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진도 나를 위로했다.역시나 화인당 식구들은 여전히 나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동료들의 걱정에 나는 너무 고마웠다. 이런 동료들이 있기에 나도 안심하고 내 일을 할 수 있다.“나중에 내가 한턱낼게요.”내 말에 다들 기대된다며 무척 기뻐했다.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현성이 들어와 나를 옆으로 끌었다.“수호야, 천수당 쪽은 준비가 끝나서 언제든 오픈할 수 있어. 그런데 지금 작은 문제가 생겼어.”“무슨 문제?”그동안 현성이 천수당 쪽 일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나와 민우는 무척 안심했다.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김진호가 자꾸만 경영에 끼어들고 싶어 해. 게다가 요구가 얼마나 많은지 나랑 너무 안 맞아.”“주해진한테 얘기해 봤어?”“당연히 했지. 그런데 나더러 직접 해결하래. 때리겠으면 때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 주해진도 김진호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진짜 때릴 수는 없잖아.”“가게 오픈 전부터 사업 파트너끼리 싸움하면 앞으로 장사는 어떻게 하겠어?”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주해진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가 정말 김진호 건드리면 엄청 번거로워질 거야.”“내 말이. 내가 걱정하는 게 그거야. 네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당장 주먹을 날렸을 거야. 내 성격 알잖아. 나 그런 거 못 참잖아. 그런데 앞으로 가게 일은 너랑 민우가 도맡아 할 거고 난 기껏해야 두 번째 주인 정도라 그런 일 내 관리가 아니잖아. 내가 끼어들면 문제가 커질까 봐 참았어.”“알았어. 내가 주해진과 잘 얘기해볼게.”이 일은 내가 직접 나서야 했다.현성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너도 좀 휴식하면서 해. 이러다 쓰러져. 어쨌든 몸이 건강해야 다른 일을 할 거 아니야.”나는 싱긋 웃었다.비록 생활이 힘들어도 곁에 이런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게 너무 기뻤다.현성이 떠난 뒤 나는 곧바로 주해진에게 전화해 김진호가 가게 일에 끼어들지 못하게 단도리 잘하라고 했다. [김진호가 또 찾아가서 소란
주해진이 전화를 끊자마자 김진호가 다급히 물었다.“어때요? 정수호가 뭐래요?”주해진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뭐라고 하긴, 당연히 동의하지 않지.”“형. 왠지 정수호 그 자식이 우리 둘을 쫓아낼 것 같아요.”김진호는 일부러 옆에서 부채질했다.하지만 주해진도 바보가 아닌지라 김진호의 속셈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정 심심하면 술집 일 좀 도와주던가. 천수당 쪽은 당분간 끼어들지 마. 오픈하기도 전에 정수호와 사이가 틀어지면 손님은 누가 끌어모아?”김진호는 이대로 포기하는 게 달갑지 않은 듯했다.“나도 의사인데 나더러 술집 알바를 하라는 게 어디 있어요?”“왜? 싫어? 돈만 벌면 되는 거 아니야? 신경 쓸 게 뭐가 그렇게 많아?”“그런데 난 술집 알바 따위나 하기 싫어요. 의사를 하고 싶어요. 정수호도 할 수 있는데 나라고 왜 못해요?”김진호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무엇보다 내가 화인당에 오기 전에 그의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오고 나서 그는 일자리마저 잃었다. 그것만 생각하면 김진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때문에 그날 이후 그는 줄곧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다.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내가 아예 제 머리 꼭대기에 올라 천수당의 책임자까지 되었는데, 저는 일할 자격도 없으니 그 울분을 참을 리가 있을까?김진호는 단순히 돈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때문에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능력이 있으면 해.”주해진의 한마디에 김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진호도 하기 싫은 게 아니다. 다만 천수당은 그가 인수한 게 아니라 결정권도 발언권도 없다.김진호는 제 형이 나와 손잡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절대 나와 내 친구들을 끼워주지 않았을 거다.실패하든 성공하든 모두 김진호의 능력에 달렸지만. 나까지 끼어들었으니 이제 의미는 달라졌다.김진호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때 주해진이 손을 휘휘 저었다.“됐어. 표정 풀어. 당분간은 내 가게 일이나 도와. 천수
나는 강북 한약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약속했기에 그걸 어길 수 없었다.지금 날이 어두워지자면 한참 남았기에 나는 약재상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돌려 만나볼 생각이었다.나는 조용한 찻집 하나를 찾아 사장님이 준 명단을 꺼내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안녕하세요. 혹시 천재 한약 시장의 전광진 사장님인가요?”[누구죠?]“저는 정호섭 사장님 친구입니다. 정 사장님께서 강북 약재 시장 관리를 저에게 맡겨 한번 얘기하고 싶어서요.”[난 할 말 없어요,]상대는 말을 마친 뒤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나는 곧바로 전광진 이름 위에 표기를 하고 다음 사람에게 전화했다.“안녕하세요. 경진당의 이규민 사장님인가요?”나는 상황을 설명했지만 이규민 역시 두말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돌렸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똑같았다.이쯤 되니 모두가 나를 견제하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재 나는 아무런 신분도 없고 말에 힘이 없으니 사장님들이 내 말을 믿지 않는 건 당연했다.하지만 내가 책임을 짊어진 이상 이번 일을 잘 해내야 했다사장님이 예전에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강북 약재시장 사장님끼리 상회를 설립해 평소 회의를 할 때면 그곳에 모인다고 했었다.나는 곧바로 상회로 차를 돌렸다.상회 문은 열려 있었다. 그렇다는 건 안에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가 들어가려 하니 로비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나를 막아섰다.“잠시만요. 여긴 무슨 일로 오셨죠?”나는 사장님한테 받은 배지를 꺼내 들었다.“전 정호섭 사장님 사람입니다. 잠시 사장님 대신 이곳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프런트 직원 두 명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상황을 보고하겠다며 나더러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바로 들어가려 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나를 막아선 채 들여보내지 않았다.“안 됩니다. 이건 상회 규정입니다.”나는 두 사람이 일부러 나를 막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한참이 지나
나는 상대의 말을 무시했다. 두 사람과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그 사람들이 계속 안 나오고 버틸 수 있을지 두고 볼 생각이었다.프런트데스크 직원은 나를 빤히 보더니 결국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했다.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내 상황을 어딘가에 회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나는 상관없다는 듯 핸드폰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장을 빼입은 중년 남성 몇 명이 걸어 나왔다.“이 사장님, 전 사장님...”프런트데스크 직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하더니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나는 그제야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내 앞에 나타난 몇 명을 바라봤다.상회 회원은 10명인데 여기 지금 서 있는 사람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하지만 이규민과 전광진은 정 사장님을 제외하고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두 사람이 여기 왔다는 건 분명 뭔가를 상의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나를 끼워주지 않으려 한다는 뜻이었다.나는 빙 돌려서 말하지 않고 목적을 말했다.“정 사장님이 상회의 책임권을 저에게 넘겨주셨어요. 그러니 두 분과 얘기하고 싶어요.”그때 키가 별로 크지 않은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얘기할 테면 정 사장이 직접 와서 얘기하라고 하게. 우린 자네를 모르고 얘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으니까.”“정 사장님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동안 정 사장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다들 잘 알 텐데 이제 와서 이렇게 대하는 겁니까?”이들을 제압하려면 정 사장님 이름을 내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절대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다.아니나 다를까 내 말에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나와 얘기할지 토론하기 시작했다.이런 상황에서 나는 수동적인 면모를 보이면 안 된다. 그러면 끝까지 끌려다니게 될 테니까.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분야 베테랑이라 그들 눈에 나는 그저 이제 막 사화에 발을 디딘 애송이일 거다. 내가 충분한 능력과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이자들은 절대
하지만 내가 짊어지기로 한 이상 끝까지 책임질 생각이다.나는 상회 사람들의 태도는 이미 알았으니 나머지 사람들을 찔러봐야 했다.나는 더 이상 상회 사람들에게 매달리지 않고 상회를 떠났다.그러려면 다른 사람들과도 만나 봐야 했다.사장님 말로는 상회에 민건희라는 사람도 있는데 사장님과 마찬가지로 강북 약재 시장의 균형을 유지하는 걸 주장한다고 했다.때문에 나는 중점을 민건희에게 옮겼다.다만 연락이 닿았는데 민건희는 현재 다른 곳에 있어 이틀 뒤에나 만나 뵐 수 있었다. 우리는 그가 돌아온 뒤 바로 만나기로 약속했다.날이 어두워져 나도 이제는 병원에 돌아가야 했다. 가는 길에 나는 애교 누나를 위해 저녁을 샀다.“애교 누나, 이렇게 매일 병원에 오면 아버님이 뭐라 하지 않아요?”우리는 함께 식사하며 얘기를 나눴다.“우리 아빠도 사실 사리에 밝은 분이라 태연히 사고를 당한 걸 아시고는 가보라고 오히려 부추겼어요.”그렇다면 이태웅은 단지 자기 딸의 배우자에게만 요구가 높은 게 틀림없었다.게다가 왕정민이 이미 애교 누나한테 깊은 상처를 줬으니 이태웅은 딸이 새로운 상대와 연애하는 걸 더 신경 쓰는 건지도 모른다.게다가 이태웅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고작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인 데다 아무것도 없고 이런 것도 없으니 내가 이태웅이라도 동의하지 않았을 거다.나는 갑자기 아버지로서 이태웅의 입장이 이해됐다.애교 누나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수호 씨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네요.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수호 씨가 우리 아빠랑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두 사람 모두 내 가족이라서 난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아요.”“걱정하지 마요. 전 절대 누나 아버지와 맞서지 않을 거예요.”나는 누나한테 걱정 끼칠 수 없었다. 그건 내 초심과 맞지 않다.애교 누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8시가 넘으니 형수의 셋째 여동생 고아연이 병실에 왔다. 보아하니 오늘 밤새 형수를 간호할 목적으로 온 모양이었다.나는 고아연에 대한 인상이 별로 없다. 그저 고수
“수호 씨가 태연의 일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건 알겠는데, 그럴수록 빨리 기분 조절해야 해요. 태연은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데 하루빨리 컨디션 조절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어떡하려고요?”애교 누나가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는 나도 알고 있다.하지만 나도 내 의견을 어필했다.“문제는 저 여자가 형수 친동생인데 슬퍼하지도 않는 것 같아 화가 난 것뿐이에요.”“아연이 성격 항상 저래요.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수호 씨도 지내다 보면 알게 될 거예요.”애교 누나는 고아연과 많이 만나 봤기에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때문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식사를 마친 뒤 나는 애교 누나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나는 애교 누나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싶었지만 애교 누나는 기어코 거절했다.“누나, 이제는 제가 집에 바래다주는 것도 싫어요?”나는 애교 누나가 나를 일부러 멀리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그 말에 애교 누나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그런 생각 하지 마요. 난 수호 씨를 멀리하려는 생각 한 적 없어요. 그저 우리 아빠한테 들키면 또 수호 씨가 듣기 싫은 소리 들을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전 두렵지 않아요. 그런 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요. 저 정말 누나를 직접 바래다주고 싶어요.”애교 누나랑 단둘이 있었던 게 너무 오래전이라 나는 그 느낌이 너무 그리웠다.그제야 애교 누나는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래요. 그럼 오늘 저녁에는 수호 씨가 바래다줘요.”나는 너무 기뻐 얼른 시동을 걸었다. 가는 내내 우리는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게다가 누나의 근황도 물어봤다.하지만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새로 애교 누나가 사는 동네에 도착했다.애교 누나가 차에서 내리려 할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누나는 내리려던 동작을 멈추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네? 할머니가요? 별일 없는 거죠? 그럼 오늘 집에 안 돌아와요?”애교 누나가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걱정되어 물어봤다.“무슨 일인데요? 할머
“그동안 밖에서 지내는 게 너무 즐거웠나 봐요? 이제는 나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애교 누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깜짝 놀라 다급히 설명했다.“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애교 누나가 제 마음속에 있는 위치는 변한 적이 없어요. 아니에요. 들어갈게요.”내가 마지못해 집안에 발을 들이자 애교 누나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우리는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애교 누나는 앉자마자 고양이처럼 내 다리 위애 누워버렸다.“수호 씨, 난 하루빨리 수호 씨랑 가정을 꾸려 매일 이렇게 수호 씨 다리 위에 눕고 싶어요.”애교 누나는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나는 애교 누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저도 그러고 싶어요. 제가 꼭 노력해서 성과를 따내 누나를 아내로 맞이할게요.”애교 누나는 내 허리를 꼭 껴안았다.“수호 씨, 나 밖에서 일자리 찾고 싶어요.”“갑자기 일자리는 왜요?”“매일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게 너무 심심해요. 그리고 계속 이렇게 지내면 인맥도 점점 줄어들 거예요. 나도 남주처럼 정부 기관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러면 나중에 수호 씨를 도와줄 수 있잖아요.”애교 누나가 이런 생각까지 하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나는 애교 누나를 응원했다.“일하고 있고 싶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해요. 저를 도와주는 일을 찾느라 하지 말고요. 전 남자예요. 그러니 누나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누나를 지켜줘야 해요.”“그래요. 알았어요.”우리는 함께 티브이를 봤다. 그러다 시간이 괜찮다 싶을 때 나는 애교 누나에게 말했다.“애교 누나, 시간도 늦었으니 전 이만 가볼게요.”“운전 조심해요.”애교 누나는 내가 간다고 하니 무척 아쉬워했다. 내가 남지 않은 이유는 예전처럼 내 욕망만 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나는 남자답게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게다가 애교 누나도 분명 내가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일 걸 원할 거다.나는 오늘 셋집으로 돌아갔다.현성은 이미 제집으로 돌아갔고 민우도 임설아를 만나러 간 터라 집에는
나는 다급히 인형을 옆에 버리며 설명했다.“네가 지금 뭔가 오해하고 있는 듯한데 이건 내 물건이 아니야.”주선영은 얼굴이 빨개져서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아무 말도 할 것 없어요. 나도 다 알아요. 그동안 제 언니가 집에 돌아가 오빠 혼자 성적 수요가 생긴 건 당연해요.”주선영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그 말에 나는 너무 어이없었다.주선영은 여전히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애교 누나를 만나지 못하고 참은 바람에 이런 섹스돌을 사서 욕구를 해소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나는 내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침대에서 뛰어내려 단번에 그 섹스돌을 밟아 터뜨렸다.“이러면 믿겠지? 이거 정말 내 거 아니야. 난 이런 거 사용할 필요가 없어.”주선영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그 말은 오빠 주변에 여자가 많아 아무 여자나 만나고 싶으면 만난다는 뜻이에요?”“생각이 왜 또 그런 데로 튀는 건데?”“그럼 아니에요? 그게 아니면 왜 그런 말을 하는데요?”주선영은 기분이 안 좋은 듯 투덜댔다.하지만 나는 그건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짜증만 냈다.“됐어. 넌 일찍 가서 휴식해. 시간이 늦어서 나도 피곤해.”주선영은 보기 드물게 나를 째려봤다.“지금 나를 쫓아내는 거예요?”“잘 때가 됐다고 귀띔하는 거야.”“내가 오빠 주위에 있는 언니들보다 못하다는 거 나도 알아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싫은 티를 낼 필요는 없잖아요.”“내가 언제 싫은 티를 냈다고 그래? 내가 뭘 했는데?”나는 너무 억울했다.그런데 주선영이 오히려 눈시울을 붉히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됐어요. 방해 안 할게요. 가면 될 거 아니에요.”말을 마친 주선영은 홱 뒤돌아 방을 나가버렸다.그 모습에 나는 약간 벙쪘다.나는 너무 화가 나서 터진 인형을 구겨서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었다.“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내일 날 밖는 대로 널 내다 버릴 거야.”모든 걸 마친 나는 그제야 침대에 누웠다. 그때 핸드폰이 울리더니 현성이 문자를 보내왔다.[내가
“서 사장님, 괜찮습니까?”“서 사장님...”룸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서윤기를 부축했다.서윤기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지만 코에서 이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젠장. 누군데 서 사장님을 때려?”사람들은 나를 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서윤기가 손을 뻗자 사람들은 단번에 입을 다물었다.서윤기는 휴지로 피를 닦더니 나를 싸늘하게 바라봤다.“정수호,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이렇게 큰 Y시에서 다 만나고.”나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정 사장님이 여기로 인도해 주셨어. 네놈이 여기 있는 줄 알고 너 처리하라고 여기로 이끌어 주셨어.”서윤기는 그 말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호섭 말이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정호섭이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신통하다면 왜 자기 죽음도 못 막았겠어?”정 사장님이 불상사를 당한 뒤 모든 사람이 비통했는데, 서윤기는 오히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울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룸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그때 이동민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젠장. 감히 내 앞에서 서 사장님께 폭력을 써?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이동민은 키가 크고 덩치가 산만 했다. 듣기로 이동민은 예전에 백정이라서 아주 포악했었다는 말도 있다.나 역시 그의 몸에서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도살업자는 설령 그 일을 그만두더라도 피부와 핏속까지 스며든 피비린내를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이동민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커다란 주먹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두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나와 이동민의 표정은 동시에 일그러졌다.이동민은 내 주먹이 그렇게 단단할 걸 몰랐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 주먹을 받아낼 줄 몰랐는지 살짝 당황했다.나 역시 꽤 센 이동민의 주먹에 흠칫 놀랐다.싸움을 배운 뒤로 나는 이 정도 상대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주먹끼리 부딪힌 뒤 한동안 팔이 저리더니 잠
버섯전골은 Y시 명물이라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다. 어느새 냄비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방안 전체에 퍼져 버섯 냄새가 가득했다.윤지은은 사모님한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유미야, 너 요즘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많이 먹어.”“그만 집어 줘. 내가 직접 먹을 수 있어. 두 사람도 먹어.”우리는 묵묵히 전골을 먹었다.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분위기는 다소 조용했다.나는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워주려고 했지만 사모님이 별 반응이 없고, 윤지은도 협조하지 않아 혼자 원맨쇼를 하는 느낌이 들어 포기했다.“차 마시고 싶어...”사모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제가 물어볼게요.”무엇보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낸 사모님의 요구를 얼른 만족시켜 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큰 방을 지나다가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안을 들여다봤다.그랬더니 내 눈에 익숙한 실루엣, 서윤기가 들어왔다.‘서윤기가 Y시에 왔다고?’나는 얼른 몸을 숨긴 채 안대성에게 전화했다.“서윤기를 감사하라고 했잖아. Y시에 온 건 왜 말 안 했어?”[네? 서윤기가 Y시에 갔다고요? 몰랐는데요? 형님, 제가 부하들한테 서윤기 잘 감시하라고 시켰는데...]안대성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인지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놈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다.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룸 안을 훔쳐봤다.룸 안에는 서윤기 외에 Y시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있었다. 그중 한 중년 남성은 왠지 낯이 익었다.나는 몰래 중년 남자의 사진을 찍어 판자촌 노랑머리에게 보냈다.[이 사람 알아요?]노랑머리는 곧바로 답장했다.[그 사람은 이연화의 아버지 판자촌 터줏대감 이동민이에요.]‘젠장.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이연화와 닮았잖아.’‘이동민이 여기 나타난 데다 서윤기와 웃고 떠드는 걸 보니 설마 정 사장님 교통사고가 서윤기 짓인가?’나는 그럴 가능성이 무척 크다고 생각했다.서윤기가 강북 시장
“한 번에 천만 원? 여기가 뭔 금은방인 줄 알아요?”나도 이제는 돈 좀 있지만 한 번에 음식점에 천만 원을 충전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북에서 최고급 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는 것도 고작 몇백만 원인데, 길가에 널리고 널린 버섯전골 집이 멤버십 카드만 천만 원이라니?매니저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돈 없으면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잠깐!”나는 언성을 높였다.그러자 매니저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왜요? 또 무슨 일이죠?”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난 이 가게가 악의적으로 손님들에게 소비를 강요한다고 의심되거든. 그래서 지금 신고할 생각이야.”내가 신고하겠다는 말에 매니저는 얼굴색이 싹 바뀌더니 나를 삿대질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당신 미쳤어? 본인이 밥 먹을 돈 없으면서 왜 남의 가게를 신고해?”“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더니, 왜? 내가 신고할까 봐 두려워? 불법 경영한 거 걸릴까 봐 걱정돼? 그렇다면 더 신고해야겠네. 이렇게 부도덕한 가게는 문 닫아야 하니까.”윤지은은 네 행동을 지지했다. 심지어 사모님 역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매니저의 태도가 너무 괘씸해 밥을 먹지 못하더라도 이분을 풀 생각이었다.내가 정말 전화하자 매니저는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렸다.“알았어요. 오늘 일은 저희 측 책임이니 사과드리죠. 지금 당장 자리 내어드릴게요. 됐죠?”“어디? 홀? 아니면 구석?”내가 따져 물었다.그러자 매니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당연히 룸을 내드려야죠. 하지만 큰 룸은 이미 손님이 꽉 차 작은 룸밖에 남지 않았어요. 비용은 사과하는 의미에서 받지 않겠습니다.”나는 손을 뻗어 매니저의 말을 잘랐다.“됐어. 값은 원래대로 받아요. 안 그러면 음식에 또 뭔 짓 할지도 모르니까.”매니저는 내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매니저가 비열한 소인배라고 공개 처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나는 윤지은과
결국 어쩔 수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내려가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Y시에 버섯전골 맛집은 꽤 많았다. 하지만 사모님 기분이 안 좋은 지금 작은 가게를 가면 보는 눈이 많고 시끄러워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때문에 나는 한적한 가게를 찾으려고 한참을 더 걸었다. 다행히 그런 가게를 찾는데 겨우 성공했다.“안녕하세요. 프라이빗룸 하나 예약하게요.”이 가게는 환경도 좋고 손님도 많은 걸 보니 맛도 괜찮은 듯 시었다.“큰 룸 하나가 남아 있는데 괜찮으신가요?”“큰 룸은 얼마인데요?”“큰 룸은 기본 소비가 60만 원 이상입니다.”“좋아요. 그걸로 주세요.”60만 원이면 괜찮았다.룸을 예약한 뒤 나는 또 운전해서 윤지은과 사모님을 픽업하러 호텔로 돌아갔다.두 사람은 어느새 현지 특색이 담겨 있는 꽃무늬 옷으로 갈아입었다. 역시 절세 미녀들이라 그런지 뭘 입어도 예뻤다.물론 나는 칭찬의 말을 아꼈다. 지금 장소와 분위기에 그런 칭찬은 맞지 않았으니까.잘못했다가 또 윤지은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나는 일부러 맞을 짓을 골라 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우리는 버섯전골 가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하테 큰 룸 예약을 도와줬던 종업원이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손님, 죄송하지만 큰 룸은 이미 다른 분이 예약하셨습니다.”“방금 분명 내가 먼저 예약했잖아요. 왜 남의 방을 함부로 다른 손님한테 내줘요?”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종업원은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인터넷 오류가 났는지 그 방은 이미 예약한 분이 있어요.”이미 이곳에 왔는데 그대로 갈 수 없었기에 나는 차선책을 제시했다.“그럼 작은 방이라도 줘요.”“죄송하지만 오늘 가게에 있는 모든 룸은 이미 예약돼서 남은 룸이 없어요. 괜찮으시면 홀에 있는 자리를 내어줄게요. 동남쪽에 한 테이블이 비어 있어요.”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당신들 장사 이따위로 할 거야? 내가 예약한 자리가
요즘 겪은 일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도 가끔 감회가 새로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특히 사장님처럼 좋은 분이 유골이 된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우리는 한동안 돌아갈 수 없기에 사모님은 부모님을 불러 사장님의 유골함을 강북으로 가져가 매장했다.두 어르신은 충격이 너무 컸는지 순식간에 더 늙어진 것 같았다. 항상 친아들처럼 생각했던 사위가 그렇게 됐으니. 간암인 줄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기 어려웠는데 또 이런 불상사를 겪었으니 당연히 충격이 컸을 거다.하지만 임민수는 딸이 더 걱정됐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미야, 너 정말 강북에 안 돌아갈 거니?”사모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절대 안 돌아가요. 엄마, 아빠, 호섭 씨는 두 분께 맡길게요.”사모님은 무척 아쉬워하며 사장님의 유골함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그 순간 사모님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아쉬움과 슬픔,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도 한데 섞여 있었다.나는 절친한 사람을 잃어본 적 없어 사모님의 심정을 깊이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알고 있었다.나와 윤지은은 사모님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사모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아무 말도 하지 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니까.”사모님은 매우 침착했고 엉엉 울지도 않았다.그런 사모님의 모습이 나와 윤지은은 모두 걱정되었다.하지만 사모님이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내 상태는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슬프고 안타깝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지 않을 거야. 호섭 씨도 내가 이러는 모습 원하지 않을 거야.”“유미야,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야.”윤지은은 감개무량하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이내 나를 째려봤다.‘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무엇보다 난 아직도 내가 대체 언제 무엇 때문에 윤지은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결국 나는 할 수 없이 묵묵히 두 사람을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
우리는 희망을 이연화에게 거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때문에 그 백수들이 소식을 전하기 전에 우리는 호텔에서 기다리기만 했다.하지만 윤지은은 호텔에 갇혀만 있으면 사모님이 답답해할까 봐 한가할 때면 사모님과 함께 산책하곤 했다.사모님이 자기 컨디션을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하지만 동력과 희망이 없는 탓에 사모님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Y시에 온 지 사흘 만에 강한나는 다시 강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떠나기 전 우리와 함께 시사 자리를 가졌다.“정말 여기 남아서 조사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강한나가 말했다.“알았어. 나도 도와줄 건 없으니 성공하길 빌게.”나와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사모님이 화장실 간 틈에 강한나는 얼른 우리에게 말했다.“호섭 씨 시신 어느 때 화장할 거야?”나와 윤지은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몰라. 유미가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그 말에 강한나가 말했다.“시체를 화장하지 않아도 시체에서 단서를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난 고인 편히 쉬게 해주는 게 좋다고 봐.”“하. 그런데 문제는 유미가...”사모님이 아쉬워하는 게 문제다.화장하지 않으면 그래도 보러 갈 수 있지만 화장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사실 나도 강한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우리도 그 말 이해해요. 사모님은 저희가 설득해 볼게요.”식사를 마친 뒤 강한나는 그 길로 떠났다.나와 윤지은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두 사람 먼저 돌아가. 난 장례식장에 가볼 거니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사모님이 또 사장님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도 규정이 있는데, 아무 때나 들여보낼 수 있을 리가 없다.그건 다른 것도 아닌 시신이니까.그때 윤지은이 입을 열었다.“유미야, 이번에 보고 난 뒤 호섭 씨 편히 자게 해주자.”“안 돼!”사모
“왕정민 이 파렴치한 놈. 어떻게 이럴 수 있지?”분명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뻔뻔하게 애교 누나한테 집착하다니.“애교 누나는 그럼 어떻게 처리했어요? 신고는 했어요?”[애교가 예전보다 많이 강해졌더라고요. 그걸 다시 왕정민한테 보냈어요. 심지어 안에 뭔갈 더 추가해서.]“네? 하하. 애교 누나가 정말 변했네요.”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것도 다 왕정민 때문에 할 수 없이 변한 거긴 하지만요. 애교가 만만한 줄 알고 애교만 괴롭히다니. 그렇게 대단하면 그 여자를 그렇게 괴롭히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 할 걸요.][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여자들은 뭐 드세고 화를 자주 내는 여자가 되고 싶어서 되겠어요? 다 남자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변한 거죠.][특히 우리 여자들은 가끔 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독하지 않으면 남들이 괴롭혀도 되는 줄 알아요...]나는 형수의 말에 백 번 동의한다.애교 누나가 이토록 강해졌다니 나는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형수도 마찬가지고.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내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다.형수와 한참 얘기한 뒤 나는 곧바로 애교 누나에게 전화했다.“누나, 왕정민 일은 왜 말 안 했어요?”애교 누나 목소리는 여전히 간질거리고 듣기 좋았다.[수호 씨가 Y시에 있는데 얘기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수호 씨 가 나 때문에 와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나 이제 많이 변했어요. 다른 사람의 보호만 받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그동안 아빠한테 반항하면서 독립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큰소리쳤는데, 지금껏 한 번도 그렇게 산 적이 없어요.][예전에 결혼에 묶여 나를 잃었고, 행복한 결혼만 있으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았어요. 여자는 자기 마음이 강해져야 진짜 강한 거예요.]애교 누나의 말을 들으니 나는 순간 누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이 사람이 아직도 내가 알던 나약하기만 하고, 무
“내가 방 하나 더 잡을게요.”나는 말하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사모님 목소리가 들렸다.“수호 씨, 먼저 내 침대에서 눈 붙여요.”고개를 돌아보니 사모님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누울 공간을 내주었다.나는 속으로 거절했다.비록 사모님이 다른 마음 없이 그저 나를 휴식하라고 호의를 베푸는 거라는 걸 알지만, 사장님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사모님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말도 안 됐다.게다가 윤지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데, 내가 동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결국 거절했다.“아니에요. 가서 다른 방 구하면 돼요.”나는 다급히 방을 나가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처음 온 날 우리는 사실 싱글룸 세 개를 잡았다. 하지만 나중에 사모님 상태가 걱정되어 나와 윤지은이 사모님 방에 들어와 지내게 되면서 나머지 싱글룸 두 개를 취소했다.확인 결과 더블룸 하나가 나왔다는 말에 나는 얼른 그 방을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과 윤지은이 더블룸에서 함께 지내고 내가 싱글룸에서 지내면 되니까.나는 카드키를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조용한 데다 환경도 좋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내가 침대에 눕기 바쁘게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전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수였다.요즘 사장님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달려 다니느라 형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때문에 마침 조용한 틈을 타 나는 형수와 얘기하려고 여상 통화를 받았다.형수는 사모님 상태를 걱정하며 일의 진전을 물어봤다.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쉽지 않아요. 조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수호 씨 사장님 내외가 수호 씨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번 기회에 유미 씨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형수가 말했다.그 말에 나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네, 저도 알아요. 형수는 요즘 어때요?”[좋아요. 잘 먹고 잘 자고 이제 천천히 걸을 수도 있어요.]“진짜예요? 사진 찍어 보내 봐요.”나는 너무 기뻐 흥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