황은 어떨지.’‘계속 생각해서 뭐 해? 올라갈 수도 없는데.’나는 결국 생각을 멈추고 시동을 걸어 애교 누나 집으로 향했다.혼자 텅 빈 침대에 누워 있는 기분은 너무 좋지 않았다. 몸을 아무리 뒤척여 봐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나는 결국 소설 사이트를 켰다. 그렇게 한창 보다보니 점점 졸음이 몰려왔다. 그날 밤 나는 편히 자지 못했다. 역시 애교 누나를
‘젠장, 잊었나 안 잊었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목소리 좀 낮추면 안 되나?’‘이런 주제를 어떻게 사람들 많은 곳에서 대놓고 얘기하지?’‘정말 못 말리는 여자네.’“쉿, 조용히 좀 해 봐요. 누가 잊었대요? 적어도 가게에 와야죠, 안 오는데 제가 어떻게 마사지해 줘요?”“방문 서비스도 있잖아요. 윤지은네 집에서 마사지해 주면 되잖아요.”나는 질세라 받아쳤다.“방문 서비스는 돈 더 내야 하거든요. 할 일도 없으면서 왜 가게에 오지 않아요?”하정현은 윤지은을 흘끗 바라봤다. 하지만 윤지은은 여전히 싸늘한 얼굴을 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하정현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누가 할 일이 없대요? 나도 바쁜 사람이거든요? 돈 더 내면 될 거 아니에요. 나 돈 많아요. 그러니까 오늘 지은이네 집에 와서 마사지해 줘요.”나는 윤지은의 눈치를 살폈다. 그랬더니 윤지은은 독살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째려봤다.원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눈빛에 나는 순간 열이 뻗쳐 일부러 비아냥거렸다.“그래요, 그럼 이따가 주소 불러줘요. 방문 서비스 해줄게요.”윤지은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눈살을 팍 구겼다. 그 눈빛은 나를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사실 나는 일부러 윤지은의 기분을 살살 긁은 거다. 항상 이유 없이 위협적인 눈빛으로 사람을 보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누가 보면 여왕인 줄 알겠네. 그렇게 보면 내가 무서워할 줄 알고?’‘진짜 웃기는 여자네. 난 더 이상 한의원에서 일하지도 않는데, 저 여자를 무서워할 게 뭐 있어?’“지은아, 괜찮지?”하정현의 말에 나는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다.그때 윤지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상관없어. 난 이따가 출근해야 하니까 둘이 뭘 하든 내 알 바 아니야. 하지만 내 집에서 허튼짓 하지 마.”“에이, 내가 변태도 아니고, 설마 모르는 사람과 그 짓을 하겠어?”하정현은 살짝 어이없었다. 본인은 그저 마사지사를 집에 불러 마사지 좀 받을 생각이었는데, 허튼짓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끝내 웃음을 터뜨렸다.“이봐요, 그런 건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거든요? 내가 뭐 바보인 줄 아나?”“흥, 바보는 아니더라도 개자식은 맞잖아요. 할 줄 아는 게 그 짓뿐인 발정난 개잖아요.”“듣는 사람 기분 나쁘네? 내가 왜 개예요? 내가 아무리 개 같아도 그쪽만 할까요?”“또 싸우자는 거예요?”“내가 먼저 싸움 걸었어요? 그쪽이 먼저 걸었잖아요. 좀 제대로 대화할 수는 없어요? 왜 매번 내가 그쪽한테 빚진 것처럼 얘기해요? 두 번 모두 그쪽이 나 덮친 거라는 걸 잊지 마요.”내 말에 윤지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그 입다물어요. 앞으로 내 앞에서 그 얘기 꺼내기만 해 봐요.”“알았어요. 안 할게요. 그럼 앞으로 그 거만한 태도부터 거두어 줄래요? 존중은 서로 오고 가야하는 거잖아요. 그쪽이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데, 나한테 존중을 강요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타협했다.“앞으로 최대한 좋은 태도로 얘기할게요. 하지만 그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셈 쳐요. 할 수 있죠?”“무조건 약속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요.”나는 얼른 약속했다.내가 이렇게 말한 건 내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서다.하지만 윤지은은 오히려 내가 땡잡았다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다.하고 싶은 대로 다 해놓고 책임질 필요가 없으니 남자라면 당연히 흔쾌하게 승낙할 테니까.때문에 나를 매섭게 째려보고는 씩씩거리며 떠나갔다.그 모습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내가 뭐 잘못 말했나?’‘여자 마음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그나마 다행인 건 윤지은이 내 여자 친구가 아니라는 거였다. 만약 여자 친구였다면 함께 지내는 것마저 숨 막히는데, 결혼은 절대 불가능하다.‘이렇게 비교해 보니 역시 애교 누나가 좋네.’애교 누나를 떠올리자 나는 저도 모르게 걱정이 앞섰다. ‘애교 누나가 어제 남주 누나 집에서 뭘 했을까? 잠은 잘 났나? 내 생각 했나?’나는 차에 오르자마자 애교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밤은 안 될 것 같아요.]내가 한창 뿌듯해하고 있을 때 애교 누나가 문자를 보내왔다. 그 문자를 본 순간 내 기분은 순간 가라앉았다.[왜요?]내 물음에 애교 누나는 곧바로 답장했다.[남주가 오늘 밤도 같이 있재요.]그 말을 본 순간 나는 화가 났다.[아니, 대체 왜 그런대요? 남편도 돌아왔으면서 왜 누나는 거기 붙잡아 둔대요?][정훈 씨가 돌아왔어요? 언제요?][몰랐어요? 어제저녁에 돌아왔잖아요. 어제 누나랑 형수를 남주 누나 집에 데려갔을 때 남주 누나 남편과 만났어요.][난 몰랐어요. 어제 너무 취해서 아무 기억도 안 나요.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안 보여서 안 돌아온 줄 알았어요. 그럼 내가 남주한테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나는 애교 누나가 오늘 밤 집에 돌아오기를 무척 기대했다.혼자 자는 게 너무 불안했으니까.내가 애교 누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하정현이 가게에 예약 전화를 걸어왔다.이미 물건을 챙긴 터라 나는 곧장 출발할 수 있었다.나는 하정현의 예약을 빨리 끝내고 가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다시 동네로 돌아온 나는 윤지은의 집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쾅쾅쾅.한참 뒤, 하정현이 나와서 문을 열었다.하정현은 잠옷 차림이었는데 몸이 너무 마른 데다 굴곡이 하나도 없어 어린애 같았다.그나마 다행인 건 예쁘장한 얼굴이 있다는 거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여자가 어떻게 시집갈지 걱정될 정도였다.“들어와요.”나는 집에 들어가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그 사이 하정현은 성큼성큼 소파 쪽으로 걸어가 털털하게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그 자세 때문에 가슴이 더 평평해 보였다.“그날 그쪽이 마사지해 주고 난 뒤 가슴이 눈에 띄게 변했어요. 그러니까 오늘도 얼른 마사지해 줘요, 더 커질 수 있게.”나는 웃으면서 하정현의 옆으로 다가갔다.“그게 어떻게 그렇게 빨라요? 침술과 마사지는 장기적으로 견지해야 효과가 있어요. 그리고 오늘 고작 두 번 하고 무슨 변화를 기대해요?”“그럼 효과는 언제 알리는 거예요?”하정현은
이게 바로 시골과 도시의 차이라고나 할까?“맞아요. 내가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안 좋았거든요. 젤리 먹고 싶다고 운 적도 있어요.”하정현은 갑자기 나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나도 갑자기 궁금하여 물어봤다.“혹시 집이 시골에 있었어요.”“아니요.”“그런데 가정 형편은 왜 안 좋았어요?”“아빠가 의원인데 부정부패를 저질러 어릴 때 집 재산을 몰수당했거든요. 그때 마침 발육 시기랑 겹치다 보니 배불리 먹을 수만 있으면 다행이었어요. 엄마도 영양가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요.”하정현의 말에 나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부패를 저질렀다는 걸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고?’‘좀 어이없네.’나는 그 사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말했다.“옷 벗어요. 마사지 시작할게요.”하정현은 두말없이 옷을 벗었다.나는 먼저 하정현의 몸에 오일을 발라주고 마사지하기 시작했다.솔직히 웃옷을 벗고 있는 하정현을 봐도 나는 아무런 잡념도 없었다.그도 그럴 게, 너무 평평했으니까.얼굴이 예쁘지 않았다면 의형제를 맺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가슴이 평평한 여자도 좋은 점은 있다. 바로 옷태가 예쁘다는 거다.하정현은 가죽 바지를 유독 좋아하는 듯했는데, 그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마사지를 하면 할수록 하정현의 혈 자리는 자극을 받아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직접 해볼래요? 한번 해보면 나중에 집에서 혼자서도 할 수 있잖아요.”“내가 혼자서도 할 줄 알면 그쪽은 돈 못 벌잖아요?”“이런 마사지는 원래 얼마 못 벌어요. 그러니까 벌든 못 벌든 상관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방문 서비스하기 싫어요. 친구분이 너무 사나워 보여서 귀찮은 일 만들고 싶지 않거든요.”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그러자 하정현이 갑자기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바라봤다.“그럼 내 친구 어떻게 생각해요? 예뻐요? 몸매는 좋아요?”“왜 갑자기 그걸 묻는 건데요?”“내가 먼저 물어봤으니까 대답부터 해요.”하정현이 대뜸 강조했다.나는 한참
“친구들도 다 여친이 있거든요.”나는 너무 귀찮아서 거짓말했다.하지만 하정현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그럼 그 친구의 친구는요? 주위 남자들 중 솔로인 사람이 없는 건 아닐 거잖아요.”“지금 말장난하는 거예요? 내가 없다고 하는 건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친구인데, 어떻게 아무 남자나 소개해 줄 생각을 해요? 상대가 어떤 남자인지, 인성은 어떤지 알아보지도 않았잖아요?”나는 참지 못하고 직설적인 말로 반박했다.하지만 하정현은 배알도 없는지 오히려 깔깔 웃어댔다.“뭘 그렇게 발끈하고 그래요? 농담이에요. 사람이 농담도 못 해요? 가만 보면 내 친구한테 엄청 신경 쓰는 것 같은데요?”“어딜 봐서 내가 그쪽 친구한테 신경 쓰는 것 같은데요? 방관자로서 선의로 귀띔해 주는 것도 안 돼요?”나는 여자의 말에 너무 논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자꾸만 나한테 프레임을 씌우는 느낌이 들어 자꾸만 반박하고 싶었다.“무슨 뜻이에요? 지금 내가 친구 자격이 없다는 거예요?”“난 그렇게 말한 적 없어요. 그쪽 스스로 그렇게 말했어요.”나는 하정현을 돌려 깠다.솔직히 하정현이 확실히 친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상식적으로 친구라면 이렇게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람 엿 먹이려는 것도 아니고.‘아무리 상처를 치료해 주려는 게 목적이라고 해도, 이건 뭐 독으로 독을 해독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습, 왜 갑자기 사람을 꼬집어요?”여자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내 팔을 꼬집었다. 그 고통에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그때 하정현이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여자 마음도 모르고 말할 줄도 모르네요. 그쪽 같은 사람은 절대 여자 친구가 있을 리 없을 텐데, 말해요, 나한테 거짓말한 거죠?”“첫째, 그쪽한테 거짓말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 아니네요. 둘째, 거짓말을 하든 말든 그건 제 자유니까 그쪽이 뭐라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셋째, 나한테 더 이상 폭력 사용하지 마요. 안 그러면 당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