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옆에 있던 허지안은 최우진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같은 학교에 선후배 사이인 데다 함께 조별 과제를 한 적도 있는 사이였으니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허지안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이었다.“좋아요. 그러면 우리...”그 순간 송하나가 허지안의 손목을 잡았다.힘은 아주 약했지만, 그 손짓에 담긴 뜻은 분명했다.허지안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는 서둘러 뒷말을 삼켰다.송하나는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최우진을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으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정말 죄송해요. 제 남자 친구가 이따가 올 거라서요. 같이 식사를 하는 건 좀 곤란할 것 같아요.”그 말이 떨어지자 최우진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고, 실망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조금 전 최우진은 송하나와 허지안 둘만 있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 다가가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우연히 마주친 것을 계기로 송하나와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송하나의 남자 친구가 이곳으로 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최우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송하나의 남자 친구는 경계심이 워낙 강해서 다른 남자가 송하나에게 접근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만약 이 일이 어머니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또 한바탕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게 뻔했다.결국 최우진은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그러면 좀 불편하겠네. 내가 괜한 말을 꺼냈네. 그럼 점심 맛있게 먹어.”짧은 말이었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그때 옆에 있던 직원이 마침 다가와 말을 건넸다.“두 분,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송하나는 허지안의 손목을 잡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창가에 있는 빈자리로 향했다.자리에 앉은 뒤에야 허지안은 호기심 섞인 목소리로 작게 물었다.“하나 씨, 하나 씨 남자 친구 정말 여기로 오는 거예요?”아까 이곳으로 오면서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었다.송하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심성빈의 다정함과 배려를 받아들이는 것이 심성빈을 받아들이는 첫걸음이었다.그렇게 생각한 송하나는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블랙 카드를 살며시 집어 들면서 입꼬리를 올리며 싱긋 웃었다.“그럼 일단 챙길게요.”그 순간 심성빈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번졌고,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다.“그래.”다음 날 오전, 송하나는 간단히 외출 준비를 한 뒤 약속 장소에 시간 맞춰 도착했다.멀리서 허지안이 길가에 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지안 씨!”송하나가 가까이 다가가자 허지안은 곧바로 앞으로 나서며 두 팔을 벌리고 송하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무척 반가운 목소리로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하나 씨, 정말 오랜만이에요. 진짜 너무 보고 싶었어요!”“그러게요. 진짜 오랜만이에요.”송하나는 허지안의 활기찬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눈이 휘어질 정도로 즐겁게 웃으며 허지안을 마주 안았다.두 사람은 나란히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천천히 쇼핑을 즐기는 한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허지안은 참지 못하고 한바탕 불평을 늘어놓으며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나 진짜 우리 집 친척들 때문에 미치겠어요. 매년 연말만 되면 연애하라느니 결혼하라느니 얼마나 잔소리를 하는지 몰라요. 올해는 더 심해요. 해외에 있는데도 직접 전화까지 해서 얼른 외국인 사위를 데리고 돌아오래요. 정말 어이가 없다니까요!”송하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 뒤 허지안을 위로했다.“어른들은 원래 다 그렇잖아요. 남의 결혼에 정말 관심이 많다니까요.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영화관 앞을 지나던 중 밖에 걸린 신작 영화 포스터를 본 허지안이 흥미를 보였다.“하나 씨, 요즘 새로 개봉한 이 영화 평이 엄청 좋던데, 마침 시간도 괜찮은데 같이 영화 한 편 볼래요?”“좋아요.”송하나는 흔쾌히 동의했다.두 사람은 매표소에 가서 줄을 섰고, 송하나가 한발 먼저 카드를 내밀며 영화 티켓을 계산했다.영화가 끝난 뒤 밖으로
심용군, 고여진, 백지유가 떠난 뒤 심성빈은 가장 먼저 사람을 시켜 별장 안팎을 깨끗이 청소했다. 심지어 송하나의 방에 있던 매트리스까지 새것으로 교체했다. 다른 사람이 그곳에 머물렀던 흔적을 송하나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이틀 뒤, 심성빈은 송하나와 함께 리조트를 떠나 도심에 있는 별장으로 돌아왔다.차가 멈춰 서는 소리를 들은 가정부가 곧바로 달려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대표님, 송하나 씨. 돌아오셨어요.”“네.”심성빈은 덤덤하게 대꾸한 뒤 가정부에게 짐을 안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가정부는 재빨리 트렁크에 있는 짐을 안으로 옮겼다.그리고 그제야 송하나는 심성빈이 자신이 선물한 꽃을 별장까지 가지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칠 지난 탓에 꽃이 살짝 시들었는데도 심성빈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마치 보물처럼 먼 곳까지 고이 들고 온 것이었다.송하나는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무심코 건넨 작은 선물이었고 값비싼 것도 아니었는데, 심성빈은 그걸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다.송하나의 시선을 눈치챈 심성빈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설명했다.“며칠 동안 이 향을 계속 맡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 없으면 오히려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아서 챙겨왔어.”“성빈 씨, 그게 마음에 들었다면 나중에 마당에 꽃밭을 하나 만들어서 좀 더 많이 심을게요. 그럼 앞으로 매일 성빈 씨 방에 싱싱한 꽃을 가져다 놓을 수 있으니까요.”“좋아. 대신 꽃밭을 가꾸는 일은 가정부에게 맡기도록 해.”심성빈은 송하나가 힘든 일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심성빈은 송하나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방 앞까지 데려다주었다.그리고 손을 들어 송하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당부했다.“너는 일단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 주방에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라고 일러뒀어. 준비가 끝나면 얘기할 테니까 이따가 내려와서 먹어.”송하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네.”방으로 돌아온 송하나는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풍
팔찌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백지유는 심씨 가문의 죄인이 될 것이다.고여진은 백지유가 끝까지 받지 않으려 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일부러 서운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유야, 설마 앞으로 우리 성빈이랑 결혼해서 함께 살 생각이 없는 거니? 그래서 이 팔찌도 받지 않으려는 거야?”그 한마디에 백지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심성빈의 부모님 앞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자신은 그저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털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어머님,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래요.”“그러면 더 사양하지 말고 잘 간직하렴. 이건 우리 마음이야. 심씨 가문이 너를 며느리로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고.”결국 백지유는 하는 수 없이 팔찌를 받았다.“감, 감사합니다. 어머님.”고여진은 그제야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래.”한참 동안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당부의 말을 건넨 뒤, 심용군과 고여진은 순조롭게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비행기에 올랐다.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걸 확인한 백지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며칠 동안 계속 연기하면서 미소를 짓느라 얼굴 근육이 굳어버릴 지경이었는데 다행히 이제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아도 되었다.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백지유를 바라보며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백지유 씨, 며칠 동안 최선을 다해 협조해 주시고 세심하게 배려해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표님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백지유는 손을 내저으며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별말씀을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뭘.”게다가 백지유도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 백지유는 심성빈에게서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았다.“참, 그리고 이 팔찌는 가져가세요. 성빈 씨가 돌아오면 그때 저 대신 전해 주세요.”백지유는 자신의 손에 들린 그 골치 아픈 팔찌를 얼른 처분하려 했다.비서실장은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연신 손을 저으
가정부가 문을 열자 문밖에는 뜻밖에도 심성빈의 비서실장이 서 있었다.“안녕하세요. 회장님, 사모님, 백지유 씨.”비서실장은 허리를 살짝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대표님께서 두 분을 공항까지 모셔다드리라고 특별히 지시하셨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중요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탓에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직접 오시지 못하는 것을 무척 마음에 걸려 하셨고, 제게 두 분께 대신 사과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그리고 트렁크 안에 이곳의 귀한 특산품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두 심 대표님께서 두 분께 드리기 위해 직접 고르신 것들이니 귀국하실 때 챙겨가시면 됩니다.”그 말을 듣자 고여진의 눈빛이 한결 따스해졌다. 심성빈이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준비해 줄 줄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이 녀석도 참. 자기 부모한테까지 이렇게까지 깍듯하게 굴 필요가 있나. 우리가 남도 아닌데 뭘 이렇게 신경을 많이 써.”겉으로는 그렇게 타박하면서도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흐뭇함이 가득했다.비서실장은 빠르게 앞으로 나서며 두 사람의 캐리어를 차에 실어 주었다.모두 자리에 앉은 뒤 차는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공항에 도착한 뒤 고여진은 백지유의 손을 잡고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유야, 나랑 우리 남편이 이렇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너랑 성빈이가 걱정돼서야. 그런데 직접 이곳에 와서 너희 둘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드디어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고여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나이가 들다 보니 우리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이렇게 먼 곳까지 오는 게 쉽지는 않아. 그래서 너희를 자주 보러 오기가 힘들 것 같아. 그래도 둘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잘 지내도록 해. 그래야 우리도, 너희 부모님도 국내에서 마음 놓고 지낼 수 있으니 말이야.”고여진은 그렇게 말하더니 한층 더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앞으로 성빈이가 혹시라도 뭔가 잘못하거나 너를 속상하게 했다면 절대 숨기지 말고 곧바로 나한테 연락해
휴대폰 너머 심성빈은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티 나지 않게 입꼬리를 올려 엷은 미소를 지었다.모든 일이 예상대로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조금의 허점도 없었다.심성빈은 잠시 침묵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해해요. 그렇다면 어머니께서 직접 가시는 게 좋겠네요. 몇 시 비행기예요? 지금 당장 돌아가서 공항까지 모셔다드릴게요.”“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고여진은 곧바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심성빈을 말렸다. “너 요즘 매일 야근하는 데다가 갑자기 출장까지 가게 되어서 많이 피곤할 텐데 우리 때문에 또 오갈 필요는 없어. 괜히 사서 고생하지 말고 너는 네 일이나 열심히 하도록 해. 그리고 잠시 뒤에 지유가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다준다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심성빈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알겠어요.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그리고 도착하면 꼭 연락하세요.”전화를 끊은 뒤 심성빈은 소파에 기대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며칠째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압박감이 그제야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심성빈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때 문밖에서 갑자기 노크 소리와 함께 송하나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성빈 씨, 안에 있어요?”심성빈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었다.송하나는 문밖에 가만히 서 있었다. 단정하고 청초한 이목구비에 헐렁한 홈웨어를 입고 있는 모습이 유순해 보이면서도 예뻤다.“하나야, 무슨 일이야?”심성빈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송하나는 두 손으로 심플하면서도 소박해 보이는 유리 꽃병 하나를 받쳐 들고 있었고, 꽃병 입구에는 들꽃 몇 송이가 꽂혀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면서도 우아했고, 그 사이사이에는 여린 초록빛 풀잎 몇 가닥이 자리하고 있었다.푸른 잎사귀가 꽃을 돋보이게 해 전체적으로 깔끔하면서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살랑이는 바람이 불 때마다 강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