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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6화

Author: 바람노래
구나린이 말했다.

“난 너랑 달라.”

하재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뜻이야?”

“너는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이십 년이 넘게 살다가 이제야 이혼했잖아. 난 못 해. 난 그렇게까지 나 자신을 속이면서 살지 않아.”

“나도 사정이 있었어!”

하재언이 다급하게 말했다.

“너도 알잖아.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강한 사람이었는지...”

“내가 너였으면 집에서 나왔을거야. 어른들 통제에서 벗어났을 거라고. 가진 것 하나 없이 시작하더라도, 내 힘으로 살아가면 아주 형편없이 살게 되진 않는다고 생각해.”

“넌 집안이 주는 부와 지위를 놓지 못하면서, 한편으론 어른들이 네 결혼에 간섭했다고 원망하잖아. 반항할 용기조차 없었던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남의 사랑을 의심해?”

하재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구나린이 말했다.

“그래서 난 너랑 달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위해 어디든 가고, 위험도 감수하고, 가진 것도 다 내려놓을 수 있어.”

하재언이 말했다.

“나랑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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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혁은 눈 한번 제대로 깜빡이지 못했다.그도 알고 있었다. 요즘에는 출산 과정이 예전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그래도 출산 중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었다.만약 위험한 일이 서하에게 벌어진다면, 은혁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안 낳아.’‘앞으로는 다시는 안 낳아.’분만실 밖에서 기다리는 마음이 이런 것이었구나.초조하고, 불안하고, 겁이 났다.마침내 ‘산모와 딸 모두 건강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은혁은 벽에 기대듯 몸이 풀려 버렸다. 기쁨에 겨워 눈물까지 흘렀다.이한이 서하의 뱃속에서 자라고 태어나는 동안, 은혁은 서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 그것은 은혁에게 오래 남은 아쉬움이었다.이제 은혁은 직접 지켜보았다. 어린 생명이 서하 뱃속에서 자라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일을.그 감정은 말로 이루 다 설명하기 어려웠다.자랑스러움도 있었고, 벅찬 안도도 있었고, 마음 아픔도 있었으며, 걱정도 있었다.이제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났고, 은혁은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출산 뒤 서하는 몹시 지쳐 있었다.은혁은 아이를 한 번 들여다볼 겨를도 없었다. 그는 손을 들어 서하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고, 서하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여보, 고생했어.”은혁의 눈가에는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사랑해. 정말 잘했어. 우리한테 딸이 생겼어.”아들도 있고 딸도 있었다.은혁에게는 더 바랄 것 없는 삶이었다.딸이 백일을 맞았을 때, 은혁은 성대한 백일잔치를 열었다.막 태어났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 아기는 뽀얗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해서 인형처럼 예뻤다.갓 태어났을 때 이한은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조금 의아해했었다.‘동생이 왜 이렇게 못생겼지?’‘꼭 작은 원숭이 같아.’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아기는 점점 예뻐졌다.커다란 눈은 까만 포도 같았고, 작은 입술은 빨간 앵두 같았다.인형보다 더 예뻤다.백일잔치는 무척 화려했다. 은혁은 온 세상에 자신에게 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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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창문에 붙은 장식들은 전부 구나린과 엄선호가 직접 오려 만든 것이었다.실물처럼 정교하다고 하긴 어려웠지만,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맛이 있었다.구나린은 그를 위한 재료도 꽤 많이 사들였다. 엄선호와 함께 이것저것 손으로 만들고, 완성된 것들을 집 안 곳곳에 놓아두니 공간에 제법 운치가 더해졌다.설을 맞았지만 가족들은 큰 호텔로 가지 않았다. 집안 셰프에게 따로 야근을 시키지도 않았다. 가족 몇 사람이 직접 주방에 들어가 설날 저녁상을 차렸다.서하는 집안일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임신 중이라 더더욱 손댈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구나린의 요리 실력은 없는 셈 쳐도 무방했다.결국 주방의 주력은 은혁과 엄선호, 두 남자의 몫이 되었다.장인과 사위 같은 관계라고 하기에는 엄밀히 말해 조금 애매했지만, 두 사람은 이미 마음속으로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고 있었다.은혁과 엄선호는 주방에서 손발이 꽤 잘 맞았다. 사랑하는 여자들이 모두 요리를 하지 못하다 보니, 평소에도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면 두 사람은 종종 주방에 들어가곤 했다.그 경험이 이런 날 제대로 빛을 발했다.어린 이한도 주방에서 나름대로 거들었다.은혁은 평소에도 이한에게 자주 가르쳤다. 남자는 뭐든 할 줄 알아야 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하며,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그래서 이한도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언젠가는 제대로 된 좋은 남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올해 설 연휴 동안 잡혀 있던 인사 자리와 모임들은 엄선호와 은혁이 상의한 끝에 전부 취소하기로 했다.구나린과 서하의 의견도 물었고, 두 사람 역시 동의했다.그래서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부터 연휴가 끝날 때까지, 가족들과 만나 식사하는 일 외에는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고, 누구도 집으로 부르지 않았다.가족들은 조용하고도 즐겁게, 따뜻한 새해를 함께 보냈다.설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날이 되어서야 은혁은 회사에 잠시 들렀다. 직원들에게 설 선물을 챙겨 주고, 밀린 일 몇 가지를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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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정이 말했다.“저도 당연히 알아요! 지난번에 유 대표님이 마음대로 만져도 된다고 했잖아요. 유 대표님이 좋다고, 기꺼이 괜찮다고요. 왜요, 이제 와서 딴말하시는 거예요?”“딴말하는 게 아니라...”민석은 난처한 듯 말했다.“네가 마음대로 만져도 되는 건 맞아...”“분명히 싫은 거잖아요!”“내 말 아직 안 끝났어.”민석이 말했다.“하지만 너도 내 입장은 좀 생각해 줘야 하지 않아? 나는 나무토막 아니야. 너는 여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네가 그렇게 만지면 나, 나도 힘들어져.”“알아요.”아정이 말했다.“결국 그런 쪽 얘기잖아요.”민석은 더 곤란해졌다.“아정아, 우리 이 얘기는 안 하면 안 돼?”아정이 원하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아정이 원한다고 해도 민석은 아정과 그런 관계가 될 수 없었다.아직은 때가 아니었다.아정이 민석을 사랑하게 되기도 전에 두 사람 사이에 실질적인 관계가 생긴다면, 민준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게다가 민석 자신도 그런 식으로 일이 흘러가길 바라지 않았다.그래서 아정의 이런 행동은 민석에게 너무 버거웠다.“전 얘기할 건데요!”아정은 제멋대로 굴었다.“유 대표님은 아직도 저를 어린애로 보는 거죠?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거잖아요.”“네가 어린애였으면 내가 널 좋아할 수가 없지.”민석이 말했다.“그러면 난 완전 쓰레기 되는 거잖아.”민석의 주변에 여자가 많았지만, 나름의 선은 분명히 지켰다.막 성인이 된 어린 모델 같은 부류는 건드리지 않았다.민석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성숙한 여자들이었다.아정도 궁금해서 알아본 적이 있었다.“그럼 지금 유 대표님 태도는 뭔데요?”“널 존중하는 거야.”민석이 말했다.“남자는 자극에 약해. 네가 몇 마디만 해도, 내가... 너를 존중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까 봐 겁나.”두 사람은 온천수 안에 서 있었다.따뜻한 물이 몸을 감싸니, 괜히 나른해졌다.아정은 민석과 말다툼하느라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즐기러 온 거지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966화

    민석은 조금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물론 아정과 가까이 있고 싶었다.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자기 몸이 너무 솔직해서... 민석의 허락도 없이 아정에게 무례한 반응을 보일까 봐 두려웠다.하필 아정은 겁도 없었다. 가끔은 맥락을 알 수 없는 말을 툭 던져, 민석의 심장을 정신없이 뛰게 만들곤 했다.“이리 와 보세요!”아정이 서운한 듯 말했다.“저 좋아한다면서요. 그런데 왜 그렇게 멀리 있어요?”민석이 말했다.“좋아하니까 더... 널 존중해야지.”“정말 저를 존중하고 싶으시면, 애초에 저랑 같이 온천을 하시면 안 됐죠. 이미 같은 탕에 들어와 놓고 이제 와서 뭘 그렇게 조심하세요.”틀린 말은 아니었다.민석은 몇 초쯤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정 쪽으로 걸어갔다.그리고 일어나자 가슴은 목욕 타월에 가려져 있었지만, 복근은 그대로 드러났다.수영복 바지가 하이웨이스트도 아니어서 가릴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아정은 부끄러움이라는 걸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평소에도 영상이나 잡지를 볼 때 남자 모델의 복근을 빤히 보곤 했다.지난번에 직접 만져 보고 감촉이 꽤 좋다고 느꼈던 터라, 이번에도 사양하지 않고 민석의 배를 바라보았다.민석은 얼른 적당히 떨어진 곳에 앉았다.아정이 이렇게 바라보기만 해도 민석은 버티기 힘들었다.민석도 예전에는 욕구가 강한 남자였다.그런데 여자를 멀리한 지 얼마나 됐는가?민석은 진짜 스님도 아니고, 모든 감정과 욕망을 버린 사람도 아니었다.오히려 그동안 쌓였던 욕구가 아정 한 사람에게만 향해 더 크게 터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아직도 그렇게 멀리 앉으시네요.”민석이 앉아 버리자 복근이 보이지 않았다.아정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뭐가 그렇게 무서워요? 제가 유 대표님을 잡아먹기라도 해요?”민석은 속으로 생각했다.‘네가 날 잡아먹어? 내가 너를 잡아먹을까 봐 무서운 거지.’아정은 갑자기 손을 들어 민석에게 물을 끼얹었다.민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머리부터 얼굴까지 그대로 물을 맞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965화

    아정은 탕 가장자리에 엎드린 채 해비를 달래며 놀아 주고 있었다.민석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아정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허니는 어때? 힘들어 보이면 사람 불러서 먼저 보내게 할게.”아정은 예전에도 몇 번 허니를 데리고 외출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허니는 꽤 얌전하게 잘 따라와 줬다.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달랐다.아마 호텔에 처음 들어올 때 들렸던 이상한 새 울음소리 때문일지도 몰랐다.그때부터 허니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그래요.”아정도 걱정이 됐다. 허니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까 봐 마음이 쓰였다.“누구한테 맡기실 건데요?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해요.”“걱정 마.”민석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전화를 걸어 그 일을 바로 지시했다.전화를 끊은 뒤 민석이 말했다.“내 비서야. 너도 본 적 있어. 일 처리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야.”민석의 비서 이야기가 나오자 아정은 떠올렸다.안경을 쓴, 차분하고 반듯해 보이는 남자였다.아정이 말했다.“전 예전부터 유 대표님 옆에 있는 비서나 보좌진은 다 여자일 줄 알았어요.”“왜 그렇게 생각했는데?”“유 대표님 성격이면 여자 비서 한 명쯤 곁에 두는 게 더 자연스럽잖아요.”민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설명했다.“내 비서랑 보좌진은 늘 남자였어.”아정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회사 사람은 안 건드린다는 거네요!”민석은 씁쓸하게 웃었다.“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그래도 나한테 일은 일이고, 사생활은 사생활이야.”민석은 여자 문제로 자신의 업무가 흔들리는 일만큼은 절대 만들지 않았다.“좋아요.”아정은 해비의 턱 밑을 살살 만져 주며 달랬다. 해비가 얌전히 있도록 진정시켰다.“일단은 믿어 드릴게요.”민석은 아정이 귀여우면서도 어쩔 줄 몰랐다.“왜 일단인데? 내가 너한테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잖아.”아정이 말했다.“거짓말 안 한다면서요. 저는 유 대표님이 정말 여기서 며칠 묵었다는 말도 안 믿어요.”민석은 증명해 줄 사람까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561화

    서하는 엄마에게 예전 일을 자세히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렇게만 말했다.“예전에 하 변호사님이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그 일로 소진이가 많이 힘들어했죠. 그래도 소진은 원래 비혼주의예요. 제가 오래 봐왔는데, 그 생각이 변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구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이해돼. 요즘은 결혼 안 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잖아.”집안 어른들이 간섭하지 않으면 남들이 굳이 나서서 말할 일도 없었다.설령 뒷말이 조금 돌더라도 직접 관련 없는 사람에게까지 큰 영향이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다만 솔직히 말해 서하는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24화

    서하는 이혼하기 전에 맡고 있던 일들을 깔끔히 마무리해 두려 했다.11시가 좀 넘었을 무렵, 시현에게 메시지가 왔다. 몇 가지 알바 자리를 알아봤는데, 서하에게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조심스러운 제안이었다.시현이 보내 준 목록을 서하는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았다.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제시된 보수는 대부분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중 하나는 화공 공장 일이었는데, 급여가 꽤 높았다.서하가 자세히 물어보자, 시현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문자메시지로 연락하는 게 불편해서 전화했어.]서하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그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39화

    밤 10시가 넘은 시간, 혼자 사는 서하는 당연히 안전에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집 밖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이 노크 소리가 몇 번 더 이어졌다.서하는 더 경계하며 신발장 위의 핸드폰을 들고, 언제든 신고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계속 대답 없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밖에서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이내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야. 문 열어.”‘배은혁?’서하는 경계를 풀고 문을 빼꼼 열며 의아한 듯 물었다.“당신 여긴 왜?”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은혁이 문을 밀치고 성큼 안으로 들어왔다.서하는 옆으로 밀려나며 미간을

  •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제37화

    서하의 또 다른 자아가 속삭였다. ‘임서하, 뭘 그렇게 고고한 척해?’‘할 건 다 해놓고, 키스 가지고 유난은...’‘넌 잃을 것도 없잖아. 배은혁 키스, 끝내주는데?’곧 서하의 머릿속 싸움은 멈췄다. 숨 막힐 듯한 쾌감에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시간이 좀 지난 후, 은혁이 마침내 입술을 떼었다.서하는 남편의 목에 축 늘어져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힘이 축 풀려버린 상태였다.은혁은 아내를 틈 없이 단단히 안았고, 두 사람의 몸은 완전히 밀착되었다.“가만히 있어.”은혁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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