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음식점의 정원은 알록달록 하지는 않지만 온통 초록이라 보는 것만으로 눈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이른 봄의 시린 공기가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세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바로 차로 돌아가기 아쉬워 도혁에게 걷고 싶다는 청을 했다. “추울텐데.” “그러면 오래 말고 잠시만 걸을게요.” 도혁이 어떤 대답도 하지 않자 별로 내키지 않아 하는구나 싶어 마음을 접으려던 찰나 그의 큰 손이 쑥, 세나의 얼굴 근처로 오더니 코트의 깃을 세워 올렸다. “또 아프지 말고.” 깃을 올려 목으로 바람이 들지 않도록 잘 여며 주었다. 또 아프면. 또 출근을 못 하겠지. 아니, 자주 아프다며 사람을 시키겠지. 그런데 코트깃을 올려 주는 세심한 도혁의 손길에 그만 세나의 마음이 어지러웠다. 아프면 번거로워지니 미리 단속하려는 것일텐데 뭔가 다른 마음인건가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춥습니까.” “아, 아니, 괜찮아요.” 스칠듯 두 사람의 팔이 스치며 음식점의 정원을 잠깐 산책했다. “4월이면 입구에 벚꽃이 장관이고 6월말쯤? 그 때는 수국이 절정이고. 꽃을 좋아하면 시기 맞춰서 한 번 더 와도 되고.” “정말요?”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상상하자 빨리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들뜬 목소리로 도혁에게 되물은 세나가 금세 목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 “꼭 그 때 아니라도 언제든. 오고 싶으면 말해요.” 오늘, 도혁은 이상했다. 여름에도 으스스할 것 같은 목소리에 냉기가 꽤나 빠진것 같이 느껴졌다. “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이제 그만 돌아 갑시다.” 몸이 약한 세나가 찬 공긱에 감기라도 덧날까 걱정되는 도혁이 귀가를 재촉했다. ***** “아…손이라도 잡아 드리지 그러셨습니까. 사모님이 기대하셨을 수도 있는데.” 오전의 모든 회의를 끝내고 한승우를 호출했다. 시작은 태오의 한 마디였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세나가 신경쓰인다면 종종 밖에서 시간을 보내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세나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지. 조언을 듣고 피드백을 받고 싶었다. “불편하고 어색해 할까봐.” 한승우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 해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고민했다. 부부사이에 그깟 손 잡는게 어때서. 불편하고 어색할까봐라니. 혹시…아니다. 그럴 수는 없지. “그러실 수도 있습니다. 몸의 대화는 아무렇지 않은데 손 잡고 어깨에 손 올리는게 어색하실수도 있죠.” 이 새끼가 돌았나 싶지만 도혁의 지금 고민을 여러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 정색한 얼굴로 한승우에게 다시 물었다. “가끔 밖에 데리고 나가 같이 식사하고 또 뭘 하면 좋아할까.”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냥 드라이브 나가서 커피도 드시고, 예고없이 일찍 퇴근하셔서 보고 싶어서 빨리 왔다 이런 멘트도 하시고. 아. 그럴 때 그냥 뭐라도 하나 사 가시면 좋아하실 겁니다.” “뭘?” “네?…아, 그…사모님 취향이 어떠신 지 몰라서 확실히 이겁니다라는 추천은 못 드리는데 소소한 거라도…” “어렵네, 젠장.” 마음을 까뒤집어 보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온통 내 마음은 오세나, 너 뿐이라고. “어렵다고 생각하시면 뭐든 어색합니다. 편하게, 천천히 마음을 보여 준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그래. 후…나가봐.” 한승우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나갔다. 지금껏 살아 오며 어려운 사람이라고는 없었는데 여자 하나에, 그것도 열 살이나 어린 여자에게 쩔쩔 매는 자신이 어이없으면서도 한심했다. 여자가 이렇게나 어려운 존재였나. 똑똑. 노크 소리에 도혁이 정신을 차렸다. "가시죠, 회장님." 카지노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을 VIP가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큰 손중의 큰 손인만큼 도혁이 직접 마중을 나가야 했다. 도혁이 집무실을 나가자 비서 실장 태오가 뒤를 따랐다. ***** 도혁과 세나가 결혼한 지 한 달. 친구들의 집들이를 주말에 하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머릿속으로 집들이용 음식 메뉴를 떠올리는데 도혁의 한 마디가 와장창! 상상을 깼다. “호텔 식음료팀이 와서 음식을 할 거고, 서비스 직원 두 명이 끝날때까지 있을 겁니다.” “그럼 저는 무얼 하면 되나요?” “오세나씨는 내 옆에만 있으면 됩니다.” 집들이인데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라… 호텔에서 직원들까지 지원 나올 정도면 집에서 가능하기는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은 얼마나 오시나요?” “민석이 부부, 태오, 그리고 친구 동생. 이렇게.” 네 명? 그런데 호텔 식음료팀이 온다고? 그 정도면 주방일을 하는 사용인과 세나가 충분히 할 수도 있을 인원이었다. 굳이 호텔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직접 해 보겠다고 말했다. “호텔 쉐프가 와서 할 겁니다. 그러니까 오세나씨는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주방 사용인과 제 솜씨가 탐탁치 않아서인가 아니면 격이 맞지 않다는 말인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제 옆에만 있으라는 도혁의 말이 서운하게 들렸다. 그저 옆에서 인형처럼 웃고만 있으라는 의미 아니고 뭐 겠는가. “아. 그리고 집들이 때 입을 옷을 좀 사야겠는데.” 도혁이 눈 뜨는 순간부터를 출근이라 여기고 그에 맞게 옷을 입었는데. 그는 아니었나 보다. 호텔 식음료팀을 부르고 옷까지 산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집들이가 될텐데. 겨우 친구 네 명 참석인데. “저 지금 복장이 마음에 안 드세요?” 실크 블라우스에 슬랙스정도면 괜찮지라는 건 세나만의 생각일까. “그 날도 이 복장 그대로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대로면 또 어떤가. 하지만 고용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니 세나는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내일 점심때 차를 보내겠습니다. 나는 회사에서 백화점으로 바로 갈테니까.”호텔 체인과 카지노를 이끄는 태원 그룹.거기에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는 라운지바.그런 그룹을 이끄는 젊은 남자.여자들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다.분명 욕심나는 혼처가 있었을 것인데.“어머님. 어머님은 저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왜 반대를 안 하셨어요?”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이었다.오승환은 도혁의 집에서 당연히 반대를 할 것이라 생각하고 허락을 미뤘는데 의외로 흔쾌히 허락을 했던 것이었다.“우리 며느님은 그게 궁금하셨어?”“사실 도혁씨에 비하면 저희 친정이 너무 부족하다 생각했어요.”서애리는 그런 질문을 하는 세나를 빤히 보다 물잔을 들었다.“사실 욕심나는 집안이나 아가씨들은 있었지. 그런데 당사자인 차회장이 거들떠도 안 보는데 어떡해. 결혼은 내가 하는게 아니라 차회장이 하는거니까.”물을 한 모금 마신 서애리가 작게 미소지었다.“차회장이 누구를 소개시키기는 처음이었거든. 결혼할거니까 소개를 했겠지만. 둘이 잘 살면 되지. 나는 그것뿐이었어.”원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지 못 하자 평생을 혼자 산 서애리의 오빠를 보며 수십년을 다짐했던 마음이었다.부모말을 한 번 어긴적이 없던 친정 오빠였다.의대에 다니던 오빠는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그런 오빠가 국가 고시를 합격하자마자 집에 여자를 인사시켰다.결혼하고 싶습니다.작은 회사에서 경리를 본다던 오빠의 여자 친구를 부모님이 격하게 반대했다.더 좋은 조건, 더 좋은 집안의 여자들이 줄을 서는데 바닥이 보일 정도로 가난한 집은 안 된다는 이유였다.부모님말이라면 무조건 네,라던 오빠가 처음으로 매달렸다.오빠의 여자 친구가 먼저 떨어져 나갔다.아들 앞길 망치지 말라는 부모님의 협박에.저러다 말겠지 했던 오빠는 그 후로 어떤 여자도 만나지 않았다.친정 어머니가 선자리를 만들자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친정어머니는 머리를 싸매고 누웠을 정도였다.그렇게 친정오빠는 평생을 혼자 살고 계신다.친정 어머니가 돌아 가실때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한다고 하셨다.돈은 우리가 있으니 좋
“조사를 받아야 하는 건 맞지. 그 이후는 어떻게 할 지 생각해 봤어? 나 역시 처벌은 당연하다 생각하는데 다음은. 그 때도 계속 진영이를 우리가 봐 줘야 할지 어떨지를 먼저 고민해 보는게 맞다고 본다, 나는.”그 이후까지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결론을 미룰 뿐이었지.조사를 받는 과정은 분명 변호사의 개입이 있어야 하고 그 비용은.세 사람이 속한 태원 그룹의 이미지를 망가뜨리려 하고, 십 수년간 다져온 VIP들과의 신뢰를 흔드는 행동을 한 진영을 계속 돌봐야 하는 것도 아니러니하다.다른 이였으면 관계를 끊는게 당연하지만 친구가 걸려 있어 쉽지 않았다.“그 이후를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사소한 실수가 아니었다.“그 고민은 좀 더 시간을 가지, 진영이가 조사받는 것에는 다들 이의가 없는 걸로 생각해도 되겠나.”그 부분은 민석도 태오도 동의했다.“법무팀, 관제팀 회의 때 법무팀이 의견 내는 대로 다음 단계 진행해.”드디어 날아드는 화살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여보세요.”“며느리니? 나다.”도혁의 출근 후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연습실에서 막 악보를 펼칠때였다.“네, 어머님. 식사하셨어요?”“그럼. 회사가 뒤숭숭해서 마음 고생이 많지?”“아니에요, 어머님. 도혁씨가 힘들지 저는…”“지켜 보는 것도 마찬가지지. 오늘 약속있니?”“아니요,어머님.”“잘 됐구나. 그럼 나랑 점심 먹고 바람이나 쐬자.”“정말요? 몇 시까지 어디로 가면 될까요.”서애리가 약속 장소와 시간을 알려 주고 전화를 끊었다.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연습을 조금만 하고 외출 준비를 시작하면 될 듯 했다.서애리긴 하지만 외출은 외출이니 도혁에게도 알려야 했다.통화 가능하냐는 문자 메세지를 보내자 도혁이 바로 전화를 해 왔다.“어머님이 점심을 같이 하자고 전화를 주셨어요.”“어머니가?”“네.”서애리가 알려준 약속 장소와 시간을 도혁에게 알려 주었다.“아, 거기.”“어딘지 아세요?”“어머니가 종종 가시는 곳입니다. 시간
내내 그리워 하던 것이 도혁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손 안에 넣어 주무르는 것으로 모자라 이를 세워 베어 물었다.연약하기만한 살덩어리에 베어 문 자국이 그대로 새겨 졌다.침대로 가기를 원하는 세나의 부탁을 들어줄 형편이 되지 않았다.다급했다.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한 손으로 가볍게 세나를 안아 들어 장식장의 유리 상판위에 올렸다.준비는 되었다.도혁은 소담한 숲을 헤치고 깊은 굴을 찾아 천천히 몸을 넣었다.그의 두 팔에 걸린 얇고 긴 다리가 순간 뻣뻣하게 굳었다.열기로 달구어진 손으로 세나의 등에서 엉덩이를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쓰다듬었다.얕고 천천히.여름 첫 바다에 발을 담그듯 조심스레 허리를 움직였다.그가 움직일때마다 세나의 팔이 목을 더 세게 안았다.“누울까.”유리가 깨질까봐 두려운 세나가 고개를 저었다.도혁이 세나를 들어 올렸다. 아래는 결합한 채로.침실로 발걸음을 뗄때마다 움찔거리며 빨아 당기는 속살에 뒷통수가 저릿했다.빨리.한 걸음 한 걸음 옮길때 전기를 흘려 보내는 것 같은 자극은 머리에서 시작해 전신으로 퍼졌다.세나의 뒷머리를 받치고 조심스레 침대에 눕히자 이제 안심이라는 듯 도혁의 목에 두른 팔을 풀었다.여전히 아래를 움찔거리고 조이면서.허리를 세우고 허리를 힘주어 푹 밀자 가슴이 출렁였다.세나가 팔을 들어 흔들거리는 가슴을 가렸다. 그리고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도혁이 그 팔을 풀고 세나의 턱을 잡아 저를 똑바로 보게 했다.얼굴은 도혁을 향했지만 세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눈 아래로 긴 속눈썹이 펼쳐진 부채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눈은 떠야지."그 말에 세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짙은 갈색 눈을 보였다.깊이 빠져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세나의 이마에 제 이마를 붙였다.한 팔은 몸을 지탱하고 다른 팔로 세나를 끊임없이 매만졌다.보드라운 뺨을, 귀여운 귀를, 말랑한 가슴을, 탄력있는 엉덩이를.어느 한 곳도 가만 두지 못 할 지경이었다.세나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끊임
도혁이 집에 잠깐 들르겠다는 전화를 해 왔다.집무실에서 눈도 붙이고 간단하게 샤워는 한다지만 집만큼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저녁은 먹고 오겠다는 도혁에게 해줄만한 것을 고민했다.집에 오래 머물수 없지만, 누적된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싶었다.“오셨어요.”타이도 하지 않은 셔츠의 단추가 두어개 풀려진 채 도혁은 집으로 왔다.“잘 있었습니까.”오랜만에 만나는 부부는 애틋하면서도 어색했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이 가득한 채로 포옹을 했다.도혁은 세나의 목덜미에 코를 깊게 묻었다.이대로, 세나를 안은 채 10분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다.세나가 도혁의 등을 쓸어 내렸다.겨우 사진 몇 장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깟 사진 몇 장 때문에 그룹이 휘청거리고 있었다.도혁의 얼굴에 피곤함이 한가득이었다. 단 며칠 사이에.다 잘 될 거예요.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여러번 그 말을 반복했다.“목욕물 받아 뒀어요. 따뜻한 물에 몸 좀 풀고 가세요.”남편이라고 걱정을 해 주는 마음 씀씀이가 예뻤다.“그럴까.”세나에게서 몸을 떼어낸 도혁이 드레스룸으로 걸음을 옮겼다.도혁이 욕실로 들어 가자 세나는 차를 준비했다.집에 마실거라고는 물과 커피가 전부였다.세나도 차를 즐기지 않지만 사용인들이 마시던 보리차 티백을 우려 냈다.수증기로 가득한 욕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던 도혁이 문소리에 눈을 떴다.욕조옆에 잔을 놓아 둔 세나가 물에 손을 넣어 온도를 한 번 확인했다."괜찮아요?""좋습니다.""보리차예요. 커피는 회사에서 많이 마실 것 같아서."보리차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미지근하게 데웠거나 아니면 식혔거나."하루 종일 지겹지 않습니까."차만 놓아 두고 나가려는 세나를 도혁이 잡았다."네?""집 밖을 못 나가서 지겹지 않냐고."외출이라고는 일주일에 두 번 요리 수업이 전부였다.그마저도 못 하게 된 세나는 새장에 갇힌 아기새 신세가 되었다.어미새가 오기만을 기다리는."괜찮아요. 바이올린 하고 있
똑똑.“회장님.”태오였다.“또 고소장이라도 온 건가.”“그게 아니라…”태오가 도혁의 책상 위로 파일을 하나 펼쳐서 올렸다.“전에 지시하셨던 사모님 친구들 조사를 마쳤습니다.”아, 그랬지.그룹이 벌집 쑤셔진 거 마냥 난리통이라 잠시 잊고 있었다.태오가 올려 준 파일을 한 장씩 쓱 읽어 보았다.다들 특별한 것은 없었다.도혁을 질투심에 미쳐 날뛰게 했던 이세준마저.“부모님이 교수시고 오세나와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다녔고…”다른 친구들과 달리 세나와 3년을 더 알고 지낸 셈이라 유독 가까워 보였던 건가.평범한 결과에 오히려 도혁이 무안해 질 참이었다.“사모님이 요리 수업에서 나오시다 이세준씨를 만났다고 합니다.”무안해지려던 마음에 다시 어떤 불씨가 확 지펴졌다.“오늘?”“네, 기사가 좀 전에 알려 왔습니다.”이 새끼가 진짜, 사람 도는 거 보고 싶어서 이러나.도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놓았다.우연.그래, 우연이다. 진짜, 우연.오다가다 만날 수도 있는 거지.애써 마음을 눌렀다.“우연이겠지.”“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분은 그렇지 않았다.오늘 저녁은 집에 가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SNS에 숨겨온 비밀을 풀듯 사진을 하나씩 풀던 진영은 연락없는 도혁을 기다리다 지쳐 갔다.갈라쇼에서 사진을 찍다 걸린 건 진영이 유일했다.그렇다면 SNS에 풀린 사진이 저라는 추측정도는 할 만 한데 그걸 눈치 채지 못 했단 말인가.아직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이 제법 있지만 진영은 SNS 업로드를 멈췄다.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사진을 찍다 관제팀에 잡혀 갔을 때 휴지통까지 싸그리 비우고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하나 놓친 것이 있었다.찍은 사진이 자동으로 클라우드에 저장되는 것.그것까지는 관제팀에서 몰랐을 것이다.그러니 휴지통만 비우고 증거를 완전 인멸했다고 생각했겠지.생각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진영은 지루했다.지루할 땐 뭐? 쇼핑이지!진영은 차키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
도혁이 등장하자 연회홀은 일순 조용해 졌다.태원 그룹의 수장이자 카지노 갈라쇼의 총책임자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 지 모두 집중했다.“먼저 어제 저녁에 있었던 ‘태원 카지노 VIP갈라쇼’사진 유출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도혁이 포디움옆으로 한 걸음 나와 깊게 고개를 숙였다.“현재 유출 경로를 파악중에 있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섣부른 추측은 삼가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유출된 사진의 주인공들에게는 어떤 보상이나 법적 책임을 지겠다며 공개적으로 VIP들을 달랬다.“철저하게 보안에 만전을 기했음에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는 바입니다. 죄송합니다.”도혁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인터넷 개인 방송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기자 회견을 보고 있던 진영은 코웃음을 쳤다.도혁이 유출자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라는 강한 경고를 남겼기 때문이었다.‘어떻게 찾을 거야,나를.’진영은 익명 뒤에 숨어 킬킬거렸다.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챔피언십에서 쫓겨 난 이후 뭐가 됐든 도혁이 한 번은 찾을줄 알았다.당연히 잘못을 했으니 혼이 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도혁은 커녕 태오마저 연락이 아예 없자 놀래켜 주고 싶었다.적당한 때에 SNS에 사과문을 올리고 삭제하면 그만일 테니까.오빠들의 혼을 빼 놓고 적당히 잔소리를 듣고 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잊어지리라 생각했다.이런 단순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진영은 몰랐다.그도 그럴 것이 진영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 가는지에 관심이 없으니까.*****우려했던 일이 터졌다.기자 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VIP들을 달랬지만 그게 먹히지 않는 인물들은 꼭 있기 마련이었다.특히, 이미지로 먹고 사는 유명인들은 그랬다.반듯하고 올곧은 이미지로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국회에 입성한 초선 의원이 제일 먼저 고소장을 도혁에게 선물했다.예상한 선물은 예상보다 너무 빨리 도착했다.초선 의원의 고소장이 시작일 것이다. 다음은…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